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섬에서 살다 (조선인 마쓰모토의 회고록)

남양섬에서 살다 (조선인 마쓰모토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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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남양섬에서 살다』는 일제 강점기를 살던 어느 조선인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그가 묘사한 사소한 장면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당시의 노동자 임금이나 물자의 가격, 일본군과 일본 회사의 경영 행태, 남양군도에 가게 된 조선인들과 그에 수반하는 모집책, 일본과 조선, 태평양 섬을 이동하는 교통편이나 남양군도에 살던 현지 주민의 삶의 모습 같은 것들이다. 그의 자필 회고록은 개인사 속에 펼쳐진 역사가 구체적이고 생생하기에 마치 어제 일을 보는 것처럼 잘 읽힌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개인이 보고 느낀 남양군도의 사회와 문화 및 역사를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전하고 있어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살던 조선인이 겪어야 했던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나 인간적인 모습 등은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의 삶이 모여 역사가 되고, 개인의 기록이 모여 역사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해야만 그 시간이 사라지지 않고 후세로 이어진다.
저자

조성윤

목차

남양군도연구에서의회고록의가치
회고록서문(1981년)
회고록서문(1995년)
어린시절회고
만주로가기위해중국어를배우는단기대학으로가다
동경고등척식학교
만주의꿈은수포가되고귀향
고향을등지고일본으로
남양무역에입사
사이판지점으로전근사령(轉勤辭令)을받고
사이판섬에상륙하여상하(常夏)의나라를구경하다
파간섬으로첫부임사령(赴任辭令)을받음
파간도(島)상륙과남양무역사무소
도민인부들과의충돌
파간섬에서6개월동안
자살한오키나와사람을목격
일본인하라(原))라는자의가면(假面)
사리간섬에서3년을
사사모토는관리인일뿐나는남양무역회사사원견습인
사리간의실태
양돈과면화재배의실태
들쥐(野鼠)퇴치(退治)
사사모토(笹本)가족의반목을해소
인부들에게오락을,자녀들에게간이초급교육을
3년에한번인귀성(歸省)이연기되어한달동안사이판지점에서휴가,돈10일여에바닥
섬사람은섬에서먹고살아갈수가있다.
아라마간섬으로영전(榮轉)
신임(新任)된후새출발을구상
전쟁시국하에서벗어난이도(離島)는평화의나날이다
年中行事로오락과위안을
낚시와쏠창대회
즐거운크리스마스와설날을
종자돼지새끼도살사건
정사(情事)혐의(嫌疑)소동
손손부락에서일어난감독가족과다른가족의항쟁
마리아나군도(群島)는적군점령이되려는날만가까워
육군조사대아라마간섬상륙
시라미함대(艦隊)유인(誘引)으로대환영하는밤
드디어예상했던징용령이내렸다
파간섬에서14개월동안생애처음의전쟁경험
파간섬미기동대(機動隊)의공습하에서생사의투쟁(斗爭)으로
매일(每日)이비행장폭탄맞아뚫린구멍메우기작전
야간작업(夜間作業)
돼지잡이일대사건
비행장수리작업을포기하고해군진지구축으로
1944년9월이아닌가.설부대소량배급도종말(終末)
파간섬남단(南端)으로이동작전
만사는오케이.야마다와나,카누선장오하라,일체감
바리야르격절지(隔絶地)에서의희비극
육군내부의갈등과카누1대변상의말다툼
현재의처와의애정,드디어결혼
아라마간섬인부들을위해운명을같이해
만사(萬事)는실패로나는송송으로출두,군법재판을
일개인으로전락(轉落)생활에서가지가지
일본육군과해군의차이점과기질
해방(解放)이온다,복잡했던심경
파간일본군백기게양(揭揚),선상에서항복서명
LST미선(米船)으로도민(島民)들사이판으로인양(引場)
사이판섬상륙의초보(初步)까지
백여일동안민간포로(捕虜)로서사이판한인캠프(SaipanKoreanCamp)에서지내던기억.
캠프자치행정조직
사법주임(司法主任)이란감투를쓰고
사법주임행세(行勢)중기억이나는몇가지
Camp속의인물들
우리한민족은해외에살아도단합(團合)이힘들어
우리캠프에서보고들은소감(所感)몇가지
본국으로인양(引揚)하는교포들과작별후이도(移島)
마쓰모토라는성으로된삽화
일제시대하보고들은소견

