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이코노미스트〉〈가디언〉〈더타임스〉2023년올해의책
〈인디펜던트〉〈월스트리트저널〉〈LA타임스〉추천,〈여성논픽션상〉최종후보
40여장의사진자료및‘한국독자들을위한짧은해설’특별수록
강화길,박상현,정희진추천
“그는책제목을바꿨다.
이제그책은《1984》가될것이다.
아일린이썼던시처럼.”
조지오웰의《1984》보다먼저〈세기말,1984〉라는디스토피아시를쓴여자가있었다.시에서는‘텔레파시’로‘세뇌’되는미래가언급된다.《동물농장》을우화로기획하고함께편집한사람도그녀였다.여자는옥스퍼드에서장학금을받고영문학을전공한심리학자였으며,스페인내전에참여했고,전선에서부상당한오웰을보살피고,체포되어처형될위기에처한마지막순간에는압수수색에서지켜낸여권과서류로탈출계획을준비해오웰과동료들을구출했다.제2차세계대전당시정보부검열과에근무하며뉴스를검열하고삭제하는일을하기도했던여자의별명은,“돼지”였다.
“…돼지들은‘파일’,‘보고서’,‘의사록’,‘각서’라고불리는수수께끼같은것들을만들어내는데매일엄청난노동력을쏟아야했다.그것들은커다란종이였는데,글로빽빽하게채워져야했고,그렇게채워지자마자불태워졌다.”_498~499쪽,《동물농장》에서
영국최고의논픽션상새뮤얼존슨상(현베일리기포드상)을수상한세계적베스트셀러작가애나펀더는2017년어느날조지오웰이생의마지막시기에남긴기묘한글을발견한다.그리고이글이,첫번째아내‘아일린모드오쇼네시블레어(EileenMaudO’ShaughnessyBlair)’를겨냥하고있음을깨닫는다.때마침2005년,아일린이절친한친구노라사임스마일즈에게남긴여섯통의편지가발견되었다.여기에는믿기힘든이야기들이담겨있다.저자는어떤기록에서도드러나지않는아일린의정체를파헤치리라마음먹고,아일린의흔적을뒤쫓는다.부부의주변인들이남긴기록을발굴하고,부부의양아들리처드블레어와스페인을방문하는대대적인조사를통해한인간의가장가까이에서,부부의식탁에서,책상에서,침대에서‘조지오웰’이라는세계와그의글을창조했으나그저서른일곱번의‘내아내’라는언급으로만세상에남은여자의이름을다시복원한다.
주목받지않은역사에서드러나는
‘새로운오웰’
저자애나펀더는호주정부에서재직한전직인권변호사로,동독을배경으로한첫번째책《슈타지랜드Stasiland》로바이에른문학상,새뮤얼존슨상등을수상하며논픽션작가로서진가를인정받았다.그에앞서한국독자들을찾아온이번책《조지오웰뒤에서》는기록되지않은목소리를복원하고권력,기억,진실의관계를탐구하는저자특유의집요한탐사작업의결정판이라할수있다.이여정의시작에는저자본인이존경해마지않는작가조지오웰이첫번째아내를겨냥해쓴텍스트가있었다.
“여자들에관해두가지중요한사실이있었다…하나는그들이구제할길이없을만큼지저분하고단정치못하다는점이었다.다른하나는그들의무섭도록탐욕스러운성욕이었다.”_33~34쪽,오웰의투병시기노트에서
조지오웰은아내아일린을언급한적이거의없고,전기작가들의‘공식화된’기록속의아일린은“수수께끼같은존재”였다(118쪽).반면애나펀더가발굴해낸아일린은유머와재치가넘치는사람이다.
“늦지않게편지쓰던습관을결혼하고첫몇주동안잃어버렸나봐.에릭이랑너무도끊임없이,정말이지격렬하게싸워댔거든.살인이나별거가성사되면편지를딱한통만써서모두에게보내는편이시간절약이되겠다는생각까지들지뭐야.”_23쪽,아일린의1936년편지에서
오웰이스페인내전에서써낸《카탈로니아찬가》에서,아일린은“차와초콜릿”을보내주는존재이다(168쪽).오웰의전기작가들역시아일린이스페인에간건“자원봉사자로일하기위해서”이며,“그저오웰가까이에있고싶어서”였다고주장한다.진실은달랐다.아일린은ILP(영국독립노동당)스페인지부에서병참업무와선전활동을담당했고,오웰과동료들의목숨을구했다.그런아일린의활약을가장생생히기록한것은남편오웰이아닌,선전부에서함께일한찰스오어라는미국인동료였다.그의기록속에서,아일린은결코보조적인존재가아니었다.오히려,“단연돋보이는”사람이며,오웰을이끄는존재였다.
