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들만 지나간다 (문래동 앤솔로지)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들만 지나간다 (문래동 앤솔로지)

$10.00
Description
철공소와 예술촌의 공존, 문래
이 책은 문래동과 인연을 맺은 문인들(예술가들)의 신작을 엮었다. 문래동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소재로 해서 여러 명의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문래동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저마다 색다른 시선의 작품을 모았다. 일제 강점기에 커다란 방직공장이 들어서고 하나둘씩 일자리를 찾아서 문래동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방직공장이 활황을 띄었고, 이후 서민들의 주택가였다가 점차 철공소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IT를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외환위기까지 더해져서 철공소는 점차 수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하나둘씩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예술가와 철공소가 공존하면서 문래동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매우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다. 이러한 문래동을 왕래하고 스쳐 지나갔던 여러 작가들이 저마다 색다른 시선으로 문래동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시인 문정희, 소설가 조해진 등 한국문학의 대가에서부터 주목할 만한 신인에 이르기까지 31명의 작가들이 다양한 감성으로 문래동을 작품에 담았다.
저자

문정희

저자문정희는1969년《월간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문정희시집』『오라,거짓사랑아』『나는문이다』『다산의처녀』『카르마의바다』등이있다.현대문학상,소월시문학상,정지용문학상,천상병시문학상,육사시문학상,현대불교문학상,목월문학상등을수상했으며,마케도니아테토보세계문학포럼에서올해의시인상,스웨덴의시카다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서문|이성혁문학평론가
우리의문래에들어오신것을환영합니다

1부_시
문래―문정희
골목과굴곡,다음은별자리―송재학
오래된골목―고진하
야래향―김응교
골목의기억―정진아
문래―정우영
파란대문이있는풍경―허연
위험한짐승―김태형

2부_산문
문래동에서성수동을보다―임정진
나의문장이온곳,문래―조해진

3부_시
문래동마찌꼬바,이후―황규관
괭이없는겨울―방민호
문래동―정정화
달빛이내리는마을―김혜영
대장간―이재훈
밤의거리에서혼자―김이듬
물레는원래문래―오은

