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믿음을강조합니다.종교개혁의5대‘솔라’가있는데,그중에하나가‘오직믿음’입니다.그런데그믿음이라는뜻이성경에서말씀하는것과그뜻이다르게변질되었다면어떻게될까요?‘성경에서예수님이말씀하고있는믿음’과‘오늘날선포되고있는믿음’과다르다면이는심각한문제가있는것입니다.....
그런데예수님이말씀하신믿음과다른‘변질된믿음’을조장하고있는대표적인것이4영리(四靈理)입니다.우리나라일부교회에서는4영리에서제시하는영접기도를통해서,자신이진지하게영접기도를했으니자신의구원을확신하라고가르치고있습니다.그러나예수님은그렇게가르치지않았습니다.예수님이가르치는믿음은내용이있습니다.즉,나(예수)를믿는자는결코주리지않고영원히목마르지않으며(요:35),또영생하는생명을받으며(요6:53-56),그리고배에서생수가흘러난다(요7:37-39)고말씀하셨습니다.이런명백한예수님의말씀을은근히무시하고있는것이사영리입니다.사영리는예수님이말씀하신믿음과는아무상관이없는‘믿음의고백’만으로도구원을확신시켜주며,예수님의말씀하신믿음을‘체험또는감정’이라는말로은근히무시하기도합니다.그래서이글은사영리에서가르치는‘믿음’의문제점을5가지항목으로나누어다루었습니다.....
4영리는복음을바르게제시하고서도그복음을받아들이는‘믿음’의문제에들어가서는,자체모순을보이고있는것입니다.‘하나님의사랑과계획을아는체험’을은근히‘감정’으로격하시키고,심지어‘그런체험(감정)은일어나지않아도상관없다’고가르치고있는것입니다.그러므로4영리는그자체의진술에서모순을보이고있는것입니다.그것은이미살펴보았듯이4영리가말하는‘믿음’과예수님이말씀하신‘믿음’을다르게제시했기때문입니다.
이것은하나님이시라는그실제가‘그것’이아니라‘거룩한인격이신하나님’이시라는것을4영리는교묘하게무시하고있기때문에생긴일입니다.말로는예수님이마음에들어와계신다,영원한생명을받았다고하면서,그증거는무시합니다.예수님이마음에들어와도,영원한생명을받았어도아무런느낌이나감정이일어나지않아도상관하지말라는것입니다.4영리는‘믿음은하나님과그의말씀에신실하심’에그근거를둔다고가르칩니다.물론하나님이신실하십니다.그래서‘신실하신예수님이말씀하신그대로,예수를믿는성도는그배에서생수의강이흐르는’것입니다.‘신실하신예수님의말씀처럼예수님을믿는자는영원히목마르지아니하는체험을하게되는’것입니다.4영리는신실하신하나님이주시는영생의기쁨,배에서생수의강이흐를것이라는그놀라운체험을‘감정’이라는말로폄하하고있는것입니다.주님이주신다는그런기쁨은별것이아니니,그런감정같은것을느껴도좋지만,그런감정이생기지않아도상관이없다고가르칩니다.주님이말씀하신영생의기쁨을별것아닌것으로폄하하고있는것입니다.그러므로4영리에서제시하는식으로주님을믿을때,약속하신영생의기쁨이없다는것은,4영리에서제시하는‘죄인의기도,영접기도’가신실하신주님에게받아들여지지않았다는반증인것입니다.주님이그의회개와믿음을기쁘게받아들이셨다면,반드시신실하신주님이약속하신놀라운기쁨이그에게넘쳤을것입니다.주님이인정하시는참된회개,참된믿음에는반드시주님과의실제적인‘신비한연합’이있으며,주님이주시는영생의기쁨이있는것입니다.....
만약사도바울이성령으로거듭나지않았다면,자신의심령안에끔찍한죄성이있는줄을결코몰랐을것입니다.성령님은우리마음안에들어오셔서,우리안에있는죄의본성-옛사람,아담적인본성,자아,혼적요소-의추악함을깨닫게해주시는것입니다.그래서전에는그죄의종노릇을하며살았던것을깨닫게하여,이제는그죄인된본성을미워하고성령의도움으로죄와싸우는사람이되는것입니다.이것은새언약을약속한에스겔선지자를통해서도하나님께서이미말씀했던것입니다.“그때에너희가악한길과너희좋지못한행위를기억하고너희모든죄악과가증한일로말미암아스스로밉게보리라”(겔36:31).그때,즉새마음을받을때에는그들이새마음,새영을받았기에새마음을받기전의모든죄악과가증한일로말미암아스스로를밉게보리라는하나님의말씀입니다.....
