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이후에시를쓰는것은야만이다.”
아도르노의저유명한명제는파울첼란의「죽음의푸가」이후이렇게수정된다.
“고문당한자가비명지를권한을지니듯이,끊임없는괴로움은표현의권리를지닌다.따라서아우슈비츠이후에는시를쓸수없으리라고한말은잘못이었을것이다.”(『부정변증법』,1966)
첼란시의아픈‘비의(秘義)’속을걷다
단지아우슈비츠를대표하는시인을넘어시적언어의가능성을현대시에남겨두었다고평가받는시인,파울첼란(PaulCelan).
거부할수없는매혹에도불구하고동시대의몰이해의벽에부딪혀좌절하고,스스로생을마감함으로써허위의세계에대한거부를분명히보여주었던영원한이방인.
몇권의시선집으로만알려진그와그의시에대한제대로된해석을이제비로소우리는만날수있게되었다.
책소개
1945년이후독일문단은물론이고전후시문학에서가장주목받고지금까지도많은연구가이루어지고있는시인파울첼란(1920-1970).루마니아태생유대인으로나치에의해부모가죽임을당하고그자신또한강제노동수용소에서‘살아남은자’였지만,모어(母語)인동시에살인자의언어인독일어로시를썼던모순된운명을받아들였던시인.하지만전후유럽사회에도정착할수없었던‘영원한이방인’.그의시를사랑하는사람들에게충격과슬픔을안겨주었던센느강에몸을던진죽음에이르기까지,그의시와삶은지울수없는기억으로남아있다.
더불어여기에우리속에해소되지않은채맴돌기만하던한가지물음이있다.그렇다면적지않은아우슈비츠이후의문학가운데서유독그의시문학이끊이지않고회자되고연구되는까닭은무엇인가라는물음이그것이다.그의비극적삶과죽음때문에?(어찌그만그러했으랴.)그의시가지닌감출수없는매혹때문에?그렇다면어떤?매혹이라했으나,그런데그가살았던동시대에그가쓴시들이위대함에대한찬사와함께,어쩌면찬사보다도더한몰이해에부딪혀야했다면문제는간단치않게된다.더구나,프리모레비의말마따나,그의시를온전히이해하는것은독자는물론비평가에게도‘절망적인시도’라는상황은여전히해소되지않고있지않은가.(하물며시선집외에제대로된비평서하나없는한국적현실에선말할것도없다.)
오늘에와서그의시의난해함을불러온미학적절대주의와사회참여사이에는어떤모순도없다고인정되고있으나전후상황은그렇지않았다.그것은“아우슈비츠이후에시를쓰는것은야만이다”라는아도르노의명제에대한오독을한편으로,전후독일문단을지배하는‘리얼리즘’의한계를보여주는것이기도했다.파리에거주하며,독일어로시를쓰는,동유럽출신의망명자유대인시인이쓴‘초현실주의’에물든시가아우슈비츠의‘진실’을감당할수있다고믿고싶지않았던것이리라.이는또한홀로코스트의재현을둘러싼오늘에까지이어지는논란과도맞닿아있는것이기도하다.
이러한현실에서,파울첼란시문학연구의최고권위라고인정받는장볼락의강연텍스트『파울첼란/유대화된독일인들사이에서』가한국어로번역된것은그간이시인에게매력을느끼고관심을가져온독자들에게무엇보다반가운소식이될것이다.텍스트는곧장첼란시의‘이해하기어려움’이라는통설을문제삼는다.저자에따르면,시문학이갖는비의(秘義)성은이해될수있으며,또한이해해야만하는것이다.한편으로는복합적인언어적연관속에서,다른한편으로는언어라는매체에서역사적사실들의복원이이루어진다는측면에서.
이러한전제에서책은첼란의삶과시문학을이해하는하나의총체적사유-세계를펼쳐보인다.함축적이고신중하게선택된저자의해석의언어들을따라잡는것은쉬운일은아니다.저자의말처럼,겉보기에는사소해보일지몰라도전기적사실―개인적인삶과정신의궤적,이를테면그것에서비롯된‘특수한것들’―을놓치지않고읽어낼수있다면어렵기만한숙제는아닐것이다.그런의미에서책의말미에덧붙여진길게작성된‘파울첼란연보’도도움이될것이다.
