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유, 성찰과 존재의 회귀로의 시학
- 염월 강소이(시인,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말
휘파람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여름 철새이며, 만주 연해주 및 중국 동부에서도 번식한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내는 봄의 전령(傳令)새로 잘 알려져 있다. 강영옥 시인은 휘파람새를 어찌 알고, 시집의 제목으로 정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시집을 몇 번씩 통독해 보니, 강 시인은 휘파람새뿐 아니라, 앵무새, 비둘기, 고양이 등 동물에 관심과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보인다.
휘파람새는 이 시집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진다. 강영옥의 시집 「휘파람새」를 읽는 내내 미소가 떠오른다. 강 시인은 시에 큰 욕심이 보이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시로 형상화한 생활시가 대부분이다. 어려운 한자어나 관념어를 나열하여 현학적인 표현으로 자만심이나 위용을 부리지 않는다. 일상에 사소한 소재를 소박하게 그려낸 것 같으나, 그 속에 사유와 성찰 - 철학이 녹아있다.
읽는 이들에게 평안과 위로, “쉼”을 줄 것이며, 시 읽는 즐거움과 따스함을 줄 것이다. 큰 상처나 아픔이나 상흔이 그려있지 않은 담백한 시집이다. 삶은 휘파람처럼 짧고 새의 울음처럼 덧없지만, 그것이 생의 아름다움임을, 자유와 귀향의 상징으로 언제나 날아오를 새 - 비상(飛上)의 상징으로 휘파람새는 시집의 처음부터 끝 가지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다. 강영옥 시인의 「휘파람새」에 나타난 미학적 측면을 몇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시편 들여다보기
1)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순환을 노래한 시편
강영옥 시인은 네 계절의 순환을 화려하지 않은 시어로 그려내고 있지만, 계절마다 계절의 화사한 기쁨과 계절이 보내는 미소를 그려내고 있다. 봄을 노래한 시에는 〈봄 처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봄비〉, 〈봄의 향기〉, 〈사월 풍경〉, 〈옥상 풍경〉, 〈봄에 대한 단상〉, 〈휘파람새〉 등이 있다. 봄을 맞아 화사한 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나는 풍경을 회화적 심상(다양한 꽃과 색채)으로 그려내고 있다. 강 시인에게 있어서 봄은 네 계절 중의 하나가 아니라, 생명을 향한 첫 “숨”이며, 생기가 뿜어져 나오는 이미지를 주로 그려내고 있다. “여는 글”에서 강 시인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강 시인의 시어는 화려하지 않으나 단단한 감성과 진정성을 전하고 있다. 또한, 사소한 것에서 삶의 본질을 도출해 낸다.
봄의 전령사로서 꽃으로는 매화라면, 새로는 휘파람새로 알려져 있다. 〈휘파람새〉에서 시인은 휘파람새의 노래에 반했는지, “나의 귀인이여/…. 어서 와서/ 사랑의 세레나데 휘파람 불어주세요”라고 했다. 시작 노트에서 시인은 “가로수에서 들려오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 ”라고 했다. 단순히 가로수에서 들리는 휘파람새 소리에 반했음인지, “나의 귀인”으로 의인화하여, “어서 오기”를 열망하고 있다.
이는 새소리를 기다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고대하는 시인의 미적 태도이며, 따뜻한 봄(소생, 희망, 도약, 발전)을 갈망하는 시 정신이리라.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휘파람새는, 시인이 지나온 생의 길목마다 스쳐 간 바람과 시간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 서정(敍情)이 되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휘파람새가 어서 오길” 바라며 다시 돌아가는 존재의 순환을 열망하는 시집 전체의 주제 의식, 열망과 닿아있다.
여름을 노래한 시에는 〈나리꽃〉, 〈덩굴장미〉, 〈손주의 귀환〉, 〈노파와 개망초〉, 〈태풍〉, 〈늦여름 저녁 옥상 평상에서〉, 〈감자〉 등이 있다. 〈손주의 귀환〉, 〈노파와 개망초〉 시에는 사유가 깊으므로 다른 파트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여름꽃과 여름이라는 계절이 보이는 여러 양상을 시로 잘 표현했다. 일상에서 담담하게 관찰하고 시로 빚어내는 내공 있는 시들이 주목할 만하다.
〈감자〉에서 “하늘이 열리는 날/ 나는 온몸을 살라 태를 틔워/ 주렁주렁 새 생명 해산하리라”라고 했다. 된서리에 울면서/ 생명을 보듬고 있던 감자가 “빛 한 점 없는 어둠” 곧 땅속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감자 뿌리에 주렁주렁 새 생명(감자알)이 영글었다가 농부의 손에 의해 감자를 캐는 날이 곧 하늘이 열리고 해산하는 날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나는 온몸을 살라”는 표현이다. 감자가 뿌리 식물로 영그는 것을 “나”로 의인화하여 잉태와 해산 - 풍성한 생명력, 출산으로 연결한 것은 매우 재미있는 발상이다.