4부_산문
에로티시즘@문래동―김선주
철꽃피는동네,문래동―구선아

5부_시
문래골목―천수호
백화등―김선향
부식―이병일
서울특별시영등포구문래동3가58-84―서윤후
문래동장편―전영관
장마―최연
남겨진꼬리―황선재

6부_산문
문래,새로운가능성으로의여행―유지연
우리는문래동을아직다알지못한다―김순미

7부_소설
블루레몬프린트―이인아

발문|전소영문학평론가
기억으로남겨진미래

출판사 서평

이책은문래동과인연을맺은문인들(예술가들)의글을엮은것이다.‘문래동’의연혁에대해서는구선아님의글이잘설명해주고있다.문래동은원래작은철공장들이빽빽하게들어선일종의공장지대였다.(일제강점기부터공장지대가설립되었기때문에일제시대옛가옥들이아직도많이남아있다.)그러나산업구조의변화로제조산업이점차사양길로들어서면서적지않은공장들이폐업을해야했다.이빈자리에들어오기시작한것은,젠트리피케이션으로높아진임대료때문에홍대근처를떠나야했던예술가들이었다.이들은문래동으로와서빈공장에들어와작업실과갤러리를차렸다.그래서문래동은철공소와갤러리가혼재하는기묘한공간이되기시작했던것이다.구선아님의표현을빌리면“땀흘려몸으로일해야하는철강소노동자와창조적노동을하는예술가가함께하는동네가탄생한것”이라고할수있다.
문래동이대중적으로알려진것은바로미술가들이이곳에예술촌을형성하기시작하면서였을것이다.그런데이곳도젠트리피케이션의대상이될지도모른다는생각에철공소를운영하는이들이나예술가들이문래동이명소가되는것을썩반기지는않는다고한다.(오은시인의글이이젠트리피케이션문제에집중하여조명한다.)더구나젠트리피케이션이된다면문래동의매력은급격히떨어질것이다.쇠락해가는영세한철공소와가난한예술가들의예술촌의융합이이곳을그어디에서도보기드문장소로변화시킨것이기때문이다.(이병일시인은바로이묘한융합을문래동벽화골목에서찾아내고는“날개안쪽에서쇠구슬굴러가는소리가튕겨나온다”고말한다)그래서문래동의젠트리피케이션을막아야예술가와노동자들이이곳에계속거주할수있을것이며,이새로이형성된매력적인장소도계속유지될수있다.
그래서이곳은새로운예술과함께,임정진작가가문래동에서노동현장을주목하고있듯이,오래된노동이숨쉬고있다는것을잊으면안될것같다.(명소라고해서이곳을구경의대상으로삼는것이아니라노동자와예술가의땀흘리는삶이살아가는장소라는것을잊으면안되리라.)이곳에는노동하면서삶을꾸리는이들의고난의눈물(전영관시인이‘문래동’에대한시편에손이뭉개진프레스공을조명하고있는것은이유가있을것이다)이스며들어있다.예술이이노동의고장에스며들면서,문래동은미적근대가낳은예술과삶의분리선이점차지워지는장소가된다.(이인아작가는예술과노동이결합된세계의유토피아적이미지를소설로풀어내고있어서흥미롭다.)이곳에서노동은예술에의해조명되고예술은노동에의해새로이뒷받침된다.‘예술촌’으로서의문래동이가지는의미는여기에있을테다.
사실문래동이매력적인것은,이곳이개발이아직잘안되었기때문이기도하다.매끈한거리와화려한건물로구성된공간은삶의땀냄새가나지않는다.하지만옛골목이아직도보존되어있는문래동이곳저곳을걷고있노라면,사람들과함께살고있음을느낄수있다.골목길,그래,문래동의매력은내겐이골목길에있는것같다.이책에실린시들은문래동특유의골목을발상으로한것들이많다.시인들도골목이가지는장소성에서시적영감을받은것이리라.이책의글들에서문래동에대한나의인상과생각이기고자들과거의비슷하다는것을느꼈다.문래동에올때마다느낀어떤기시감과정다움을기고자들도느꼈던것,그것은보존되어있는옛골목길의모습이유년시절의추억을불러일으키기때문일것같다.
서울에서태어난나는유년을떠올리면여러갈래로나있는골목길이펼쳐진다.골목길이나의고향인것,그래서문래동골목은마치고향에왔을때느끼는정다움을내게주었던것,그래서고진하시인도말하듯이문래의골목은추억을불러일으키는장소다.골목이란어떠한곳인가?내겐‘다방구’의장소였다.숨어있기가편했다.유년시절친구들과다방구놀이를주로했던것은우리들의놀이터가골목이었기때문이다.‘청색종이’대표인김태형시인도이책에실린시에서“숨을곳이없었다이골목밖에”라고말하지않는가?어른이되어세상에치이다가숨을곳역시골목이리라.
숨어있을수있는곳이골목이라면또한길을잃어버리는곳도골목이다.숨어있다가길을잃기도하는곳.정말나도집주변골목길을돌아다니다가길을잃어버리고는울면서엄마를찾곤했던기억이있다.하지만길을잃는다는일은공포를불러일으키기도하지만매혹적이기도하다.길을잃으면우리는어디로가야할지모른다.미지未知가앞에놓여있는것이다.정해진것은없다.그래서어디로든갈수있는곳이거미줄처럼엉킨골목길이다.(‘거미줄’이란비유가좀부정적인가?천수호시인은문래동의골목길을놀랍게도‘실핏줄’로비유하고있기도하다.)그래서아이인내가새로운골목길에들어섰을때,공포심보다먼저호기심과가벼운흥분이불러일으켜졌던것이리라.그리고어른이된내가문래동골목길에들어섰을때에도,나는어릴때느꼈던호기심을다시느낄수있었다.서윤후시인이문래동3가를‘재미공작소’라고부른것은문래동골목이지닌그미지의성격때문일것이다.
