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시인의시집속꽃들은시인의것이아니다.그것은시인의마음밭에서피어나지만,결국독자의밭으로옮겨심어진다.시인의언어는읽는이의감각속에서다시뿌리를내리고,우리안에서또다른의미로자란다.바로여기서시집의여운은완성된다.
이경희시집『마음밭에꽃씨를뿌리며』는거대한서사보다사소한감각의떨림을통해삶의본질에다가서는시집이다.작은것들을바라보는바른눈,하루의무게를온전히살아내는자세,감사와기도를겹겹이쌓아올린언어.시인은세상의중심이아니라가장작은변두리에서존재의비밀을발견한다.
마지막장을덮는순간,독자는깨닫게된다.시집속꽃씨들은이미우리마음밭에도흩뿌려져있다는사실을.그것은시간속에서언젠가조용히싹을틔우고,또하나의시가되어우리삶을밝혀줄것이다.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순간의향기를붙잡는시학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들어가며
‘마음밭에꽃씨를뿌린다’라는행위는단순한자연의은유를넘어,이경희시인의시학전반을관통하는핵심명제다.그의시편들은곡진한서정성과삶의회고,종교적신념,그리고인간존재에대한따스한시선을기반으로구성되어있다.이시집을읽는다는것은,곧한인간이살아온세월의풍경과마음속기도의울림을함께걸어가는여정에참여하는일이된다.
시인의생애에서해군복무와교직,장애학생들과의긴시간은단순한이력이상의의미를지닌다.그것은이시집의다층적결을형성하는토대이자‘삶의현장’을언어로전환하는구체적감각의원천이다.예컨대「달빛바다에눈물을훔쳤다」에서“함교현측한쪽에기대어달빛바다에눈물을훔쳤다”라는구절은단순한회상의기록이아니다.군함의흔들림과함께동요하는젊은시절의자의식,그리고바다라는무한공간속에서인간존재의유한성을체감하는순간의깊은떨림을그대로전한다.
시인의언어는지나치게화려하거나난해한비유를거부한다.대신감각과체험,그리고일상의사소한장면에서뿌리내린직설적서정성을택한다.「하루예찬」의첫머리에서그는이렇게쓴다.
‘산다는것은하루를삶의향기로채워가는/눈물과감사의날들/천지만물에미미한흔적을남기는것’
여기서‘하루’는단순히시간의단위가아니라,인간존재의온전한총합이며‘현재’라는절대적좌표를가리킨다.삶을거대한서사로확장하기보다매순간을기적처럼바라보는태도는,시집전반에걸쳐발견되는핵심적관점이다.
또한이시집을관통하는중요한키워드는‘감사’와‘기도’다.「감사일기」에서시인은‘소소한일상을감사로여기며/부족한것에나를칭찬하며/주어진것을은혜로받아들이는’삶을노래한다.이러한자세는단순한자기위안이나도덕적권고를넘어선다.세속적욕망의과잉과불안을넘어,인간존재를근본으로되돌려세우려는성찰적태도다.시인에게감사는기도와맞닿아있으며,기도는언어와삶을매개하는영적통로다.
특히「목련꽃」에서의심상은이시집의전체적정서를압축한다.‘며칠밤을새워기도하는/눈물의사연/아침이슬을머금고/하얗게꽃잎봉우리를내민다’목련은단순한자연의대상이아니라,눈물과인내,영혼의희구가응결한상징으로제시된다.바람과비에시달린가지끝에서다시피어나는꽃은,시인의삶속에서반복된시련과극복의은유로기능한다.
이경희시인의시는종종자신의삶을회고하는듯보이지만,실상은그것을넘어보편적감각을향해열려있다.「달빛바다에눈물을훔쳤다」의바다는젊은날의기억을담고있지만,동시에우리모두가마주하는‘삶이라는항해’의은유다.「텃밭에도빛깔이있다」에서는작은꽃잎하나,흙한줌의변화에서인간삶의비밀을읽어낸다.‘서로서로의지하며꽃은자라며저마다의빛깔내었습니다’라는구절처럼,시인은삶을‘함께살아가는존재들’의이야기로풀어낸다.
