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페미니즘 (일차원적 여성)

도둑맞은 페미니즘 (일차원적 여성)

$13.00
Description
한때 페미니즘은 '혁명보다' 더 포괄적인 해방을 추구하는 정치적 기획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되었지만, 정작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은 고갈된 말이 되어버렸다면?

1980년대의 반反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을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려고 했다면,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여성의 적들은 페미니즘의 언어를 훔쳐서 여성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나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 가령 페미니즘의 언어는 이제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고, 노동시장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착취를 은폐하기 위해 활용된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텅 비게 만든 여러 도둑들 중에서, 특히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의 이데올로기와 소비자 자본주의를 가장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전자가 ‘노동의 여성화’를 통한 유연한 착취를 마치 여성해방의 주요한 성과라도 되는 양 선전한다면, 후자는 자본주의라는 억압의 구조를 변혁하지 않고서도 여성이 해방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과연 더 많은 여성 기업가를 배출하는 것이나 여성들을 위한 쇼핑천국을 새로 짓는 일 따위가 궁극적으로 여성의 해방을 가져올까?

파워는 언젠가 페미니즘이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실존의 양식의 발원지였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혁명보다 더 포괄적’이었던 원래의 급진적 기획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을 해방적인 기획으로 만들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질문할 필요가 있다. 〈도둑맞은 페미니즘〉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바로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출세와 쇼핑 이외에도 여성들에게 희망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는 일은 언제나 유익하다.
저자

미셸퍼거슨

해설미셸퍼거슨MichaeleFerguson
현대민주주의이론과페미니즘정치이론분야에서활발하게활동하고있는미국의정치학자다.〈민주주의를공유하기〉라는저서에서퍼거슨은‘민주주의정치는반드시참여자들간의일정한공통성(공통의국적이나공통의문화,합의된핵심적가치등)을필요로한다’는기존정치이론들의주요가정을기각한다.대신에퍼거슨은언제나불협화음을일으키고예측불가능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새로운세계를창조하는정치적자유의힘을찬양한다.최근에는신자유주의페미니즘의부상에맞서페미니즘의재급진화를모색하는새저서를준비하고있으며,미국의페미니스트정치이론가아이리스매리언영의정치사상에대한선집을편찬하고있다.현재콜로라도대학정치학과의부교수로재직하면서서구근현대이데올로기,페미니즘정치이론,칸트이후의정치이론등의과목을가르치고있다.

목차

한국어판출간에부쳐
0.0시작하며
0.1평등?
0.2사라페일린,혹은어떻게페미니스트가되지않을수있는가?
0.3매스꺼운매파페미니즘의등장
1.0노동의여성화
1.1당신은걸어다니는광고판이다
2.0소비자페미니즘
2.1페미니즘™:속임수라는동전의양면
2.2소비문화:영화속의소녀들
3.0특권화된노동양식으로서의포르노그래피
3.1머니샷:포르노그래피와자본주의
3.2사회주의프로그램은인간의감각적쾌락을배제해서는안된다!
3.3성적좌파에서축소주의적수용까지
4.0맺으며
해설/페미니즘을도둑맞는게가능할까?
옮긴이의말/페미니즘,혁명보다더포괄적인
인명해설

