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 (소크라테스, 철학적 욕망의 기원에 관하여)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 (소크라테스, 철학적 욕망의 기원에 관하여)

$13.00
Description
지금까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해 온 소크라테스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그가 서구철학의 기원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면 그 까닭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삶을 조화롭게 만들어주거나, 행복의 진실을 깨닫게 해주거나,
인생의 숨겨진 의미 따위를 찾게 해주는 멘토로서의 소크라테스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찌할 건가.


대체 우리가 철학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왜 철학하기를 욕망하는가. 아니,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을 어지러운 욕망을 제압하는 고상하고 높은 이성에 대한 추구로 생각해 오지 않았는가. 여기 소개하는 책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소크라테스, 철학적 욕망의 기원에 관하여』를 펼쳐 읽기 시작하면 철학에 대한 우리의 통념은 여지없이 흔들리고, 우리가 애써 억누르려 했던 내면의 어떤 욕망이 다시금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한다.

책은 첫 장부터 대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지한 철학자로서의 소크라테스의 면모를 기대한다면 다른 책을 선택하라고 권고한다. 이 책에는 인생의 숨겨진 의미를 찾도록 해주는 멘토로서의 소크라테스는 어디에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자기검열을 강요하고, “악법도 법”이니까 세상에 순응해야 한다고 가르치던 꼰대들의 소크라테스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대신 등장하는 것은 악령의 목소리에 사로잡혀 세상이 진리라고 가르친 것들을 모조리 해체하거나 전복하려는 욕망의 화신이자 ‘정신질환자’ 소크라테스다. 따지고 보면 사실이 그랬던 것 아닌가. 아테네 법정은 ‘모두의 복리를 위해’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것 아닌가. 소크라테스에 관한 증언들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그는 어디서나 문제를 일으키는 말싸움을 일삼던 히스테리증자이자, 신으로부터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다고 떠벌리고 다녔던 과대망상증 환자로 여길 만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말하자면 이 책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던 어느 범죄자의 이야기이고,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도 신을 모독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선동가의 이야기이며, 결국은 스스로 진리의 정신병에 사로잡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플라톤이라는 강박적인 추종자에게 자신의 광기를 전염시켰던 병원균의 이야기이다.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신을 모독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선동가, 그럼에도 일단의 제자들을 매혹시킬 줄 말았던 아갈마의 화신이던 한 노인, 이 책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이 병적인 욕망 자체에 대한 해명으로 채워져 있으며 이를 통해 철학이 세계-권력에 대항하는 소수자의 또 다른 정신병적 욕망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라캉주의자인 저자는, 철학이란 철학자가 만들어낸 지식이나, 그것을 기록한 텍스트가 아니라 어떤 특수한 유형의 욕망이라고 주장한다. 이 욕망은 그렇다면 무엇을 향하여 우리를 몰아세우는가. 저자에 따르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권력의 강박증이 법/제도와 우리의 일상까지도, 나아가 우리의 무의식까지도 지배하는 정신병적 세계이다. 지배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 누구도 정상일 수 없는, 다만 권력을 가진 쪽이 정상이라는 규준을 가졌다는 환상을 획득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다수의 권력이 소수를 병적이라 치부하며 자신의 정상성을, 다수의 환상에 불과한 그것을 폭력적으로 강제할 뿐인 것이다. 철학이 하나의 욕망이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그러한 세계(와 그것이 강요하는 삶)를 변화시키려는 욕망이며,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의 권력에 대항하는 고함소리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흔들림과 우울과 충동을 가져오고, 또한 불가피하게 권력의 개입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얼마나 병적으로 매혹적인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사로잡혔던 히스테리와 편집증이 세계의 강박증에 반기를 드는 대단히 매혹적인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면 말이다.

철학은 어떤 특수한 유형이며, 이것을 전수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던 역사적 사건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다. 그는 상식과 고정관념의 이름으로, 다수의 행복이라는 환영을 위해 살해당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런 다음 아테네는 행복을 획득했는가? 저자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사태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다시금 아테네를 찾아와 유령처럼 떠돌기를 멈추지 않았고 잠든 플라톤을 깨웠다. 그런 다음에는 플라톤의 목소리를 통해 아테네를 들쑤셨다. 니체의 소크라테스, 푸코의 소크라테스, 라캉의 소크라테스 역시 동일한 것 아니었던가. 철학이란 바로 그러한 욕망의 출현과 전수의 과정이고, 그러한 욕망이 가진 병적인 구조가 아닌가 말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어떠한가. 책의 에필로그(「소크라테스는 어디에나 있다」)에 나오는 저자의 다음의 말이 그에 대한 답이 될 터이다.

