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자유 (남과 북을 사랑한 삼석(三石) 지창보 회고록 | 양장본 Hardcover)

고독과 자유 (남과 북을 사랑한 삼석(三石) 지창보 회고록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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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국을 사랑한 지창보 선생의
고독과 자유의 길
1923년 평양 근교에서 태어나 광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의 주오(中央)대학(1943) 재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규슈의 야하타 곡사포 부대에 배치되었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서울에서 연세대학원을 다니며 국대안 반대운동을 한 연유로 우익 청년들에게 테러를 당하고, 보도연맹사건 등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따라서 미국으로 도피가 살길이라 생각한 저자는 1953년 기독교세계봉사회 부산 근무 시절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 후 듀크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1959)를 받고 웨이크포레스트대학과 드루대학을 거쳐 롱아일랜드대학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다.
교수시절 월남전 반대를 외치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헌신한 저자는 1971년 북미 교포사회에서는 최초로 이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을 만나기 위해 극비리에 알제리를 통해 평양을 방문한다. 때문에(방북과 민주화운동 경력) 군사정부의 혹독한 감시를 받았고, 따라서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듬해(1994)에야 무려 40여년 만에 남녘 조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조국 이북과 이남에 대해서 동등한 애정을 가진 저자는, 격랑의 우리 현대사 속에서 고뇌해 온 진보적 지식인의 굴곡진 삶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저자

지창보

池昶補,ChangbohChee,아호삼석(三石)
1923년11월28일평안남도대동군임원면북사리140번지출생
1942년평양광성중학교졸업
1943년일본동경주오(中央)대학입학
1944년일본학도병징집.기타규슈야하타(八幡)고사포부대배치)
1946년연세대편입,1947년국대안반대운동으로연세대대학원제적
1948년미군정청공보처영화과근무
1949년서울한성중학교영어교사
1950년기독교세계봉사회부산사무소근무(구호물자처리업무)

1953년시카고조지윌리엄스대유학
1955년노스센트럴대사회학학사
1956년듀크대사회학석사,1959년박사
1959년웨이크포리스트대조교수
1964년드루대부교수,동서양문화프로그램대표
1966년뉴욕롱아일랜드대교수(사회학·아시아학)
1994년교수직은퇴,롱아일랜드대KoreaCenter창설
2006년전뉴욕아름다운재단발기인겸이사

1970~80년대재미민주한인협회,미주민주국민연합(미주민련),
민주민족통일해외한국인연합(한민련)결성·활동
1990년대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재미본부고문,코리아영세중립화추진위원회위원
2000년대6·15민족공동행사재미준비위원회고문
2010년대남·북·해외연석회의미국지역준비위원회고문