출판사 서평

〈백래시〉이후의페미니즘전쟁
2009년에출간된파워의〈도둑맞은페미니즘〉은미국과영국에서페미니즘을둘러싼총성없는전쟁의양상이어떻게변화했는가를비판적으로조명하는책이다.비록분량은길지않지만,이책은신자유주의시대의노동을둘러싼인간조건의위기와정치적가능성으로서의페미니즘이처한위기가어떻게맞물리는가를예리하게짚어낸다.
1980년대까지만해도페미니즘에대한반격은반동세력이진보주의자들을공격하는진영싸움의형태를띠고있었다.레이건과대처의보수화바람을타고반동세력은70년대페미니스트들이이룬성취들을전면적으로부정하고자했다.얼마전국내에도소개된〈백래시〉에서수전팔루디가상세하게묘사했듯이,학자와언론인,의사들이합세한여성들에대한공격은전방위적으로이뤄졌다.이들의주장에따르면,젊은이들이결혼을하지않는이유는여성들이교육을받았기때문이며,출산율이저조한것은여성들이일을하기때문이고,아이들이적절한보살핌을받지못하는이유는엄마들이이기적으로변했기때문이었다.가족이라는전통적가치로무장한반反페미니스트들은,여성들에게자상한엄마나순종적인아내의역할로돌아갈것을종용했다.
하지만1990년대를기점으로페미니즘을둘러싼전쟁의양상은확연하게달라졌다.블레어와클린턴이대변했던진보적신자유주의의시대정신은비록노동이나경제적불평등문제의해결은차후로미뤄두었지만,다양성과여성인권,다문화주의는전향적으로끌어안았다.덕분에성정체성/지향이나인종,출신등에상관없이능력에따라공평한기회가제공되어야한다는발상이적어도표면적으로는상식과규범으로자리잡게된다.이에발맞추어점차공적인토론장이나미디어에서노골적으로차별을부추기는혐오표현들은사라지게되었다.언젠가부터비차별주의와다양성에대한포용을강조하는진보적신자유주의자들에게성차별주의자들이나인종주의자들은더이상상대가되지않는것처럼보이기시작했다.그러나이것이여성의적들에게페미니즘이궁극적으로승리를거두었음을의미한것은아니다.이제공론장에서패색이짙어졌다고판단한적들은무조건페미니즘을거부하는대신에,페미니즘의언어를훔쳐서자기것으로삼는전략을채택했다.파워의〈도둑맞은페미니즘〉은이새로운전략이본격화되는1990년대후반부터2000년대초반까지를비판적검토의대상으로삼고있다.

누가페미니즘을훔쳤나
페미니즘의언어를누군가가훔쳤다면,도대체누가도둑인가?파워의주장에따르면,도둑은한둘이아니고,도둑질의방식도제각각이다.안타깝게도이새로운싸움에서는보수주의자들은물론이고진보적인자유주의자들조차여성의편이아니었다.
이책에등장하는첫번째도둑은군사주의매파들이다.2000년대초반,이라크나아프가니스탄같은이른바‘불량국가’에대한군사적공격을정당화하기위한근거가필요할때,이들은매스꺼울정도로감상적인방식으로페미니즘의언어를소환해왔다.느닷없이페미니스트투사로거듭난조지W.부시행정부의주요인사들은‘탈레반과이슬람근본주의자들에게손톱을뽑혀가며신음하는중동의여성들을외면할건가!’라고외치면서전쟁에대한지지를호소했다.하지만같은기간부시는낙태정책을지원하는국제가족계획단체들에대한재정지원을중단했을뿐만아니라‘여성에대한모든형태의차별철폐에관한협약’을비준하는것도거부했다.
두번째도둑은오로지여성을권력의최상층에올리는것만이여성해방의길이라고외치는언론과미디어다.이들은여성의실질적삶의조건을개선하고차별과억압의근본적인구조를변화시키는문제는뒤로제쳐두고,현존하는위계제안에서권력의상층부에오른여성에게만주목한다.하지만마가릿대처나콘돌리자라이스가그러했듯이,이들은때때로다른여성의삶을파탄에이르게만든정책의집행자가여성지도자였던경우도적지않았다는사실을애써외면한다.이들의입장에따르면‘여성의삶을실질적으로변화시킬대책은무엇인가’라는구조에대한질문은‘고위직에몇퍼센트의여성이있는가’라는대표에대한질문으로손쉽게환원될수있다.기업의여성임원이나여성고위공무원,여성정치인은이제그들이여성이라는사실과그자신들이차지한지위에따라서만평가될것이다.‘과연고위직에진출한여성으로인해평범한여성들의삶이더나아졌는가’라는질문은효과적으로사라져버린다.
이책이고발하는세번째도둑은여성에대한유연한착취를마치여성해방의주요한성과라도되는양포장하는현대자본주의노동시장의이데올로기다.이이데올로기는멋지게차려입은성공한전문직여성의이미지를내세우며자기정당화를꾀한다.여전히여자들이남자들에박봉의질낮은일자리에머무르는경우가많다는사실은,구조적문제라기보다는자신의능력과선택에따라감수해야할개인의문제로이해된다.임신과출산,양육의부담도여전히여성에게맡겨지지만,그로인해여성이받을수있는고용상의불이익은개개인이책임져야할선택의결과로여겨진다.한편으로는과거까지여성노동만의특징이었던고용의불안정성이성별을가리지않고보편화되었다.이렇게모두의노동을‘여성화’시켜버린노동시장의이데올로기는,모든노동자들이자기가가진모든것을속속들이자본화함으로써스스로를‘걸어다니는이력서’로빚어낼것을강요한다.현대의노동자들은언제어디서나자기자신을광고해야한다.신체적외양이나태도같은개인적인영역은물론이고오프라인과온라인의인간관계마저빈틈없이관리하면서,자신이언제나준비된노동자임을증명해야한다.자기관리를열심히하는전문직여성이현대노동자와여성해방의모범적표본이되는것은당연한일이다.그러나그화려한이면뒤에는언제나예기치못한임신이나가정에서의문제로고용주를실망시키지않기위해전전긍긍하는임시직여성노동자가있다.
이책에서가장중요하게다뤄지는네번째도둑은여성의해방이란오로지더많은상품을살수있는구매력을의미한다고주장하는이른바‘소비자페미니즘’이다.2000년대초반에미국에서특히성공을거둔이부류의페미니즘은가부장제적자본주의라는억압의구조를변혁시키지않고서도여성이해방될수있다고광고한다.소비자페미니즘은한때는여성에대한구조적억압을극복하려는집단적노력이었을페미니즘을,현대자본주의가모범으로여길만한개인주의적이고자유주의적인성공의이상으로교체하고자한다.소비자페미니즘의새로운정의에따르면페미니스트란자신의능력과매력을믿고성공적으로경력을개발하고이끌어가는여성이며,그러한성공을바탕으로원하는재화들을아낌없이구매함으로써누구보다도행복하고충만한삶을사는여성이다.그동안“가부장제를처부수자”같은한때는급진적이었을페미니즘의구호는분홍색티셔츠나배지,에코백등에새겨져온라인쇼핑몰의상품목록에오른다.이제는자기계발서가되어버린페미니즘도서와함께이상품들은행복한쇼핑천국의거주자들에게호소할것이다.

