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베르트

프란츠 슈베르트

$17.00
Description
시대와 장르의 굴레를 슈베르트에게서 벗겨낸 수준 높은 음악 평전

탁월한 “음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많은 명곡을 창조해낸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가 음악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작곡가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31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슈베르트의 작품 세계는 여러 가지 편견 속에서 잘못 이해되어오기도 했다. 특히 빼어난 문학적 감수성을 발휘한 ‘가곡 작곡가’라는 명성이 너무나 큰 나머지, 교향곡, 현악 4중주, 피아노 소나타 등에서 남긴 불멸의 기악 유산은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다.
지난 1994년 국제 프란츠 슈베르트 연구소의 ‘프란츠 슈베르트 대상’을 받았고 지금은 『슈베르트 전망Schubert: Perspektiven』이라는 저널의 공동 편집인을 맡고 있기도 한 슈베르트 전문가 한스-요아힘 힌리히센 교수가 집필한 이 평전은 낭만적 이미지로 점철된 채 편파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슈베르트를 재조명했다. 슈베르트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를 걷어내는 한편 지금까지 간과되어왔던 다양한 장르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오랜 고민과 탐색의 시간을 거쳐 성숙한 작곡 역량을 한창 펼쳐내던 중 안타깝게 요절한 작곡가의 인생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저자

한스-요아힘힌리히센

1952년독일북부쥘트섬에서태어났다.베를린자유대에서독문학과역사학을공부하고,김나지움에서학생들을가르치다가베를린자유대에서음악학을전공하여박사학위를받았다.1999년부터스위스취리히대학교음악학교수로일하고있는그의주된연구분야는요한제바스티안바흐와프란츠슈베르트,음악분석학등이다.국제프란츠슈베르트연구소의‘프란츠슈베르트대상’(1994)을받은한편,유럽아카데미와오스트리아학술원회원에선출되기도했다.
슈베르트의삶과작품에대한간명하고흥미로운통찰을제공하는『슈베르트전망Schubert:Perspektiven』및『음악학논총Archivf?rMusikwissenschaft』같은저널의공동편집인으로활동하고있으며,『브루크너교향곡:음악적안내서』,『베토벤:피아노소나타』,『프란츠슈베르트기악의소나타형식발전연구』등의책을집필했다.

목차

머리말

1.슈베르트의빈
음악도시빈
창작의버팀목이된친구그룹
최초의프리랜서작곡가?
비더마이어와3월혁명이전기사이:음악적사교문화

2.최초의시도들과대가의기운
장르의체계적인섭렵
첫번째상징:슈베르트의가곡
초기교향곡과그배경

3.위기,돌파,자기결정
베토벤위기
많은단편斷片들
미완성속의완벽함

4.비운의사랑:음악극
징슈필에서‘영웅적,낭만적오페라’로
무대의성공과무너진희망

5.대중을위한작곡
대大교향곡을향하여
실내악과교향곡
작품의뢰와신앙고백사이

6.젊은작곡가의후기작
대규모연가곡
미지의작곡세계와마지막프로젝트
뒤늦은자각:슈베르트와출판업자들

7.에필로그:슈베르트수용

옮긴이의말
참고문헌
인명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슈베르트의생애를바라보는이들의해묵은편견과클리셰

19세기초반,나폴레옹전쟁에이어도래한왕정복고시대의억압적분위기가지배하던오스트리아빈에서탁월한감수성과“음악에대한이해”를바탕으로수많은명곡을창조해낸프란츠슈베르트가음악역사상대단히중요한인물이라는사실에는논란의여지가없다.하지만31년이라는짧은생애를살다간슈베르트의작품세계는여러가지편견속에서일부측면만부각되어왔고,그의전기들또한클리셰로뒤덮여있다.
스위스취리히대학교의음악학교수한스-요아힘힌리히센은이를두고,“슈베르트는19세기후반에도시성벽이철거되고링슈트라세(순환도로)가새로들어서면서완전히자취를감춰버린옛빈시절의향수를불러일으키는상징적인인물”이되었다고지적한다.엄격한통제와검열이판을치던사회속에서정치적인것을멀리하고소시민적안락함을추구하던이른바‘비더마이어’적풍조를대표하는예술가라는이미지가따라붙은것이다.슈베르트와함께어울렸던친구들이그가세상을떠난후수십년이지나당시를회고하면서어느정도미화를한탓도있을것이다.특히빼어난문학적감수성을발휘한‘가곡작곡가’라는슈베르트의명성이너무나큰나머지,교향곡,현악4중주,피아노소나타등에서남긴불멸의기악유산은오랫동안상대적으로저평가되었다.