파울첼란을말하다
「죽음의푸가」의거친명료함부터마지막작품들의미광조차없는끔찍한혼돈까지,그의시는더없이차가운냉혹한악처럼독자를사로잡는다.이암흑은페이지를넘길수록,마지막의알아들을수없는횡설수설이죽어가는인간의가르랑거리는소리처럼간담을서늘하게할때까지점점더짙어진다.―프리모레비
파울첼란의시는침묵을통해극도의경악을말하고자한다.아우슈비츠이후에는어떠한서정시도쓰일수없다는말은잘못이었다.―테오도어아도르노
첼란은자신의모든시들에날짜를적었다.날짜로서의시,‘쉬볼렛’으로서의시는잊힐운명에처한것을기념한다.‘단한번’일어난것,반복하지않은것에어떻게날짜를적을수있을까.하지만반복하지않은것말고도대체어떤것에날짜를적을수있단말인가.“되풀이할수없는것을뒤쫓아”자신의길을간그의시에서철학으로는감당할수없는문학의가능성을찾는것은결코헛된노력이아닐것이다.―자크데리다
“이집트에서단한번도벗어난기억이없다”라고했던파울첼란.이말과함께그의또하나의비밀스러운이름인‘페자흐(유월절)’을떠올리면전율이느껴지기도한다.그는이집트에서의탈출을기념하는유월절을다름아닌이집트에서보내야하는모순된운명을받아들였다.자신의부모를죽인원수의언어,독일어로시를쓰면서.……독일어에대해첼란이성취한특별한언어조작은그의독자들을매료시킨것이었다.―조르조아감벤
파울첼란을읽어보자.시란‘유리병통신’이라고말했던첼란을.비슷하게재해‘이후’를살고있다지만그와우리의차이는바다처럼크다.하지만그가말한대로그유리병에는시인의이름이,운명이,의지가,날짜가밀봉되어있다.그리고우리눈앞에당도한것이다.이대양을횡단하는고난을헤치고도래한것이다.그의유리병이당신앞에.당신에게.이렇게.그러니파울첼란을읽어보자.지금이야말로.―사사키아타루
왔네,왔네.
말하나가왔네,왔네,
밤을가로질러와,
빛나고자했네,빛나고자했네.
―파울첼란,「스트레토(Engf?hrung)」중에서
말(詩)하나가왔(었)다.밤을가로질러.그말이어떤밤을가로질러왔는지,그어떤밤에대해,우리는어렴풋이알뿐이다.그런데,대체여기서안다는것은무엇을말하며,지금여기에살고있는우리에게어떤의미를지니는것일까.
파울첼란과그의시를두고던져보는말이다.그의시는한번접하면기묘한울림으로매혹시키되동시에짙은안개속에우리를가둔다.그밤-안개속에서우리에게말을건다.깊이를알수없는,어두운늪에서올라온그말은리듬을타고오다가뚝끊어지고,말이면서말이아닌,침묵직전의,‘나머지없는나머지’만남기고사라진다.그리하여그사라짐에대해,우리에게생각하도록한다.
우리는그의시가아름답다고쉽게말하지못한다.그가가로질러온밤(아우슈비츠로상징되는가혹한운명)에대해아름답다고말해서는안된다는윤리의식때문만은아니다.그의시는지독한난해함과더불어,아름답지않다.프리모레비가말했듯이,이미죽어있는,존재하지않기를바라는사람의마지막헐떡임같은그의시가아름다울수는없는노릇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의시는아름답다.조르주디디위베르만에게서빌리자면,그의시들은‘반딧불의잔존’과도같다.
말하나가밤을가로질러와빛나고자했다.그말은빛과함께어둠속으로사라졌다.사라졌음에도그말은빛과함께잔존한다.이잔존하는빛에대해숱한사람들이이야기했고,또지금도하고있다.아도르노에서부터자크데리다,사사키아타루에이르기까지.(사사키아타루는아예첼란의시구절을책제목으로삼기도한다.―“잘라라,기도하는손들을”)그럼에도그이야기들은이곳의우리에게소문으로머물뿐이다.우리에겐그의시몇구절이남아있을뿐아직그의시를온전히이해하는데로가는길이보이지않기때문이다.