“모두가아일린을좋아했다.남자들뿐아니라여자들도.…오웰은아직알려지지않은작가지망생에불과했고…아일린은이말주변없는남자가다른사람들과소통하게도와주었다.…그렇게훌륭한여자를아내로얻을수있었던남자라면어딘가괜찮은구석이있을게틀림없었다.결혼한지채일년도지나지않았는데아일린은오웰의대변인이되어있었다.”_177~179쪽,찰스오어의기록에서
여러증언과기록속의아일린은작가지망생‘에릭블레어’가대작가‘조지오웰’이될수있도록그를경제적으로부양하고,심리적으로지지하고,지적으로교류하며,창작을뒷받침하는존재였다.저자는조지오웰의팬이었던자신이아일린의헌신을알지못했다는사실에,아일린이의도적으로지워진‘보이지않는존재’였다는사실에끊임없이놀란다.왜우리는아일린을알지못했을까?아일린의이름을지운것은누구일까?
아일린은대작가‘조지오웰’을
어떻게창조했나
아일린과오웰은1935년봄작은파티에서처음만났다.아일린은옥스퍼드에서장학금을받고문학을전공했으며,UCL의심리학석사과정에재학중이었다.서점에서일하는가난한작가지망생에릭블레어는얹혀살던집의주인에게파티를제안해아일린을만나게되었다.두사람은곧결혼을약속한다.아일린을파티에데려간장본인이자,부부의가까운친구가되는러시아인심리학자리디아잭슨은이렇게회상한다.
“뭐!벌써?”나는소리질렀다.…“그래서어떻게할생각인데?”“모르겠네…있지,난서른살이되면처음으로청혼하는남자를받아들이겠다고다짐했거든.근데…내년이면내가서른이야….”_55~56쪽,리디아잭슨의기록에서
1936년결혼후,부부는오웰의바람대로시골로떠난다.이를위해학위를포기한아일린은오웰이창작에집중할수있도록생계와가사까지담당한다.폐병을앓는오웰을돌보고,스페인내전에함께참여하고,남편과남편의원고들을구출한다.무엇보다오웰의원고를교열하고,편집하기시작한다.
“난그사람원고를타자로쳐주는데,원고뒷면에내가손으로잔뜩적어놓은수정사항을읽을수가없어서그사람은항상내게다시물어봐야해.”_269쪽,아일린이노라에게쓴1938년의편지
“부탁이야.편지를써줘.…주말을내마음대로쓸수없게된지도말그대로수년째야.조지가피를토할거야.”_385쪽,아일린이노라에게쓴1940년의편지
아일린은작품의기획단계부터참여하기시작한다.1944년,스탈린을비판하는에세이를쓰려고마음먹은오웰에게아일린은“그이야기를장편소설로,(아일린)자신이매우좋아하고한때는직접써보고싶어하기도했던동물이나오는우화로써보라고제안”한다.“매일저녁오웰은아일린에게그날쓴부분을읽어주고의견을주고받”았고,두사람은“얼어붙을것같은1층침실”에누워“한장면한장면을이야기”한다.아일린은“매일아침출근해새로추가된부분의이야기를친구들에게”들려주었다(416~420쪽).이책은바로,세기의고전《동물농장》이다.
아일린은자신의삶을바쳐조지오웰을창조했다.그러나1945년자궁적출술을받던중서른아홉이른나이에사망한다.“아내가가족을잃은슬픔을겪고있는와중에”“나자신에게생일선물을줘도된다고아일린도말했다”며다른여인에게밀회를구하는편지를쓰던오웰은(364~365쪽)입양한갓난아기와아픈아내를내버려두고떠났다(435~439쪽).심각한빈혈때문에최소한달의입원과수혈이필요했던아일린은오웰의답장을기다리던끝에저렴한당일수술을받으러홀로찾아간시골의병원에서사망한다.죽음을예감하고유언장까지남겼으나,마지막순간까지오웰을지지했다(440~473쪽).
