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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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은 20세기 새로운 역사학을 개척했던 프랑스 아날 학파의 창시자 뤼시앵 페브르의 ‘루터’ 연구이다. 아날학파의 새로운 역사적 시각에서 본 ‘인간 루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격동의 역사를 성찰한다. 역사의 큰 흐름과 한 개인의 운명에 대한 관계를 깊고 넓게 응시하는 페브르의 통찰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의 사상과 개혁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게 한다.
저자

뤼시앵페브르

저자뤼시앵페브르LucienFebvre,1878~1956는프랑스북동부낭시에서태어나프랑슈콩테지방의중심도시브장송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문헌학자였던아버지의영향으로일찍이여러언어와고문서공부에관심을가졌다.1899년에파리고등사범학교에입학해역사와지리교사자격을취득했다.졸업후『역사종합평론』(1900년창간)의편집인앙리베르와의만남을통해본격적인학문의길로들어섰다.많은논문과서평을썼던이잡지에대해“새로운역사를위한트로이의목마였다”고회고한바있다.1911년에「펠리페2세와프랑슈콩테:1567년위기의기원과결과에대한정치적?종교적?사회적연구」로박사학위논문을발표해최우수평가를받았고,이듬해디종대학에임용되어종신직을보장받았다.제1차세계대전4년간의군복무를마친뒤1919년스트라스부르대학으로옮겨,1933년콜레주드프랑스의근대문명사교수로선임될때까지가르쳤다.
페브르는성실한연구자로서빼어난학위논문을비롯해『마르틴루터,한인간의운명』(1928),『16세기의무신앙문제:라블레의종교』(1942),『오리게네스와데페리에혹은‘심발룸문디’의수수께끼』(1942),『신성한사랑과세속적사랑』(1944)등주요저작을펴냈다.그는16세기종교개혁과르네상스시대전문가로서역사적인물과그시대의운명적조우를관찰해시대정신을조명했다.또한순수학문에서벗어나당대의문제를해결하는데기여해야한다는‘문제사’로서의역사방법론을제시했다.
1929년에는마르크블로크와함께『아날:경제사회사연보』를창간해‘새로운역사학’운동을주도했다.이른바아날학파는페브르와블로크의뒤를이은20세기최고의역사가브로델에이르러구조사와전체사로세계역사학계의주목을받았다.『아날』에발표한2천편이넘는글들은『역사를위한전투』(1953),『16세기의종교적심장에서』(1957),『완전한역사를위하여』(1962),『르네상스프랑스에서의삶』(1977)등에수록되었다.페브르는역사학과인접학문간의장벽을허물어그야말로학문적‘종합’을이루고자했으며,1935년『프랑스백과사전』의책임편집을맡아그일을실천했다.

목차

초판서문11
제2판서문13
제3판서문19

제1부고독속에서의노력

제1장쾨스틀린에서데니플레까지27
로마여행이전28
로마에서면벌부까지34
흥을깨는사람39
데니플레의논증43

제2장재검토:발견이전51
수도사신분의루터53
가브리엘에서슈타우피츠까지58

제3장재검토:발견69
발견이라는것70
그의결론들76
1516년의루터81

제2부개화

제1장면벌부사건93
알브레히트,푸거,테첼94
루터의반발101
95개조논제108

제2장1517년의독일과루터113
정치적불안114
사회적동요122
독일앞에서의루터128

제3장에라스무스,후텐,로마135
당신은경건하지않다136
후텐주의자들146
당신은믿소,믿지않소?154

제4장1520년의이상주의자163
귀족을향한성명164
새로운교회세우기?171
보름스에서의용기179

제5장바르트부르크에서의몇달195
혼란스러운독일196
바르트부르크에서의놀라운노역202
문체의대장간207
이상주의가먼저211
폭력,혹은말?218
지도자가아닌신자로223

제3부자기세계에틀어박힘

제1장재세례파와농민들229
츠비카우231
설교냐,행동이냐?237
교회,국가242
농민들247
두도시254

제2장1525년이후의이상주의와루터교259
믿음을위해:에라스무스,그는이성이다260
세상을비웃다:카타리나와의결혼266
권력에복종하기270
루터주의와루터교281