“이 책의 1장 후반부 소크라테스의 히스테리적 욕망에 관하여 쓰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일종의 계시와 같다고나 할까. 내가 그토록 집중하여 탐사하고자 했던 철학적 욕망의 기원으로서의 소크라테스의 광기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고딩들에게서 그대로 발견되고 있었다. 세상이 뭐라 해도, 나는 나의 욕망을 세공하려 한다는, 도발적인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단지 흩뿌려지는 욕망이 아니라, 정밀하게 반복되는 방식으로 꼰대들의 담화가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소크라테스가 그들이었다, 고 나는 확신한다. [……]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방식으로 어디에나 있다. 그는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한 유형일 뿐이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이도록 만드는, 타자의 담화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순간 덮쳐오는 타락의 속도감이다. 그것이 만드는 환상의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세계의 환상에 대항하는 소수자의 환상…… 그런 다음에는 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저자

백상현

프랑스국립미술학교‘에꼴데보자르드발랑스’를졸업하고,다시파리8대학에서예술학을전공했다.파리8대학예술학과에서논문「외재언어적사유,빌비올라」로석사학위를,철학과에서논문「증상적문장,리요타르와라깡」으로박사학위를취득했다.고려대,이화여대,숭실대등에서정신분석과철학을강의했으며,'한국프로이트라깡칼리지'상임교수를역임했다.라깡의정신분석이론을통해미학,사회학,철학을재구성하는연구와저술활동에집중하고있으며,저서로는『라깡의인간학:세미나7의강해』(2017),『속지않는자들이방황한다』(2017),『라깡의루브르』(2016),『고독의매뉴얼』(2015),『라캉미술관의유령들』(2014)이있다.

목차

프롤로그:철학이라는정신병에관하여

1장:공백을탐닉하는히스테리적주체

소크라테스라는유령
이중의빠져나감
증상적,타락의지혜
법의문제1_언어에의한신체-국가의상징화
법의문제2_진단과봉합
법의문제3_강박증
토포스의강박증,아토포스의히스테리

2장:왜상을탐닉하는정신병적주체

보바리즘,허구의공동체
악령,다이몬.소크라테스의환청
환상과망상의차이
왜상anamorphosis.
왜상으로서의이웃,“네이웃을네자신과같이사랑하라”
소크라테스의내기

3장:죽음의해석학

반복강박Wiederholungszwang
양도trado
번역traduco
공백의해석학
반복을멈추는반복
애도를애도함

에필로그:소크라테스는어디에나있다

출판사 서평

“소크라테스는자신의자리를갖지않을뿐만아니라,
그보다는어디에도존재하지않았습니다.”

1960년11월16일의세미나에서자크라깡이한위의말은이책『나는악령의목소리를듣는다―소크라테스,철학적욕망의기원에관하여』를관통하는말이다.그런데다소모호하고어렵게도들리는이말이의미하는바는무엇일까.

우선이책이보여주는소크라테스라는인물과그를기원으로하는서구철학의모습은이제까지의인문학이그려왔던것과는선명한차이갖는다.지금까지서구고전철학에서다루어진소크라테스는그가말한것으로알려진언설(담론)을해설하는것으로,비록기행을일삼기도했지만이른바진지한철학적사유의단초를제공한,세계와인생의진리와의미를설파한기원적철학자의모습이었다.그런데책은처음부터이러한고정된,안정된이미지를전복시키는것으로부터시작한다.

그를히스테리증자로간주했던인물은자크라깡이었다.그의이론에의거하여저자가그려내는소크라테스라는인물은한마디로‘정상인’이아니다.말하자면소크라테스는히스테리적증상으로인한균열과파괴를추종한끝에부랑자로떠돌며세상을어지럽히고젊은이들을타락시켰다는죄목으로사형이선고되고집행된패배자이고,심지어“악령의목소리를듣는다”고스스로고백하는편집증환자,즉‘정신질환자’의모습이다.그의비참한최후로미루어이는극단적일지언정전적으로틀린진단은아닐수있다.(책에서도언급되어있지만,라깡만이아니라19세기프랑스의정신의학자루이프랑스와렐뤼LouisFran?oisL?lut가자신의논문「소크라테스의악마에관하여Dud?mondeSocrate」에서주장하려했던것도그것이었다.그렇다면서구고전철학의기원인동시에플라톤의스승이었던소크라테스가제정신이아니었다는사실을논증하는것으로우리가얻을수있는것은도대체무엇일까.

라캉주의자로서저자는소크라테스의병적인욕망자체에주목하고그것이무엇이었는지를해명하는것에집중하고있다.소크라테스가아테네를타락시키려한다는죄목으로고소당한직후자신을변호했던법정기록의형식인『변론』이라는텍스트에저자가주목한까닭역시거기에는철학적이론이아니라욕망의유형이제시되고있기때문이다.저자의의도와이러한태도는이책이철학에대하여취하는근본적인입장과도같은것일수있다.철학이란철학자가만들어낸지식이나,그것을기록한텍스트가아니라어떤특수한유형의욕망이라는주장말이다.저자에의하면,진리라는것은정신병적인어떤욕망을통해서만출현하여보존되고,전수될수있는것이라고말한다.철학이라는특수한실천이발명해낸것은진리에관한정신병적인욕망의실천,어떤실체의발견이나절대적이데올로기의숭배이기보다는새로움을추구하는창조적절차라는것이다.그리고이것을전수가능한것으로만들었던역사적사건이바로소크라테스의죽음이었다는주장이다.

