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佛性과 민중과 역사를 품은 시조의 현재형
(임정봉 제2시조집 “인불, 오백나한도” 평설)
- 염월 강소이(시인, 교수, 수필가, 문학평론가)
1. 머리말
임정봉 시인의 시편에는 정갈한 율조 속에, 깊이 사유하는 시의 울림, 영혼의 웅비가 있다. 한 사람의 인간, 남성으로 겪은 개인적 감수성에 머물지 않고 현실 참여, 세태 풍자적인 앙가주망 적 시편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시인은 신변잡기의 시 세계를 보인다. 임에 대한 그리움, 어린 시절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 부모님에 대한 회한이 대부분의 소재로 다뤄지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모악산아 말해다오」 시조집에 이어 두 번째 시조집을 낸다며 보내온 시조 원고에는 불성, 민중, 역사를 품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시편에서도 신변잡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시 세계는 오로지 만해처럼, 불교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껴안고 있었으며, 5·18에 대한 사유, 해양의 환경 문제를 다루며 만경강의 농경 - 민중들의 삶, 4·3사건과 군함도를 소재로 하고 있었다. 그의 시 세계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과 보편적 가치를 고양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던져 주는 앙가주망의 시 정신을 담고 있다.
시조는 고려말에 발생하여 현대 시대, 오늘날까지 지어지고 향유되며 장수(長壽)하고 있다. 경기체가나 향가 등의 다른 시가에 비해, 시조는 우리나라 민족 정서에 걸맞으므로 오늘날까지 장수하는 문학 장르다. 임정봉 시인의 「인불, 오백나한도」의 시편들은 대부분 연시조를 취하고 있다. 초/중 / 종장에 평시조의 율격을 지키면서도,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의 네 계절을 변화있게 다루면서, ‘댕그랑“이라는 의성어를 사용하여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독창성을 보이기도 한다.
요즘처럼 풍시조, 민시조, 하이쿠시 등의 다양한 시의 질퍽임과 변화 속에서도 전통적인 평시조의 단정함을 보이면서도 시조의 전통을 살리면서, 동시에 정신적 전통성과 맥을 잇고 있는 임정봉 시인의 시 세계를 볼 수 있다.
언어가 주는 어감과 반복성을 살리며 운율과 리듬감을 보이며, 시 정신의 탄탄한 안정감은 그가 시로써 보이려는 보리심 - 자비행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울림이 강한 그의 시조 세계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시편 들여다보기
1) 시인의 「인불, 오백나한도」 내용은 열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불교적 세계관을 노래한 시편들 - 〈인불, 오백나한도〉, 〈댕그랑, 미륵반가
사유상〉, 〈인불, 김삿갓 일기〉, 〈무상하다〉
②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적 계보를 잇는 시편들 - 〈신성, 님의 침묵〉,
〈님의 침묵, 만해 해바라기의 미소〉
③사회 현실 참여에 앙가주망의 시편들
④역사 시, 독립운동을 사유하며 역사를 외면하지 않는 앙가주망의 시 - 〈석화의 눈물〉
⑤해양 생태계,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앙가주망의 시편 - 〈인어의 눈물〉
⑥4·3 사건에 대한 진혼(鎭魂) - 〈이어도 진혼곡〉
⑦5·18에 대한 사유 - 〈민들레, 5·18 기억 버스〉
⑧조국 분단에 대한 응시 - 〈님은 백두산 등불〉
⑩농경 공동체, 민중에 대한 사유 - 〈만경강, 비비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임정봉 시인의 시 세계는 불교적 사유, 민족사, 민중의 고통, 진혼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깨달음은 저잣거리에서, 미륵은 일상의 사유 속에서 조국은 몸의 고통과 눈물 속에서 발견된다. 이 시편들은 관념적 민족주의나 종교적 도취를 넘어서서 기억, 몸, 시간이라는 구체적 매개를 통해, 서정의 축을 구축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형의 책임을 묻는 시적 증언으로 읽힌다.
2) 불교적 세계관을 노래한 시편들 - 〈인불, 오백나한도〉, 〈댕그랑, 미륵반가사유상〉, 〈인불, 김삿갓 일기〉, 〈무상하다〉
임정봉 시인의 시는 불교적 사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초월적 언어로 고립시키지 않고, 역사와 몸, 민중의 고통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일관된 시 세계를 보인다. 여기서 불성(佛性)은 수행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저잣거리와 난전, 심해와 분단의 현장에서 고통을 건너며 드러나는 인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불, 오백나한도〉에서 나한도는 덕이 높은 고승을 그린 그림을 뜻한다. 오백 명의 나한을 그린 오백나한도는 성상(聖像)이 아니라 ”난전에 던져놓은 이 한 몸 고깃덩이/ 추녀에 걸어놓고 삭혀지는 생의 궤적/ 오늘도 반딧불처럼 세상을 여는 천심// 저잣거리/ 떠돈 짐승 길섶의 불자라면/ 인생의 깨우침에 고해성사 덜어내고/ 나한도 걸린 무저갱 극락정토 열리겠지”라고 했다.