친구들의힘을믿고프리랜서작곡가가되기로결심하다

슈베르트가태어난1797년,오스트리아의수도빈은이미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등걸출한음악가들의활동무대로각광받는음악의도시로서명성을쌓아가고있었다.하지만18세기말에서19세기초의이른바‘빈고전주의’시대를지나,나폴레옹전쟁이끝나고열린빈회의이후밀어닥친정치적,사회적변화와함께음악계또한새로운토대위에놓이게되었다.
1800년이전의음악생활이대체로귀족이주도하는소수중심의활동이었다면,이제음악은시민계급의주도아래가정이라는사적인영역을무대로펼쳐지기시작했다.“1790년대에귀족의체계적인비호덕분에비교적일찍부터견고한명성을얻었던베토벤은,이미안정적인작곡가로서기존제도의붕괴를무사히견뎌낼수있었다.반면슈베르트가음악적으로성장한시기는정확히반나폴레옹적인왕정복고의전성기에해당했고,빈소시민계급출신인슈베르트는비더마이어시대의가정중심의음악문화와더불어성장했다.”한마디로말해,“베토벤의빈은슈베르트의빈이었지만,슈베르트의빈은베토벤의빈이아니었다.”
이런음악문화속에서아버지와형들에게바이올린과피아노를배운슈베르트는그재능을인정받고음악영재들을위한빈기숙학교에입학했다.여기서그는요제프폰슈파운을비롯한여러친구들을사귀었는데,학업을다마치지못하고학교를그만둔뒤에도이교우관계는꾸준히지속되었다.그뿐만아니라이후에도슈베르트를중심으로하는여러모임이계속생겨났다.이런네트워크는그의길지않았던삶에서대단히중요한역할을했다.교사집안에서태어나교사를천직으로알며자란슈베르트가작곡가의길로나서기로결심했던것도이러한친구들의존재덕분이었다.“슈베르트는여러그룹과모임덕분에사회적네트워크를형성할수있었고,그덕에생활해나갈수있었다.부모에게서독립한첫해만해도그는돈한푼내지않고쇼버와같이지냈다.슈베르트가온전히홀로산것은세번에불과한데,그것도아주잠깐동안씩이었다.안정적인교사직을과감히포기할때에도,그는틀림없이이네트워크가자신의가장중요한보호막이되어주리라고확신했을것이다.”
슈베르트의앞세대음악가인모차르트는연주회와레슨을하거나궁정에서일하며돈을벌어야했고,베토벤도젊은시절연주활동을하면서마지못해다른이들을가르치기도했다.하지만“슈베르트는프리랜서작곡가라는모델을조금씩성공적으로실현해나갈수있었던최초의작곡가에해당한다.”몇차례에걸쳐잠깐씩맡았던“에스테르하지백작의음악가정교사자리를제외하면,그가부모에게서완전히독립한이후로작곡이아닌다른수입원에의존한적은없었다.”