1.1.1.1.1.1.1. 가을과 겨울에 대한 시는 〈가을 자락〉과 〈아직은 한겨울〉, 〈동자승〉 등이 있다. 〈아직은 한겨울〉은 어느 겨울날의 일기문이다. 목장갑을 사러 갔을 때 만물상 가게라든가 호미를 사다가 흙을 두드려 보는 일, 시인을 내려다보는 “파란 눈동자 고양이 한 마리”, “테이블 위에는/ 요구르트 하나 데굴데굴” 쉬운 일상어로 어느 겨울날 일기를 시로 그려냈다. 독자들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읽힌다. 이 시에서 “파란 눈동자 고양이 한 마리”는 인간의 생활을 내려다보는 견자(見者)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독특한 점이다. 시를 이끌어 가는 화자(話者)와 화자를 내려다보는 견자(見者)의 대비가 시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② 〈동자승〉은 한겨울, “푸른 잎이 청청한 동백꽃 무리/ 붉은 입술 무거워 속절없이
떨어지고//…. 꽃이 떨어지면 길이 미끄럽다/ 어서 쓸 거라!”라는 주지승의 일갈
이 들린다. “돌 담벼락 한 줌 햇살”이라든가, “푸른 잎…. 동백꽃 무리”라든가,
“붉은 입술”이라든가 “떨어진 꽃”이 모두 하나의 그림으로 회화적인 심상이 선명
하다.
③ 꽃이 떨어지면 길이 미끄럽다/ 어서 쓸 거라!”는 선시(禪詩)로써 훌륭한 백미를 이
룬다. 입술이 무거워 떨어진 붉은 꽃, 길 미끄러움, 쓸어내서 비워야 하는 두 항
(項)의 대비는 뛰어난 시적 압승이다. 생의 무게를 다하여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삶을 소진하고 자리를 비워주는 우주의 자리 - 동자승이 추운 겨울에도 손을 호
호 불며 “쓸어내는 모습”은 우주의 순환에 대한 깊은 통찰과 통섭의 사유를 보이
는 선시(禪詩)로 돋보인다.
2) 자신과의 대화, 성찰의 시
강 시인의 시는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생활시는 곧 사유와 성찰로 이어지는 특징을 보인다. 그중에 〈성찰〉, 〈거울과의 대화〉가 돋보인다. 특히 〈거울과의 대화〉는 거울에 비친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성찰하는 시로써 매우 독창적인 발상이다. “왜 여기 있니 넌?/ 나는 묻는다”, “여인이 몸을 돌린다/ 여기에 왜 있는지 모르겠어/ 여인이 울고 있다/ 나는 여인에게 모자를 씌워준다…. / 나는 여인을 가슴에 안는다/ 눈물을 닦아준다”라고 했다.
삶에 대한 고단함이나 슬픔에 젖은 자기 연민을 나타내는 구절이리라. “내면에서 슬픈 내면 아이”를 발견한다. 그러나 화자는 “모자를 씌워줌”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며 자기 수용, 자기 포용의 태도를 보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자신에게 질문하고 위로하며 “거울 속의 자아”와 화해하는 자기 수용의 독특한 발상의 시이다.
〈성찰〉에서는 “무표정/ 마음을 비워 놓자”라는 표현으로 자기 통제와 내면의 행보를 일갈하며 자기 다짐을 하고 있다.
3) 사물의 영혼
강 시인의 시에는 생활시가 대부분이라고 했듯이 〈세상의 자식들에게〉, 〈경상도 남자〉, 〈로터리 길〉 등은 생활 시이면서, 생활 속에 아이러니와 유우머가 잘 드러난 따뜻한 시편들이다. 〈로봇청소기〉, 〈벌레〉는 존재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적 실험의 시다. 〈길가에 버려진 장식장〉, 〈초여름 들녘의 장식장〉 등도 생활 속에 평범하고 사소한 사물들을 꾸밈없는 문장으로 쓴 일기(日記) 같지만, 내면에는 인간, 생명, 기술, 역사, 윤리의식이 흐르고 있다. 더 나아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며 삶, 죽음, 생성과 소멸의 철학적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로봇청소기〉는 고장 난 청소기로 인해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지만, “푸른 구슬 렌즈/ 아랫배에 두 눈이 반짝이네”라고 함으로써, “영혼 없는 기계”, 기계의 눈에서 인간의 감정을 보는 생의 징후를 발견하고 있다. 즉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생명과 비생명,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벌레〉는 강 시인의 시집에 실려있는 여타의 시들과 성격이 다른, 내면 탐구의 장시(長詩)이다. “벌레”라는 혐오스러운 해충(害蟲)은 “벌레는 벽지가 아니라/ 나의 피부밑에서 기어 나왔다”라는 서두부터 범상하지 않은 표현을 볼 수 있다. “마침내 작은 틈이 생기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검은 몸체 하나가 꿈틀거렸다”라는 내면 깊은 곳의 죄의식 내지는 트라우마, 분열된 자아의 형상화라고 하겠다.
“아주 천천히 기어다니며/ 가끔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벌레는 내 그림자보다 더 뚜렷한 어둠을 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존재의 근원적 불안 - persona(가면) 속에 꼭꼭 숨어 있던 shadow(내면의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 속에서 나왔으나 나의 일부다/ 그러나 그건 내가 버리고 싶은 존재였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추악한 과거의 나는/ 구석에 박스를 열고 벌레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내 몸에서 나온 그것은 어디로 있을까”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를 묻는 철학적인 질문이다.
이 시는 지금껏 보여주던 소박한 생활시를 벗어나, 표현과 사색에 있어서 현대시의 흐름을 타고, 자기 탐색적 초현실주의 시에 닿아있다. 나 자신이며 나로부터 분리된 타자를 “벌레”에 비유한, 내면 탐색의 시로써 손꼽힐 것이다.
4) 예술과 사유
강 시인의 시가 〈벌레〉에 와서 변모한 것을 위에서 살펴보았다. 그런 맥락에서 〈변기통의 승화〉는 강 시인의 시의 미학적 극치를 보임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