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게 살해된 왕 (프랑스 상징의 기원이 된 불명예스러운 죽음)

돼지에게 살해된 왕 (프랑스 상징의 기원이 된 불명예스러운 죽음)

$25.00
Description
백합과 파란색이라는, 프랑스의 상징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중세 유럽의 역사를 상징사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는 책. 카페왕조에서부터 시작된 파란색과 백합꽃 문양은 오늘날까지도 프랑스를 상징하는 색깔과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의 중세사학자인 미셸 파스투로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인장 등 중세의 다양한 도상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그것들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시각적 이미지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아울러 카페왕조가 그러한 이미지를 채용해 왕실의 문장으로 삼은 배경과 목적을 12세기를 전후로 한 다양한 역사적 상황과 연관시켜 해석한다. 이를 위해 그는 돼지ㆍ파란색ㆍ백합의 상징성, 성모 마리아 신앙의 융성 등의 문화적 배경과 교회의 분열ㆍ십자군 전쟁의 실패ㆍ아키텐 공국의 영지를 둘러싼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대립 등의 정치적 사건들을 서로 교차시키며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미셸파스투로

고려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서양중세사를전공했다.『12-13세기동물지에나타난기독교적상징과이념』이라는주제로박사학위논문을썼다.두산백과사전의역사ㆍ신화분야전문집필자로도활동하고있으며,번역한책으로는『곰,몰락한왕의역사』(미셸파스투로),『맨더빌여행기』(존맨더빌),『유령의역사』(장클로드슈미트),『중세동물지』(작가미상),『돼지에게살해된왕』(미셸파스투로),『악취와향기』(알랭코르뱅)가있다.

목차

머리말_역사의전기가된사건

1.프랑스의두왕
뚱보왕루이6세|왕들의비만|예정된왕필리프|왕은사냥을해야한다

2.사고
쉬제르의증언|모리니연대기|또다른증언들|왕자들의죽음

3.불결한동물
더럽혀진왕조|성서의유산,유대교와돼지|인간과돼지의친족관계|인간을가장닮은세동물|돼지와이슬람교|기독교와돼지|더러움과돼지같음|숲에서도시로

4.얼룩지우기
생드니에서의장례식|랭스에서의대관식|두번째필리프|불행한통치의시작|루이7세십자군에참가하다|성모에게호소하다|두명의열성신도,쉬제르와베르나르

5.백합과파란색
프랑스의여왕,성모마리아|마리아의백합|천상의파란색|문장화의시작|왕실문장의탄생|식물의왕국

6.가깝고먼울림들
필리프왕의순번은?|돼지에게살해된왕,그기나긴기억|왕을살해한또다른돼지|법정의돼지|하늘에서온백합|프랑스의파란색

저자후기
주요사건연표
주석
사료와참고문헌
도판과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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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축구를좋아하는사람이라면다아는이야기이겠지만,프랑스의축구대표팀은‘레블뢰(LesBleus)’라고불린다.그들이파란색유니폼을상징으로삼고있기때문에붙여진이름이다.지네딘지단이선수로뛰던1990년대후반부터2000년대중반까지는레블뢰가세계축구계를호령했다.세밀한패스와조직력에기초한그들의경기운영은예술처럼아름답다는찬사를받으며‘아트사커(artsoccer)’라고불렸고,그들은1998년월드컵에서영원한강호브라질을제치고우승을차지했다.

축구에서만이아니라다른분야에서도‘파란색(Bleu)’은프랑스를상징하는색이다.월드컵과같은국제적인스포츠경기가없던18세기에도이미유럽에서는파란색은프랑스를,붉은색은영국을,녹색은독일을상징하는색으로여겨지고있었다.그래선지프랑스대혁명직후인1793년부터1800년까지프랑스의서부지역에서벌어진방데전쟁에서왕당파와맞서싸웠던혁명군도‘레블뢰(LesBleus)’라고불렸다.혁명정부를지키기위해나섰던그들도파란색옷을입고있었기때문이다.

이처럼파란색이프랑스를상징하는색이된것은프랑스카페왕조가12세기후반부터파란색바탕에금색백합꽃이총총하게그려진것을왕과왕국을상징하는문장으로사용했던것에서비롯되었다.그런데프랑스의중세사학자인미셸파스투로(MichelPastoureau)는프랑스가어떤불명예스러운죽음이가져다준오점을덮기위해서파란색과백합꽃문양을사용하게되었다는흥미로운이야기를들려준다.먹을것을찾아땅을헤집으며도시를돌아다니다가왕의낙마사고를불러온돼지때문에오늘날프랑스대표팀의파란색유니폼이탄생되었다는것이다.