시집의또다른특징은,내밀한서정속에서도일관되게유지되는담담한문체다.절망과슬픔의장면에서도목소리는격렬하게흔들리지않는다.「생의한가운데」에서‘큰물결의소용돌이가삶을휘몰아치고/움푹파인용트림자국이생의깊이를더한다’라는표현처럼,고통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되,그고통을미학적언어로전환해내는힘은시인의오랜성찰에서비롯된다.
「마음밭에꽃씨를뿌리며」라는제목은단순히자연친화적세계관을표방하는것이아니다.이꽃씨는곧언어이며,마음이며,기도다.시인은삶의고비마다그언어의씨앗을뿌렸고,그로써자기내면을가꾸고타인과세상을잇는다리를놓았다.바다는때로폭풍으로흔들리고,언덕은비바람에깎이지만,결국꽃은피어나고향기를남긴다.
이경희시집은우리가잊고지낸‘삶의속도’를되묻는다.기적같은하루,작고평범한감각의반짝임,기도의손길,사랑과연대의힘.시인의시선은이모든것을한데엮어,세상이라는거대한파도속에서도우리가놓치지말아야할본질을다시금일깨운다.시를읽으며우리는발견한다.삶이란,결국나와세계와신을향한‘감사의응답’임을알게된다.
1.시인이라는존재
시인은‘삶을사랑하는자’다.이경희의시집『마음밭에꽃씨를뿌리며』는단순한감상의기록이아니라,삶의깊은주름을고요히매만지는손길과도같다.그의언어는화려한수사를거부한다.시인의세계는작고사소한것,바람한점,빛의떨림,마음속미세한흔들림에서출발한다.그러나그작은떨림은시인의언어를통해넓고깊은의미를획득한다.
시집의제목『마음밭에꽃씨를뿌리며』는단순한비유가아니다.마음밭은언어가자라는자리이며,꽃씨는시인이심어놓은삶의기억이다.이시집속시편들은모두한알의씨앗으로태어나,존재와시간의계절을지나꽃을피운다.바람에흩날리고비에씻기며,결국남는것은그꽃향기다.이경지를가장잘보여주는시가「하루예찬」이다.
산다는것은하루를삶의향기로채워가는
눈물과감사의날들
천지만물에미미한흔적을남기는것
바람처럼흔들어주고기대어
나를채워가는나그네의발길이다
가만히들여다보면,하루는
기적같이눈을뜨고세상을본다는
얼마나행복한날들인가
아침햇살이하루를밝히고
태양의손길로일할수있는보람
별밤의반짝이는수천의등불
수채화빛으로은혜롭게채워지는시간
가만히기대어보면,하루는
살아서소리나는것을듣는
얼마나기쁜날들인가
주위에서들려오는아름다운소리
온갖만물이조화롭게살아가는소리
지혜의바다같은물빛처럼채워지는순간들
흔들림의파장이심장을두드리는축복받는시간
-「하루예찬」부분
여기서‘하루’는단순한시간단위가아니라존재의중심을가리킨다.삶을거대한구조로바라보지않고,하루라는구체적단위속에서발견하는작은기적들이이시집전체를지탱한다.시인에게하루는‘지금여기’를온전히살아내는방식이며,그하루의축적이곧존재의빛깔을만든다.
시인의언어는‘감사’와‘기도’의결을따라흘러간다.「감사일기」에서시인은속삭인다.
소소한일상을감사로여기며
부족한것에나를칭찬하며
주어진것을은혜로받아들이는
매일매일쌓아가는공덕의삶
남들보다나를바라보면서
일상의삶에행복을느끼는것
소학행의습관이기쁨으로충만한삶
행간을밝히는내마음의향연
하루의쉼표를찍고
감사한일들을조목조목적어내려가는밀알의시간
내일의다짐이펼쳐지고기쁨과감사가넘치는
마음챙김의작은치유공간
짧은하루가일상의삶이되고
누적된감사의삶이습관이되고
밝은태도가인생을바꾸는힘이된다
마음밭에충만한삶은기적을낳아
희망이없던사람,가진것이없는사람도
감사의삶이연속되면
안분지족의축복된삶이되리라
-「감사일기」전문
이고백은단순한자기위안이나도덕적교훈이아니다.하루하루반복되는일상속에서발견하는작은빛과숨결의감각,그것을은혜로받아들이는태도다.이경희의시는거창한의미를만들려하지않는다.오히려의미를지우고언어를투명하게비워낸다.덕분에시속의공백은더깊고넓은울림을만들어낸다.
