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벽화 (한국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기념 시화집)

무너진 벽화 (한국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기념 시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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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씨실과 날실을 엮어 한 필의 천에 무늬를 새기고 철학을 각문하고, 대중의 보편적 가치를 새기며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장인의 혼을 문장으로 새겨서 패션이란 이름의 옷을 만드는 일을 하며 반평생을 보냈습니다. 정교하게 짜인 피륙의 패턴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삶의 질서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이 꿈결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일장춘몽 一場春夢」과 같은 깨달음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비로소 제 안의 각문된 무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2025년 9월경에는 샘문그룹 산하 계열 문학사 ㈜한국문학에서 주최하고 (사)문학그룹샘문이 주관하며, 서울특별시와 중랑구가 후원하는 〈한국문학상(SINE 1966)〉 공모전에서 문단의 거장 이근배, 김소엽, 손해일, 이정록, 김유조 선생이 심사한 본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과분한 영광을 얻었습니다. 늘 낮은 자세로 겸손하라 말씀하시는 이정록 스승님의 충고를 되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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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호를 수호秀湖, 당호를 수호당秀湖堂이라 각문하였습니다. 시의 길로 들어서게 길을 안내해주시고, 지도편달을 해주신 또 저에게 귀한 아호와 당호를 내려 주신 샘문그룹 시인 이정록 이사장님, 교수님께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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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온전한 생령의 찬란한 벽화로 태어나기를 꿈꿨습니다. 흠집 하나 없는 캔버스 위에 찬란한 생의 그림이 그려 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나와 눈을 떴을 때, 서서히 존재의 의식으로 마주한 것은 이미 어딘가 무너지고, 금이 가고, 빛이 바랜 벽화였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고 자라난 존재는 이 세상에서 상처 입은 채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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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화집은 그 무너진 벽화의 조각들을 맨손으로 더듬어 찾아 나서는 길고 긴 여정의 기록입니다.

1부에는 존재의 첫 상처와 마주하며 영혼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내려갔고,

2부는 그 상처가 회색빛 도시의 미련과 그리움이 되어 흩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3부는 상처 입은 영혼을 이끌고 구원을 찾아 십자가의 길을 걸었으며,

4부에서는 여름 담장의 미소와 같은 소박한 일상에서 마침내 삶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5부에서는, 건져 올린 모든 고통의 조각들이 어떻게 ‘검은 꽃’이라는 예술로 피어나는지를 담담히 노래했습니다.

어쩌면 삶이란 완벽한 무늬의 천을 짜고 새기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호수 깊은 곳에 가라앉은 서럽게 아프고 아름다운 조각들을 기꺼이 끌어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극렬한 고통이 한편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또 아픈 상실이 한 편의 시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무너진 벽화, 인식의 문을 열고 절망 대신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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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 독자 여러분께서도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고있는 가장 깊은 호수를 고요히 들여다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요함이 자리 잡은 깊은 심연에, 우리 각자의 가장 빼어난 수秀의 노래가 잠겨 있을 테니 말입니다.

끝으로 곁에서 늘 응원해주고 희망의 노래를 불러주는 제 아내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시화집 출간의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화집을 축하 해주시고 추천해주신 패션계의 레전드이신 스승님 세아그룹 김웅기 회장님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또한 반평생 생사고락을 같이한 평생 동지 의류 패션계 동지들과 저의 친구들과 저를 기억하시는 지인분들과 문인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리며 이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모든 여러분에게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2025. 10. 03.

생환한 벽화 앞에서 시인 유강호 드림
저자

유광호

경기도 용인시 거주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주금경 미국의류영업 영업부 차장(주)한솔섬유 이사(미국 의류영업)(주)세아상역 대표(미국 의류영업/17년)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패션산업Tex+Fa CEO 비즈니스스쿨(3기)Global CMO School(21기)IPS산업정책연구원 ESG경영 최고위과정(사)문학그룹샘문 부이사장(사)샘문그룹문인협회 부이사장(사)샘문학(구,샘터문학) 부이사장(사)한용운문학 편집위원(주)한국문학 편집위원(사)샘문뉴스 문화부 기자(재)샘문그룹문화재단 위원지율문학 회원이정록문학관 회원샘문시선 회원〈수상〉2025 한국문학상 최우수상(샘문)2025 샘문뉴스 신춘문예 당선2025 샘문학 샘문학상 시 등단한국의류산업협회 우수상대한민국 정부 산자부장관상대한민국 정부 국무총리상〈공저〉만화방창 랩소디〈컨버전스시선집/샘문시선〉김동리 각문刻文〈한국문학시선집/샘문〉

목차

여는 글 / 4
추천사
레전드 인생 제2막을 위하여 / 6
탄생, 죽음.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철학적 서사시 / 7


