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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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이라고 간주되지만, 그 과거란 현재를 합리화하는 데 동원되기 십상이다. 아니 현재의 시간마저 미래의 ‘희망’을 위한 것으로 취급되기 쉽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과거보다는 현재를, 현재보다는 미래를―우리는 역사를 그런 방식으로 배웠고, 시간의 감각을 그렇게 익혀 왔다. 어디 우리만 그렇겠는가. 이른바 서구의 역사철학이란 것도 온통 미래의 구원(혹은 진보)를 사유하는 데 바쳐진 것이었다. 그것이 신의 구원계획이든, 자연목적(칸트)이든, 이성의 간지(헤겔)이든, 심지어는 이것들에 의해 거꾸로 선 세계를 뒤집고자 했던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마저도 미래의 ‘계급 없는 세계’를 증명하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종말론적 종교를 닮게 되었다. 작년(2017)이 러시아혁명 100주년이고, 올해(2018)가 68혁명 50주년이라는데, 이 과거의 사건들은 오늘의 시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역사의 종말’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되지 않았는가. 더는 역사를 복잡하게 사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이제 자본주의라는 물신에게 오로지 우리의 운명이 매달려 있다는 것. 그래도 우리는 역사를 믿고 싶어 한다. 죽은 권력(박근혜)는 감옥에 있지만 산 권력(이재용)은 풀려나는 것이 불안하지만, 어제의 촛불이 오늘의 시간에 안도하며 내일을 믿는다. 이렇듯 우리의 시간 감각은 여전히 섭리의 미몽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안이함에 낯선 ‘역사의 천사’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면? 이 천사의 이름은 벤야민의 앙겔루스 노부스(새로운 천사)다. 그(그녀)는 미래의 시간을 향한 우리의 (선형적인) 시선의 덜미를 잡아 과거로 되돌리려고 한다. 이 천사는 오늘의 시간 속에서 망각되기 쉬운 위기의 순간에 포착된 과거의 상을 붙잡아 고통받고 억압당한 자들의 꿈을 소환해야 한다고 우리를 재촉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발터 벤야민이 남긴 철학적 유언―저 유명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의 핵심이다. 문제는 이를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숙제일 터.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은 독일에서 아도르노를 연구하고 돌아온 저자가 이 지난한 과제에 도전한 값진 시도라 할 수 있다. 책의 제사에 등장하는 전태일의 일기의 한 구절과 벤야민의 글귀가 이 책이 겨냥하는 마주침을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저기 쓴 논문을 묶은 책이 아니라 서구 역사철학을 관통하는 테마에 집중했다는 점에서도 돋보이는 연구 성과로 보인다.
저자

한상원

저자한상원은서울시립대학교철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맑스의물신주의와이데올로기분석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독일베를린훔볼트대학교에서아도르노의정치철학연구로철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
「상품과알레고리―맑스와벤야민의환등상개념」으로서울시립대도시인문학연구소에서수여하는‘도시인문학우수논문상’을수상했으며,독일관념론과비판이론,정치철학과미학을횡단하는관심속에연구를진행하고있다.
출판된책으로는『KonstitutiveNegativit?t.ZurRekonstruktiondesPolitischenindernegativenDialektikAdornos』(transcript:2016),옮긴책으로는하르트무트로자외지음,『공동체의이론들』(라움:2017)이있다.
현재충북대학교철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며:역사의두천사

1장아우구스티누스:신의섭리속에계시되는역사

1)고통속에존재하는신의증거
2)창조와영원,그리고신의절대주권
3)두개의왕국,그리고공동선의비밀
4)종말과구원
5)아우구스티누스의공백
[보론1]코뮨주의와공동선이념의세속화

2장맑스:역사적유물론과해방서사의등장

1)세속화된근대:계몽과진보
2)청년맑스와세속화의과제
3)역사적유물론의전개:철저한세속화로의방향전환
4)진보와반복.굴레를넘어
[보론2]모더니티,세속화된종교적세계:맑스의물신주의비판과세속화

