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19년

옥중 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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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폭력의 시대에 관한 기억
1971년부터 1990년까지 격동의 한국사 한복판을 관통해온 옥중 기록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대항해 인간의 존엄을 지켜온 이들의 처절하고 위대한 분투기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벼랑 끝에 서 있던 한반도에 기적 같은 해빙과 평화의 봄바람이 불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단일팀을 거쳐 남북정상회담 실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와 상생의 미래를 상상하며 우리가 지나온 사나운 폭력의 시대를 돌아본다. 지난 70~80년대, 독재정권이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한 잔혹한 폭력 아래 죽음의 시간을 통과해온 생존자들이 있다. 민족 분단의 톱니바퀴 속에서 개개인의 생애가 무참히 으깨지고 부서졌던 시절, 국가 폭력에 의해 청춘과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혔음에도 사람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지켜낸 한 사람이 여기 있다. 이 책은 그가 온몸으로 겪어낸 민족의 분단사이자, 폭력과 죽음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 내면의 존엄에 관한 기록이다.

신역 개정판 『옥중 19년』은 1994년 일본의 이와나미 서점에서 일본어판으로 맨 처음 발행되었고, 1999년 역사비평사에서 김경자 씨의 번역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되었다. 한국어판이 나온 지 근 20여 년 만에 재단법인 ‘진실의 힘’에서 발간하게 된 이번 개정판은, 저자가 직접 번역하고 고쳐 썼으며 초판에 빠졌던 표와 지도, 자료 등을 보강하고 오류와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원출판권자인 이와나미 서점은, 고문 및 국가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활동하는 ‘진실의 힘’에서 이 책을 출판하게 된 취지를 깊이 이해하여, 한국어판 출간에 따르는 로열티를 받지 않기로 함으로써 이번 개정판 발간에 의미를 더해주었다.
저자

서승

목차

차례

머리말5초판머리말13

들어가며23

1장보안사감옥생활의시작 27

납치294월어느아침의푸른하늘분신35국군수도통합병원39
서울구치소병사2방42간수부장49공판52실미도사건54
빨간세모판57정치범64인간의작품66베트남전쟁의악몽70
7?4남북공동성명72유신감옥74상반된통일의염원77
최후진술과상고이유서7910사하의정치범84눈뜰자유도없이86

2장죄수의나날70년대대구교도소 91

물살을거스르는잉어처럼93정치범특별사동95통방?통모97
군화발에짓밟힌아침인사101거대한‘인간창고’103‘참고소식’106감옥이달라지면밥도달라진다109죄수의나날111종이(紙)와신(神)115
큰물고기가작은물고기를117감옥안의감옥119춘하추동131
광풍,천둥소리,소나기사형집행138긴급조치령140단식투쟁144
도서검열148감옥의제갈공명149옥귀신153

3장사상전향제도와의투쟁 159

사상전향인가죽음인가161사상전향심사165전향공작대상자166
간첩171종이한장때문에173차별지배의구조177
사상전향공작의시작180기아작전185혈육의정187백색테러189준식의폭로192붉은별사건196독재자의죽음,70년대의종말203

4장어머니80년대대구교도소 205

어머님영전에207어머니209인혁당,남민전216감옥의봄218
새로운사상전향공작224감옥에생매장되어228아버지의죽음229
형제보다좋은우리동지233김일성장군만세!237

5장재회80년대대전중구금교도소 243

하얀공룡245폐쇄독방249물고문251항의자살253
크리스마스선물255오지산을바라보며256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261한점부끄러움없이264
민주화의힘269통일에대한염원,자유를향한꿈278
그래도계속되는전향공작282재회1990년2월28일284

나가며289

부록 293

서승화보294일본어판해설304
초판추천사1임헌영311초판추천사2박원순323서승연보330

출판사 서평

『옥중19년』은어떤책인가?

1)한국인권사에남을기록

‘감옥속의감옥’인정치범특별사동의냉혹한어둠속에서비전향장기수로수십년을갇혀살았던사람들,혹은사망자로,혹은생존자로,그리고혹은여전히비전향수로남아있는그들,일평생온몸으로분단의고통을겪어왔음에도남과북에서존재조차잊히고지워진사람들,그러나결코잊어선안될사람들….이책은바로그들의이야기다.

