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어요 (박서원 시집)

아무도 없어요 (박서원 시집)

$8.00
Description
박서원 시인의 작품집들을 복간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 천착해왔던 최측의농간에서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아무도 없어요』(열음사, 1990)를 개정 복간한다. 박서원 시집 『아무도 없어요』는 동일한 편집 원칙과 디자인 아래 선보이게 될 최측의농간 시집선의 제1권이기도 하다. 이번 출간을 기점으로 최측의농간에서는, 절판된 시집들로부터 신간 시집들까지를 아우르는, 최측의농간 시집선을 선보인다.

지난 봄, 극적으로 시인의 유족(어머니)과 인연을 맺은 최측의농간은 시인을 둘러싼 수많은 소문들이 근거 없는 낭설이었음을 확인하였으며 2012년 5월 10일이라는 시인의 정확한 타계일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최측의농간에서는 유족과의 긴밀한 협의 아래 오는 겨울, 박서원 시인의 시전집 또한 출간할 예정이다. 『아무도 없어요』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시인의 후기 시집들에 비해 그 실물마저도 확인하기 어려웠던 시집이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죽음충동과 삶에의 의지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 하는 박서원 시인의 젊은 날을 엿볼 수 있다. 후대의 시인들에게, 특히 여성 시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시인의 첫 시집이라는 점에서 젊은 시인들이나 독자들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

박서원

저자박서원는1960년서울출생.
1989년〈〈문학정신〉〉에「학대증」외7편으로등단하였으며시집으로『아무도없어요』,『난간위의고양이』,『이완벽한세계』,『내기억속의빈마음으로사랑하는당신』,『모두깨어있는밤』이있다.1995년「난간위의고양이」로〈〈한국일보〉〉선정올해의우수시인으로선정되었으며1999년문화관광부주관'오늘의예술가상'을수상하였다.

2012년5월10일타계.

목차

제1부
시간의날개밭에서
나의호텔
엄마,애비없는아이를낳고싶어
아픈꽃을보시겠어요?
판토마임
실패

제2부
병원·1
병원·2
발작·1
발작·2
안구회전증
악몽
정신착란
학대증·1
학대증·2
변명
병·1
한달
두통

제3부
단한번마주친눈길
5월
자극
당신과내가마주누우면
버찌
아무도없어요
필름
지구는돌아간다
두려움
누가나에게
슬픔은슬픔에게
알밤
우리는모두피로하잖아
소망

제4부
예수의일생
탈혼
단식기도
긴장
천사

정경
가을이오니까
기도
침묵하는눈에는

제5부
메아리

그림자
나의나비
갑자기

모이를쪼는비둘기떼
아담한내방

출판사 서평

가장아프게될순간의예감

아무도없는곳에서잘게씹던상념들
박서원시인의첫번째시집『아무도없어요』


내일은어찌하나
잘게씹히는상념들

낮동안쏟아지던
햇빛의알맹이들
주머니에채워두었다가
밤이되면
책상위에풀어놓고
불꽃놀이나붙여볼까
행여나하며살을태우던
나날들

이제는좀편안해져야겠다
「소망」부분.