3장벤야민:지금여기,억눌린자들의메시아

1)맑스(주의)와벤야민
2)유물론과신학의마주침
3)세속화와의미구조이동의두가지방식
4)진보와반복,영원회귀,그리고파국
5)정지상태의변증법:각성의순간과진리정치
6)과거의구원과‘지금시간’:억눌린자들의현재

나오며:오늘날세속화의과제

출판사 서평

과거가불우했다고지금과거를원망한다면불우했던과거는
영원히너의영역의사생아가되는것이아니냐?
―전태일의1969년12월31일일기에서


자신의과거를강압과궁핍에서태어난산물로고찰할줄아는자만이,
현재의순간에과거를자신을위한최고의가치로
만들수있는능력을갖추고있다할것이다.
―발터벤야민,『일방통행로』


#에피소드하나:공산주의냐,코뮤니즘이냐.
한외국정치철학자의글에나오는communism이란단어번역을둘러싸고언쟁이벌어진다.어떤사람이꽤단호한표정으로쿄뮨주의라고번역해야한다고주장한다.이유는좀궁색하다.사람들이공산주의라는단어에거부감을느끼기때문이란다.코뮨주의라부르면‘불우했던’과거가덮어지나.어떤역사관이혁명을기대한인민을배신했는지를묻는노력은피한채.

#에피소드둘:성공한항쟁인가,배신당한항쟁인가
어느막걸리집에앉은‘386꼰대’로보이는남자들이목청을높여떠들고있다.영화<1987>이미처이야기하지않은자신들의무용담이다.그(그녀)들이있어오늘의역사가나아진것은맞다.정작궁금해지는것은그들의이야기속에는자신들을거리로내몰았던‘강압과궁핍’의이야기는없다는것이다.그것은두말할것도없이박정희-전두환으로이어지던한국자본주의체제가가져온강압과궁핍이었다.그리고그것은그시대의청년들에게체제를넘어서는‘어떤민주주의’,즉혁명을꿈꾸게했다(적어도그시대의자료들에는그렇게적혀있다).강압과궁핍에서태어난그꿈을이야기하지않으면오늘우리가목격하는‘민주주의’는단지숭고의대상으로전락하고말것이다.

100년을더거슬러올라가,맑스가『루이보나파르트의브뤼메르18일』을쓰고있다.1848년2월혁명의결과로성립한프랑스의회공화정이왜4년도안되는짧은시기동안루이보나파르트라는기괴하고평범한인물의정치쿠데타에의해독재체제로귀결될수밖에없었는지를그책에서분석한다.청년시절역사는‘합법칙적으로’시간에따라진보할것이라믿었던그는역사의반동을목격하면서,“역사는되풀이된다.한번은비극으로,한번은소극으로”라고쓴다.
맑스사후사회주의혁명이카우츠키일파의득세로사회민주주의로체제내화되는동안히틀러가등장하고,스탈린의소련이나치의독일과불가침조약(1939년의몰로토프-리벤트로프조약)이준충격과파국으로치닫는현실을예감하면서수용소에서풀려난벤야민이「역사의개념에대하여」를쓰기시작한다.유고로남겨진이글은사후출간되고서도주목받지못했는데,벤야민역시자신의글이‘엄청난오해’를불러일으킬것이라는예감을한바있다.
그후로도지금까지,그‘오해’는지속되고있다고보아도좋을것이다.이른바‘정통맑스주의자’들은벤야민을좋아하지않는다.맑스나엥겔스가수행한종교비판을되돌려종교적신비주의로후퇴시키거나헷갈리게만들었다는것이이유다.한국에서는사정이어떨까.벤야민은한국에서도주로‘문화적’으로,다른말로하면‘탈정치적’으로읽혀왔다.어쩌면이것이맑스주의를고루한것으로,현실에서어떤정치적역능을지니지못한것으로만든것과혹시는연관을맺고있는것은아닐까.
『앙겔루스노부스의시선―아우구스티누스,맑스,벤야민.역사철학과세속화에관한성찰』은맑스주의역사철학안에쌓여있는그러한고답과정체를돌파하려는한젊은맑스주의정치철학자의야심찬기획으로쓰인역작이다.그것은한마디로맑스주의로부터의일탈이나후퇴가아니라오히려후기맑스가수행하고자했던물신주의비판의단초들을벤야민의사유와연결시킴으로써더급진적으로갱신하고자하는노력으로읽힌다.그는이것을서구역사철학의전체를대상으로수행해냄으로써사유의폭과깊이를동시에얻어내고있는것이다.

