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유적편

난중일기 유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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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현장에서 찾은 이순신의 유적지 3백여 곳의 사진 최초 수록
철저한 고증으로 번역과 지명 오류 모두 바로잡은 완결판
2013년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당시 《교감완역 난중일기》가 심의자료로 제출되어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 후 이 책은 2회 개정을 거쳐 더욱 완성도를 높였는데, 지금까지 학계와 대중들에게 가장 완벽한 번역서로 인정을 받고 널리 애독되어 왔다. 이제는 이 책의 내용을 한글 위주로 재구성하고 이순신 유적지 3백여 곳의 사진을 수록한 신판 《난중일기 유적편》을 내놓게 되었다. 여기에는 일기에 없는 옥포·한산도·절이도·순천왜성·노량 해전 내용을 추가했다.

저자는 고지도와 연구내용 및 각 지방 향토학자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수년간 5만km를 왕복하며 임진왜란과 이순신의 유적지를 거의 모두 답사했다. 주로 산과 바다, 내륙에 있는 성곽, 관아, 해안기지, 선소, 누대, 사당, 봉수 등을 현재의 지번에서 일일이 찾았다. 특히 이러한 현장 조사를 통해 그동안 논란이 되었거나 알 수 없는 지명과 누각 등, 그리고 미공개된 유적을 찾아낸 것은 매우 큰 성과이다.

《난중일기》는 4백여 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이순신의 불후한 명작이자 전쟁문학의 백미이다. 최고지휘관이 참전하면서 체험한 것을 기록한 것은 세계역사상 어디에도 그와 같은 유례가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중일기의 현장을 일일이 실사하여 고증한 점은 《난중일기》번역을 보다 더 완벽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난중일기》가 저작된 이래로 처음 이루어진 노작이다. 이제 가장 완벽한 번역문에 역사의 현장감을 살린 《난중일기 유적편》을 통해 이순신의 참된 교훈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이순신

자가여해(汝諧),시호가충무(忠武)이다.어려서부터문인의소양을쌓고22세에무예를배우기시작하여10년만에식년무과시험에합격하였다.관직에나아가매우청렴하고강직한생활을하여시기와모함으로파직과복직을거듭했다.유성룡의천거로전라좌수사에발탁되면서해상의주요임무를맡고,전쟁대비를위해거북선을만들고《난중일기》를썼다.
임진왜란이발생하자,옥포?당포?한산도?부산포등여러해전을승리로이끌고삼도수군통제사가되어삼도의수군을관장했다.정유재란당시왜적의간계와원균의모함으로억울한옥살이를하고백의종군을하였다.원균부대가칠천량해전에서패하자,수군재건을위해다시삼도수군통제사에복직되고,13척의배로왜선133척을상대하여명량대첩을이루었다.1598년겨울후퇴하는왜적과노량에서격전을벌인결과총탄을맞고전사하였다.이순신의문집《이충무공전서》가정조19년(1795)에간행되었다.

목차

책을엮어내며
일러두기

《난중일기유적편》

임진년(1592)
계사년(1593)
갑오년(1594)
을미년(1595)
병신년(1596)
정유년(1597)Ⅰ
정유년(1597)Ⅱ
무술년(1598)

부록

《난중일기》의역사
참고문헌
충무공이순신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철저한고증과현장답사로번역과지명등의모든문제를해결하다.
“난중일기의현장에서이순신을만나다.”

《난중일기》해독의역사는220여년전조선정조때부터시작되었다.1792년어느날정조가이순신의전기인《이충무유사》의노량해전기사를읽고감동한것이계기가되어유득공과윤행임에게해독을명하였다.이때《난중일기》에대한해독작업을하면서원문에대한교감(校勘)도이루어졌다.교감이란전문학자가고전번역의기초단계에서표준화된정본을만들때먼저원본과이본의오류를수정하는작업이다.

그후1795년최초로해독된《이충무공전서》의《난중일기》가활자로간행되었다.여기에는긴내용을요약하거나음과뜻이서로비슷한한자를차용하는방법이사용되었다.특히후자의경우는한자의동음가를이용한가차법을적용했다.이는옛날부터통용된한자표기방법으로해독된글자가원본과다를수있다.그렇다고이를오류라고할수는없지만,정본을만들기위해서는반드시교감을해야한다.이러한판본상황을저자는《난중일기》원문책자에일일이밝히고원본의글자대로모두수정했다.

이에앞서1693년이후《난중일기》의일부를초록한《충무공유사》의〈일기초〉가있었는데,분량이적어이본으로인정받지못했다.그러나필자가여기서새로운일기32일치와일부정확한내용들을《교감완역난중일기》에처음으로삽입하여합본하였다.새로운일기속에는이순신의부친이야기,화룡꿈,권율과원균에대한비판적인내용등이순신의인간적인면모를알수있는내용들이들어있다.