화자(話者)는 불성을 고행이나 경전에서 찾지 않고, 몸에 삭힘과 부패의 시간에서 발견한다. “민들레 떠도는 불심”이라는 이미지가 이것을 상징한다. 이 시에서 해학(기괴한 눈)과 천심(엷은 미소), 반딧불로 형상화된 불심은 불교적 숭고함을 일상 속의 웃음과 빛으로 환원되며, “고해성사 덜어낸” 삶의 태도에서 극락은 열린다고 보고 있다. 오백나한도는 종교화(宗敎畵)가 아니라, 인간 군상의 자화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님의 침묵〉과 〈댕그랑, 미륵반가사유상〉에서 ”댕그랑“은 침묵과 사유를 깨우는 소리로 읽힌다. 개인의 수행과 민족사의 고난을 청각적 경험으로 연결하여 강한 울림을 주고 있다.
한국 불교 미술의 정수인 미륵반가사유상을 네 계절의 시간 속에 배치하며, 사유상은 정지된 조각품이지만, 시 속에서는 계절마다 다른 수행의 모습을 보인다. 여름의 “백팔번뇌 걸어놓고”와 겨울의 “한 점 촛불”은, 수행은 삶의 무게를 감내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가을 연에서 “백척간두”와 같은 매우 위태로운 지경(세상 근심)에서도 자비의 길이 열린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삭풍 몰아치는 겨울에도 “한 점 촛불”을 밝혔기에, 반가사유상이 새 아침을 열어준다는 열린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 “댕그랑”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유를 여는 리듬이며, 조각은 침묵하지만 시는 그 침묵을 수행하는 “지금”이라는 현재의 희망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다. 〈댕그랑, 미륵반가사유상〉은 네 계절의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매우 독창적인 우수성이 인정되는 수작(秀作)이다.
〈인불, 김삿갓 일기〉는 제도와 중심에서 벗어난 침묵의 수행자였던 김삿갓을 그리고 있다. 중장에서, 삿갓은 자연과 시맥을 벗 삼아 핍박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는 존재로 형상화되고 있다. 종장에서는, 죽장과 그림자만이 남아 팔도강산에 비문을 남겼다고 했다.
이 시조는 김삿갓의 방랑은 실패가 아니라, 인불(人佛)로서 “소쩍새/ 집을 떠나 은밀하게 떠돈 인생/ 세월 강 둘러봐도 발자취 묵언 침묵/ 세상과/ 담을 쌓은 넋, 유구무언 삶이로다”라고 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없이 세상을 거부한 태도는 가장 강한 증언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종장의 끝 행에서 “방랑 시인 무상하네”라는 표현으로써 불교의 공(空)사상 - 인생의 무상함을 드러내는 불교적 사유가 두드러진 시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무상하다〉는 시에서 시인은 불교적 무상관(無常觀)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무소유 등불 수평선 붉은 깃발//…. 해거름 느티나무에 잠시만 묶어놓고”라고 함으로써 “붉은 깃발”과 “느티나무”의 회화적 심상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해 내는 재치를 보인다.
“선술집 코를 박고서 외상 술값 덜고 갈까”라고 함으로써, 비장함 대신 웃음으로 무상(無常)을 통과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3연에서 “막걸리”와 “성주풀이”는 삶의 무게를 과장하지 않으면서 진솔하게 드러낸다.
중장에서 허수아비와 물레방아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상징, 종장에서 화자는 “무상은 개나 주라”라고 말함으로써 허무마저 유머로 전환한다. 이 시조에서도 끝 행에서 “댕그랑”은 죽음의 종소리는 황천의 길, 범종의 종소리이자, 집착을 내려놓는 해탈의 음향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조는 비장함보다는 웃음으로 허무(무사함)를 통과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임정봉 시인은 불성, 역사, 민중, 인생무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전통 방식 속에 절제하여 담아내며, 말보다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담아내는 현대 시조의 한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3)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적 계보를 잇는 시편들 - 〈신성, 님의 침묵〉, 〈님의 침묵, 만해 해바라기의 미소〉
만해 한용운 선생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스님이셨으며 시와 논설, 소설을 쓰신 문장가였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공약 3장을 손수 지으셨을 만큼, 독립운동에도 참여한 현실 참여적인 대문호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임정봉 시인의 시 세계도 만해 선생의 시 세계와 맥이 닿고 있음이 느껴진다.
〈님의 침묵〉은 만해 선생이 지은 시집 이름이며, 시의 제목이다. 〈님의 침묵〉에서 만해의 님은 곧 조국이고 부처님이셨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길운 것은 전부다, 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님의 침묵, 만해 해바라기의 미소〉에서도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의 네 계절로 나누며, 각 계절마다 “댕그랑”이라는 의성어를 사용한다, 범종 소리이며 역사적 각성의 신호음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침묵의 깊은 애국심”이라는 구절은 만해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핵심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님의 침묵〉을 직접 호출하면서도, 원작의 서정성을 역사적 계절적 서사로 확장한다. 즉 ‘해바라기의 미소’는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존재의 형상이며, 이는 식민지와 분단의 시간을 관통하는 희망의 지속성을 상징한다. 이 시는 만해 시를 기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정신을 역사적 현재형으로 소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