아테네의유한성의세계관과법체계에대항하여자신의신념을굽히지않았던소크라테스의기행은당대의지식을장악한권력의입장에서는병적인것이었을지모른다.그런데,당시스스로‘정상’이라고간주하고그에게사형을선고했던세계,혹시그세계의정상성이란강박증적억압에의존하는환영적구성물에불과했던것은아닐까.도래할세계의보다확장된세계관에근거한다면,소크라테스의기행은현재의한계를초과하는욕망인동시에당대의권력을몰락으로이끈저항의실천이었던것은아닐까.저자는이러한물음을던지면서철학적욕망이란세계-권력의강박증적욕망에대항하는히스테리적욕망이거나편집증적욕망이라고,또한철학은세계-권력의정신병에대항하는소수자의또다른정신병적욕망이라고주장하는것이다.

타자로부터주어지고각인된우리자신의삶에관한소외된욕망의반복을멈추려는욕망,고정관념의권력이내안에서반복되는것에저항하려는욕망의반복,과거가반복되는것에대항하여미래를반복하려는욕망,이책이말하는철학적욕망이란바로그것이다.저자에따르면,이러한저항이또한반복의형식이어야하는이유는도래하는순간과거의권력이되어버리는미래의속성때문이다.모든새로움은실현되는순간낡은권력이되기때문에.소크라테스가스승이되기를거부했던것도바로이러한의미에서였다는것이다.자신의지식이제자들의삶속에서반복되는것을거부하기위해서.제일처음인용한라캉의말도이지점에이르면그의미를이해할수있을것도같다.

그것은세계를지배하는이데올로기-권력이주체의삶속에서반복되는것에저항하는반복이라는하나의정치-윤리적구조를또한드러내보여준다.이러한저항적반복은역사속에서반복되어왔다.예수와그의사도들사이에서구성되었던반복,고대그리스의예술과르네상스예술가들사이의반복,혹은세잔과피카소,그리고피카소와베이컨사이의반복.나아가프로이트와라깡사이의반복.서구문명의환상과신화를남김없이몰락으로이끌었던프로이트의죽음의언어를전유하는과정속에서그것을새롭게해석해냈던자크라깡의평생에걸친작업이소크라테스와플라톤의그것을정확히반복하고있다는것이다.

그리하여이책이말하는‘철학적욕망’이라는개념이우리모두의욕망에적용가능한하나의보편적형식에다름아닌것이된다.젊은이들을타락시킨죄로사형을선고받은어느철학자-소크라테스의욕망에대한탐사는그러한방식으로세계를바라보는하나의시점을,보다엄밀히말하자면아토포스적탈-시점을우리에게제공하게되는것이다.소크라테스라는서구철학사의영웅을히스테리증자,편집증환자취급하며시작되었던‘무례한’책의여정은그렇게우리자신을종착지로삼는다.저자는말한다.우리가우리자신이라고믿고있었던자아의이미지를죽음에이르게하고,그너머에서다른누군가가될수있게하지못한다면철학이도대체무슨소용이있는가라고말이다.철학은바로그것을가능하게만드는욕망이고,(강요된자아의)죽음에대한욕망이며,그런죽음을전유하여전혀새로운판본의세계를가능하도록만드는번역의기술이라고말이다.철학은우리자신의삶을전혀다른방식으로사유하도록만들어주는창조적해석학이며,우리자신의유한하며그래서소외된욕망을무한성에로개방해주는기술이다.어제와동일한오늘의시간을멈추게만드는어떤기술에관련된지식.철학은바로그것이다.

“라깡이질문을던졌던것처럼,‘악령의목소리’란소크라테스자신의욕망의목소리의반영이었던것이다.그의죽음이후플라톤이들었던목소리,[……]그것은자신을정상성의화신으로내세우는세계의지식과권력에대항하며스스로를기꺼이비정상이라자처하는철학적욕망의목소리였다.선한것이무엇인지를결정하는고정관념의권력에대항하여악의위치를담담히수용하는목소리이다.정상적이며선한세계에속한당신들의세계가갇힌유한성을돌파하기위한‘영혼의병’에기꺼이감염되고자했던악의꽃을든남자의목소리.이책의문장들은바로그와같은‘진리의병’에감염된자로서의소크라테스를해명하기위한짧은우회로의여정이었다.”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