회고록을마치며

출판사 서평

우리나라가일본의식민지가되었던36년동안,우리의할아버지와할머니들의삶은어땠을까.어떤이는친일파로살며일신의안위를꾀하였지만,수많은사람들이일본이벌인태평양전쟁의소용돌이에휘말려청춘을빼앗기고아까운목숨을잃기도하였다.여기에그시절을살아냈던어느조선인이있다.그의이름은전경운이다.
한때그는그림그리기를좋아했다.그는평안도의오산고보24기졸업생이었는데중학시절에는홍준명,이중섭과함께임파임용련선생의그림지도를받기도하였다.하지만가정형편때문에그림은취미에그쳤다.이중섭은그후일본으로유학을가서화가가되었다.그또한일본으로유학하였지만동경고등척식학교에입학하였다.
1915년생전경운은스물다섯이되던1939년에사이판섬으로간다.태평양의섬들을남양군도라고칭하며세력을넓혀가던일본제국은태평양의섬을개간할회사로남양무역주식회사를지원했고,그회사에서는그곳에서일할사람이필요했다.전경운은남양무역주식회사의사이판지점에서야자원관리인이되었다.
전경운은일본회사에입사한조선인이면서,야자원에서일하는원주민인부들에게는일본인관리자였다.하지만그는조선인또는일본인이라는입장에서보다는어떤조직의관리자로서사람들을어떻게대하고어떻게지도할것인가에대한열중한다.그는사이판섬북쪽5도에서근무하며야자원관리에서의효율화를꾀한다.그의방법은어느정도성공을거두었다.그러나그를둘러싼주변은빠르게변해,태평양전쟁이발발한다.사이판섬또한전쟁터로변했다.
그가있던사이판의주변섬에는미군이상륙하지는않았지만,일본군은그를포함한농장인부들을동원하여미군의공격에대비하려한다.그는징집명령을받게되었고,일본회사의사원이었다가일본군의명령을받는존재가된다.그는야자원에서일하던인부들을인솔하여일본군을도우러나갔고,비행장공사와일본군의식량조달등의일을하게된다.

전쟁이끝나자,미군은그를일본인이아니라조선인으로분류한다.그는조국으로돌아올수있었다.하지만그는돌아오지못한다.그의결혼이그의발목을잡았기때문이다.그후로그는티니언섬으로이주해갔고,그곳에서여생을마친다.
1939년에조국을떠난이후다시는돌아가지못하는조국에대한그리움과자기삶에대한성찰은그로하여금지난삶을기록하게한다.1981년에쓴그의회고록의제목은<남양살이40년을회고>였다.
10여년이지난후,자신이쓴첫회고록을잃어버린그는두번째의회고록을쓴다.그10여년사이그는조국을방문하는기회가있었고,6.25때월남하여한국에서살고있던가족과친구들을만나게된다.그만남이후,그는첫번째의회고록에서는쓰지못했던,평안북도정주에서살던시기,오산학교에다니던때의추억을덧붙인두번째의회고록을쓰게된것이다.

그가볼펜으로쓰고여러번복사해묶은회고록은그후한국의방송이나역사가들에게도전해졌고,그가태평양전쟁이끝난후정착해살았던티니언섬에도일부지인들에게남아있었다.남양군도연구,특히일제강점기에남양군도에갔던조선인에대한연구를하고있는제주대학교사회학과조성윤교수가전경운이남긴회고록을입수하였고,내용을편집하여<남양섬에서살다,조선인마쓰모토의회고록>이라는제목의책으로출판하였다.

이책은,일제강점기를살던어느조선인한사람의이야기이지만그가묘사한사소한장면에서역사적사실들을확인할수있다.예를들면,그당시의노동자임금이나물자의가격,일본군과일본회사의경영행태,남양군도에가게된조선인들과그에수반하는모집책,일본과조선,태평양섬을이동하는교통편이나남양군도에살던현지주민의삶의모습같은것들이다.그의자필회고록은개인사속에펼쳐진역사가구체적이고생생하기에마치어제일을보는것처럼잘읽힌다.
그러므로이책은,개인이보고느낀남양군도의사회와문화및역사를대중들에게보다쉽게전하고있어일제강점기의역사를알고싶은사람들에게매우유용하다.또한일제강점기를살던조선인이겪어야했던자기정체성의혼란이나인간적인모습등은문학적이기까지하다.개인의삶이모여역사가되고,개인의기록이모여역사이야기가될것이다.그러나역사는기억해야만그시간이사라지지않고후세로이어진다.
그의회고록은일제강점기에식민지백성이었던조선인들이다양한모습으로그시간을견디고살아냈다는것을알려준다.그다양한모습에서복잡하고다채로운인간,그리고삶을사랑하는사람을이해하게한다.어떤사람의개인사속에서사람을보고,그너머의역사를보는경험을,이책에서하게될것이다.