제1부 무너진 벽화, 심연
무너진 벽화 / 24
내 옆에 서 있다 / 26
Standing Next to Me / 27
바다의 노래 / 28
꽃별의 장례식 / 29
꿈이 도망갔다. / 30
나, 하나의 방정식 / 31
가시나무 새 / 32
영혼의 끝자락 / 33
후줄근한 아침 / 34
세월의 상처, 옹이 / 36
회한悔恨 / 38
담쟁이 문장 / 40
붉은 가면 양동이 / 41
미로迷路에게 묻는다 / 42
촉루燭淚 / 44

제2부 회색비, 도시의 미련
억새를 만나러 가는 길 / 46
스치며 걷는다 / 47
첫사랑 소녀 연가戀歌 / 48
기다리는 연정 / 49
동궁 월지 / 50
붉은 단풍의 눈물 / 51
가시 없는 사랑 / 52
천일홍, 첫사랑의 향기 / 53
가슴에 남은 미련 / 54
심금心琴 타는 눈물 / 55
아픈 소회所懷 / 56
손가락 약속 / 57
가끔 혹은 때때로 / 58
달빛 소곡 / 60
Moonlight Sonata / 61
가을 사랑 / 62
Pain of Fall / 63
일장춘몽 / 64
낭만에 대하여 / 65
비에 젖은 그대 가슴 / 66
비, 나의 정원에서 / 67
도시의 교향곡 / 68
마지막 소나타 / 70
서핑을 탄다 / 72
집으로 가는 막차 / 74
상처 / 75
링거의 전투 / 76

제3부 십자가의 길, 새벽을 걷는다
간구懇求의 빵 / 78
Bridge of Life / 79
십자가의 길, 회색 비 / 80
속죄의 기도가 머무는 곳 / 81
청죽靑竹의 자태 / 82
궤적軌跡 / 83
고란사 독경 소리 / 84
풍경風磬에 고독 / 85
거미의 생애 / 86
사유의 시간 / 87
Pain of Rain / 88
당신의 기도를 부탁하네 / 89
태초의 새벽 / 90

제4부 여름 당장의 미소
벚꽃 자매를 그리워하며 / 92
네 자매의 대화 / 93
하늘의 노여움 / 94
황금벌판 / 95
벼, 대지의 윤회輪廻 / 96
발리 연가 / 98
발리의 맛 / 100
새우의 변신 / 101
능소화 / 102
황금 잉어의 야망 / 103
포보에 담긴 미소 / 104
효로曉露 / 105
구름의 텃세 / 106
이 비 그치면 오세요 / 107
봄의 입맞춤 / 108
아침에 만난 꿈 이야기 / 109
사랑의 노래 / 110
사랑하기에 / 111
상추와 열무 형제 / 112
묵밥 한 그릇 / 113
괘종시계 / 114

제5부 궤적, 검은 꽃의 노래
폭포 / 116
초 / 117
초원 연가 / 118
발자국 / 119
죽음 / 120
심판의 창 / 121
목마의 아픈 이야기 / 122
눈이 내린다 / 123
신데렐라, 바르셀로나의 꿈 / 124
달빛 발자국 소리 / 126
별 / 127
영혼의 기억 / 128
안개의 폭풍 / 130

“에필로그” / 132

출판사 서평

탄생, 죽음.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철학적 서사시

- 염월 강소이(시인, 교수,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말

유광호 시인의 시화집 「무너진 벽화」 외 89편의 시를 읽고 나서, 유광호 시인은 기량이 있는 시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프로필에서도 말해주듯이 그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이다. 의류 사업에 오래 몸담으며 본격적으로 문학에 몰입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니, 문학에 대한 열정을 오랜 세월 놓지 못하고, 늘 시를 써온 것을 알 수 있다. 2025년 봄에 〈샘문학 신춘문예〉로 시에 등단하고 그해 곧바로 2025년 〈한국문학상〉 본상 〈최우수상〉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고 뒤이어서 올가을에 이 정도의 첫 시집을 상재(上梓)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시에 대한 애정을 가슴 한켠에 품고 꾸준히 시를 써온 것으로 보인다. 문학청년이었던 대부분의 남성들은 산업화 역군으로 사회에 기여하다가, 사회에서 사업적 성공을 이루었어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늦은 나이에 문학에 귀의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사회생활을 하며 겪은 고단함과 아픔, 상처 그리고 젊은 날 가슴앓이했던 사랑과 이별, 그리움 등이 농익어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된다. 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성찰까지 매우 깊이 있는 시를 빚어내게 된다.