악마의돼지가가져온불명예스러운죽음

1131년10월13일,루이6세의맏아들인필리프가파리근교에서낙마사고로죽었다.그가타고있던말의다리사이로돼지한마리가갑자기뛰어들어말이넘어졌고,말에서떨어진필리프는돌에세게부딪쳐크게다쳤다.그는곧가까운집으로옮겨졌으나몇시간도지나지않아숨을거두었다.당시필리프는2년전에대관식을올리고아버지와공동으로프랑스의왕위에올라있었다.그런필리프가불결함과탐식의상징이던돼지때문에목숨을잃은이사건은왕국과왕조의명예를심각하게훼손했다.야생의멧돼지를사냥하다가죽는것은전사다운명예로운죽음이었으나농장의돼지때문에죽는것은왕에게는전혀어울리지않는불명예스러운죽음이었기때문이다.사람들은이수치스런죽음을놓고‘신이내린벌’이라고수군거렸다.그리고젊은왕의죽음을불러온그돼지를‘악마의돼지’라고불렀다.

죽은필리프를대신해서왕위에오른루이7세가실정을거듭하면서왕과왕조의명예는더욱땅에떨어졌다.왕은명예를회복하기위해왕비와함께직접제2차십자군에참여했으나,원정은무참한실패로끝났다.게다가십자군원정도중에생긴불화로루이7세가알리에노르왕비와이혼하면서프랑스서부의넓은영토가잉글랜드플랜태저넷왕가에게넘어가는일마저벌어졌다.그지역은아키텐공국의상속녀이던알리에노르왕비의영지였는데,왕비는루이7세와이혼한지3개월도되지않아노르망디공작이던헨리플랜태저넷과재혼했다.그리고2년뒤인1154년에헨리가잉글랜드의왕이되면서그지역을놓고프랑스는잉글랜드와대립하는처지에놓이게된것이다.이것은뒷날백년전쟁의원인이되기도했다.

이모든일이‘악마의돼지’때문에필리프가목숨을잃으면서빚어진일로여겨졌다.성직자가되기위해수도원에서양육되던루이7세는왕위에오를준비가전혀되어있지않았다.알리에노르왕비도원래는필리프와결혼할예정이었다.따라서필리프가죽지않았다면,프랑스역사에서최악의재난이라고불리는루이7세의통치는피할수있었을것처럼보였다.역사에는가정이있을수없다지만,분명히그시대사람들은그런아쉬움에서벗어날수없었고,필리프의죽음은왕국과왕조에내려진신의징벌처럼보였다.

성모마리아를앞세워돼지의흔적지우기

왕과그의측근들은이불명예스런죽음의흔적을지우고,왕과왕조의명예와위신을회복해야했다.루이7세와그의자문이던생드니수도원장쉬제르,서방기독교세계에큰영향을끼치고있던베르나르드클레르보등은그리스도의어머니를왕국의수호자이자어머니,‘프랑스의여왕’으로삼아왕조와왕국의명예를되찾으려했다.이를위해그들은성모마리아의도상에서가져온백합과파란색을왕국의문장으로사용하기시작했다.

12세기중반에이르러성모마리아숭배가서구기독교세계의대부분지역에서자리를잡았다.그리고백합은성모숭배와결합해성모의순결함을상징하는것으로쓰이고있었다.베르나르드클레르보는설교에서성모를백합에빗대어나타내면서그러한흐름을이끌었다.

생드니수도원장쉬제르는프랑스역대왕들의무덤이있는수도원교회의창을파란색색유리로장식했고,이로써파란색이왕국의색으로자리를잡는데영향을끼쳤다.10세기까지만해도파란색은볼품없는색으로여겨졌으며,종교적인상징성도지니지못했다.그러나서기1천년을지나면서파란색은천상의색이자가장아름다운색으로여겨지기시작했으며,그리스도를비롯한신성한존재들의의복이나주변등도점차파란색으로칠해졌다.쉬제르는생드니수도원의교회를개축하면서처음으로파란색색유리를이용한스테인드글라스로장식했고,샤르트르대성당을비롯한왕국의교회들도그러한흐름을이어갔다.그러면서이파란색은왕실문장의파란색이되어백합꽃이만발한‘천상의꽃밭’으로사용되기에이르렀다.

‘파란바탕에금색백합꽃들이총총한(d'azursem?defleursdelisd'or)’프랑스문장이언제부터공식적으로사용되기시작했는지는정확히확인되지않는다.백합꽃문양의사용이최초로확인되는것은1179년11월대관식을치른뒤에새겨진것으로추정되는필리프2세의인장이다.그리고백합꽃문양의방패문장은1211년에필리프2세의아들인루이8세가헌장에첨부한밀랍인영에서최초로발견되며,파란색바탕의색까지나타난것은1216∼1218년에제작된샤르트르대성당의스테인드글라스가처음이다.이러한것들로미루어볼때루이7세의치세말기인1150∼1180년무렵부터파란색과백합꽃문양이점차사용되기시작했던것으로추정된다.

왕과왕국의상징적정화

이처럼프랑스는12세기후반부터성모의두가지상징을왕과왕국의상징으로삼아천상의여왕을프랑스의여왕으로탈바꿈시켰다.성모의순결함을상징하는파란색과백합으로왕과왕권을나타냄으로써프랑스는천상의왕국과의결속을새롭게다질수있었다.그리고악마의돼지때문에생긴오점을상징적으로정화하고,명예와위신을되찾을수있었다.