목차

회고록을펴내며/지창보
아름다운마침표를찍어드리고자/박중련
추천사-한국계미국인교수의99년치열한삶의여정/하용화
추천사-‘조용한남자’에게경의를/강석원
추천사-진실과정의를위해싸운열정적이고용감한전사/존배
추천사-이따금지선생님을생각합니다/김차섭
1평양근교에서보낸어린시절(1923-1937)
내가기억하는우리집안
젊은나이에과부가되신어머니
어머니가마련해주신가죽구두
마을의지도자였던아버지
2배움의길로(1930-1942)
배움의길로
광성고보시절
잊을수없는나의첫사랑
물거품이된짝사랑
일본유학을향한꿈
방황과혁신
3도쿄유학시절(1942-1943)
일제강점기의도쿄상황
나의은사이지린(李趾麟)선생
대학입학시험준비
고향에서의요양생활
도쿄주오(中央)대학입학
즐거운도쿄유학생활
4육당최남선에게돌직구를날리다(1943-1944)
학도지원병공고
육당최남선에게돌직구를날리다
학병피하려도쿄에서잠적
부관여객선을타고일본탈출
고향에서검거되다
5학병으로8·15해방을맞이하다(1944-1945)
원폭투하예정지야하타에서보낸학병생활
일본의항복
일본에서고향으로귀국
종전후수십년만에일본방문
6해방후서울에서의고학생활(1945-1950)
서울에서의고학생활
감이야기
전라남도순천에서의추억
셰익스피어의비극같은종필군이야기
통행금지시간에찾아온창선이
병상의친구를통해서느낀고독감
콩나물키우던먼친척형
어머니를그립게만든포근한장면
짧았던미군정청영화과시절
서울한성중학교영어선생시절
7부산에서의피난생활(1950-1953)
구호사무소직원으로
6·25전쟁이발발하다
생사의갈림길에서
밤손님의작별인사
미국유학을준비하다
광성학교재건을위한노력
전쟁과세잔(PaulCezanne)
아아,잘있거라.언제다시보게될까?
8미국유학생활과새내기교수시절(1953-1966)
미국유학기:“누구나다하는일인데!”
베이비시팅
미국사회의인종차별
돈과인간
자신과의대화
베트남전반전데모에뛰어들다
미국성조기:정치와종교
9잊지못할소중한만남(1966-2016)
나의영원한연인최윤애
「오발탄」의작가이범선씨를생각하며
문필가강용흘선생과친교하다
김환기화백과부인김향안씨와의교류
영화배우버트랭커스터와‘마티니선생,지(Chee)’
김보현화백과의만남
친형님으로여겼던로광욱선생
작곡가윤이상선생과의만남
10모국방문기(1971-2008)
첫번째평양방문:대동강물은흐른다(1971)
두번째평양방문:여동생가족들과의만남(1973)
우리나라지도와민족의식
김진계의『조국』을읽고
남녘방문(1994,1997,1998,2002,2005)
존댓말과반말
11나는영화인이되고싶었다
〈연을쫓는아이〉를보고
〈브로크백마운틴〉을보고
우리나라영화를보고
고행과해탈의길
12그림은말없는시(詩)
화가아닌그림쟁이
예술은창작그것으로끝나야
수박
13고독과자유를즐기는
황석영작가의편지한장
뜻을잃어버린말들
나의친구‘선댄스’
나자신과대화하는시간
대설에고향생각에잠기다
14삶과죽음의경계에서
죽다살아난일
죽음의순간을목격하면서
목적없는여행
15시화(詩?)모음
친구
눈이오네
눈이내리는날
첫눈
해바라기
새해
봄을기다리며
가을단풍나무
늙은소나무
미움과사랑

지창보교수작품전시회

출판사 서평

민족의수난과함께파란만장했던지창보선생의삶!
올해로99세를맞으신저자는일제강점기인1923년평양근교에서태어나평양광성중학교를졸업하고도쿄주오(中央)대학에유학했다.
저자는옳지않다고생각되면울컥해서벌떡일어나의견을말하는성격때문에그시대의민감한이슈에직접몸으로부딪칠수밖에없었다,유학중‘조선인유학생특별지원병궐기대회’때육당최남선에게“총독부에매수당해서왔으면그저솔직히나가죽으라고하지,왜빙빙돌려서말을합니까?우리는절대로일본을위해목숨을버리지않겠소.”라고돌직구를날려일본경찰의감시를받았으며,또징집을피해평양으로도피중인처지에도불구하고연극공연을보다가,세상돌아가는것도모르고즐겁게웃고있는관중들을보고피가끓어갑자기강단으로뛰어올라가일제의만행에대해열변을토하다유치장에갇히기도했다.
결국저자는규슈야하타군사공업지역의산언덕에서미군폭격기를조준하는고사포부대에1등고사포사수로배치된다.그는조선의독립을돕는미군비행기에포가맞지않도록일부러오포를쏘았다고한다.그러나폭탄수백발이머리위로떨어지는상황에서반사적으로비행기를맞추려했던자신의모습을발견하기도한다.전쟁말기원래원자폭탄투하는야하타인근의고쿠라가제2우선지역이었지만일기가나빠투하지역이나가사키로바뀐덕분에살아남았다.
해방후1945년11월저자는서울의구혈단에서보낸진남환이라는작은어선에노인10여명과함께부산으로향한다.배가일본영해를지나자선미에태극기를걸고우에노음대출신학병의지휘로애국가를부르며갑판에서엎어져통곡하는감격의순간을맞았다.그러나부산항에서이미38선이그어져있다는현실을맞이했고가까스로평양에가서어머니를뵙고는10일만에단신으로서울에와연세대학원에서고학생활을한다.
그러나학교생활도순탄치않았다.미군정시기신탁통치와국대안을반대하다가서북청년단으로부터테러를당하고어쩔수없이보도연맹에가입하며학업을포기하고만다.그후일본유학시절친구의도움으로미군정청영화과에다니며한국영화의태동기를목격하고영화에관심을갖게되나그마저도좌익으로몰려쫓겨나고피난민구호기구인기독교세계봉사회부산사무소에서일하다6.25를맞는다.하지만부산에서도삼일사(육군특무부대)에두번이나잡혀가기적적으로목숨을구하고난다음에는살기위해한국탈출을결심한다.1953년1월미국선교사의도움으로드디어미국유학길에오른다.
그리하여6년만에박사학위를받은저자는듀크대학젠센교수의추천으로웨이크포레스트대학교수가되고드루대학을거쳐롱아일랜드대학사회학교수로재직했다.
그사이개인적으로이화여대를졸업하고이대교수와총동창회장을역임한최윤애씨를만나서연애를했는데,두분은거의같은시기에미국유학을떠나듀크대학원에서1955년다시만났다.그러나윤애씨는홀로두고온어머니를위해귀국해두분은40년간서로만나지못하게된다.

