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지도자 석주 이상룡 (Paperback)

민족지도자 석주 이상룡 (Paperback)

$13.00
Description
이 책은 석주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으로, 성장과정과 전·후기 의병참여, 안동의 협동학교와 신민회 안동지부에서의 활동, 경술국치 후 우당 이회영, 백하 김대락 등의 일가와 더불어 서간도로 망명하여 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부민단·부민회·한족회를 이끌고 신흥강습소-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를 설치 운영해오면서 광복투쟁을 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

이태룡

·경상대학교대학원졸업(문학박사)
·사단법인의병정신선양중앙회의병연구소장
·논저:「최익현의순창의병과유소연구」등20여편의논문,『한국의병사』(상·하)등27종35권의저서
·세계인명사전등재
*2011년영국국제인명센터(IBC)선정‘올해의국제교육자100인’,미국인명정보기관(ABI)선정‘21세기위대한지성’
*2012년IBC선정‘세계Top교육자100인’,ABI선정‘세계훌륭한지도자500인’

목차

책을내는이유

*임청각어린이
안동고을금수저물고서
조부의칭찬을들으며

*어른이되어가면서
열다섯에열아홉신부
열여섯에아버지를여의고
서산김흥락문하에서
변복령과갑신왜란소식을듣고
과거시험을보러갔다가

*국권회복을위해
갑오년,비극이겹치다
갑오의병일어나다
국모의원수를갚아야
일가친척모두의병으로
민심수습과어머니를위하여
나라가망해가는데
가슴속에피가끓어
왜적을치기위해가야산으로
협동학교와대한협회안동지부에서

*조국광복찾으러서간도로
함께죽기로맹세했는데
나라는빼앗기고
내어찌왜놈의종이되랴
우리조상이살던땅으로

*서간도에독립군기지를
머나먼삼원포
풍찬노숙속에경학사설립하고
피땀어린신흥강습소와신흥학교
부민단·부민회,동포를위하여
백서농장·신흥무관학교를아는가

*우리가조국광복을
민족지도자들,한뜻으로
한족회이끌며지도자로
군정부총재가되어광복투쟁준비
임시정부와역할분담하기로
유일한군정서에서서로군정서로
서로군정서소속부대무장하다
일본군의간도대학살
청산리대첩은신흥무관학교에서

*민족통합에소매를걷어붙이고
술병메고밭머리에나가
광복투쟁단체통합을위해
임시정부국무령에취임하고
민족통합못하는국무령이라면
광복전에는내유골을가져가지마라

석주이상룡의삶의발자취

출판사 서평

일제강점기중국의만주지방에서광복활동을하면서대한민국임시정부초대국무령을역임했던석주(石洲)이상룡(李相龍)선생은1932년“광복이되기전에는내유골을가져가지말라”는유언을남기고중국지린성(吉林省)쑤란현(舒蘭縣)사오궈뎬즈(燒鍋甸子)에서서거했다.그의유해는광복된지45년만에야환국하여국립대전현충원에모셔졌다가최근에는국립서울현충원에안장된바있었는데,이번에사단법인의병정신선양중앙회의병연구소장이태룡박사(63)가『민족지도자석주이상룡』이라는책을출간하였다.
이책은석주선생의일대기를담은평전으로,성장과정과전·후기의병참여,안동의협동학교와신민회안동지부에서의활동,경술국치후우당이회영,백하김대락등의일가와더불어서간도로망명하여한인자치기관인경학사·부민단·부민회·한족회를이끌고신흥강습소-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를설치운영해오면서광복투쟁을한것을정리한것이다.
경술국치직후서울의이회영일행과안동을중심으로한김대락·이상룡집안이간도로대규모이주하여자치단체를만들고,무관학교를설립,운영하면서군정부(軍政府)를세우고총재로활동하다가상하이임시정부는외교와행정을맡고,류허현(柳河縣)군정부는군사와재정등을맡기로하여‘군정부’대신군정서(軍政署)의독판,뒤에군정서가북간도에또생기게되자,‘서로군정서’독판으로,정의부(正義府)독판으로활약한바를정리한것이다.
종전까지이회영일가가거금을가지고서간도로들어가서한인촌을건설하고,신흥무관학교를운영했다는단편적인사실외에한인사회를단합시켜명실상부하게자치기관으로서의기능을했던,경학사·부민단·부민회·한족회가단순한친목단체가아니었음을밝힌책이다.
특히1918년제1차세계대전종전직전미국의윌슨대통령에의해주창된민족자결주의에힘입어만주·연해주중심의민족지도자39인이대한독립선언을하게되고,이어3·1만세의거이후만주지역으로몰려든한인들사이에광복활동단체의반일무장활동이활발해지자일제는1920년9월부터이듬해5월까지‘간도대토벌작전’이라는한인대학살전을전개하였다.이과정에서2만여명으로편성된일본군은서·북간도3천리지역의3곳을집중타격하면서대학살전을펼쳤는데,그중하나가청산리전투였음을밝히고있다.
저자는간도지역에서청산리전투를비롯하여크고작은많은반일투쟁에는신흥무관학교출신이있었기에가능했음을말하고있다.한족회는한인사회의자치기관으로서서간도의유하·통화·회인·집안·임강·해룡·홍경등지의현에살던한인약8만호가‘의무금(義務金)’을내고,그것도모자라서석주는매부와아들,조카를국내로보내어토지를매각하고,심지어400년동안내려오던임청각까지잡혀서그군자금으로서로군정서산하의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생도3,500명을길러낸것을각종문헌을통하여규명하고있다..
저자는『석주유고』를바탕으로『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자료집』,『백하일기』,대한민국임시정부기관지「독립신문」과이덕일과채영국등의논저를참고하였고,『조선왕조실록』등궁중의기록과신문,일본의비밀기록이나문서를살펴보았으나식민사학자의논저나이를바탕으로한논저들은무시했다고하였다.
그는근대사에서두거목을보았다고하였다.한분은의암류인석선생이고,한분은석주이상룡선생이었다.의암선생은국권회복을위해의병장으로활약하고,경술국치후에는연해주에서광복활동을하다가서간도에서서거하셨고,석주선생은의병과계몽운동에참여했지만나라를빼앗기자간도로망명하여헌신적인노력으로동포를한데뭉치게하고,광복전쟁을할수있게바탕을닦은민족지도자였기에책이름을『민족지도자석주이상룡』이라고했음을‘책을내는이유’에서밝히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