저자는그들의이름을하나하나기억에서되살려내호명한다.격동의현대사속에서민족의평화와통일을위한길을찾다가독재정권에의해기약없이갇혔던사람들이야만적인폭력아래서어떻게인간답게살고자했는지,생사를넘나드는고통을겪으면서도인간의존엄을지키기위해얼마나처절하게분투했는지를생생하게그려낸다.잔인한국가폭력이횡행했던시대의기억들이저자특유의담담하고절제된어조로전개되는,한국인권사에빼놓을수없는중요한기록이다.

1979년에만기를맞은선생에게공작반은전향하면남은형을면제해주겠다고했다.선생에겐나이든부인과아직어린아이들이있었다.선생이투옥되면서부인이행상으로겨우생계를이어나갔고생활은궁핍했다.그러나선생은고민끝에전향을거부했다.나는박선생을‘학다리선생’이라고불렀다.몸이학처럼말라서다리가젓가락같이가늘었기때문이다.아주허약한체격이었기에당국도선생이단식하면죽는게아닐까경계했다.그러나선생은의기양양하고패기만만했다.선생은화가나면벽력같이큰소리를질렀다.징벌방에갇혀깡패에게못으로찔리는고문을당할때도굴복하지않았다.-「2장죄수의나날」중에서,126쪽

2)70년대정치범감옥의세부를그리다

1971년4월,대통령선거를불과열흘앞두고서울대유학생서승은서빙고대공분실에끌려가모진고문을당한다.박정희의3선대통령야망을위해당시유력했던야당후보김대중에게용공의혐의를들씌우고자기획ㆍ조작된간첩단사건의올가미였고,청년서승의19년감옥살이의고난의시작이었다.서승은고문을견디다못해분신을시도하여돌이킬수없는전신화상을입는다.

팔을감싼얇은스웨터가타면서찌르는듯한통증이밀려들었다.경비병이눈치채지못하도록필사적으로비명을참았지만,불꽃이점점거세지며어깨와얼굴로퍼지자더는견디지못해“어,어!어억!”목구멍사이로비명이터지면서시멘트바닥을데굴데굴굴렀다.(…)비명을듣고감시병이달려왔다.갈팡질팡허둥대던그가난로곁에있던방화수양동이를들어물을끼얹었다.그순간“퍼엉!”소리를내며불길이확치솟았다.(…)4월아침의태양은찬란하게빛나고,구름한점없는하늘은푸르고높았다.어떤고통도없고,“이것으로다끝났다”하는고요한안도와평안만이있었다.들판에홀로남겨진아이처럼서글픈고요속에서,빨려들어갈듯이푸른하늘을올려다보고있었다.눈물이눈자위를따라흘렀다.입속에서는되풀이해서중얼거리고있었다.
“어머니,죄송해요.어머니,용서해주세요.”-「1장보안사」중에서,38~39쪽

사형수에서무기수로,그리고비전향장기수로19년간갇혀있었던저자.그는이책에서70~80년대정치범특별사동의세부와비전향장기수들의옥중삶을세세하게그려낸다.고통의중심에있었던당사자의시선이라고는믿기지않을만큼절제된감정에군더더기없는문장은,냉정한관찰자의기록에가깝다.영상물로치자면드라마보다다큐멘터리라할만하다.

하루살이는초여름부터서늘한가을바람이불때까지우리를괴롭혔다.변소소독은한달에한번도해주지않는다.수백수천마리의날파리가변소에서솟아올라와천장과벽을빈틈없이뒤덮는다.버터종이곽을펴서이어붙여변기덮개를만들어봐도별쓸모가없다.잡지나부채로때려잡을수밖에없다.날파리가죽은자국으로흰벽이금세시커멓게된다.가장곤란한것은벌레가어디든가리지않고날아든다는것이다.밥에도,콧구멍과귓구멍에도,하품을하는목구멍에도날아들어온다.잠을잘때귓속으로날아들면귓구멍을전등불방향으로향한채벌레가나오길가만히기다리는수밖에도리가없다.장호선생은눈에벌레가들어가결막염이되고눈이새빨갛게충혈되어오랫동안앓았다.-「2장죄수의나날」중에서,132쪽