ㆍ엮은이의글
-나는지난몇년동안우리가제국일본의식민지지배를받던시절에지금은미크로네시아Micronesia라고부르는태평양섬지역으로이주했던한국인들을조사해왔다.그시기일본은그지역을남양군도(南洋群島)라고불렀다.우리에게남양군도라는이름은낯설지않다.왜냐하면그곳에는수많은한국인들이노동자로,병사로,위안부로끌려갔고,그중에서도많은사람들이돌아오지못하고죽어간곳이기때문이다.그러나태평양전쟁이끝나고,해방이된지도70년이지난지금까지우리는남양군도에서죽어간이들을잊고있었다.

-티니언섬에서나는몇명의한국인들을만날수있었다.1990년이후정착한사람들이었다.그분들은10년이상현지에서지내고있었기때문에지역사정에밝았다.일단그분들로부터정보를얻은다음한분씩집을찾아다니며인터뷰를하게되었다.남양군도시절에이주해와서1945년전쟁이끝난다음에돌아가지않고남은한국인남성은모두원주민여성과결혼한경우였다.1세대로남양군도여러섬에서생활한전경운(全慶運)의회고록필사본은읽기시작하자손을놓을수없었기때문이었다.이런인생이었구나,감동과연민과안타까움이뒤섞였다.마쓰모토라는이름을쓰는조선인을재발견하는시간이었다.그의이야기를모두에게들려주고싶어졌다.

-그의회고록은크게3부분으로나뉘는데,첫번째는1939년부터1945년까지의남양군도시절이야기이다.두번째는1945년수용소캠프시절부터1951년티니언섬에정착하기까지의과정을적었다.마지막세번째가티니언에서농업에종사하던이야기였다.세시기가모두특징이있고,각각자신의열정을쏟아부었던이야기들이넘친다.그러나그중에서도세번째의농업이야기가가장많은분량을차지한다.
전경운이회고록을적어가는태도를보면,자신이맡아서했던일에대한자부심이강했다.그는자신이한일들을자세하게기억하고있었고,그일들에서부딪친문제,또는자신이나서서해결한일들을아주상세하게적어갔다.특히심각한위기에처했다가문제를해결했던일들은마치소설을쓰듯이실감나게생생하게묘사했다.그는어떤국면에처하든지부딪치는일을적극해결해나갔다.매우열정적인자세를보이지만,때로는일에지나치게몰두하다가가족을돌보는일은물론자신의건강마저해치는일도자주있었다.특히농업과관련한부분을보면그가어떤시도를했고,어떤부분에서실패하고,또실패를딛고다시도전했는지를잘읽을수있다.

ㆍ본문:전경운의회고글
-저는일본말로쓰는게쉽지만그럴수도없어한글로써보았습니다.이글은일본말,한자가많이들어있고더구나일제강점기의섬이름이나,일본인을대상했던만큼일본말로도쓰여있습니다.그리고설명을위해서는약도와그림을그렸습니다.읽기에매우힘들것입니다.
원래저는문필가는아닙니다.또고향을떠난이후우리말을쓸수도없었고듣기도어려웠습니다.그러므로거의잊어버렸습니다.또시대의흐름에따라어휘도매우변한데다한국표준말도아니고평안도정주방언이섞여있습니다.그뿐인가처음으로시도하는회고록이니만큼문법에서도많이틀리고,오자탈자도많아서읽기에도힘들것입니다.이러한점을양해하고천천히읽어가며전후가맞지않는점을미루어가며이해하십시오.

