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 그를 향한 바울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그를 그리스도로 믿었고 주라 고백하며 충성했으며 “살아 있는 자들”(고후 5:15)이라면 모두가 그와 같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롬 15:19; 고전 9:12; 고후 2:12; 4:4; 9:13; 갈 1:7; 빌 1:27; 살전 3:2)을 전하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며 살았다. 본 주석은 바울의 그 같은 삶과 사역 그리고 복음 전파를 통해 설립된 교회 중 하나인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 대한 주해이다.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사도로서 사는 동안 (주장하건대) 가장 어려운 시절에 기록된 서신이다. 육체의 고난과 정신적 압박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사도적 소명에 따라 해 오던 사역 전체가 좌초될 위기까지 겪고 있었다. 이는 그가 개척한 이방 교회에서 추진해 오던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를 위한 연보 사업이 고린도교회의 거부로 난관에 봉착했는데, 이 일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오늘날 알바니아)에 이르는 지역에서의 복음 전파 사역의 “열매”(롬 15:19, 28)가 ‘빈 수레’로 이어질 위기에 직면한 것은 물론이고 스페인으로 가려는 미래 계획의 좌초를 뜻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린도교회를 두 번째로 방문했지만 오히려 큰 모욕을 겪고 급하게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가 떠난 후 대적자들이 고린도교회에 침투해 들어와 그의 리더십은 더욱더 궁지에 몰렸다. 리츠만(Hans Lietzmann)에 따르면 이런 위기들은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즈음에 바울을 불면증으로 이끌었다(11:27). 여러 날 자지 못했다는 바울의 고백이 어떤 이유로 인한 것인지는 구체적인 주해에서 밝힐 것이지만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때 그의 내외적 상황은 그의 사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태로운 국면이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일 수 없다. 지금은 잃어버린 ‘눈물의 편지’(고후 2:4, 9; 7:8)와 함께 고린도후서는 이런 시기에 보내졌다. ‘눈물의 편지’가 보내진 후 문제의 일부분은 해결되어 중단된 연보 사업 재개를 위한 권면(8-9장)이 필요했고 이것이 ‘눈물의 편지’ 후에 다시 고린도후서를 보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회에는 어쩌면 이전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남았는데, 외부 침투자로 인해 교회가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11:4)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고린도후서는 고린도교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바울의 ‘마지막 승부수’라고 볼 수 있다. 바울의 승부수는 소득이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 로마서 15:26이 말하듯, 편지를 받은 교회는 바울의 뜻에 순종하여 외부 침투자의 문제를 해결했고 연보 사업에도 기꺼이 동참하였다.
이에 바울은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다”며 로마교회를 거쳐 스페인으로 갈 계획을 추진한다. 사실 바울 신학의 절정이자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서신 중의 하나로 알려진 로마서는 바로 고린도교회의 위기가 해결된 직후에 쓰였다. 그를 그렇게 괴롭히던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바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한편으로는 지난 20년의 사역을 정리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사역을 준비하며 로마서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사도로서 사는 동안 (주장하건대) 가장 어려운 시절에 기록된 서신이다. 육체의 고난과 정신적 압박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사도적 소명에 따라 해 오던 사역 전체가 좌초될 위기까지 겪고 있었다. 이는 그가 개척한 이방 교회에서 추진해 오던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를 위한 연보 사업이 고린도교회의 거부로 난관에 봉착했는데, 이 일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오늘날 알바니아)에 이르는 지역에서의 복음 전파 사역의 “열매”(롬 15:19, 28)가 ‘빈 수레’로 이어질 위기에 직면한 것은 물론이고 스페인으로 가려는 미래 계획의 좌초를 뜻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린도교회를 두 번째로 방문했지만 오히려 큰 모욕을 겪고 급하게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가 떠난 후 대적자들이 고린도교회에 침투해 들어와 그의 리더십은 더욱더 궁지에 몰렸다. 리츠만(Hans Lietzmann)에 따르면 이런 위기들은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즈음에 바울을 불면증으로 이끌었다(11:27). 여러 날 자지 못했다는 바울의 고백이 어떤 이유로 인한 것인지는 구체적인 주해에서 밝힐 것이지만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때 그의 내외적 상황은 그의 사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태로운 국면이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일 수 없다. 지금은 잃어버린 ‘눈물의 편지’(고후 2:4, 9; 7:8)와 함께 고린도후서는 이런 시기에 보내졌다. ‘눈물의 편지’가 보내진 후 문제의 일부분은 해결되어 중단된 연보 사업 재개를 위한 권면(8-9장)이 필요했고 이것이 ‘눈물의 편지’ 후에 다시 고린도후서를 보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회에는 어쩌면 이전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남았는데, 외부 침투자로 인해 교회가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11:4)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고린도후서는 고린도교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바울의 ‘마지막 승부수’라고 볼 수 있다. 바울의 승부수는 소득이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 로마서 15:26이 말하듯, 편지를 받은 교회는 바울의 뜻에 순종하여 외부 침투자의 문제를 해결했고 연보 사업에도 기꺼이 동참하였다.
이에 바울은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다”며 로마교회를 거쳐 스페인으로 갈 계획을 추진한다. 사실 바울 신학의 절정이자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서신 중의 하나로 알려진 로마서는 바로 고린도교회의 위기가 해결된 직후에 쓰였다. 그를 그렇게 괴롭히던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바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한편으로는 지난 20년의 사역을 정리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사역을 준비하며 로마서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고난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따른 고난의 사도의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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