겨울에는방에있던양동이물이두껍게얼고,숨을쉬면천장과벽에닿자마자서리가되어얼어붙으니방전체가냉동실이나다름없다.빗자루로천장을쓸면서리가눈처럼내린다.간수의눈치를보면서방에서제자리뛰기를하고,잠자기전에얼음을깨냉수마찰로혈액순환을시켜몸을따뜻하게한다음에이불에들어간다.징역보따리에든내의와양말까지몽땅꺼내이불위에올려놓고,이불가장자리를단추로끼워침낭을만든다.솜바지가랑이를목에감고,바지의양다리부분을머리아래로접어넣는다.바지앞의터진부분이코끝에닿아오줌냄새가난다.머리에는나이트캡대신팬티를거꾸로뒤집어쓴다.그러면준비완료다.마룻바닥에서올라오는냉기가가마니한장과얇은요를뚫고오싹오싹등골을찌른다.회전구이처럼뱅글뱅글몸을돌려한기를피하면서아침이오기를기다린다.기상나팔이울리면얼었던몸을일으켜세우고손발을펴본다.관절에서우두둑소리가난다.-「2장죄수의나날」중에서,136~137쪽

0.75평독방에서맨몸으로견디는폭염과혹한의날들,사상전향공작에저항하다죽어간사람들,엄혹한감시와폭행이상존하는폐쇄공간에서싹튼옥중동지들사이의우정,일반재소자들과의따뜻한연민과연대,병든동지를간호하는늙은수인들의이야기등등…암울하고절망적인상황에서도인간에대한신뢰와배려,그리고온기와미소를잃지않았던사람들이야기가감동적으로펼쳐진다.

그들은가족도없고면회올이도없이,그존재조차아무도모르는채로빈털터리로감옥에서살아왔다.70명가량의비전향수중에면회가있는사람은열손가락도되지않았다.(…)석방만기가없는무기수였던나는,한평생감옥에서무엇을해야할지,어떻게해야사는보람을느낄수있을지막연했다.그러나특별사동의실정을알게되면서,굶주림과추위에시달리는이사람들의고통을조금이라도덜어주는일에옥중생활을바치자고마음먹었다.그로부터수년간,엄혹한특별사동에서그들에게내의한벌,빵한개,책한권,소식한토막등작은즐거움을주기위해서모든힘과신경을집중시켰다.그것은내가사는보람이었다.-「2장죄수의나날」중에서,130~131쪽

그는내방에서멀리떨어진사동입구쪽끝에있어서말할기회가거의없었다.새까만머리에하얀피부를가진,침착해보이는사람이었다.재판이끝나사형집행만기다리고있던그는무엇을생각하고있었을까?그는언제나수갑을제대로차고있었다.남한에는면회올친척도없어서,얼마남지않은감옥안의여생조차팍팍하게살아가는것처럼보였다.영하17,18도까지내려가는서울의엄동설한에도겨울내복없이파란색무명천의죄수복하나로견디고있었다.세면하고돌아올때“춥지않습니까?”말건네니,“일없습니다.”하고쑥스러운듯미소를지어보였다.방에돌아와징역보따리에서스웨터와내의등월동복을꺼내그에게보냈다.다음날운동시간에그는그스웨터를입고서수갑을찬손을조금들어올려작게흔들며방긋웃고는내방앞을지나갔다.1974년에사형이집행되었다고한다.-「1장보안사」중에서,85~86쪽

선생은오른손으로지팡이를짚고혼자서는연습부터시작했다.후들후들떨면서안간힘을썼지만균형을잃고쓰러지고말았다.하지만매일조금씩나아져갔다.한발두발걷기시작해드디어발을끌면서몸을크게흔들며지팡이에의지해운동장을몇바퀴돌수있게되었다.(…)1.06평은세사람이생활하기에너무나비좁았다.사람들은매일선생을냉수마찰을시키고대소변을받아주었으며,마사지를해주고세탁도도왔다.발병이후선생은1991년1월대전에서옥사할때까지30여년간동지의따뜻한간호를받으며살았다.-「4장어머니」중에서,236~237쪽

특히두아들을한국의차가운감옥에빼앗긴후현해탄을오가며노심초사했던저자의어머니가보여준따뜻함과올곧음,자식에대한신뢰는참으로감동적이다.저자가어머니의부고를옥중에서접하는장면은이책에서눈물을참을수없는대목이기도하다.