-저를소개한다면1915년에출생하여당시을묘생이라하였습니다.학력은오산고보24기(고교)를졸업,1935년일본동경으로가서2년간,단기대학에서유학생활을하였습니다.당시만주가우리집에서멀지않아서만주로진출하기위해중국어와기초지식을배웠습니다.당시의일제는우리말을말살하는정책을폈지만,오산학교만이비밀로우리말과역사를가르쳐준것이후에큰도움이되었습니다.그러나저는남양에나와있어서60여년을우리말을별로써보지않았습니다.그런조건하에서우연히기회가찾아와,1975년,36년만에처음으로서울에갔습니다.남하한우리가족들과친지는물론모교오산학교의동기생들의환영을받으며재회는하였습니다.그러나정작그들과대화에서는알아듣기는했으나말문이막혀진땀을흘린것을잊을수없습니다.그후부터는한글책자와신문등을닥치는대로읽으며겨우말문이열린것이사실이었습니다.그럼이제부터저의이야기를써보려합니다.여러분의성원을빕니다.

-내고향은평안북도정주군육성동이다.생년월일은1915년10월15일을유생이다.그때는조선은일본에완전히합병되어식민지로서수탈이본격화될때요,경부선과경의선이개설되어있었고,정주에는철도기관수리정비기관이설치되어다른곳보다개화의물결이빠르게진전되었다.내가난시골은정주읍에서20리정도떨어져있고어느읍이건20리를걸어야할만큼한촌그대로여서내나이네살때까지삭발을하지않고검은댕기머리털을땋았던기억도난다.

-나는척식과(拓植科)소속이었다.주로야자원(椰子園)으로간다고했다.포나페,사이판이두지점어느쪽이될것이다.그러는어느날사장이나를부른다기에사장실로들어갔다.사장은초면인데대략내신분내력을알고있는모양이었다.나는처음엔포나페섬으로보낼것이었는데,그섬은일본사람이적게사는섬이고신입사원이라사이판섬으로보낸다고했다.그러나사이판은동경시다마치와다름없고일본사람뿐만아니라조선인도많다고했다.특히임(林)모는조선인은남무(南貿)에서매우인기있는인물이라며,나도우리회사를위하여분발하여달라는격려의말씀을들었다.

-회사에입사하여초봉이46엔이었다.수당가산을하면약70엔정도로매달말에봉투에들어있다.이것을두번받았다.전근을가게되니사이판지점에도착하기까지체재비와월급외에지도금(支度金)으로본사에서70엔,지점에서70엔이지불된다고하였다.나는여름의나라로가는고로서둘러서마로만든하복을준비하였다.

-당시는중일전쟁이터진지1년남짓,일본동경에서는계란배급이시작되었다.사이판은항구도시로서남양청이있는팔라우,얄트,포나페,축,얍섬등으로가는현관이었다.5,000톤선박이매주2-3회사이판에들렀다.사탕수수제당회사가티니안,코타까지들어서있어서상주인구는3만이상이었다.출입인구를합쳐5만이넘었고일본해군23만(2-3만?)이주둔하고있어명목상항구도시로서번창했다.특히환락설비가불야성으로네온싸인이손님들을유혹하고물건과식품이풍부해어디서도전쟁중이라는생각이들지않았다.육상교통은버스와경편철도로섬전체가활기에넘쳐언제나여름인곳.바닷물은맑고,산호가넓어고기떼노는것이선명히보인다.지상천국에왔다고생각했다.

-조그맣고초라한일본식숙사,차모로식생활,먹는것도야채는없고물고기와코프라요리뿐이니자취하는것도문제가많다.처음으로사사모토(笹本)가족일원이되어차모로식사를먹게되었다.숙소와취사장은떨어져있었다.저녁밥을먹자고사사모토가안내하였다.집은야자잎으로지붕벽이되어있다.우리나라돼지우리크기정도의12척곱하기12척정도의크기에마루만이일본목판으로깔려있을뿐,재료는전부섬에서얻은나무로지어졌다.외모는보기싫었으나안은매우신선하였다.조그마한탁자상이놓여있다.앉아서밥을먹어야했다.그러나놀란것은밥상이더러운데다새까맣다.칼로긁은것처럼밥그릇녹슨것이조심스러웠다.반찬은코프라요리로된생선국이다.야채는없고밥뿐이다.시장한지라먹긴했지만내맛이아닌식사를하고있었다.그때가해가지는무렵이었다.야서군(野鼠群)의습격(襲擊),대형쥐대열이기둥으로올라가밥상으로떨어졌다.놀랍게도그수가100마리이다.잠시만눈을팔면태연하게밥상으로올라와생선찌꺼기를가로챈다.그러므로한손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