시인,박서원

2016년여름,별다른출처도없이박서원시인이타계했다는소문이세간에떠돌았다.정확히확인된사실이없는상황에서몇몇문인들과독자들은애도를표하기도했지만,여름이지나,겨울이깊어지도록소문은끝내‘소식’이되지않았다.시인의정확한소식을아는이가어느곳에서도나타나지않았기때문이다.박서원시인의작품집들을복간하기위하여오랜시간천착해왔던최측의농간또한시인의삶과죽음에관한확실한정황을확인할길은없었다.어떠한단서로도박서원시인의소식을파악할길이없어지지부진하기를여러달.떠돌던소문들마저아무도관심을가지지않게되어가던나날이었다.시인의작품집을복간하기위한관심으로부터시작하였지만시인을찾는일은더이상우리에게단순한‘확인’의과정이아닌‘예(禮)의행로’가되어갔다.그녀의시에찬탄하며,깊이기억하고있노라고단언하는수많은사람들이적지않다는세속의한가운데에서,아무도그녀의소식을모른다는것.그러므로,찾을수없다면,근거없는소문으로부터자유로울수있는어딘가에서라도잘살고계시고있기를,바란시간들도적지않다.
확인할수있는실낱같은정보를통해이어졌던기적같은사건들,간절한우연들.선물처럼찾아왔던인연들.포기할수없었던우리가마침내극적으로시인의유족(어머니)과인연을맺게된것은지난봄무렵이다.2012년5월10일이라는시인의정확한기일을알기위하여너무오랜시간이걸렸다.시인의어머니께서는시인의타계이후,시인의소식과관련하여연락해온사람들은우리가처음이라고말씀하셨다.찾는일의지난함은어머니의그한마디로부터이미모두납득되었다.아무도연락해오는이가없는데어떠한인연도연고도없던우리가우여곡절끝에어머니에게까지연락해온것을두고,어머니께서는놀라움과함께고마움을전해주셨다.어머니로부터우리는시인의타계소식과더불어따님이자,시인,친구이기도했던박서원시인에관한수많은이야기들을전해들었다.덕분에우리는시인을둘러싼수많은소문들이근거없는낭설이었음을확인하였으며우리말고는아무도시인의근황을끈질기게궁금해하지않았음을다시한번씁쓸하게알았다.지난5월8일,우리는시인이모셔져있는수목장을찾아출간소식을전하고예를갖춰망자의넋을기렸다.최측의농간은유족들의따뜻한배려아래박서원시인의시전집을준비중이다.

시집『아무도없어요』
박서원시인의첫시집『아무도없어요』는그존재조차제대로알려져있지않은시집이다.시인의다른시집들,예컨대『난간위의고양이』,『이완벽한세계』등에비하면알려지기도덜알려졌거니와첫시집을접해본사람들을만나기조차어려워실제로출간된적있는시집이냐는독자들의하소연또한적지않았던것이사실이다.「학대증」연작을통해등단하여1990년첫시집으로『아무도없어요』를상재했다는시인의간략한프로필만확인할수있을뿐,첫시집이어떤형태로어떤작품들을수록한채출간되었는지확인할길은요원했다.
최측의농간이시인의첫시집『아무도없어요』를복간하기로결정한데에는바로그러한현실상황이큰동력으로작용하였다.오는겨울출간을목표로작업중인시전집에대한소식을전하려는취지도없지않았지만역시박서원이라는한시인의첫시집을좀더널리알리고싶은바람이결정적이었다고할수있다.시인이라면누구나첫시집의각별함을간직할수밖에없음을,새삼언급할필요가있을까?


시인,끝없이흔들리는사람
30년동안키워온꿈이
한뼘의비평으로끝이날때
거리는들끓고있었어
들끓는거리에
들끓는심정으로서있는나는
차라리한덩어리의공포
나는조용히욕망을죽여야했어
견디겠다는일념으로
내키를간직했지만
나는끝없이흔들리고있었어
「그림자」부분.

등단.시인에게그것은기쁨이나성취,기대라기보다끝없이흔들려야할앞날의구체적인예감이었던것일까?‘시인’이라는‘직함’을얻자마자“조용히욕망을죽여야했”다고썼던시인은그러나,이후에도“들끓는거리”를오래배회하였다.“들끓는심정으로”“들끓는거리”를배회하며“한덩어리의공포”가되어갔던시인은자신을둘러싼세계로부터차츰고립되어갔다.

내가아무리아파서발버둥쳐도동생은신나에뿌려진불덩이처럼미쳐날뛰는“쇼”라고말하고동네에서는망나니라고혀들을차거든.
그들의말이사실일지도몰라.태양과도같은판토마임을향해서속력을내는건지도.
한번도내자신을속이지못하는것.이천형을미치광이라니.
“쇼”라니.
「판토마임」부분.

진정으로들어주는이없는외침이,그녀를아프게했던것같다.자신의아픔을적극적으로드러내보이는만큼주변인들에게는“쇼”하는“망나니”가되어갈뿐이었던사람,박서원은스스로시인으로서의운명을“천형(天刑)”으로받아들였다.그러나“애비없는아이를낳고싶”다고말하는시인을통해우리는끝없이흔들리는일을외면하거나도피하지않겠다는그녀의각오를,이후에펼쳐질불온하고찬란한박서원시세계의출현을짐작해볼수있다.