문학과예술을진정사랑한동양화가지창보

1960년대초웨이크포리스트대교수시절한교수가붓과먹그루를주어어릴적서당다닐때배운붓동작을생각하며동양화를그리기시작했다.이를계기로저자는미술잠재력을발휘하기시작하여뉴욕허친스갤러리(HutchinsGallery)등에서15차례전시회를가졌다.그리고한국근대미술의대가인김환기,김창열,김보현,이응노화백들과도교류했다.
김환기화백과그의부인김향안여사와의인연은특별했다.한번은김향안여사와만나일본유학시절이야기를하던중시(詩)인‘이상’이야기가나왔다.그러자김향안여사는얼굴을붉히며자리를박차고나갔는데,그당시에는몰랐지만김향안은이상의전부인변동림이었던것이다.그후연락을끊고있던김향안은1974년김환기화백이세상을떠나게되자장례를포함한마지막순간을저자에게맡긴다.
그가좋아한문인으로는‘한국계미국문인의아버지’로불리는자전적소설‘초당’의작가강용흘선생이다.강선생이사는곳은롱아일랜드대근처였는데,저자가이곳에교수로이직하면서가까와졌다.강선생은미군정청근무때한국이경찰국가가되어가고있다는보고서를미국무부에올려이승만정부로부터미움을샀다.나중에는좌익으로몰려미국의매카시즘의열풍과함께KCIA의집요한방해로직업을구할수없었다.‘집만있는노숙자’생활을해온강선생은플로리다주아들집에서1972년쓸쓸히운명을달리했다.
〈파리에서이응노화백과함께(1982).〉
그외문인으로는해방후이북고학생들이기숙생활을하던공제회에서친하게된‘오발탄’의작가이범선이있고또저자의도움으로롱아일랜드대의교환학자로와있던황석영과의인연도있다.저자를황석영은오랜독신생활에서오는미묘한‘고독과자유’의분이라고말했는데,고독과자유는이회고록의제목이되었다.지교수와관련된이야기는황작가의소설『오래된정원(2000)』에서짤막한에피소드로다루어졌다.
이회고록에는수필과시와함께저자의많은동양화가삽화로실렸다.모두‘고독과자유’를느끼게하는작품들이다.일세기에걸친그의삶은시(詩)‘미움과사랑’에서도읽을수있다.
“미움과사랑은하나요.
마치흰연꽃이감탕
흙속에서피어나듯이“

1세대재미민주화·평화통일운동가들-임창영,로광욱,지창보선생

1971년컬럼비아대학에서있었던북한관련세미나에서저자는그의인생을통째로바꾼기회를맞는다.그자리에서북한을방문했던한미국기자를만났는데,저자는그의도움으로알제리를통해북미동포최초로북한을방문하게된다.저자가이북을방문하게된이유는평양에두고온그리운가족을만나고당시사회학자들의관심사였던전쟁후북한의발달상황을직접목격하기위해서였다.몇번에걸친북녘방문에서저자는전쟁때미군폭격으로어머니와형은죽었으며흔적도없이사라진고향마을을확인할수있었다.다만친척은고아로자랐던두여동생을만나게된다.
엄혹한시절이어서그는이북을다녀온기록을영어일기로남겼고,혹시만났던사람들에게피해를주지않기위해본인만알수있는약자로사람을표기했다고한다.사진을많이찍었으나혹시그것이나중에문제가될수있다고생각해대부분폐기해서이책에는그런사진들을실을수없게됐다.오해의소지가있는몇몇사진도있고실제로여동생가족과찍은사진들은인터넷에돌아다니고있다.
〈1994년문익환목사추모비건립식에참석한지교수(앞줄가운데양복차림).
도미후41년만에남녘땅을처음밟았다.앞줄왼쪽에서세번째가민주화통일운동가인계훈제선생.〉

