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동아시아인류학회(SEAA)프랜시스L.K.쉬저술상수상작(2024년)
김현미(연세대학교문화인류학과교수)추천
‘한국바람’을타고국경을건넌조선족
문화인류학자가따라붙은12년의연구
사람들이국경을건넜다.시작은19세기말,가난을피해두만강을건너연변에정착한조선인들이었다.이들은1949년중국정부로부터‘조선족’이라는소수민족으로공식인정을받았다.사회주의교육과중국식사회화를거쳐어엿한중국공민으로자리잡았다.냉전시기에는한국과의연결이단절되었지만,1992년한국과중국이외교관계를정상화하며한국정부로부터‘재외동포’로인정받았다.이후한국사회로진입해‘코리안드림’을좇는대표적인이주노동자집단이되었다.조선족의이주경로는이몇줄로요약된다.그러나이게전부일까?문화인류학자이자미국캘리포니아주립대교수권준희는단연코“그렇지않다”고말한다.
여기,조선족의복잡한이주경로와독특한삶의리듬을탐구한책이출간되었다.1990년대초반조선족사회와연변전역을휩쓴‘한국바람’의궤적을따라가며몸,돈,시간이라는인류학적렌즈로이주노동자의삶을심도있게들여다보는《이주,경계,꿈》이다.한국의신자유주의적민주화와중국의급격한사유화가교차하며새로운정치·경제가맞물리는지점에초점을맞춰다양한욕망사이에놓인변경지역으로서연변의지정학적의미를탐구한이책은미국듀크대학교출판부에서출간되었고,2024년미국동아시아인류학회(SEAA)에서수여하는프랜시스L.K.쉬저술상을받으며학문적가치를인정받았다.
총3부로구성된이책은2004년부터2016년까지12년간연변을오가며진행한인류학적연구를바탕으로한다.7년의집필기간을거쳐2023년에미국,2025년에한국땅을밟은이책은‘시차의글쓰기’의정수를선보인다.권준희는‘시차를넘어지금여기에서다시말을거는’형식을통해2025년의시점에서‘가깝고도먼’조선족이야기를다시읽고다시질문하며다시사유하는여정으로독자를이끈다.
에스노그라피로선보이는
코리안드림의흥망과그이후
에스노그라피는단순한현지조사가아니다.연구대상자들과오랜시간현장에서함께하며그들의관점,언어,일상리듬을깊이있게이해하는인류학적연구방식을일컫는다.현장을‘천천히’포착하고,그결과물을세상에‘늦게’소개하는이방식은태생적으로‘시차의글쓰기’를취할수밖에없다.조사시점과출간시점사이의시차만이아니라,듣기와쓰기사이의시차,말한자와기록한자의시차,그리고말해진것과말해지지않았으나그순간에존재했던감정과맥락사이의시차까지도품고있는에스노그라피는언제나“불완전”할수밖에없다(16쪽).그러나어떤현상이과거에만머물게두지도않는다.지난이야기를끊임없이불러내끈질기게다시묻는다.
2004년여름,서울홍제동의주로교회에서만난조선족노동자들이그시작이었다(104쪽).당시이곳에모인60명가까운조선족은‘불법체류자’로서강제추방될위기에놓여있었다.한국정부가1999년제정한‘재외동포법’에서‘동포’로인정받지못한이들은개정시위가장기화되면서해당교회에모여생활하고있었다.조선족이주자들이‘고국’에서마주한갈등과고통의양상을피부로접한저자는이일을계기로“조선족이주자만큼이나”한국과중국을횡단하며,그들의복합적인삶을조망하는연구에착수한다.한국사회에노동자로이주했지만,다른외국인노동자들과는구별된법적?문화적위상을갖게된조선족들의삶에바투따라붙어면밀히추적했다.
《이주,경계,꿈》은바로이“계속해서다시듣고다시쓰게하는”작업을통해완성된결과물이다.권준희는참여관찰,인터뷰,장기간현장생활을토대로연변을기반으로한조선족이주자들의생애사와그들이품은열망과좌절,경계와이동의의미를새롭게해석한다.한국으로의집단적인이주물결을가리키는‘코리안드림’이어떻게시작하고성장하고쇠퇴했는지,그리고그과정에서각개인의‘꿈’은어떻게재구성되는지를‘꿈의생애사’라는독창적인시선으로그려낸다.조선족이주는국가간이동을넘어,농촌과도시,주변과중심,교육과노동,가족과자본이라는다층적경계를넘나드는복합적인실천임을밝힌다.
국경넘기의시작부터새로운꿈의부상까지
폭넓게이해하는조선족이주역사
총3부와6장으로구성된책은조선족의이주역사에관한방대한기록과분석으로가득하다.1부‘코리안드림의부상’은소수민족변경지역이자다양한욕망이교차하는공간으로서의‘연변’을소개하고,이동하는민족인조선족이한국과조우하는역사적과정을살핀다(59쪽).특히오랫동안단절되었던‘고국’과조선족이갖는만남의의미를고찰하면서,이들이중국과한국을오가는독특한이주노동자집단으로형성된문화적?정치적?법적과정을서술한다.특수한“민족관계성”,즉민족적으로는‘한인(韓人)’이지만남한의‘한국국민’은아닌조선족의디아스포라적지위를활용해한국노동시장이특수한노동력으로서조선족의가치를발견하고확산했다고주장한다(47쪽).조선족노동자가보유한민족적가치가어떻게한국의특정서비스업에적합한노동력으로자리잡아왔는지주목하고,이들이값싸고유능한노동자로‘환대’받는동시에법적제약과사회적차별로‘냉대’받는이중적양상또한들여다본다(90쪽).