특히 유광호 시인처럼 언어학을 전공한 문학도는 남다른 감수성과 예민한 통찰력으로 삶을 시로 그려낸다. 신춘문예 때 유 시인에 대한 심사평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유 시인의 우수성을 심사평에서 평한 기억이 있어, 시집을 여러 번 정독(情讀)하면서 시인의 면모를 발견하였다. 첫 시집의 성과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써낼 시에 대한 기대가 된다.

유 시인은 시집에 목차를 정하고 부(部) 갈림을 하여, 시의 5가지 양상을 스스로 분류해 놓았다. 시의 성격대로 잘 분류되어 있다. 1부(15편), 2부(26편), 3부(13편), 4부(21편), 5부(14편)의 편수로 되어 있어서 각부마다 대표적인 시를 두 편씩 평설을 하려 하였으나, 1부와 2부, 3부, 5부에 심도 있는 시가 집중되어 있기에 시집 전체적인 성격과 함께 각 부의 특징을 언급하도록 할 것이며, 몇몇 작품만 깊이 있게 평설하려 한다. 지면이 넉넉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운 마음이다. 언급하고 싶은 시들은 마음껏 언급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먼저 피력한다.

2. 시편 들여다보기

유광호 시집은 인간과 자연, 사랑과 고통, 생명과 영혼을 잇는 총체적 존재론을 담고 있다. 계절과 풍경, 도시와 여행, 일상과 세계 각지의 여행한 행적을 시적 언어로 포착하여 삶을 다층적으로 사유한다.

1) 제1부 무너진 벽화, 영혼의 심연
제1부 15편 모두 우수성이 인정된다. 시집의 첫 장부터 강한 톤으로 탄생 - 고통 - 소멸 - 환생의 순환 구조를 보이는 영혼의 서사시라고 하겠다. 15편의 시가 독립적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무너진 벽화〉에서 시작된 “탄생의 고통”이 〈영혼의 끝자락〉에서 “죽음을 통한 해탈”로 연결되며 매우 탄탄한 시적 구성을 보인다.

시집의 서두부터 인간 존재의 고통(탄생, 상처 회한)을 통해 영혼의 본질을 응시하는 여정을 보인다. 1부에 실린 15편 중에서 〈무너진 벽화〉, 〈꽃별의 장례식〉, 〈영혼의 끝자락〉은 1부의 중심축을 이루는 시라고 하겠다. 시어의 톤이 강렬하고 무겁게 시작되고 있기에 시 정신의 무게감이 신변잡기 적인 생활시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기대하게 된다.

시 시집의 제목인 〈무너진 벽화〉부터 잠시 살펴보자. 벽화는 글자(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원시인들이 벽에 그림을 그려 기록을 시작한 “기록물”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W. 워즈워스가 말했듯이 인간에게는 표현의 욕구가 있다고 했다.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벽에 그림을 그려서 원시인들은 생활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기려 했다. 그런데 유광호 시인에게는 벽화가 왜 무너졌다고 표현했을까? 생각하게 한다. 원시인들이 벽에 생활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기원을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했음을 근거로 하면, 유광호 시인이 유년 시절부터 가졌던 삶에 대한 비전, 꿈, 소망이 모두 실현되지 못하여 좌절된 꿈의 이미지로 “무너진 벽화”를 소환해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꿈이 도망갔다〉라는 시를 통해 유추한 것이지만, 다 이뤄내지 못한 성취에 대한 회한일 수도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 한 조각쯤은 모두 갖고 있을 테니,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 - 상처와 좌절, 실현에 대한 욕망과 굴절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시는 시집 전체의 기도문 역할을 한다. 탄생의 순간은 “탯줄 잘린 갓난아이”로 그려지며, 인간 존재의 시작은 곧 기쁨이나 행복이 아니라 탯줄이 절단되고 모체(母體)로부터 “분리되는 고통”으로 인식되어 있다.

여기서 “침묵하는 아우성”, “날개 잘린 천사”와 같은 역설적인 이미지들은 탄생- 존재의 시작이 곧 이생으로의 유배. 고통의 시작임을 암시한다. “찰나의 삶/ 마치 문틈에 끼인 한 줄기 빛처럼/ 잠시 기거하는 이 공간”으로의 유배인 것이다. 안전하게 영양을 공급받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이 세상으로 쫓겨난 공간 - 이생은 찰나의 삶이며 잠시 기거하는 공간이다. “그는 길고 긴 탯줄에 구원되어 나왔다/ 무너진 벽화 밖, 새로운 행성으로” 어머니의 길고 긴 탯줄에 구원되어 무너진 벽화(자궁벽)에서 분리되어 벽화 밖인 새로운 행성(지구) - 현생으로 나온 것이다.