일차원적페미니즘을넘어서
요컨대파워에따르면,오늘날의페미니즘은제국주의적군사개입을정당화하고,노동시장에등장한새로운유형의착취를은폐하기위해활용된다.자기효능감을증진시키는패션아이템이나화장품,성형수술기법을광고하기위해서는물론이고,남성중심적조직문화안에서예외적으로살아남은여성지도자나기업인에게찬사를보내는데도‘페미니즘’이라는단어는감초처럼빠지지않는다.이제페미니즘은모든것을의미하지만동시에그렇기때문에아무것도의미하지않는말이되어버렸는지도모른다.페미니스트들의주장은더이상남자들이나기득권에게두려움을불러일으키지않는다.〈가디언〉지의편집장캐서린바이너가말하는것처럼“페미니즘은이제참된평등을위한싸움을제외한모든것들을위해활용된다.”파워는상황이이지경에이르렀는데도“어떠한체계적인정치적사유에도착수하지않는것처럼보이는오늘날의긍정적이고낙천적인페미니스트들”을비판한다.
파워는가부장제와자본주의를정면으로겨냥하지않고여성개개인의해방을이야기하는페미니즘은‘일차원적’인것에그친다고주장한다.물론현존하는구조적억압의문제를건드리지않고서도여성이스스로가원하는것을선택하는일은여전히가능할지모른다.그러한여성의자발적선택을페미니즘의이름으로정당화하는작업에는적지않은의의가있을것이다.하지만파워가볼때오늘날의일차원적페미니즘의문제는,그러한작업에만족한채더이상문제의식을진전시키지않는다는데있다.〈일차원적인간〉의저자허버트마르쿠제의표현을빌리자면,여성개개인이“자신에게부과된필요를자발적으로재생산한다”는사실이,그자체로개인의자율성이나해방으로이어지는것은아닐것이다.억압적이고위계적인체계가모범적이고바람직하게여기는것들이여성들에의해자발적으로선택된다는사실은,“개인의자율성”이아니라오히려“통제의유효성”을증언한다.파워는페미니즘이어떻게하면지금의‘일차원성’을벗어던지고,제국주의와소비주의라는도둑들로부터자신의위대한가능성을되찾아올수있을지고민해보자고제안하고있다.