결론289

주303
참고문헌노트335
후기345
해제|역사가,인간루터를보다349
편집을마치며357

출판사 서평

한인간의운명은어떻게굴절되는가?
뤼시앵페브르의명저,아날학파의새로운역사적시각에서본‘인간루터’
종교개혁가마르틴루터의파란만장한생애와격동의역사를성찰하다


“어떤깊은확신이마음속에끊임없이뿌리를내리고있었다.
루터에게그런확신을정당하게부여해줄수있는이는,오직그자신뿐이었다.”(67쪽)

“그열정적인그리스도인의영혼에서나오는것은
한편의시였지행동계획은아니었다.”(226쪽)

“루터가보지못한것이있다.그의이상주의가사람들을그토록사로잡았던
예전의자신을얼마나보수적으로만들었는가하는점이다.”(267쪽)

“그는상황을장악하는것이목표가아니었다.그는무대위에서연기하는배우처럼
상황가운데살아갔다.그의영혼은그안에서무사태평하고초연할뿐이었다.”(293쪽)

운명을주도하는진정자유로운한인간
『마르틴루터한인간의운명』은20세기새로운역사학을개척했던프랑스아날학파의창시자뤼시앵페브르의‘루터’연구이다.하지만페브르는“일반인들을겨냥한대중화작업이면서동시에성찰작업”이라고말했다.역사학자페르낭브로델에의해익히그명성이알려진이책은,16세기독일종교개혁가의파란만장한생애와신성로마제국아래정치적·사회적으로복잡하게맞물리는격동의유럽역사를성찰한다.브로델은『역사학논고』에서페브르의저작가운데가장훌륭한것으로꼽았고,‘자신의운명과역사의운명을주도하는진정으로자유로운한인간’의모습을그리려했다고평했다.페브르생전에영어권독자들에게알려진그의첫번째책이기도하며,1951년에제3판서문을다시쓸정도로독자들에게꾸준히읽혔던명저이다.

계시받은예언자의역동적인역할을수행하다
2017년은종교개혁500주년의해이다.따라서지난세기1917년은종교개혁400주년이었으며,바로그10년뒤인1927년에페브르는이책의집필을완성했다.「참고문헌노트」에밝힌것처럼이미당시에도루터관련문헌은‘바다’와같았다(1906년신학자하인리히뵈머는논문과소책자를제외하고도2,000여권으로추산했다).그문헌의대양(大洋)속에서페브르는어떤루터의초상을건져올리려했는가.페브르는개혁적이고창조적인힘이충일했던30~40대장년기의루터를조명한다.즉1517년부터1525년까지세상이라는무대에서,“계시를받은예언자의영웅적인역할을역동적으로수행하는”루터이다.이시기가“루터의모든것을설명해준다”고보았다.그이전청년기의불확실한루터나,그이후1525년부터1545년까지의쇠잔해가는지치고환멸에찬루터는대상이아니다.훗날“과거를돌이켜보면서는루터를이해할수도없고설명할수도없으며이해시키지도못한다.”말년에그를따르는청년들이받아적은이른바『탁상담화』은마음대로고치고개정한말들에근거해빈번히출판되곤했다(루터역시먼과거를선의로곧잘소설화하곤했다).“아무리경건한내용으로가득차있어도역사가들에게는전혀도움이안된다.”

아날학파의새로운역사적시각에서본‘인간루터’
그시기의루터는말하고쓰고설교하고공격하고자신을옹호한다.그렇기에그의열정적인행동과발언에서신학자들은교리를찾고역사학자들은한인간을찾는다.루터에대해페브르는당연히신학자나호교론자또는비방자가아니라역사학자이다.그것도실증주의에토대를둔19세기독일의랑케역사학을비판하며,사회,집단,구조중심의새로운역사적시각을강조하는아날학파를태동시킨장본인이다.그는루터에대한기존인식을뒤집는새로운관점으로“단순하지만비극적이었던한운명곡선을보여주는것”에목표를둔다.한인간의생애가사회나국가와맞물려집단속에서어떻게상승과하강의곡선을그리는지중요한몇몇지점을찾아내짚어본다.“역사에서무엇보다중요한주제인한개인과공동체또는개인주도와사회적필연과의관계문제를놀라운활력을가진한인간에게적용하여제기해보는것.바로그시도가우리의계획이었다.”

