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옥시인(창신대명예교수)은“김민지디카시집『빛으로눌러쓴시』가사랑의현상학과생의아포리아로,생명의본질과동시에한계내존재로서의생의유한성을그려내면서보여주는재치와기지,풍자와능청스러움,역설과메타포,유니크한상상력등의다양한기법에대해서는다거론하지못했다.이번디카시집은주제적집중도도그렇고형상성에있어서도빛나는성취를보여주며김민지의시인됨을입증한다.”라고말했다.
[시집해설]
사랑의현상학과생이라는아포리아
이상옥(시인·창신대명예교수)
김민지시인은고성문화계중심인물로활동해왔다.지역신문인〈고성신문〉에서도오랫동안근무하며홍보업무를담당했고,지금도소가야문화보존회에상근하며지역문화창달에앞장서고있다.또한디카시의발원지고성에서디카시문예운동도한결같이서포트해왔다.
그는디카시에대한정확한이해와창작능력도겸비하고있다.“말보다먼저피어난것들이있다/아무도눈길주지않는곳에서도/가장아름다운눈빛과몸짓으로/그몸짓과눈빛이사라지기전에/그대로받아적었다/당신도갑자기멈춰본적있다면/동행하기를”이라고쓴디카시집서문은디카시의핵심원리를응축해서드러낸다.아무도눈길을주지않는곳에서도가장아름다운눈빛과몸짓으로,말보다먼저피어난것이야말로시인으로하여금시적충동을유발하는시적형상인날시(rawpoem)이다.그몸짓과눈빛이사라지기전에스마트폰내장디카로찍고쓴것,즉그대로받아적는것이디카시다.
이디카시집에서먼저눈길을끄는것은사랑의현상학이다.그는사랑을감정이나낭만의차원에서다루지않고,존재가타자를향해열리는현상적사건으로이해한다.이는후설의지향성개념이나메를로퐁티의신체적지각이론과도통한다.시인의몸은세계속에열려있으며,그몸을통과한감각이자연의형상에서사랑을포착한다.사랑이생의본질이며생의동력이고단초라는것을보여준다.사랑없이생은결코시작은물론존재할수도없다.
너에게로만향하는내첫마음
불에데인듯
-「첫사랑」
회색의콘크리트블록틈새에서한송이꽃이피어있다.규칙적이고차가운사각의구조속에서피어난이한송이의꽃은,마치마음속어딘가에남아있는첫사랑의잔향처럼보인다.꽃은닫힌세계의균열속에서비로소드러나는,숨겨진감정의형상이다.사진기호는단순히꽃의아름다움을담은것이아니다.그것은‘사랑’이라는감정이세계속에서어떻게드러나는가를보여주는하나의현상이다.회색의콘크리트는삶의견고한현실을상징하고,그속에서피어난꽃은그현실을관통해솟아오른‘감정의발생’을드러낸다.
사랑은그렇게언제나닫힌세계에서생겨난다.완벽히열린세계에서는사랑이피어나지않는다.오히려금지와제약,닿을듯닿지않는거리감속에서사랑을느낀다.이사진기호는그런사랑의현상학적조건을시각적으로드러내고있는셈이다.
문자기호“너에게로만향하는내첫마음/불에데인듯”은그시각적현상을내면의체험으로이어준다.사랑은의식이타자를향할때발생한다.현상학의언어로말하자면,사랑은‘지향성’이다.나의마음이너를향하는그순간,세계는새로운의미로빛난다.그러나그빛은따스함만이아니라통증을함께지닌다.“불에데인듯”이라는언술속에서사랑이단순한감정이아니라,몸의감각속에서경험되는실존적사건임을느낀다.사랑은생각이아니라몸으로겪는경험,즉‘살의현상학’이다.
이작품은사랑이드러나는순간을보여준다.블록의회색과꽃의붉음이부딪히는그찰나,언어는감각의세계와맞닿는다.이때사진기호와문자기호는각각의독립된언어로서서로를향해열린다.사랑은그사이,감각과언어의접점에서태어난다.
디카시의매혹은멀티언어로표현한다는데있다.한송이꽃처럼,차가운세계의틈새에서피어나는따뜻한감정이라는것은사진기호만으로,문자기호만으로는표현할수없고이둘의상호텍스트성에의해서만드러낼수있다는것이다.