미국제1차대각성운동때에하나님께크게쓰임을받은조나단에드워드는그의저서『하나님을아는지식』이라는글에서“하나님께서는긍휼과사랑을보여주시기전에먼저비참을깨닫게하신다”고말합니다.그리고또다음과같이말합니다.“사람의마음은공로없이값없이주어지는그리스도안에있는하나님의긍휼을받을준비가되어있지않습니다.자기자신이그런것을받을자격이전혀없다는것을인식하기까지는말입니다.실로죄와비참의깨달음이없이그리스도안에있는하나님의구속하시는은혜를깨닫고받는일은결코있을수없습니다.먼저죄인은자신의죄와비참함을깨달아야합니다.그런다음에야그죄와비참에서자기를구속하시는하나님의은혜를알수있습니다.”.....
4영리는복음을바르게제시하고서도그복음을받아들이는‘믿음’의문제에들어가서는,자체모순을보이고있는것입니다.‘하나님의사랑과계획을아는체험’을은근히‘감정’으로격하시키고,심지어‘그런체험(감정)은일어나지않아도상관없다’고가르치고있는것입니다.그러므로4영리는그자체의진술에서모순을보이고있는것입니다.그것은이미살펴보았듯이4영리가말하는‘믿음’과예수님이말씀하신‘믿음’을다르게제시했기때문입니다.
이것은하나님이시라는그실제가‘그것’이아니라‘거룩한인격이신하나님’이시라는것을4영리는교묘하게무시하고있기때문에생긴일입니다.말로는예수님이마음에들어와계신다,영원한생명을받았다고하면서,그증거는무시합니다.예수님이마음에들어와도,영원한생명을받았어도아무런느낌이나감정이일어나지않아도상관하지말라는것입니다.4영리는‘믿음은하나님과그의말씀에신실하심’에그근거를둔다고가르칩니다.물론하나님이신실하십니다.그래서‘신실하신예수님이말씀하신그대로,예수를믿는성도는그배에서생수의강이흐르는’것입니다.‘신실하신예수님의말씀처럼예수님을믿는자는영원히목마르지아니하는체험을하게되는’것입니다.4영리는신실하신하나님이주시는영생의기쁨,배에서생수의강이흐를것이라는그놀라운체험을‘감정’이라는말로폄하하고있는것입니다.주님이주신다는그런기쁨은별것이아니니,그런감정같은것을느껴도좋지만,그런감정이생기지않아도상관이없다고가르칩니다.주님이말씀하신영생의기쁨을별것아닌것으로폄하하고있는것입니다.그러므로4영리에서제시하는식으로주님을믿을때,약속하신영생의기쁨이없다는것은,4영리에서제시하는‘죄인의기도,영접기도’가신실하신주님에게받아들여지지않았다는반증인것입니다.주님이그의회개와믿음을기쁘게받아들이셨다면,반드시신실하신주님이약속하신놀라운기쁨이그에게넘쳤을것입니다.주님이인정하시는참된회개,참된믿음에는반드시주님과의실제적인‘신비한연합’이있으며,주님이주시는영생의기쁨이있는것입니다.....
만약사도바울이성령으로거듭나지않았다면,자신의심령안에끔찍한죄성이있는줄을결코몰랐을것입니다.성령님은우리마음안에들어오셔서,우리안에있는죄의본성-옛사람,아담적인본성,자아,혼적요소-의추악함을깨닫게해주시는것입니다.그래서전에는그죄의종노릇을하며살았던것을깨닫게하여,이제는그죄인된본성을미워하고성령의도움으로죄와싸우는사람이되는것입니다.이것은새언약을약속한에스겔선지자를통해서도하나님께서이미말씀했던것입니다.“그때에너희가악한길과너희좋지못한행위를기억하고너희모든죄악과가증한일로말미암아스스로밉게보리라”(겔36:31).그때,즉새마음을받을때에는그들이새마음,새영을받았기에새마음을받기전의모든죄악과가증한일로말미암아스스로를밉게보리라는하나님의말씀입니다.....
