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이시경 소설집)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이시경 소설집)

$16.80
Description
스토리코스모스가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가려 뽑은 '에디터픽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이시경의 첫 소설집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는 '색채'를 하나의 언어로 삼는다. 여기서 색은 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고 기억이며, 누가 누구를 어떻게 길들이는가의 문제다. 표제작은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한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통제를 좇는다. 선택을 빼앗긴 한 사람의 감각이 어떻게 뒤틀리는지, 그리고 그가 도달하는 곳이 왜 해방이 아니라 색과 하나가 된 자기 붕괴인지를.

7편의 단편은 따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첫 편의 빨강은 마지막 편에서 돌아오고, 세 번째 편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여섯 번째 편에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순서대로 읽으면 단편집 한 권이 어느새 하나의 장편처럼 닫힌다.

알고리즘이 관계를 대신하고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묻는 이야기들 속에서, 작가는 가장 새로운 풍경 위에 가장 오래된 질문을 올려놓는다. 억압된 것은 어떻게 돌아오는가. 그리고 이야기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빨강은 색이 아니다. 누군가 내 안에 심어놓은 욕망이고, 끝내 나를 무너뜨리는 이름이다.
저자

이시경

대구에서태어나고한국외국어대학교독일어교육과를졸업했다.2023-1스토리코스모스신인소설상에「데스밸리판타지」가당선되어등단했다.당선이후,「나는그것의꼬리를보았다」「푸에고로사」「색채그루밍의세뇌효과에대하여」「데니의얼음동굴」「나는이것을색(色)이라부를수없다」「마망」이잇달아스토리코스모스라이브러리에선정되어에디터픽시리즈출간이결정되었다.이시경은감각과인식의조건을탐구하는작가로색채와이미지,디지털환경을매개로인간의정체성이형성되고변형되는과정을그리며,사건중심서사를넘어감각과상태를중심으로한독자적서사미학을구축하고있다.

목차

색채그루밍의세뇌효과에대하여08
데스밸리판타지38
나는그것의꼬리를보았다68
나는이것을색(色)이라부를수없다102
데니의얼음동굴136
마망170
푸에고로사200

작가의말229
에디터픽시리즈선정사유233

출판사 서평

한국문학출판사상처음으로,
가려뽑은작품만으로묶은소설집

1.'색채'라는언어로번역된시대
이시경소설집『색채그루밍의세뇌효과에대하여』에수록된7편의단편은,동시대한국문학이직면한감각적·존재론적위기를정면으로응시하되그것을서사구조의실험으로돌파한다.정체성의박탈,디지털착취,가족의침묵,창조적자아의억압,기억의가변성-21세기한국을사는사람들이겪는가장핵심적인것들을,이소설집은'색채'라는원초적언어로번역한다.

여기서색채는시각적요소를넘어권력이자정체성이고,기억이자폭력이며,무엇보다한주체가만들어지는메커니즘그자체다.표제작에서'빨강'이타자에의해주입된욕망이자금지된동일시의대상으로작동하듯,색은인물의가장깊은곳을길들이고또뒤흔든다.

이소설집이말하는것은2020년대한국에서만유효하지않다.그러나이소설집은2020년대한국에서만탄생할수있는방식으로말한다.이특수성과보편성의결합이야말로이책을에디터픽시리즈제1권으로세운가장근본적인이유다.

2.장르의발명,그리고제3의여성서사
지난수십년간한국소설은1990~2000년대의내면탐구에서,2010년대의사회적리얼리즘과청년서사를거쳐,2020년대의기후·AI·디지털전환으로옮겨왔다.이소설집은그가장새로운물결의최전선에있으면서도거기에머물지않는다.

알고리즘을다루는「나는그것의꼬리를보았다」,로봇과인간의관계를그리는「나는이것을색(色)이라부를수없다」는SF의외피를두르고있지만결코표피적설정에머물지않고,상실·억압·정체성박탈이라는인간의가장오래된고통으로곧장내려간다.마술적사실주의,고인류학,동화,심리소설,환경소설의요소가한권안에자연스럽게공존하는것도,장르혼합을전략으로내세운결과가아니라이야기마다필요한형식을새로발명한결과다.

여성서사의결도다르다.이소설집은고통을직접서술하는대신색채와변신과환상이라는우회로를택함으로써오히려더강렬한감응을만들어낸다.수동적여성상도,고통의직접화도아닌-제3의여성서사문법이라부를만한자리다.

3.단편집이라는형식의재발명
이소설집의가장뚜렷한성취는단편집이라는형식자체를다시쓴다는데있다.독립된작품들의모음이아니라,한편한편이맞물리며하나의유기적장편처럼읽히도록설계되었다.이를테면다섯번째작품에서던져진'기억은변환된다'는명제는일곱번째작품에서잃었던이름의귀환으로실현된다.순서대로읽을때비로소전체의의미가닫히는이설계는,단편집이만들어낼수있는서사적효과의새로운가능성을보여준다.

세계문학에서새로운목소리는늘특정장소의특수한경험에서출발해보편으로나아갔다.더블린의조이스,부에노스아이레스의보르헤스,마콘도의마르케스가그러했듯이.『색채그루밍의세뇌효과에대하여』역시그길위에선다.21세기서울의창신동골목과마곡13지구와로데오뒷골목에서출발해데스밸리와시베리아와파리를경유하며,인류의가장오래된질문에도달하는것이다.억압된정체성은어떻게귀환하는가.기억은어떻게변환되는가.이야기는무엇을위해존재하는가.

억압된것들은사라지지않는다.언제나다른형태로,다른언어로,다른색채로돌아온다.이시경의첫소설집이한국문학의지도위에새로운점하나를찍는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