또한이시집에서눈에띄는것은‘기억’의풍경들이다.과거는시인의언어속에서낡은사진처럼불려오지만,결코과거에머물지않는다.「아버지의지게」를보자.
산뻐꾸기지저귀면봄은익어가고
동리앞개울가시냇물흘러
봄빛내려앉은처마끝,마루에걸터앉아
사립문만바라보았다
싸리문미끄러지는소리
쏜살처럼달려가대문을활짝열었다
아버지바지게짐머리위
진달래꽃한다발피었다
-「아버지의지게」부분
이구절에는한세대의역사와세월이압축되어있다.아버지의삶을짊어진지게는단순한도구가아니라,가족을위해기꺼이무거운시간을견뎌낸존재의상징이다.시인은과거를회고하지만,그기억은독자의현재와도만나며새로운공명을일으킨다.
자연역시이시집에서중요한장치다.이경희의시속에서자연은단순한배경이아니라,시적감각을열어주는거대한통로다.「무지갯빛사랑」을보자.
분홍색꽃팝콘처럼
교문가로수길톡톡터지면
아이들얼굴이봄을불렀다
살포시날아드는하얀꽃잎
벚꽃의꽃망울이몽실몽실
봄빛을시샘하면
오늘은또어떤일이벌어질까?
-「무지갯빛사랑」부분
여기서교문앞팝콘같은꽃망울은단순한사물묘사가아니다.아이들얼굴에내려앉은봄빛,생명의환희,존재의무구함이겹겹이중첩된상징이다.시인의언어는아이의얼굴과계절의빛깔을한호흡안에겹쳐놓으며,언어로포착된‘삶의한순간’을영원속에심는다.
2.시인의시선
이시집에서가장눈에띄는것은‘작은것에서큰세계로확장하는시선’입니다.그출발점은시「목련꽃」에서분명히드러난다.
며칠밤을새워기도하는
눈물의사연
아침이슬을머금고
하얗게꽃잎봉우리를내민다
겨울한파에시린사연
바람이남기고간,아픈가지마다
갈급한영혼의간절함
햇살에몽실몽실피었다
-「목련꽃」부분
목련은단순한꽃이아니라,시인의내면깊은곳에서응결된영혼의상징이다.‘기도하는눈물의사연’이라는표현은존재를관통하는인내와기다림,결국피어오르는구원의순간을담고있다.이시에서시인은인간의상처와치유,희망을자연의심상속에심층적으로겹쳐놓았다.
다음은「텃밭에도빛깔이있다」이다.
“서로서로의지하며꽃은자라며저마다의빛깔내었습니다
비바람에부딪어도향기는변하지않았습니다
아홉개를다주고도한개가부족한듯소담스러운마음
작은마음꽃밭에담아봄날을밝혔답니다
내발걸음소릴듣고피어나는꽃들을바라보며
들창,이슬보석무지개처럼떨구어가는마음으로
그늘진이웃을살며시초대하렵니다
-「텃밭에도빛깔이있다」부분
이시에서‘텃밭’은단순한공간이아니라공동체적삶의은유이다.저마다의빛깔을가진존재들이서로의지하며살아가는모습은,시인이바라보는세상의본질과닿아있다.서로다르다는사실은갈등이아니라조화로,다양성은혼란이아니라아름다움으로전환된다.
세번째로「달빛바다에눈물을훔쳤다」는시집에서가장내밀한회고적시선이드러난작품이다.
울지말아야지울지말아야지
혼자서울지말아야지
주먹다짐하고돌아서는함수깃발앞에서입술을깨물고
수평선백파가일렁이는바다를바라보며
인생의갈등과고뇌의순간품고달려가는항행의밤바다
함교현측한쪽에기대어달빛바다에눈물을훔쳤다.
-「달빛바다에눈물을훔쳤다」부분
해군복무시절의기억을담은이시는,개인의젊은시절을넘어서인간존재의유한함과고독을성찰하게만든다.달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