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전서에 나타난 발해조선의 역사 : 북경은 한국인의 고대영토, 역사주권 한국에 있다

사고전서에 나타난 발해조선의 역사 : 북경은 한국인의 고대영토, 역사주권 한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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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반도 중심의 반도사관
고조선의 수도는 현재의 북한 평양에 있었고 중국과의 국경선은 청천강이었다는 것이 반도사관의 핵심이다. 학자에 따라 다소의 견해차는 있지만, 큰 틀에서 고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입장은 동일하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연燕나라 진秦나라 한漢나라 시대에 압록강 서쪽은 모두 중국 영토였고 한무제가 조선을 침략하여 설치한 한사군은 한반도 주변에 있었다는 논리가 된다.
2000년 전에 한무제가 한나라의 식민지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했다면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말은 망언이 아니라 진실이다.
한국의 반도사학이 시진핑의 망언을 듣고도 말 한마디 못한 채 쥐죽은 듯이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시진핑의 망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심백강

저자:심백강
서구에서엘빈토플러가「제3의물결」을외칠때「제3의사상-신자유주의와제3의길을넘어서-」를썼다.새천년인류의새로운패러다임을제시한동양권의유일한저작이다.
「퇴계전서」,「율곡전서」,「조선왕조실록」등한국의주요고전들을번역한국내굴지의한학자이자동양학자이다.「이야기로배우는동양사상」,「불교편」,「유가편」,「도가편」은동양사상의대중화에크게기여했다.한학자가유,불,도삼교사상에두루정통하여이를각각한권의책으로펴낸것은한,중,일삼국을통틀어보기드문일이다.
「사고전서」는청나라에서국력을기울여편찬한근8만권에달하는사료의보고다.「사고전서」의사료적가치를국내에처음소개하여한국고대사연구의새장을열었다.최근에저술된「한국상고사환국」,「잃어버린상고사되찾은고조선」,「사고전서사료로본한사군의낙랑」,「교과서에서배우지못한우리역사」는「사고전서」를바탕으로강단사학과재야사학을넘어한국고대사의체계를새롭게세웠다는평가를듣는다.
청와대대통령실,중앙공무원교육원고위정책과정,교육부한일역사공동위원회,경기도교육청,충남도청,장성군청,거제시청,인간개발연구원,동북아역사재단,한국교원대학교,한국학중앙연구원,국정원,국학원국민강좌,KBS1TV아침마당,KBS2TV등에서특강을하였다.

목차

서문
01서양의로마시대에,동양의발해2천년왕조있었다
02“발해의모퉁이에조선이있다”「산해경」에고조선의위치와위상담겨
03발해만부근단군조선을역사로기록한「산해경」
04자랑스러운발해조선역사,감추고왜곡하는반도사학
05밝달민족산동,요동,한반도누비며천하경영
06천년전북경위의조선하朝鮮河,북경이발해조선의일부였다는증거
07북경코앞‘조선하’심기불편,한글자슬쩍빼조하潮河로변경

08북경의조선하,「왕기공행정록」「석진지」에도나온다
09황폐한조선성朝鮮城,왜천년전하북성노룡현에남아있었나
101400년만에들통난하북성노룡현에감춰진조선성의비밀
11진시황진나라동쪽끝은산동반도,북쪽은고조선땅
12고조선땅에세워진진시황유적의모순
13하북성노룡현엔왜조선성,고죽성,요서성유적이있었는가
14발해조선입증하는모용선비족두로공신도비문
15한양조선은발해조선을계승했는가
16발해조선없는한국사가동북공정불렀다
17평양의단군무덤고조선때것일까
18발해만의하북성노룡현일대가고조선수도‘평양’
19“조선재상북경어양현사람”,사마천「사기」발해조선입증
20만리장성연장시도는중국의영토야욕이빚어낸저질코미디
21위환魏煥의「황명구변고皇明九邊考」선비족,고죽국등을발해조선민족으로간주했다
22「주역」의‘명이明夷’는발해조선의또다른이름이었다
23아리랑,장독대에도남아있는발해조선의건국이념홍익인간정신
24비열한수법동원한한무제의발해조선침략,실패한전쟁이었다
25발해조선,상나라,고죽국이숭배한세발달린검은새삼족오三足烏
26지금의광활한중국만든청나라,발해조선의후손이다
27발해조선의수도와서쪽경계는어디일까
28북경넘어하북성남쪽보정시일대까지고조선영토였다

출판사 서평

중국대륙난하중심의리지린민족사관

대동강평양,한반도한사군설을배격하고고조선의강역을압록강에서하북성동쪽난하유역으로확장하는대륙사관의기치를든것은북한의리지린이다.
요동군과요서군의기준이된고대의요수를현재의요녕성요하가아닌하북성동쪽의난하로보고고조선과중국의국경선인패수를현재의북한청천강이아닌요녕성대능하로본것이리지린민족사관의핵심이다.
북한리지린의관점은남한의윤내현등에의해계승되고있다.윤내현은“고대의요수는지금의요하가아니다.지금의난하유역이고대의요동이다.고조선과중국의국경은지금의난하와그하류동부유역에있는갈석산으로이루어져있었다.”고말하였다.(『고조선우리의미래가보인다』.민음사,1995)