“난당신이다시책을쓰는게정말로꼭필요한일이라고생각해요.…난당신이문학적인삶만사는걸그만두고다시글을쓰기시작하는걸보고싶어요.”_453~454쪽,아일린이오웰에게쓴1945년의편지(사망8일전)
다시읽는오웰,다시쓰는서사,
지워진목소리를복원하고새로쓰는역사
“이책은남성작가조지오웰과후대여성작가애나펀더의싸움이아니다.그보다는오웰의여러전기작가들과아일린의전기작가애나펀더의싸움,공식화된평가와재평가의싸움,남성예술가에대한무조건적인추앙과그추앙속에사라진한여성을되살리려는시도의싸움에가깝다.”_583쪽,‘옮긴이의말’에서
자신의모든것을돌보아주던존재를잃은오웰역시5년이채지나지않아사망한다.그는사별직후몇달간최소4명의여성을“덮치고청혼”했는데(502쪽),그중한명인앤올리비아팝햄에게쓴편지에서는“문학인의미망인이되고싶은지”물으며다음과같이말한다.
“난내여생과내작업을함께해줄누군가를정말로원해요…내가앞으로10년을더살수있다면,가치있는책세권쯤은더쓸거라고생각해요.”_513쪽~516쪽,오웰이앤에게쓴편지에서
오웰은아일린이자신을위해해준일들을정확히알고있었다.아일린이없었다면,조지오웰은존재할수있었을까?그의작품들도마찬가지일것이다.작가조지오웰도,그의작품들도아일린의삶에기대어이루어졌다.그러나아일린의헌신과노고는지워졌다.
“능동태를쓸수있는곳에절대수동태를쓰지마라”(98쪽)당부했던오웰자신이아일린의공로를수동태로덜어내고,‘아내’라는언급으로이름을대신했다.
전기작가들은시간순서를조작하고아예진실을날조해아일린의존재자체를지우기에이른다.그렇게‘20세기의위대한작가’를창조한다.
우리가믿어온‘진실’은누구에의해,어떤과정으로만들어지는가?
이책은단순한전기가아니다.저자에따르면오웰을“취소”하려는책도아니다(49쪽).
이책은위대한신화의그림자뒤에숨겨져의도적으로누락되고축소되고‘거짓동의’로와해되어흩어진,지워진한인간의이름을되살림으로써착취와침묵이어떻게요구되는가를우리에게묻고,그것을가능케하는구조를직시하게한다.
조지오웰은“자서전은오직수치스러운무언가를드러낼때만신뢰할만하다”고밝힌바있다(85쪽).
사망3개월전결혼한두번째아내소니아에게는“자신에대한어떤전기도쓰이지않도록금지”했다(554쪽).
그자신도거부한‘완전무결한천재남성작가’라는허구적신화를덧씌운반쪽짜리오웰을우리가제대로읽어왔다할수있을까?
기존서사에균열을내고,새로운독해의지평을여는이책은오웰의상징적작품들을새롭게읽게만드는전환점을제공한다.
역사에서지워진누군가의이야기가다시역사를바꿀수도있다는것은시대를불문하고문학이우리에게던져온메시지였다.
70년동안묻혀있던한여자의삶을되살리는이책은,문학사의숨은공신들을마주하고세계를바라보는새로운길을독자들에게열어줄것이다.
강화길(소설가,《치유의빛》저자)
나는오랫동안조지오웰을사랑해왔다.이제는안다.그사랑은,한남자가애써숨기려했던한여성을사랑하는일과도같다는것을.플롯으로세상을직조하고,사람들이동의하든동의하지않든자신의언어로과거와현재그리고미래까지읽게만들었던작가.조지오웰.그뒤에서있던여자.이중사고의주인공아일린.그녀는조지오웰이걸작을써내는동안일을하고,살림을하고,그에게영감을불어넣었다.조지오웰은분명알고있었으리라.아일린이라는진실을영원히숨길수는없다는것을.덕분에나는그가“광기의집합”이라불렀던‘삶’에아일린이어떤활력을불어넣었는지알게됐다.
그래.삶이란분명어둠으로가득하다.그러나두려움을감수하고도전해볼만한모험의시간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