2009년의영국과미국,그리고2018년의한국
과연2000년대초반의영국과미국사회에대한분석을담은이책의문제의식이,출간된지십년가까이지난한국에서도유효하다고할수있을까?파워가묘사했던2000년대초반의상황은2018년에보다심화된형태로반복되고있다.그녀의비평이지닌놀라운장점은이시대뿐만아니라오늘날페미니즘이직면할새로운도전들에대한여러핵심적논점들을포괄하고있다는데있다.
박근혜전대통령의당선에서탄핵에까지이르는과정은페미니즘이경험한가장황당한도둑질의사례들중하나로기록될것이다.박근혜를당선으로이끌기까지그녀의인기를뒷받침했던것은박정희전대통령이라는전근대적군주에대한향수였다.그녀의당선과페미니즘정치의성취는전혀무관했다.하지만탄핵의과정에서그녀가‘여성’이라는사실은유독부각됐다.우리는촛불시위라는위대한저항이이끈헌정사상초유의평화적이고민주적인탄핵의과정에서,한번도‘여성’으로서활동한적이없는한우파정치인의몰락이‘여성정치’를탄핵하는근거로활용되는반동적흐름을목격했다.
같은기간온라인에서는페미니즘적가치를표방하는여초커뮤니티들이큰성공을거두었다.이에힘입어페미니즘서적출판이나페미니즘연구소후원,티셔츠판매등을위한크라우드펀딩이연이어성사되었다.또한온라인커뮤니티와SNS를통해공유되던성폭력피해여성들의경험담은여성들간의연대의식을구축하면서최근의미투운동으로이어지는주요한계기를마련했다.또한여성의권리에대한대중의관심들이높아지면서여러페미니즘서적들이서점의베스트셀러목록에올랐고,낙태죄폐지와차별금지법입법같은중요한의제들이활발하게논의되기시작했다.박근혜를파면하고치러진대통령선거에서더불어민주당의문재인대통령후보는급기야‘페미니스트대통령’이되겠다고선언하면서꽤포괄적인여성정책패키지를내놓기도했다.얼핏한국은미국의1970년대와비견할만한페미니즘의대부흥기를맞이하고있는것처럼보인다.
그러나좀더자세하게들여다본다면상황이희망적이지만은않다.자칭‘페미니스트’대통령은여성계의요구에그리잘반응하지않는것으로드러나고있다.저서에서저열한젠더의식을드러낸탁현민행정관을끝끝내감싸는한편,낙태죄의폐지나차별금지법도입에대해서계속해서유보적인태도를고수하고있다.대선후보때부터젠더이슈에대한보수기독교계의반발을계속해서의식하는모습을보이더니,급기야‘성평등이냐양성평등이냐’라는용어사용의문제를놓고,여성부장관이보수기독교계의지도자들을방문해해명하는굴욕적인모양새를연출하기도했다.외교부와고용노동부,환경부,보훈처등의수장을여성으로임명한것은일견진보라고할수있겠지만,문재인정부가표방하는페미니즘은보다많은여성을고위직에배치하겠다는제한적인약속안에머물러있는것으로보인다.
문재인정부의전략이2000년대초반영국과미국의자유주의자들처럼페미니즘의언어를훔쳐서스스로를진보적인이미지로꾸며내는데초점을맞추고있다면,1980년대의백래시나2010년대의포퓰리즘을연상시키는흐름도있다.영국과미국에서반反페미니즘을주도하는세력이대체로우파였다면,한국에서는그러한흐름에좌우가없다는게특징적이다.‘나는꼼수다’라는영향력있는팟캐스트의진행자였던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