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만 이랑의 사랑 (허대성 소설집)

만경강 만 이랑의 사랑 (허대성 소설집)

$20.00
Description
만경강은 만 이랑을 품고 새벽안개를 헤치며 서해로 흘러간다. 억새 우는 가을밤도, 햇살 부서지는 봄볕도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다가설수록 투명한 속살을 내보이는 강물, 그 아래 숨 쉬는 생명의 박동, 그리고 깊은 밤을 건너 새벽의 얼굴을 씻겨내는 고요한 아침, 한낮은 저마다 빛과 소리 그 하나의 몸짓으로 포개지고 바람은 구름을 벗 삼아, 만 이랑 억새밭에서 잠을 청한다.

이 소설의 시계는 1960년대 후반, 전북 익산 동이리역을 끼고 있는 만경강 맑은 강물이 굽이치던 ‘예둑마을(유천)’에서 시작된다. 옛 시절의 예둑 강변 마을은 문명의 질서보다 자연의 고동에 순응하던 곳이었다. 굽이치는 둑방길을 따라 날리던 흙먼지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었으나, 그 먼지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의 원형’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예둑마을의 성소였던 ‘다래 못’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연잎 아래 황금빛 배를 내밀던 금개구리의 울음은, 가난한 소년들에게 그 어떤 교향곡보다 웅장한 자연의 찬가였다. 아이들은 강물에 몸을 섞으며 생명의 경외를 배웠고, 어른들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면서도 철새들의 군무를 보며 내일의 희망을 생산했다.

새벽보다 먼저 어둠을 가르던 화물열차의 서툰 기적 소리는 잠든 마을의 혈관을 깨웠다. 동이리역은 아침마다 북을 쳐대듯 통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검정 교복을 입고 기차 꽁무니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던 형들의 뒷모습, 무임승차의 긴장감마저 삶의 한 조각으로 품어냈던 그 시절의 기차는 단순한 탈 것이 아니라 꿈을 향해 달리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만경강은 찬란한 풍경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자식의 입에 밥을 넣기 위해 손마디가 불어 터지도록 그물을 던져야 했던 치열한 사투장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거대한 늪이기도 했다. 본 소설의 주인공 ‘강달’은 바로 그 강물의 양면성을 온몸으로 통과한 인물이다.

세상은 강물에 마음을 빼앗긴 소년을 향해 “강이 밥 먹여주느냐”라고 꾸짖었다. 시를 쓰고 강을 지키려는 그의 몸짓을 철없는 몽상이라 깎아내렸다. 하지만 강달은 침묵하는 강물의 흐름 속에서 위대한 진리를 길어 올린다. 막힘이란 나아감을 가로막는 결함이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삶을 위해 더 깊게 내쉬는 긴 호흡이라는 것을. 굽이치고 막히면서도 결국 바다로 향하는 만경강의 흐름은, 우리네 인생이 겪는 굴곡과 어찌 이리도 닮았는가.

이제 이 책을 펼치는 당신을 1960년대 예둑마을의 눅눅한 물안개 속으로 초대한다. 비포장길의 흙먼지를 마시고, 동이리역의 소란을 지나, 마침내 만 이랑의 사랑이 흐르는 만경강의 심장 강둑에 닿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적 소설이 아니다. 2025년부터 익산시가 만경강 주변에 추진하려고 하는 수변도시 조성을 놓고 정치적·환경적 논쟁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저자는 결국 수변도시 문제를 독자들과 함께 의논하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남한의 강들 대부분이 4대강, 수변도시 및 국가정원, 조성이라는 무분별한 개발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강물은 대자연을 향한 통로이며, 잊혀가는 자연의 갈급이다,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절실하고도 정제된 문장이다.

만경강의 물결이 서해로 흘러가며 모두의 가슴에 붉은 노을로 닿기를 바란다. 이곳에서 당신만의 다래 못과 억새 피리 소리를 만날 수 있다면, 저자의 소망은 더할 나위가 없겠다.

2026. 06. 25.

쉼이 있는 곳, 만경강에서 허대성 드림
저자

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