이것은프랑스의문장을다른왕국의그것들과비교해보면뚜렷이확인된다.유럽의다른왕조들은대부분동물을문장의상징으로사용했다.예컨대잉글랜드와덴마크왕국은레오파르두스를,스코틀랜드와레온,보헤미아,노르웨이왕국은사자를,스웨덴왕국은황소를,신성로마제국과폴란드왕국은독수리를상징으로사용했다.그러나프랑스왕국은야수의세계에서빌려온전사의상징이아니라,평화와순결을상징하는백합을상징으로선택했다.이처럼프랑스의왕은유럽의다른왕들보다먼저문장을사용하기시작했을뿐아니라,식물을문장의형상으로선택해스스로를기독교세계의다른왕들과다른존재로부각시키고있다.곧프랑스의왕은그렇게함으로써자신이매우‘기독교적인’왕이며,하늘과특별한관계로묶여있음을드러내려했던것이다.

이를뒷받침하듯,13세기중반이후에는새로운전설이유포되기도했다.5세기에기독교로개종한프랑크왕국의왕인클로비스에게천사가하늘에서백합꽃문양으로장식된방패를가져다주었다는내용의전설이었다.왕실의백합꽃문양이하늘에서전해졌다는이러한이야기는성왕루이의시성식이있었던1297년무렵을전후로해서더욱활발히제작되고유포되었다.

한편,파란색이왕국을상징하는색이되면서프랑스왕은파란색옷을관습처럼입기시작했다.필리프2세는파란색옷을정기적으로입기시작한최초의프랑스왕인데,그는1214년부빈전투에서큰승리를거두었을때에파란색옷을입고있었다고전해진다.성왕루이때에와서는파란색옷이프랑스궁전의유행처럼되었고,이러한현상은14세기말까지지속되었다.그리고이를배경으로색의위계에서파란색의지위가크게높아지면서일상생활과의복에서파란색이차지하는영역도커졌다.

프랑스상징의기원에관한흥미로운이야기

이처럼미셸파스투로는파란색과백합이라는프랑스의상징이,중세의연대기작가들이‘악마의돼지’라고표현한불결하고비천한동물이일으킨사고에서비롯되었다고해석한다.이를위해그는근대이후거의모든역사책들에서자취를감춘이특별한사건이불러온다양한정치적결과들과성모마리아신앙의융성ㆍ색의위계변화ㆍ돼지의상징성ㆍ문장의사용등과같은문화적변동들을서로교차시키면서매우흥미로운이야기를들려준다.

이것은오직미셸파스투로만들려줄수있는이야기처럼보이기도한다.그는문장과동물,색이라는주제를역사학의새로운영역으로개척해중세상징사분야에서독보적인위치를차지하고있는학자이다.그런그이기에프랑스상징의기원을‘악마의돼지’와연관시켜해석하는이야기를이토록흥미진진하게들려줄수있었을것이다.

그는후기에서이책의내용을고등학교시절에처음구상했다고밝히고있다.삼촌의서재에있던오래된역사책에서파리의길거리를떠돌아다니던돼지때문에말에서떨어져죽은젊은왕필리프에관한몇줄의글을읽고는그사건에매료되었다는것이다.이제칠순이지난이학자는그때부터지금까지50여년을자신이매료되었던그사건과연관된주제들을탐구하는데바쳐왔다.‘중세문장의기원’이라는주제로학위논문을취득했고,《염색업자집의예수,중세서양의색과염색(J?suschezleteinturier.Couleursetteinturesdansl'Occidentm?di?val)》(1998),《블루,색의역사(Bleu.histoired'unecouleur)》(2000),《색,큰책자(Couleurs.LeGrandLivre)》(2008),《검정,색의역사(Noir.Histoired'unecouleur)》(2008),《녹색,색의역사(Vert.Histoired'unecouleur)》(2013)등의저술로색의역사를탐구했다.그리고《곰,몰락한왕의역사(L'Ours.Histoired'unroid?chu)》(2007),《돼지,사랑받지못한친족의역사(LeCochon.Histoired'uncousinmalaim?)》(2009)등의저술로동물이라는주제를탐구했고,《서양중세상징사(UnehistoiresymboliqueduMoyen?geoccidental)》(2004),《중세의상징.동물,식물,색,사물(SymbolesduMoyen?ge.Animaux,v?g?taux,couleurs,objets)》(2012)등의저술로상징사의이론을체계화했다.

이렇게보면이책은그가50여년동안진행해온연구들을바탕으로고등학교시절에매료되었던사건에대한탐구를완성시킨것이라고도볼수있을것이다.곧이책은상징사라는영역을개척하고독보적인연구성과를거둔역사학자의연구가시작된출발점이자,그평생의연구성과가집약된결과물인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