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나는 쓴다

난설헌, 나는 쓴다

$18.00
Description
허난설헌을 온전히, 다시 마주하다
시를 지으면 저절로 운율이 맞았던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 규방 안에서 천상 세계를 넘나들었던 규방의 신선, 글 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샘처럼 솟구치”는 문장가. 조선시대 대표적 여성 시인 허난설헌을 수식하는 말들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찬사뿐만 아니라 비난, 논란 또한 그치지 않았다. 전 생애를 글쓰기로 일관한 허난설헌이 27세 나이로 세상을 뜨면서 남긴 말은 자신의 모든 글을 태워 달라는 것이었다. 동생 허균이 기억으로 되살린 200여 수 시와 두 편의 산문이 전해질 뿐이다. 그동안 작품 전작과 시선집이 번역 출간되고 관련 연구도 활발히 이뤄졌으나 명성만큼 작품이 폭넓게 공유되지는 못했다. 생애가 작품 해석을 압도하고, 불우한 가정사를 중심으로 애상적 이미지가 부각되는 것도 여전하다. 이 책은 누구나 쉽게 허난설헌의 시 세계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게 전 작품을 새로 옮기고, 구성하였다. 시 200여 수와 산문 2편의 원문도 함께 배치하여 “섬세하면서도 호방한” 그의 작품 세계로 더 가까이 이끈다. 글 쓰는 여성의 삶이 용인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 글로 자신의 삶을 완성한 시인 허난설헌을 온전히, 다시 만나본다.
저자

허난설헌

許蘭雪軒,1563~1589
이름은초희楚姬,자는경번景樊.강릉에서초당허엽의셋째딸로태어났다.문장가허봉과허균의누이다.15세에혼인하여남매를두었으나모두잃었고,27세에세상을떴다.천상계를화려하게묘사한〈광한전백옥루상량문〉으로일찍이천재성을드러냈으며,고독한개인의정서를서정적으로표현한시부터고단한이웃들의심경을노래한시까지다양한시세계를펼쳤다.시들을모두태우라는유언을남겼으나동생허균이흩어진시편들을모으고자신의기억으로기록한시들로엮은《난설헌시집》이전한다.

목차

머리글

1글귀는아름답고문장은굳세어
광한전백옥루에들보를올리며

2홀로울리는거문고소리
소꿉친구에게|손톱에봉선화물들이며|사계절의노래봄·여름·가을·겨울|우연한느낌을쓰다1-4|흥이나는대로읊다1-8|봄날의느낌|하곡오라버니께|둘째오라버니의견성암시에차운하다1·2|적막한마음|아이들죽음에곡하며

3그립고가난한마음
그네타기노래|상강의노래|막수의노래|가난한여자의탄식|장간마을의노래|강남에서부르는노래|죽지사|서릉의노래|강둑위에서부르는노래|버들가지에부친노래|횡당물가에서|밤에옷을짓다가|원망|가을의설움|밤깊어변방의님그리며|손한림북리에차운하다|최국보체를본받아짓다

4더너른세상을품으니
젊은이의노래|장안에서그대를만나|대제를거닐며|청루의노래|갑산에유배가는하곡오라버니께|둘째오라버니의고원망고대시에차운하여1-4|변방으로떠나며|변방에서|변방에들어가며|성쌓는백성들의원망|장사꾼의노래|심맹균의그림을보고|이의산의시를따라짓다1·2|심아지의체를본떠짓다1·2

5서궁에서나와미앙궁으로
궁녀의노래1-20|도를닦으러가는궁녀에게|자수궁에서자며여도사에게주다|황제가천단에올리는제사|신선이떠난뒤|신선잔치끝나고|꿈을꾸고짓다|허공을거닐며

6광활한신선세계를노닐다
유선사1-87

7서리맞은푸른연꽃
꿈에광상산을노닐고쓴시서문|광한전백옥루에들보를올리며원문

부록난설헌시집발문_허균|서_주지번|제사_양유년

해설쓰는사람,허난설헌
원제목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나의이름으로당당히쓰다
16세기후반조선에서태어나살다간허난설헌의삶은글쓰는자,시인으로요약된다.그삶은당시조선사회가여성에게요구하거나기대한어떤삶의형식과도부합하지않는것이었다.비교적자유로운분위기의집안에서자라며훗날문명을떨친남자형제들과더불어글을익히고썼지만15세혼인이후삶은자신의의지와는무관한것이었다.그러나주어진삶에머물지만은않았다.선비들의전유물인한시를통해삶의애환,감정과바람을거침없이표현하였다.