도무지계산할수없는
이떨림,
하루종일흘러
먼그대에게로갑니다
-「사랑혹은비밀」
사람의형상이벽에그려져있다.그런데그머리에는얼굴이아닌전기계량기가달려있다.그장치는매일수치를기록하며,에너지의흐름을감지하는감각기관이다.시인은이모습을보고,단순한기계가아니라뇌의환유로받아들인다.전기계량기는의식의계기,사랑의충동을계산하려는이성의장치이자동시에감각의상징으로드러난다.
후설의현상학이말하는바와같이,모든의식은어떤대상을향해나아가는지향적구조를가진다.시인은벽에그려진형상속에서그지향의방향을발견한다.전기계량기를머리로단이인물은,사랑의충동이이성의회로를따라흐르는순간적사건을표상한다.사랑의감정은전류처럼흐르고,전류는언제나긴장과발열을수반한다.사랑은뇌의회로를타고흐르는전기의현상이다.그것은계산될수없지만,분명히감각되는존재의떨림으로다가온다.
“도무지계산할수없는/이떨림.”이언술은시인이지각한사랑의전류적본질을정확히드러낸다.전기계량기가전류의양을수치로측정하듯,인간의의식도사랑을이성으로계량하려하지만,사랑은늘그수치를초과한다.그초과의순간이바로사랑의현상학적진리가드러나는자리다.사랑은이성의장치를통과하면서도결코포획되지않는감각의흐름으로남는다.
이때벽화의꽃들이중요한역할을한다.꽃은전류의시각적변주다.사랑의전기가몸을타고흐를때,그것은감각의언어로피어난다.벽화의꽃은사랑의전류가심장과신체로전이된정서의발광이다.전기적긴장이감정적아름다움으로변환된것이다.시인이본것은바로그변환의순간,즉사랑의전기가정서의꽃으로피어나는현상이다.
퐁티의신체현상학에따르면,인간의지각은신체를매개로세계와맞닿는다.시인이느낀“떨림”은뇌에서시작된전류가신체전체로확산되는몸의지각적반응이다.사랑은뇌의사유가아니라,몸의감각으로현상한다.따라서이디카시는사랑을하나의정신적사유가아닌,신체적현상으로서의에너지흐름으로제시한다.
“하루종일흘러먼그대에게로갑니다.”,이마지막언술은사랑의전류가대상인‘그대’를향해흐르는지향의운동성을완성한다.의식은타자를향해끊임없이흐르고,그흐름이바로사랑의존재방식이다.사랑은머물지않는다.그것은멈추지않는전류이며,순간마다새롭게점화되는존재의감전이다.
이작품은사랑을감정의상태로묘사하는것이아니라,의식의전기적흐름으로드러나는감각적현상으로형상화한다.전기계량기는사랑의두뇌,즉이성과감정의경계에놓인뇌의장치이며,벽화의꽃은그전류가감각적생명으로변환된흔적이다.이둘이만나는지점에서사랑은비로소지성의회로와감정의꽃이교차하는전류적사건으로존재한다.
시인이포착한사랑의현상학은사랑은계산되지않지만흐르는것이다.보이지않지만느껴지는것이다.그전류의흔들림속에서인간은타자에게향해가며,그흐름자체가곧사랑의현상,그리고존재의의미가된다.
김민지시인은생의본질이사랑이라는것을잘보여준다.그사랑의첫출발은에로스다.에로스는단순히육체적인끌림을넘어선,결핍을채우려는인간의원초적열망이다.인간은불완전한존재이기에자아너머의아름다움과완전함을갈망하며,그갈망최초의불이바로에로스이다.플라톤에의하면사랑은부족한자가완전함,즉이데아를향해나아가는동력이라고하였다.남녀간의사랑에서에로스는서로에게결핍된반쪽을발견하고,하나가되려는맹렬한의지로나타난다.그러나이강렬한불꽃만으로는지속적인세계를만들수없다.바로스토르게다.육친의사랑이다.에로스가자신에게부족한것을취하려는지향성이었다면,스토르게는새로운생명을보호하고양육하려는본능적인헌신이다.부모가자식에게조건없이베푸는이사랑은,인간이경험하는최초의무조건적인사랑이며,개인을이기적인에로스의영역에서벗어나타인(자식)의생존과성장에자신을내어주는헌신의영역으로인도한다.