이빨을갈며불온한서적을태우고바로당신이었던육체에세계를심겠어아이를낳겠어술을마시면더욱맑아지는정신으로나만의몫이었던죄와폭발만살찌는불바다에서두눈을부릅뜨고애비없는아이하나낳겠어
…(중략)…
저녁정거장에쭈그리고앉아하염없이껌을씹던나의그리운형제곱지않은피부,등에짐을지고떠나는사람들두고두고
살껍질을벗기고뼈를갈구며
병든밭을일구는
커다랗게커다랗게탄생하는붉은혀의아이를
「엄마,애비없는아이를낳고싶어」부분.


썩어야한다는결심
한번입원하면
그맛을잊지못해찾아오는
여긴
물론당신의꿈이나여행을
팔지는않지만
신선한병은
얼마든지있습니다
「병원?1」부분.

신선한병을가득안고,시인은시집이라는병원에서독자들을기다리고있었다.우리는왜시집을읽는것일까?비평가허윤진이이청준의소설을비평하며썼던,“우리는아는것을확인하기위해서가아니라모르는것을만나기위해서,안다고생각했던것을모르기위해서소설을읽는다.”는문장은우리가소설을읽는이유에대한적확한언명이지만,‘소설’의자리에‘시’를대체해볼수도있지않을까?시집을앞에둔독자들에게시인은,썩었다거나썩고있다는불안이아니라“당신의정신이/썩어야한다는/결심이서면”오라고했다.

당신의정신이
썩어야한다는
결심이서면
여기로오십시오
「병원?2」부분.

시집앞에선독자들이여,시인박서원은시를읽는일이,우리의정신이썩어야한다는결심을실행하는것임을보이고있지않은가?‘모르는것을만나기위해서’,‘안다고생각했던것을모르기위해서’,열병을앓거나부단한나음을입기위해서,그러므로쉼없이썩기위해서,우리는시집이라는이름의병원으로들어가는것이아닐까?


가장아프게될순간을예비하는,시집
그병원안에,분열을숨기지않는의사,그스스로환자이기도한시인박서원의고백들이있다.‘고백’이라는형식혹은개념이주체의모순을정당화하기위해고안,발명된것이라는,이제는전혀새롭지않게된누군가의통찰은그러나고백이무의미하다는것을의미하지는않는다.고백이라는이름으로표상되는어떤의지는그러므로‘전략’이될수있다.박서원시인이첫시집에서보여주고있는고백투의성긴구절들은시적미숙함의드러남이라기보다는‘천형’으로인식한스스로의운명을끌어안기위한일종의전략적몸부림으로읽을수있지않을까?첫시집을통해박서원시인은,앞으로더날카롭게말하기위하여혀와입술의근육을잘근잘근풀고있었던것같다.

난태양을찬미할수없게되었지건강을집요히추적했지만12시간을자야정상인나에게세상은무리였어이파리한조각도무거워항상헐렁한걸원했지누구나가살아가는방법을익히지만난그게왜그리어려웠을까
「실패」부분.

선취되었던예감들이,시인이가장아프게될순간을예비하는,불안하고고독한형상을한예감들이있었다.시집『아무도없어요』를통해독자들은시인의그예감들이조금씩,의문이나절망,불안과실패라는황폐한전망을품고뻗어나갈수밖에없었음을,이제야겨우짐작해볼수있게될것이다.

아무도없어요,2017.
2012년5월10일.그로부터5년이지나도록시인의정확한사망소식을알고있는사람이없다.시인의어머니는5년가까운시간동안시인의소식을물어오는이가아무도없었다고했다.시인으로살다아프게떠난사람의시들을편편히수습하여온전한모습으로복원하는일.그복잡할것없어보이는작업이,너무오래걸렸다.최측의농간에서는시집『아무도없어요』의복간을분기삼아사라져간시집들과도래하지않은시집들을수평으로연결하는작업을시작하고자한다.여기,우리가너무늦게기억하게된,한권의시집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