2부‘불안정한꿈들’에서는몸,돈,시간이라는인류학적렌즈를통해코리안드림의변동성속에존재하는희망과좌절,번영과쇠락,이동성과비이동성을분석한다.조선족여성노동자세명의이야기를중심으로,반복적인이주가만들어낸공간의분할,즉돈을‘벌기’위한장소인한국과돈을‘쓰기’위한장소인연변에초점을맞춰논지를전개한다(125쪽).이처럼공간적실천이분리된가운데,노동하는몸에지배적힘으로작용하는리듬(오가기)을이주자들이내면화하면서자신의몸을돌보기어려워지고강도높은노동착취가지속되는과정을분석한다.또한‘기다림’을노동의한형태로바라보며,비이동성또한이주를추동하는핵심동력임을주장한다(159쪽).연변에남아사랑하는가족의귀환을기다리고,그들이보내오는송금을기다리고,한국에갈기회를기다리는이들의삶을소개하면서‘이주하지않는이들’없이는반복적인이주의과정자체가유지될수없음을강조한다.
3부‘새로운꿈’은중국경제의부상에비추어코리안드림을새롭게성찰하고재평가한다.조선족과한족이코리안드림을대하는방식에서드러나는,특히‘연변에머물기’와‘연변을떠나기’를둘러싼열망과망설임에주목한다(190쪽).이를통해연변내송금주도형경제발전이만들어내는국제이주를향한열망과민족간관계가재정의되는과정을포착한다.2008년금융위기이후중국의경제적영향력이커지면서수많은조선족이‘차이나드림’으로눈을돌리게되었다는점을논한다.또한연변지역에서회자되는한국바람의재평가에주목하며,그이후국면에서드러나는희망,좌절,불안,후회의정서를기록한다(226쪽).이어지는‘닫는글’에서는이렇듯30여년간지속된코리안드림이점차지배적지위를상실해가는과정을살피고‘그이후의삶’을조명한다.코리안드림이나차이나드림과같은‘국가의이름으로’단일화되고단순화된꿈을넘어,새로운삶의경로를모색하는새로운세대의부상을전망한다.
경계에서꾸는꿈이
우리에게전해주는것
《이주,경계,꿈》은연변에관한연구이기도하다.연변은조선족의우선권과한국어사용이보편적으로인정되는조선족자치주이자소수민족변경지역으로,서로다른꿈들이교차하며경합을벌여온역동적인공간이자지난30년간한국바람이불러온구조적변화속에서삶의리듬과돈의흐름또한초국가적양상을띠게된현장이다.단순한지명이아니라‘공간’인동시에‘사람’이고,‘출발점’이자‘또다른가능성’이다.독자는이책을통해그간의단조롭고고정된이미지가아닌,끊임없이변화하고재구성되며새로운경계와관계를만들어내는살아있는공간으로서의연변을만나볼수있다.나아가이책은조선족의코리안드림,연변이라는지역성,조선족이라는민족적배경에국한되지않고,오늘날세계곳곳으로확산되는이주노동과국제이동의현실을이해하는데중요한통찰을제공한다.‘조선족의사례’에서시작해,이주의꿈이어떻게탄생하고재구성되는지조망한다.“기존의북미?유럽중심연구를넘어,이주연구에새로운지평을열었다”는‘프랜시스L.K.쉬저술상심사평’이이를뒷받침한다.
한국사회의독자들에게이책은한결각별하다.저자가영어로쓴책이모국어인한국어로다시번역되면서이책의중요한공간적배경인한국땅을찾았다.그렇다고해서“조선족혐오를멈추자”호소하지않는다.조선족이주자의복잡한삶의경로를면밀히탐구하는인류학적연구를통해,그들의정체성과이동,경험속에얽힌사회적?정치적?경제적구조를밝히고이주민과한국사회가처한다층적문제를분석한다.민족과국적,계급과젠더가얽힌‘경계에있는삶’을통해우리사회의경계설정과차별,배제구조를다시성찰하는문제의식을제기한다.포스트사회주의중국과탈냉전한국이라는두체제의틈새에서조선족이주자들이겪어온다양한‘꿈의경합’을촘촘히그려낸이책은연구자뿐아니라폭넓은독자층을아우른다.‘이주’라는익숙한단어뒤에감춰진복잡한시간성과사회적경계의층위를드러내며,‘우리’와‘타자’가어떻게형성되는지묻는다.‘더나은삶의기회’를찾아국경을건넌조선족이주자들의이야기가오랜시간을건너한국사회에당도했다.
춘자씨뒤편으로또다른조선족여성들이차례를기다리고있었다.소장은일자리문의로계속울려대는사무실전화를받느라바빴다.직업소개소를나서면서춘자씨는소장의태도에대해불만가득한말투로말했다.“소장은겉으로는친절한척하지만,사실은조선족을무시해요.저사람하는말좀보세요.조선족이돈만밝힌다고생각하잖아요.한국사람보다열등하다고말하면서요.한국사람들은뭐돈안좋아하나요?”춘자씨는스스로를‘열심히일하고낭비하지않는좋은조선족’으로묘사했지만,방금나눈대화에서보았듯직업소개소나일터에서조선족에대해갖는편견에불만을품고있었다.그와동시에돈만좇는다는낙인을굳이피하려하지않으며오히려다음과같이반문했다.“우리는돈벌려고여기온거잖아요,안그래요?”(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