보배기운고이품은순금에/반달달빛새겨만들었지요.
시집올때시부모님주신것으로/제붉은비단치마에매주셨다오.
이제길떠나는낭군께드리니/부디그대가차고다니시오.
길에서잃는것은아깝지않으나/새사람허리띠에달아주진마오.
_〈흥이나는대로읊다〉4수

어린시절부터확고한자의식과비판적시각을키운난설헌은규방에갇혀지내야하는현실에매몰되지않고자신의결핍과욕망을표현하는데솔직하고자유로웠다.생활언어의구사,감각적인시어사용,활달하고발랄한상상력표출등주체적인여성으로서능동적인면모를보여주었다.규방을넘어사회에대한비판의식을드러낸시는일반백성들의삶에대한연민과통찰까지이어진다.전쟁을직접겪지못한처지지만전쟁터광경묘사는매우구체적이고사실적이다.단순히참혹상만이아니라죄없이죽어가는백성들에대한연민과위정자들에대한날카로운비판의시선도느낄수있다.

산서성십육주를새로찾고서/말안장엔월지국왕의머리매달고돌아오네.
강가의백골들묻어주는사람없어/백리의모래사장에는붉은피흐르네.
_〈변방에들어가며〉2수

이는‘열사의풍모’로도이해되지만,이런소위남성적인풍취의여러시들은표절시비에휘말리기도하여난설헌을둘러쌌던현실의벽을느끼게한다.

그치지않은논란,오명의실체

허난설헌의시는허균이지어서세상을속였다는말이있지만허균과허봉보다격조가높아서미칠수없는수준이다._남용익
세그루보배로운나무가초당집안에서있는데제일가는재주는경번〔허난설헌의자〕에게있구나._매천황현
부인의글같지않다.당나라대가의분위기와열사의기풍이있으니한점도세상에물든자국이없다._유성룡

허난설헌은우리나라여성최초로자신의이름의문집을가졌고중국에서먼저이름을떨쳤지만,조선의남성문인들사이에서는인정과폄훼의시선이교차했다.특히실학자박지원과이덕무같은이는부정적인언사를서슴지않았다.박지원은“여성이시를짓는일은그리추켜세울일은아니지만중국까지알려지다니뛰어나긴하다.그러나호와자까지알려진것은너무과하니오히려조심해야한다”했고이덕무역시“허난설헌의시는결함이많고맹랑하며…중국시인의시구를갖다썼다”라며허난설헌의시가표절이라는생각을드러냈다.
위작과표절의논란은여러시대를거쳐오늘날까지그치지않았다.하지만세밀한문헌고증을바탕으로반증하는연구들역시이어져왔다.이책의해설에서도반박의근거를들고있다.한시고유의기법으로서일부표현의공유라든가난설헌이즐겨쓴당풍시,악부시의특성에서비롯된중복사용등의예들이다.열린마음으로작품을감상하며진위를가려보는것은독자의권리이기도하겠다.

허난설헌을다시읽는다는것은

푸른바다옥빛바다를넘보고
푸른난새오색난새에기대어있네
연꽃스물일곱송이
찬서리위에붉게떨어지네
_〈꿈에광상산을노닐고쓴시〉

난설헌은글쓰는여자라는삶의형식이부재한시대에태어나글로자신의삶을완성했지만,그가결국도달한표상은서리맞은연꽃에그치고말았다.일찍이재능이알려졌지만그의글을인정하는곳은,현실어디에도찾을수없는세계뿐이었기때문이다.그러나끝까지글쓰는여자의삶을밀고나간난설헌은시인으로서확실한자기만의세계를구축했다.난설헌의시세계는“활달하고자유로우며호방하면서도섬세한자기만의감각과정서,사상”을보여준다.이제허난설헌을편견없이작품으로대하는것,그가썼던시문을제대로읽는것이비로소그를‘쓰는사람’,한‘작가’로온전히대우하는출발점이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