1935년일본인중심으로결성된조선사편수회(이마이다기요노리(今井田淸德)회장)에서《난중일기》전편을다시해독하여《난중일기초》를간행했다.이는전서본보다는진전된작업이었으나여기에는오독·미상의글자들이다수남아있었다.필자가이를모두해독하여학계에보고했는데,특히난해한글자는고전과초서전문가들에게자문을받으며수차례의분석을거쳐해독을했다.

예로들면,《난중일기초》의병신년9월14일,15일자에,“여진입(女眞卄)”,“여진삽(女眞?)”구절이있는데,이는일본인이오독한대표적인사례이다.이두단구에서특히숫자를의미하는“스물입(卄)”자와“서른삽(?)”자에대해고전전문가들은의미가맞지않는것이오독한글자가분명하다고한목소리를내었다.2005년부터필자가이를집중적으로연구했는데,먼저이순신이또다르게쓴공(共)자의용례를찾아비교하고,임진왜란때전라지역노비문서에서여진이라는여자종을확인한뒤,“스물입”“서른삽”은모두“함께할공(共)”자의오독이라고밝혔다.이에대해그당시는물론지금까지도많은고전전문가들이공감했다.글자의형태가설사맞는다해도뜻이맞지않으면불인정하는것이초서해독의규칙이기때문에견해가같은것이다.더욱이일본인이오독한이글자로인해근거없는낭설까지나오게된상황에서이를인용하는것은반드시지양해야한다.《난중일기》최초번역자인홍기문과이은상은이부분이난해해서그런지이에대해해석을하지않았다.

저자가15년동안이순신과《난중일기》를연구한것은하나의발굴의역사를이룬것이라해도과언이아닐것이다.그간의연구업적을보면,2007년《충무공유사》를완역하여〈일기초〉에서32일치를찾아내고,《난중일기》원본과후대활자본의미상,오독2백여군데를모두바로잡아박사학위를받았고,이연구성과를반영하여《교감완역난중일기》(민음사,2010)를출간했다.특히이책은2013년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난중일기를등재할때심의자료로제출되었다.

그후2013년난중일기의최초한글본인홍기문의《난중일기》와이순신이나관중의《삼국지연의》를인용한문장,한효순의《월탄연보》에서고금도해전당시조선수군의배40척이나오게된근거내용,고상안의〈충무공난중일기〉9일치와명나라담종인의금토패문등을발굴하여처음으로소개했다.저자가지금까지새로발굴한《난중일기》는모두35일치이다.이러한내용들을모두반영한책이개정판《교감완역난중일기》(여해,2016)이다.이책은18종의중고교교과서에실리기도했다.

이제는후속작업으로임진왜란및이순신과관련된유적지4백여곳을답사하면서확인한주요유적지3백여곳의사진을수록하여《난중일기유적편》을출간하게되었다.여기에는그동안논란이되었던지명등을새롭게고증한내용과제대로알려지지않은유적이다수포함되어있다.이러한연구성과를내기까지고지도와연구내용을참고하고해당유적지를잘아는향토학자들의도움이있었다.이번에새롭게확인한유적지는해당사진을통해확인할수있다.

저자는수년동안5만여km를왕복하며전국에있는임진왜란및이순신과관련된산과바다,육지,섬,해안기지,성곽,관아,누대,선소,사당,봉수등을일일이답사했다.때로는배를타고항해하며섬을찾아가기도했고,새벽부터해가질때까지산을넘고강을건너기를수십차례하며혹은지번이없는산길로가고해질녘에산성에올라갔다가어둘때하산할때도있었다.간혹산성을오르기위해5백m에서천m되는암벽을목숨걸고오르기도했다.

이러한답사가저자에게는위험을무릅쓴고행이었지만,현재의주소에서《난중일기》에나오는옛유적지를일일이확인한것은매우중요한작업이었다.이로인해그동안논란이되었거나알수없는지명과누각등,그리고소개되지않은유적지를찾아내는성과를내게되었다.이는오직저자가실사를해야만이지명의오류를바로잡을수있다는생각에수년동안눈이오나비가오나아랑곳하지않고사계절내내답사를감행한노력의결과이다.

전국에있는이순신의유적지는7년의전쟁중에오고간이순신의백절불굴의정신이깃든우리의소중한문화유산이다.이러한역사적인공간들은대부분전략적인요새로되어있어지형과경관이매우빼어나다.바로여기서이순신이뛰어난전략을짜내어백전백승의전과를올렸다는사실이매우놀랍다.저자는역사의뒤안길에서나마현대문명에가려진옛자취를끊임없이추적한결과그당시의현장을고스란히책에담아내었다.이제역사의현장감을생생하게되살린《난중일기유적편》은가장완벽한번역문에지명고증까지더하여더욱완성도를높인미증유의역작이라하겠다.앞으로현대인들은이책속에서이순신을다시만나참된교훈을제대로배울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