북한리지린민족사학의한계

하북성난하가고대의요수이고난하가중국과고조선의경계였다는리지린의주장은고조선의영토를대륙으로대폭확장시켰다는점에서식민사학에찌든한국반도사학에신선한충격을안겨주었다.다만리지린의주장은다음몇가지문제점이지적된다.
첫째하북성동쪽의난하를고대의요하로보는것은어디까지나리지린의추정일뿐난하가요하라고직접언급한고대기록은찾아볼수없다.그러나하북성남쪽보정시保定市역수易水는역수의다른이름이요수라고남북조시대대표적인학자유신庾信(513~681)이직접언급했다는점에서고대의요수는지금의난하가아닌역수라고보는것이훨씬더설득력이있다.
둘째리지린이난하를고대의요수로비정하는데주요한근거로작용한것이갈석산이다.현재의갈석산은바로난하부근하북성동쪽창려현에있어리지린의주장을뒷받침한다.
그러나리지린은『사기』소진열전의“연나라남쪽에갈석산과안문산의풍요로움이있다(燕南有碣石雁門之饒)”라는기록을간과했다.
전국시대연나라는하북성쪽에있었는데현재갈석산은하북성동쪽에있다.그렇다면지금하북성동쪽창려현에있는갈석산과다른갈석산이연나라때하북성남쪽에있었던것이분명하다.
셋째『회남자』의“갈석산으로부터조선을경유한다.(自碣石山過朝鮮)”라는기록이나『전한서』에한무제가“갈석산을지나서낙랑군,현도군을설치했다.”라고말한것으로볼때갈석산은조선의서쪽에있었음이분명하다.그런데현재의갈석산은조선의수도였던노룡현의서쪽이아닌동쪽에있어조선을지나서갈석산이나온다.위치가뒤바뀌었다.
넷째『진태강지리지』에는“낙랑군수성현遂城縣에갈석산이있다.”고말했는데하북성동쪽갈석산이있는현재의창려현은역사상에서한번도수성현으로된적이없다.그러나남북조시대에유신이요수라고언급한하북성남쪽보정시역수유역에는지금도수성진이있다.『진태강지리지』에말한낙랑군수성현은현재의하북성보정시수성진이고갈석산은수성진부근의백석산으로보는것이합리적이다.
다섯째『태평환우기』하북도역주易州역현易縣조항에연나라소왕昭王이현자곽외를예우하기위해역현에갈석관을건립했다는내용이나온다.
하북성보정시역수유역에갈석산이없었다면왜여기에멋진건물을지어갈석관이란명칭을붙였겠는가.이는갈석산이역수유역에있었다는명백한증거이다.
연나라시대연과고조선의국경은압록강이나난하가아니라역수였다.
현재의하북성보정시에있는백석산과역수가연나라진나라한나라시대의갈석산과요수이고시대에따라서다소의변동은있었지만이곳이고조선의서쪽경계,즉중국과고조선의국경선이었다.
리지린이고조선의서쪽강역을난하이동요서지역으로간주한것은청천강을중국과조선의경계로인식한반도사관에비하면크게진전된견해임에틀림없다.
그러나하북성남쪽의백석산과역수유역까지가원래고조선의영토였다면이또한지금우리가살고있는한반도보다훨씬더큰민족의역사영토를중국에떼어주는격이다.싸우지도않고스스로우리강역을축소시키는우를되풀이하는꼴이된다.

이책은『사고전서』에나타난새로운고조선자료에근거,북경이한국의고대영토임을최초로체계적으로밝혔다.

리지린은생전에『사고전서』에실려있는고조선관련자료들을섭렵할기회를갖지못하여지금의하북성진황도시노룡현이고조선의수도였고고조선이옛고죽국땅노룡현에서건국했다는사실을인지하지못했다.그래서난하를고조선의서쪽경계로설정함으로써한국인의고대영토북경을모조리중국영토에편입시키는한계를드러냈다.
『사고전서』는청나라의건륭황제가청나라이전의중국5000년역사상의문헌들을집대성하여약8만권으로편찬한책이다.여기에는한국의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찾아볼수없는수많은귀중한고조선자료들이담겨있다.
예컨대『무경총요』의북경조선하朝鮮河,『태평환우기』의하북성노룡현조선성朝鮮城,선비족『두로공신도비명』의조선건국朝鮮建國고죽위군孤竹爲君관련기록등이그것이다.
이책은『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는찾아볼수없는금쪽같은이런자료를바탕으로북경이한국인의고대영토이며역사주권이한국에있다는사실을입증했다.
『사고전서』에서살펴본바에따르면지금중국의수도북경은본래발해조선의강역으로서한국인의고대영토였고따라서북경의역사주권은우리한국에있다.한국인이북경의연고권을주장할수있는역사적근거가『사고전서』라는세계가공인하는자료에담겨있다.
발해조선을『사고전서』로되살려아시아역사의물줄기를바꾸어놓은이책은“한국은역사상중국의일부였다.”고주장하는시진핑의한국사에대한잘못된역사인식에경종을울려서역사테러의재발을방지하는역할을하게될것이고또한중국의동북공정이얼마나무지하고무모한짓인가를세계에널리알리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