무너진 벽화는 이루지 못한 꿈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어머니의 자궁벽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게 시가 갖는 압축과 중의적 내포의 힘이다. 인간이 어머니의 자궁벽에서 분리되어 현생으로 나와 살아온 족적(足跡)은 아름답고 눈부시도록 황홀한 벽화의 기록물이면 좋으련만, 이루지 못한 꿈, 시련, 좌절, 실연(失戀), 실패 등으로 무너지고 부서진 벽화를 그리게 되기 십상이지 않은가? 이 시에서 벽화는 파괴된 기억 또는 이루지 못한 꿈, 상처와 실패를 상징한다고 볼 때, 상징시, 초현실주의 시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곱씹을수록 시 읽는 깊이를 느끼게 하는 시가 될 것이다.

1부에 실린 시 중에 〈후줄근한 아침〉은 초현실적 이미지의 향연을 보이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샹들리에 꼬리”, “고구마 타는 냄새”, “백설 공주의 사과”라고 하는 이질적 이미지들이 혼재하면서 현실과 꿈의 경계, 무너진 아침을 보인다. 맨 끝 문장 “배가 고프다”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허기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앞 문장 “후줄근한 아이러니가 보인다”라는 표현으로 보아 영혼의 허기 - 공허함과 영혼의 갈증이 강한 표현으로 해석된다.

〈무너진 벽화〉에서 탄생의 고통을 시작으로 하여 〈영혼의 끝자락〉에서는 끝자락 -무(無)로 향하는 통과의 과정이다. 시인은 영혼의 완성으로 보지 않고 “끝자락”에서 멈춤으로써. 그 이후의 세계 - “말해질 수 없는 영역”을 암시한다. 따라서 제 1부는 생의 종착점이 아닌, “무한히 이어지는 영혼의 사유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영혼이 다시 그려지는 시작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미미한 자취가 시간의 끝 저편으로 사라져, 더없이 기쁘게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고통에 마비된 그의 몸 조각은
붉게 얼룩진 벽화 속 모습에서
다시 현상계 육신으로 소환된다
벗어날 수 없는 필연적 운명 속으로

그는 길고 긴 탯줄에 구원되어 나왔다
무너진 벽화 밖, 새로운 행성으로

- 〈무너진 벽화〉 일부

비록 인생의 끝자락에 후회의 날에 베어져
붉게 물든 눈이 몸과 영혼을 바라본다 해도
미미한 자취는 시간의 끝 저편으로 사라져
더없이 기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리라
영혼의 끝자락에서 말이다

- 〈영혼의 끝자락〉 일부

위에서 본 것처럼, 〈무너진 벽화〉에서 “탄생의 고통”을 읊어 1부의 시작을 열었고, 〈영혼의 끝자락〉에서 “미미한 자취는 영혼의 끝자락에서 기쁘게 눈을 감을 수 있다”라는 표현으로 1부를 닫는다. 탄생에서 시작하여 영혼의 끝자락까지의 긴 인생의 여정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영혼의 끝자락에서 시인은 “기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을 제시하여 영혼의 끝자락이 고통이 아니고 환희임을 역설(逆說)한다.

그러나 “미미한 자취”가 전제되어야 함을 역설적으로 힘주어 표현하고 있다. 어떤 사업적인 성과보다는 “예술로의 승화”, “문학작품 저술과 같은 족적(足跡)”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무너진 벽화를 복원하여 생환(生還)하는 자기 구원의 길임을 터득했음을 보여주는 시로 해석된다. 유협(劉勰)이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강조한 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저서를 남기는 것”이라고 한 것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꽃별의 장례식〉도 매우 뛰어난 시이지만, 다음 기회에 해설하기로 한다.

2) 제2부 : 회색비, 도시의 미련
2부에서는 “회색 비, 도시의 미련”이라고 시인 스스로 제목을 붙였다. “상처 입은 영혼이 마주하는 도시의 고독과 일상, 그리고 떨쳐내지 못하는 과거와 기억의 흔적들을 담은 시”라고 시인 스스로 2부에 실린 시의 성격을 스스로 부연 설명하고 있다. 26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고, 일반 독자들이 읽어내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가독성(可讀性)이 좋은 시들이다. 그러나 유 시인의 시에는 언뜻언뜻 초현실주의와 상징, 이미지의 밀도가 높게 묘사되어 있음을 보이며, 시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이미지의 충돌이나 시어끼리의 단절감을 주기도 한다. (예 : 〈스치며 걷는다〉, 〈억새를 만나러 가는 길〉, 〈망친 솜사탕 덩어리를 회색빛 하늘이 먹고 있네〉) 또한, 다른 파트 보다 2부에서는 사랑, 이별, 그리움을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