위대한가곡의그늘에가려진슈베르트의기악적유산

잘알려져있다시피슈베르트는위대한‘가곡작곡가’였다.기숙학교시절부터작곡을시작한그는유독가곡에서만큼은처음부터탁월한성과를보여주었다.그이유를저자는이렇게설명한다.“다른장르와달리슈베르트가가곡에서그렇게일찍부터성숙한결과물을낼수있었던이유는무엇일까?한마디로정리하기는힘들지만,무엇보다그의월등한시적재능에서출발해야할것같다.이미기숙학교시절의친구들도이재능을알아보았다.슈베르트는시의형태로접하게된거의모든것을음악으로창작했다.”벌써10대후반에작곡한유명한괴테가곡《실잣는그레트헨》과《마왕》을통해감정의흐름과격정을설득력있게펼쳐냈던슈베르트는10여년뒤발표한두연가곡《아름다운물방앗간아가씨》와《겨울나그네》를통해“가곡예술의정점에도달”했다.
그렇지만슈베르트는가곡외에도초창기부터다양한장르의음악을시도했다.“어린초보작곡가는당연하다는듯이처음부터모든장르를적극적으로다루었다.도이치번호10번여까지의작품들만보더라도피아노곡,가곡,4중주혹은5중주편성의현을위한실내악곡,교향곡,오케스트라를위한서곡,연극을위한서곡,미완성으로남은오페라《거울의기사DerSpiegelritter》(D.11)등이있다.”
어린시절부터슈베르트는집안의현악4중주단에서바이올린주자로활동했다.아마도이런가정에서의실내악활동이초기실내악곡이탄생한배경이었을것이다.그리고초기교향곡과서곡등은기숙학교오케스트라를비롯한소규모아마추어오케스트라를위해작곡되었던것으로보인다.

가족과친구들을위한작품에서대중을겨냥한대작으로

1824년봄,슈베르트는무척힘든시기를보내고있었다.매독때문에오랫동안빈종합병원에서수은치료를받느라몸이허약해지고머리까지빠졌다.친구들의모임도프란츠폰쇼버같은핵심멤버가외국에나가있는통에와해될지도모를지경에처해있었다.더구나야심차게준비하던오페라《피에라브라스》의공연이무산되면서빈오페라계에진출하려던꿈도꺾이고말았다.하지만실망도잠시,슈베르트는다시한번용기를내어‘기악’작곡으로눈을돌렸다.더나아가아예과거와는다른수준에서작곡에접근했다.초기에“친구와가족을위해작곡했던실내악곡이라든가기숙학교오케스트라나하트비히아마추어오케스트라를위해작곡했던관현악서곡과초기교향곡”을넘어훨씬더광범위한대중을겨냥한작품을만들기로결심한것이다.
전문적인직업작곡가로서본격적인행보를시작한슈베르트는현악4중주d단조(《죽음과소녀DerTodunddasM?dchen》,D.810)를비롯한실내악곡을거쳐‘대교향곡’을향해나아간다.“이계획을슈베르트는교향곡C장조《그레이트》(D.944)로실현했다.〔…〕나름성공적이었던여섯개의초기교향곡이후처음으로(유일하게)완성된교향곡이었다.”
가곡뿐만아니라기악에서도불후의대작을내놓은작곡가로서슈베르트의가치를일찍부터알아본이들은학자나비평가가아니라후세대작곡가들이었다.“1839년에슈베르트의형페르디난트에게서C장조교향곡《그레이트》를발견한사람은로베르트슈만이었고,펠릭스멘델스존바르톨디와프란츠리스트는저마다의방식으로슈베르트음악에매료되었다.슈베르트를평생동안깊이존경했던요하네스브람스는그의작품을일찍접한덕분에베토벤의그늘에서마침내벗어날수있었다.”
더나아가슈베르트의방식은현대작곡가들에게까지영감을주고있다.“최근에는장바라케,루치아노베리오,볼프강림,디터슈네벨,한스첸더같은유럽작곡가들이시간을비선형적으로구조화하는슈베르트의새로운방식에깊이매료되었고,미국작곡가모턴펠드먼은자신이열렬한슈베르트신봉자라고고백했다.”
지난1994년국제프란츠슈베르트연구소의‘프란츠슈베르트대상’을받았고,지금은『슈베르트전망Schubert:Perspektiven』이라는저널의공동편집인을맡고있기도한슈베르트전문가힌리히센교수가집필한이평전은낭만적이미지로점철된채편파적으로이해되고있는슈베르트를재조명했다.슈베르트의삶과작품세계에대한여러가지편견과오해를걷어내는한편지금까지간과되어왔던다양한장르를깊이들여다보면서작곡가슈베르트의인생사를재구성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