일찍이파울첼란은자신의시를‘유리병속에담긴편지’로비유했다.그유리병은아직닫힌채이고우리는여전히엄두를내지못하고있는것은아닌가.장볼락의이책『파울첼란/유대화된독일인들사이에서』는첼란의시-편지의수신자가되기로마음먹은사람들을위한책이다.이속에는첼란의시에대한숱한오인과오해에대한해명과반박이담겨있으며,무엇보다그의시를이해하기위한해석학적전제들이설명되고있다.이책과더불어읽기를포기한그의시집을다시펼칠때이다.사사키아타루의말처럼,그와우리의차이는바다처럼클터이지만,우리역시재난‘이후’를(어쩌면재난의한복판에)살고있으므로,지금이야말로그를읽을때이다.
“물구나무서서두손을짚고걸어가는사람,
그에게는하늘이발아래심연으로있습니다.”
―파울첼란,게오르크뷔히너상수상연설「자오선」중에서
파울첼란의시문학처럼완강한몰이해의장벽에겹겹이갇혀있었던경우가달리있을까.그것은우선그의삶이처한(그가받아들였던)모순된운명에서기인한바클것이다.그래서책의저자인볼락은이런물음으로서두를뗀다.“파울첼란은동화된유대인이었을까요?”이물음이던지는사고의파장은크고복잡한것이다.첼란은독일어로쓰를썼다는점에서독일시인이라할수있지만,그를독일시인이라부르는사람은없다.그는다른존재이고자했다.그렇다고하여그는사람들이흔히생각하는바유대인시인도아니었다.또한그는동화된독일유대인들의전통을따르려고하지도않았다.볼락은말한다.“첼란의언어가시적으로구성되는방식은‘유대인’다운어떤특징이있습니다.[하지만]무엇보다중요한것은자유입니다”라고.볼락은그것을‘대항하는유대주의’라고말하기도한다.
어렵다.첼란의말을직접가져와보자.“어쩌면저는유럽에서유대정신성의운명에따라끝까지살아야하는마지막이들중하나일지도모릅니다.……그리고그것이많은것을말해줄것입니다.”“모든시인은유대인이다”라는말도있다.이말에대해서도첼란은이렇게말한바있다.“유대인이된다는것은‘다르게된다’는것을의미한다”고.첼란의이말(들)을이해하는데도움이되는글로조르조아감벤의「이집트에서의유월절」이란글이있다.이집트탈출을기념하는절기를이집트에서보낸다는것은무엇을뜻할까.홀로코스트를겪고난뒤유대인들은팔레스티나땅에이스라엘국가를건설한다.체르노비츠출신의떠돌이첼란은이유대인의나라로떠나지않고유럽에남는다.유럽은?유럽(특히독일)은나치의홀로코스트만행을반성하려했지오랜반유대주의를버린것은아니었다.그속에,파리의변두리퐁투아즈에첼란이있었다.전후부흥기,‘황금빛서구’의변두리에서,누구도그의시에관심을갖지않는그곳에서,본질적의미에서이방인으로.스스로를‘유대놈’이라부르며.
「죽음의푸가」가그의이름을독일문단에알렸지만,독일의내로라하는문인,지식인들은그의시를대놓고비웃었다.한편에는,“아우슈비츠이후시를쓰는것은야만이다”라는아도르노의저유명한명제가있었다.많은사람들이문학(시)의불가능성이란핑계를대며이명제뒤에숨었다.다른한편으로이른바전후를풍미한‘반성으로서의리얼리즘’과쇼와의‘유일무이성’이란유대인주류집단의완고한배타주의사이의보이지않는동맹이있었다.그들은첼란의파리망명을그의시가리얼리티를외면하고프랑스의상징주의나초현실주의로후퇴한증거로너무쉽게간주했다.섣부른미학적양식화가재앙에관한이야기를잡담으로타락시키고아우슈비츠의공포를변형시킬위험이있다는아도르노의우려를오독한독일의비평가들은첼란의시와낯선시의선율을그러한사례로지목하고싶어했다.그들은‘아우슈비츠이후’에대한아도르노의사유는전범으로받아들이려했지만,그사유를가로지르는「죽음의푸가」의시어들은과도한문학화로,기껏해야받아들일만한위험하지않은문학으로분류한뒤에야자신들의문학에편입시켰다.
첼란의독일어는‘다른독일어’였던것이다.아감벤이‘독일어에대한특별한언어조작’이라고불렀던,독일어속에,릴케와호프만스탈의언어안에,유대인의전통을위한장소를,아포리아를만들고자했던첼란의필사적인시도는적어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