저붉은핏줄,
질기게도대를이어
나에게로왔다
-「핏줄의연대기」
김민지시인에게있어핏줄의연대기는사랑의연대기이다.이작품은사랑의현상학으로인식한생의본질인사랑이시인에게로까지뻗쳐왔음을표현한다.한알의고구마에서돋아난붉은싹을통해생의근원적이법(理法)을드러낸다.사진속의붉은줄기는단순한식물의생리현상이아니라,생명을이어주는어떤보이지않는힘의흔적처럼느껴진다.시적언술“저붉은핏줄,질기게도대를이어나에게로왔다”는바로그생명의흐름을나의존재속으로끌어들인다.이작품은‘생의본질이사랑’임을환기한다.
핏줄은생명을잇는통로이자,사랑이세대를넘어전이되는길이다.생은스스로존재하지않는다.그것은타인으로부터,부모로부터,조상으로부터,사랑의전달로이어진다.핏줄은그사랑이육체속으로응고된상징이다.“질기게도대를이어”라는표현속에는생에있어결코단절되지않으려는의지,그의지의밑바탕에깃든사랑의지속성이서려있다.사랑이야말로생을관통하는내적에너지이며,핏줄은그사랑이물질화된흔적이다.
사진기호로서의붉은고구마싹은흙과생명,육체와시간의감각을동시에불러온다.흙속의어둠을뚫고나온붉은줄기하나가,마치수많은세월을지나지금이순간화자에게도착한존재의서사처럼다가온다.그것은단순히식물의생장이라기보다,화자에게로흘러온생의연대기이며,그연대기의저변에는사랑의맥박이뛰고있다.디카시가지향하는‘극순간멀티언어예술’의본질이바로여기에있다.한장의이미지와한줄의언술이만나,존재의뿌리와사랑의본질을동시에드러내는것이다.
“나에게로왔다”라는마지막구절은이디카시의정점을이룬다.그것은단순한생물학적계승이아니라,사랑의현상학적도래를말한다.사랑은내가만들어내는것이아니라,나에게로오는것이다.핏줄이나에게로온것처럼,사랑도나에게로도착한다.그도착의순간,나는이전세대의사랑과생명을감각적으로체험한다.그것이바로후설이말한지향성의체험이자,퐁티가말한신체적지각의순간이다.그렇게생의본질을사랑으로환원시키며,혈연의계보를존재의연대기로승화시킨다.핏줄은단순히육체의연결이아니라,에로스에서시작해스토르게의사랑으로생을이어주는길이다.이작품은생명의지속이란결국사랑의연속이며,사랑이야말로생을가능케하는근본이법(理法)임을깨닫게한다.그것은단한장의이미지와한줄의언술로완성된,존재와사랑의현상학이다.
물줄기사이로
작은꿈하나무럭무럭자란다
꿈은여러개여도좋다고
계속해서높이높이오를것이라고
-「분수앞에서」
이작품은한아이가분수를바라보는장면을사진기호와“물줄기사이로/작은꿈하나무럭무럭자란다/꿈은여러개여도좋다고/계속해서높이높이오를것이라고”라는언술의문자기호로구성하고있다.이작품은단순히유년의한장면을포착한것이아니라,생의연속성과핏줄의현존적계승을통찰한것이다.
분수의물줄기는생명의순환을상징한다.물은솟구쳤다가다시내려오는끊임없는운동속에서사라지지않고,다시금솟구친다.그운동은생의흐름이자혈통의연속과연동된다.아이가분수를바라보는장면은시인이자기존재의다음세대를바라보는시선이며,그속에생의계보학적사유가내포되어있다.분수의물줄기가하늘로오르는것은생명력의상승이며,아이의꿈이자라오르는미래의표상이다.
시인은“작은꿈하나무럭무럭자란다”고언술함으로써,꿈의씨앗이세대간을거쳐이어지는생명적유전성을드러낸다.“꿈은여러개여도좋다”는언술은개인의욕망을넘어,세대가달라져도생의의지가다양하게분화될수있음을인정하는존재의다층적연속성을의미한다.분수의물줄기가여러가닥으로뻗어올라서로다른높이를이루듯,핏줄의세대들은각자의방향으로자라나되,모두한근원에서솟아난물이다.
이작품은시인의내면에서‘핏줄의연대기’로서의생명인식을시각화한다.물줄기속에서시인은자신의과거와미래를동시에본다.시인에게손주의존재는단순히‘다음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