발터벤야민에이르기까지서구역사철학은두개의상이한역사관사이의대립구도속에서전개된다.하나는유대-기독교메시아주의전통의구원론적-종말론적역사관이며,다른하나는역사적유물론이라는해방서사로서의역사관이다.책은먼저서구기독교역사신학의사유가역사철학에서이루고있는이중적전제에서출발한다.이이중성이란이사유가억압받고고통받는사람들의구원이라는과제를제시하지만,동시에이과제는오로지역사의종말또는최종목적의실현이라는미래의시점으로이월된다는사실을의미한다.이이중성과그것이이루는공백은서구역사철학의전개과정에서핵심적요소를형성한다.
서구역사철학을관통하는시간관의모체인아우구스티누스의기독교종말론은직선적시간을상정하여역사를목적을실현해나가는과정으로이해한다.이러한시간관은근대진보사관에서도수용되는데,한편으로근대적역사이해는기독교종말론역사관을‘세속화’하고자했으나,이는기독교역사신학의기본골격을그대로유지하는가운데이루어지는이중성을지닌다.현재의의미를미래에도래할최종적인목적의실현에서찾으려는이러한관점이갖는맹점은그리하여역사적과정속에서희생되는자들,고통받고억압받는자들의관점이소실된다는데에있다.
이에비해맑스와엥겔스가전개한역사적유물론은이러한목적론적,변신론적역사관에대해정당한항의를제기한다.즉역사를목적의실현과정이아니라,억압받는집단의해방의과정으로이해해야한다는것이다.그런데역사적해방과정의필연성을법칙적으로체계화하고자했던이들의시도들속에는다시금진보사관의요소들과뒤엉켜있는기독교종말론의특정한구조들이발견된다.이러한난점은어떻게이해될수있을까?책은근대진보사관이기독교종말론을,다시역사적유물론이근대진보사관을세속화했던방식과그각각의문제점을추적한다.진정한세속화는유대-기독교메시아주의에서강조된억압받는사람들의‘구원’을다른방식으로,즉역사적고통의‘기억’을통해반복되는파국의굴레에서벗어나야한다는성찰로연결하려는것이다.발터벤야민의독특한역사적사유는바로이러한맥락에서적극적으로해석되고있다.저자의지적처럼,‘세속화’라는주제를정치철학의논의과정에서핵심적인것으로만든것은조르조아감벤의공로이다.하지만저자는아감벤등벤야민의계승자들이지닌한계를염두에두면서현대정치신학자들이놓치고있는맑스의상품물신주의분석―즉종교적체제로서형이상학적-신학적기반위에서있는자본주의적사회관계에대한비판과벤야민의핵심적인글「역사의개념에대하여」을연결시키는작업을수행하는것이다.이는‘맑스와세속화’라는,아직(한국)학계에서진지하게던져지지않았던주제에대한시초적인작업이기도하다,실상벤야민이‘세속화’라는주제를도입한것은자본주의라는‘종교적’체제를비판하려는관심에서였다.보편화된오이코스의체제에서신성불가침한‘사유재산’의영역에대한유사-종교적믿음이나오는것은어찌보면당연한일이다.그리고그것은극단적인형태가우리가살아가고있는신자유주의인것이다.속류진화론적,실증주의적진보사관을벗어나맑스주의의갱신을통해물신주의비판을통한급진적세속화의과제가갈수록긴요해지는현실이다.이급진적세속화의목적은물론하나이다.고통받고억압당하는사람들의구원을지금까지와는다른방식으로,즉역사적고통의‘기억’을통해반복되는파국의굴레에서벗어나야한다는,한가지목적을위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