골목은은밀한만남의장소이기도했다.골목길의어두운등뒤편에서키스를한기억이있지않는가?골목에대해좋은기억만있지는않을것이다.김이듬시인이보여주고있듯이애인과골목에서대판싸우고헤어진장면을연출하기도하지않았던가?키스를했든대판싸우고연인과헤어졌든,골목은우리가은밀하게뜨거웠던관계의기억을품고있다.그래서인지골목에서는취기가느껴지기도한다.술에취하는것이아니라골목에취하는느낌이들때가있는것이다.또한골목길은모르는이와의마주침도이루어지는곳이다.골목에서의마주침은대로변에서의낯선이와의마주침과는묘하게다르다.(김태형시인과함께‘청색종이’공동대표인정정화화가의시는이문래동골목에서의마주침을“서로조금씩어깨를비켜”주는모습으로그리고있다.정화가는이잠깐동안의만남과헤어짐에대해“아직지나가지않은것들만지나간다”고멋지게쓰고있다.)대로변의마주침이시각적이라고한다면골목에서의마주침은촉각적이라고할까.
문래동골목에서마주치게되는모르는이가마치전에아는이였던것처럼낯설지않다고느끼는건나만아닐것이다.그래서일까?문래동골목은새로운만남이이루어지는곳같은것이다.그래서송재학시인은골목에대해“천개가넘는사람의목소리를쟁여놓았다”고쓴것일까.황선재시인은“등뒤로득실대는소리들”을듣고있기도하고.생각해보니내가근년에새로이알게된사람들중에서문래동을통해서알게된분들이많다.‘ㄱ의자식들’분들도모두문래동에거주하는분들이고청색종이의인문독회에참여하면서많은이들과새로만나친분을쌓았다.그리보면정우영시인이“막다른골목마다땅땅,새꽃이핀다”는말은과장이아니다.정우영시인의시에서도언급되고있지만,여러설이있는문래라는명칭의유래중에서‘물레’에서왔다는설이그럴듯하다는것도이유가있다.그렇다면왜이동네에서‘물레’를생각하게된것일까?김선주작가가소개해주고있듯이문익점의목화솜이들어온곳이이곳이어서문래라는이름이붙여졌거나,목화와물레가연결되어생각되면서문래란이름을얻게되었을수도있다.하지만한편으로이장소가만남과관계를자아내는곳이기때문에물레라고불리게된것은아닐까?
그런데문래동에서의만남은각자문래동에대한기억과이미지를품고있는이들이만나는것,그래서문래에서모이는이들은제각각문래에대한다른이미지를가지고사람들과만나고있을것이다.가령김선주작가에게문래는에로티시즘의장소이다.문래동에서가난한유년시절을보낸조해진소설가에게문래는글文이오는기억의저장고이자(이책에실린조해진소설가의글에따르면그는문래에서태어나서아홉살까지문래의“방두칸짜리무허가판잣집”에서가족과함께살았다고한다)미未-래來(아직오지않은)에서오고있는문장이다.문씨성을가진문정희시인에게문래는어떠한장소인가?달[moon]이오는곳(외국시인들은문정희시인을Moon이라고불렀다고한다.)이며“미래를향해열린문門”이기도하다.삶이여러가지로어려울때문래동에정착하면서새로운삶을살게되었다는유지연작가도문래를“달이올수있는동네”라고부르면서“마음의고향같은곳”이라고말한다.아,문씨성을가진현대통령도후보시절이문래동의‘청색종이’에방문한일이있군.
이리보면문래동은온갖존재자들이들어오는문이다.또한글들이이곳에와서이책이만들어졌듯이,문래는사람들이모여서로뒤섞이면서무엇인가를만드는곳이기도하다.나는문래동청색종이에서사람들과함께읽은책에대해토론한다.이역시무엇인가를만드는행위,내겐앎과관계를만들어가는곳이문래다.(이러한문래의‘청색종이’는김선향시인의표현을빌리면사람들이각각향기처럼“스며들고번지”는곳이며,김혜영시인의표현을빌리면삶이라는사막을걸어가는낙타들이물을얻어마시고가는곳이다.)문래는그렇게사람들이만나고스며들고힘을얻는곳이다.그래서문래,이곳은방민호시인이“지금여기살지않”는‘내괭이’와달을통해만날수있을것만같은곳이기도하며,이젠사라져버리고최연시인의기억속에만있는장마철개천의“뱀같은물”이문을통해들어올것만같은곳이기도하다.그렇게문래에서는낯선이들뿐만아니라잃어버리거나잊어버린것들과의만남이이루어질것만같다.모든만남이이루어질것만같은장소,그곳이문래다.그래서이책을펼쳐든모든이들,그리하여이책과의만남이이루어진모든이들에게말하고싶다.
“우리의문래에들어오신것을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