영실이교무과장실에들어오는순간,나는모든일을알아차렸다.영실은소파에앉자마자내손을잡고흐느껴울었다.“어머니가돌아가셨어.”온몸을적시는듯이눈물이솟아나와그칠수가없었다.(…)어머니는특사의희망이었고,모두의어머니였다.어머니가차입해주신빵이며사과,스웨터,내의,양말,담요까지어머니의손이닿은것을받아보지못한사람은아무도없었다.무서운고문과테러가휘몰아치는가운데,고립무원의비전향수의고통을바깥세상에전하신분도어머니였다.침울한감옥안에서가끔밝은화제를가져다주신분도어머니였다.공작반의협박이나괴롭힘에도꿋꿋하게굴하지않았던어머니였다.-「4장어머니」중에서,213~214쪽

3)인간의존엄을지키기위해싸운사람들

1974년부터사상전향공작반이설치되어비전향수에대한폭력적인전향공작이시작되었다.이과정에서다수의비전향수들이잔혹한고문끝에살해되거나자살로써항거했다.식민지민중을탄압하는데쓰였던일제의치안유지법,조선사상범관찰령,조선사상범예방구속령이독재정권에의해각각국가보안법,반공법,보안관찰법,사회안전법으로이어졌다.일본이오래전폐기했던사상전향제도는오히려한국에서독재정권이정치적반대자를억압하는데사용되었다.“마치강도의칼을빼앗아자기가슴을찌르는것같은자학적도착(倒錯)”이라할만하다.

저자의동생서준식은서울대법대4학년때투옥되어17년간의청춘을감옥에묻었다.7년형기를다마쳤음에도,사회안전법감호처분으로기약없이갇힌세월이다시10년이었다.사상전향서를쓰면출소할수있었으나쓰지않고버텼다.그리고1987년,그는사회안전법과사상전향제도에항의하여옥중에서51일동안목숨을건단식을했다.

이책은개인이국가의폭력에맞서자신의내면을지키기위해처절하게싸워온과정을보여준다.전향이냐비전향이냐를논할때는특정사상에대한가치평가가아닌,고유한인간내면의영역을국가권력이침범하고강제할수있는가의문제로접근해야한다.개인의마음,양심,신념과같은,사람을사람답게하는가장본질적인것들을국가권력앞에꺼내놓고심사받으라는것이사상전향제도이다.그러나개인의정신은국가권력이함부로통제할수없고통제해서도안되는고유의영역이다.비전향수들은이러한정신의자유와인간으로서의존엄성을지키고자목숨을걸었다.

손선생은만성위장병으로몸이약하고머리만커서골격표본보다말라있었다.매사에처세도서투르고재주도없지만성격이침착했다.선생의즐거움은혼자서수학이나물리학문제를푸는일이었다.(…)선생은단식6일째에의무직원에게들쳐업혀방을나갔고,저녁까지돌아오지않았다.점검때부장이보조담당에게“목찰은이제필요없지?빼!”하고말하는소리가들렸다.(…)목찰이필요없어졌다는말은사망을의미한다.부장의목소리가들리자마자최하종선생이도화선을끊었다.사동에서는“죽였다!”,“선생을죽였다!”며절규가터졌고,모두가“손선생을살려내라!”,“살인자를처벌하라!”고외치며철문을걷어차고두드리며난리를쳤다.-「3장사상전향제도와의투쟁」중에서,194~195쪽

정선생은‘붉은별’사건으로구속되어첫재판중인1977년6월25일12시,점심식사가끝난직후변소의철창에목을매어자살했다.약30분후,이것을발견한김용태간수가허둥대며시체를복도로끌어내어줄을풀려고했지만,푸른무명관복을찢어꼰끈이목에단단히파고들어가서풀수없었다.간수는2사맞은편에있는이발소까지달려가서면도를가지고와줄을끊었지만이미때늦었다.사체는눈을부릅뜬채악다문이빨이드러나있었다.목을맬때발이바닥에닿지않도록가부좌한다리를끈으로묶어펴지지않게해놓았다.사체는마치부서진불상처럼복도에옆으로뒹굴고있었다.정선생의자살이전에도,내가1973년에대구로이송된직후목을맸던윤종하선생을시작으로4명의자살자가있었고,정선생이후에다시4명,합쳐서70년대특사에서만9명의자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