앞서얘기했듯남녘방문은1994년문익환목사장례식때단기10일단기비자로40년만에처음방문할수있었다.두번째방문한1977년에는연인최윤애씨도만날수있었다.둘다독신으로지낸두분은2002년다시만났으나최윤애씨는장님이되어있었다.그후사망소식은슬프게도전화로전해들었다.(2016년)

해방후재미동포민주화·통일운동은기독교계보수파들과임창영,로광욱,지창보등진보파의양대산맥으로전개되어왔다.보수파가민주화운동에중점을두고있다면진보파는민주화·통일운동모두에방점을두었다.
지창보선생은임창영박사(뉴욕주립대정치학교수,1909~96),로광욱(음악가·치과의사,1922~2014)선생등과함께1973년재미민주한인협회(의장:임창영,TheAssociationofDemocraticKoreansinAmerica약칭민협)의창설멤버로활약했고이후이단체는1977년미주민주국민연합(미주민련)으로확대되어미주지역민주화·통일운동의견인차역할을했다.1990년대는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재미본부고문,코리아영세중립화추진위원회위원등활동을했으며,드루대학교수시절에는월남전반대운동에도주도적역활을했다.때문에저자는많은민주인사들과교류했다.
임창영박사는미군정청고문(1947~48),채텀대교수(1949~60)를거쳐장면정부시절UN대사로있다가5ㆍ16쿠데타가일어나자이를비판하며미국으로망명하고뉴욕주립대교수(1961~78)로활동하신분이다.로광욱선생은치과의사,작곡가,민주평화통일운동가로워싱턴디시에거주하였는데,윤이상선생을소개해준분으로광성중학교2년선배이기도하여저자는로선생을친형님으로여겼다.널리알려져있는「고려산천내사랑」은대표적인로선생의작시·작곡이다.로선생은2001년에역사문제연구소,참여연대,한겨레통일문화재단주최로서울선재아트센터에서‘로광욱통일염원가곡발표회’를갖기도했다.
동백림사건의피해자인윤이상선생과도가까웠다.그분은뉴욕에올때마다지교수집에장단기로머물며투옥중고문으로인한휴우증때문에괴로와했다.어느날윤선생으로부터JFK가던중“(북한의)세습을어떻게생각하오?”하는질문을받았으나더이상대화를하지못했는데,그게윤이상선생과의마지막대화였다.
〈해외민주인사초청으로청와대를예방해김대중대통령과악수하던모습(2002).〉

지창보선생은격랑의우리현대사를고뇌속에서살아온분이다.조국이북과이남에대해동등한애정을가진,누구보다조국을사랑한애국자였다.민주화운동,반전운동,통일운동을하신진보운동가이며동시에아름답고정열적인미술작품을남긴화가이기도하다.저자는사상적성향을따지는정치인들과달리,서로다른체제에살게된한민족을애틋한마음으로바라보았다.따라서항상사회적약자들의마음을헤아리던분이었다.

회고록을펴내며

인생의체험은뿌리도원인도없이무조건생겨나는것이아니고시대와장소,환경속에서발생한다.한사람의인생은그시대의역사적주변사건과연관되어계속되는역사의거울이다.그러므로보잘것없는평범한무명인사의생애도역사의거울로들여다보면역사의한면을엿볼수있다.영국의어떤시인이한포기의풀위에맺힌이슬방울도우주를알려준다고했듯이,인간각자의‘삶’도그만큼귀중하고신비한것이다.
그리하여한인간은모든인간과존재적으로연결되어있고인간과자연,우주는서로엉키어있다.나는그러한각도에서나의존재와‘삶’을인식하고싶다.나의체험과존재의식이다른사람들의것과공통된연관성위에서일치한다면우리는‘삶’의공통성을찾게될것이다.한사람의기쁨도쓰라림도그체험에서는공통되는것이기에인류역사는계속되어가는것이아닐까?
-회고록을펴내며(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