1517년의독일과루터,그리고굴절된그의운명
흔한말로루터는세상을바꿀혁명적개혁을꿈꾸었는가?애초에그런목적은없었다.1517년10월31일,비텐베르크성교회문에95개조반박문을내걸었을때,루터는자기개인의신앙과구원에더관심이많았고,가톨릭교회와대화하고토론하기원했을뿐이다.그러나교회는루터를포용하지못했다.오히려거기에답을해온것은‘독일’이었다.“외쳐대는사람은자신의목소리가어떤메아리를불러올지알지못한다.”보통,사람들이잘말하지않는‘1517년의독일’에대해페브르는별도의장을할애하며주목한다.왕을중심으로조직화되어있는유럽다른나라들에비해,독일은엄밀한의미의통치자가없었다.“이름뿐인황제,하나의액자일뿐인(신성로마)제국이었다.”각영지를다스리는제후들이훨씬막강했다.분열되고불안한독일은자신의처지를바꿔줄“하나의신호,한사람만”을기다려왔던것이다.이른바루터는‘구원’을말했으나독일인들은그것을로마(교황청)로부터의해방으로들었고,루터는‘양심의자유’(1521년보름스국회에서의‘위대한거부’)를말했으나독일인들은그것을외적인구속으로부터의자유로들었다.루터는가톨릭교회의품안에머물고싶었으나교회는이단으로내쫓았다.독일은그를종교적루터가아니라사회적루터,정치적루터로받아들였던것이다.이러한오해속에서루터의운명은굴절된다.

통념을뒤집는비판적역사학의진수
페브르는서문에서이책을한사람의전기(傳記)도아니요,평가는더더욱아니라고했다.그러나한인간의생애를다루며그양쪽을비켜가기란쉽지않다.그렇다고저술관점의독창성을강조하기위한수사적인표현일리도없다.결론에서그의도를확인한다.“루터를판단하지않는다.(…)차분히평가할준비가되어있지않은우리는그저마지막까지판단을미룰따름이다.”그러나이는유보나자신없음의표현이아니라단순화에대한경계이다.페브르는역사가로서시종일관한인간의운명을치열하게사유하고판단한다.대표작『16세기의무신앙문제』에서인문주의자프랑수아라블레를무신론자로단정한문학가아벨르프랑을비판하면서,16세기사람들은‘믿음’이라는구조에갇혀있었기때문에라블레처럼지적으로뛰어난사람도그틀에서벗어날수없음을논박했다.마찬가지로이책에서도뛰어난가톨릭사가데니플레신부가‘루터의명성을깎아내릴’의도로촉발한논쟁에서부터실마리를풀어나가며,루터와종교개혁에대한통념을비판적으로해체한다.페브르는데니플레가개신교전기작가들이수세기에걸쳐쌓아올린칭송일색의루터상을철저히뒤엎은데환영하면서도,그가루터의육욕과사욕(私慾)만을강조함으로써전(前)프로이트적인소설을쓰고있는것에대해서는비판했다.물론루터의순결에경의를표하거나변호할마음이없다는점도페브르는잊지않는다.

루터사상의깊고변함없는통일성
이처럼페브르는한인물을빈약하게만드는모든판단과해석에저항한다.그래서이책은루터에대한전적인호평이나맹목적비판을찾아보기어렵다.“이쪽과저쪽을도우러달려가다가웃음거리가되지말자”는그에게농담이아니다.그는사실과원본들위에꼿꼿이서있고자한다.그런페브르에게시기마다분열되거나단절된루터는없다.1517년이전의수도원의루터,1517년에95개조반박문을게시하던루터,1520년의그위대한논문들을비롯해그후수많은글과말을통해독일인들에게호소하던루터,그리고반란을일으킨농민들을미친개취급하던그루터는결코다른사람이아니다.많은사람들이배신이며모순된다고말하는루터의행동과발언속에서도,페브르는“루터사상의깊고변함없는통일성을입증”하려노력한다.한편,페브르는루터가“근대사회와근대정신의창시자가운데한사람”일뿐만아니라“게르만사회와독일정신의창시자가운데한사람”이라고보았다.1933년권력을잡은히틀러가루터의초상이새겨진주화를발행한것을보고자신의생각이옳았음을확인했을것이다.
변화를바라는오늘도역사를바꿀한사람을열망하고있는지도모른다.혁명보다도어렵다는개혁,과연실패냐성공이냐는무엇에달려있고무엇을근거로말할수있는가.역사의큰흐름과한개인의운명에대한관계를깊고넓게응시하는페브르의통찰은종교개혁500주년을맞아루터의사상과개혁의의미를깊이되새기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