미국제1차대각성운동때에하나님께크게쓰임을받은조나단에드워드는그의저서『하나님을아는지식』이라는글에서“하나님께서는긍휼과사랑을보여주시기전에먼저비참을깨닫게하신다”고말합니다.그리고또다음과같이말합니다.“사람의마음은공로없이값없이주어지는그리스도안에있는하나님의긍휼을받을준비가되어있지않습니다.자기자신이그런것을받을자격이전혀없다는것을인식하기까지는말입니다.실로죄와비참의깨달음이없이그리스도안에있는하나님의구속하시는은혜를깨닫고받는일은결코있을수없습니다.먼저죄인은자신의죄와비참함을깨달아야합니다.그런다음에야그죄와비참에서자기를구속하시는하나님의은혜를알수있습니다.”.....
하나님께서죄인임을깨닫게하시는이유는인간을참으로사랑해서입니다.하나님앞에선인간의‘죄인된’본질을보이심으로우리의타락이얼마나깊고철저한가를깨닫게하셔서,이런타락한본질에서나오는어떤행위로도거룩하신하나님을만날수없는악한존재라는것을뼈저리게깨닫게하시는것입니다.그리고죄인을위해서죽으신예수그리스도의십자가로그를인도하시는것입니다.그러므로예수님의십자가의죽으심에대한깊은깨달음,즉나같은죄인을위해서하나님의아들이대신죽었구나...하는깨달음이없이는인간은구원받을수없습니다.그래서구원받은성도는예수님의십자가에서하나님의크신은혜와함께자신의죄인됨을깨닫는것입니다......
그러나반대로사탄은우리의죄를보지못하게숨기며,우리를죄를짓게유혹합니다.그래서세상사람들은자신이죄인이라는각성이없습니다.이것은이세상의신인사탄이세상사람의마음을혼미하게하여사람들이자신의비참한죄인됨을깨닫지못하게막고있기때문입니다.그래서그리스도의필요성을전혀깨닫지못하게하는것입니다.거듭나기전의성도의상태가그랬습니다.그래서하나님의은혜로죄인이자신의죄임됨을깨닫는것은참으로복이있는것입니다.산상수훈에서예수님이심령이가난한자가복이있다(마5:3)는말씀이그런뜻입니다.이것은하나님께서그사람을그리스도에게로인도하시고있다는증거인것입니다....
성도는이렇게두가지를깨닫는것입니다.자신이본질이비참한죄인됨과그럼에도불구하고사랑으로품어주시는그리스도의놀라운사랑을깨닫게되는것입니다.그래서그는말씀과그리고기도를통해서성령의도움으로죄성을죽이며,기꺼이자기부인의길을걷게되는것입니다.그러므로성화의길은한편으로는그리스도의은혜안에서그리스도를닮아가며자라가는즐거운길이요,한편으로는자아를깨는아픔이있는고통스런길인것입니다.존라일목사는다음과같이말했습니다.“거룩한사람은겸손을추구한다....그는세상의다른누구에게서보다자신의마음속에서더많은악을본다.그는‘나는티끌이나재와같사오나’라고말한아브라함의심정을깊이이해한다.”“나는우리가더많은빛가운데거할수록,우리의죄성을더많이보게된다고확신한다.천국에가까이갈수록겸손으로옷입게되기때문이다.”“은혜안에서자란다는것은이런의미다.곧그의죄의식이더깊어지고,그의믿음이더강해지며,그의소망이더분명해지고,그의사랑이더광대해지며,그의영적인마음자세가더명료해지는것이다.”그는또다음과같이말합니다.“사람들은자신들이지옥에떨어질수있다는사실을뼈저리게느끼기전까지는절대하늘을향해가는순례자처럼살지않는다.”
그래서성도는성령으로거듭남으로,이제자신의본질이어떠한가를깨달았기에성도는주님앞에나아갈때,형편없는자신의모습그대로를인정하며오직그리스도의피의공로에의지해서나아가는것입니다.그리고하나님께서깊이숨어있는죄성을보여주실때도기꺼이그죄성이드러나는것을보고자신의사악함에놀라서탄식하는동시에또한기뻐하는것입니다.왜냐하면,하나님의사랑이죄를들추어낼때는결코정죄하기위한것이아니라,그자녀들을더욱그리스도를닮게하기위해서,더욱거룩하게위해서인것을알기때문입니다.
그러나자신이마치죄성이하나도없는듯이,마치온전한듯이주님앞에나아가는믿음은정직하지못한믿음이며,위선(僞善)과가식(假飾)으로가면을쓴채주님앞에나아가는꼴이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