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문단과 시문학사 : 이경호 평론집

전환기 문단과 시문학사 : 이경호 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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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80년대 이후의 정치적 전환기와 21세기의 문화적 전환기에 한국시문학이 변화해온 양상을 살펴보되, 1980년대의 경우는 시문학사와 문단 체험기를 함께 기술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 책을 구성하는 글들은 ‘전환기’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서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와 제3부는 각각 21세기에 들어선 현대시와 1980년대 한국시문학사의 전환기적 성격을 살펴본 글들인데, 특히 3부는 『현대시학』에 「시집으로 살펴보는 현대시문학사」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것이다. 그리고 제2부는 최근 2~3년 동안에 교보문고에서 발간하는 문예지 『대산문화』를 비롯한 몇 군데 잡지에 연재했던 필자의 문단 체험 수기를 정리한 것이다.
선정 및 수상내역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
저자

이경호

이경호는1955년에부산에서태어나서서울에서성장했다.고려대영문학과와같은대학원박사과정을수료하고1988년『문학과비평』에황지우론을게재하며평론가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현대시』와『현대문학』기획실장,『작가세계』주간을역임했다.서울대와고려대대학원등에서비교문학과문학평론강의를했다.저서로『문학과현실의원근법』『문학의현기증』『상처학교의시인』『사랑의황금률』등이있다.2010년대중반부터현재까지백화점과기업체에서주관하는인문학강좌에서문학과문화와영화를아우르는교육프로그램을진행하고있다.

목차

머리말판도라상자에갇힌현대시·5

제1부전환기의시론

전환기의개념시학과서정의획일화현상·20
서정적자아와다른서정의주체·32
현대문명의공간에대한비판적상상력·39
꿈과리듬을잃어버린현대시·52
자유로운언어와몸의축제·61
―김혜순론

제2부전환기문단의풍경

황재우로부터황지우로의기행·82
서울예전문창과풍경·101
―최인훈과오규원
1980년대후반기문예지와등단상황·118
아궁이샘물시인과작가세계탄생·127
―최승호와의인연
이름의추억과현대문학죽비소리·133
『현대시학』과『현대시』와미당과의만남·139
점퍼시인과트렌치코트기자·145
―황학주와김훈
뒤바뀐평론집과쑥대머리시인의죽음·153
해체시와쇠죽가마의혈투,그리고김종삼·159
조세희의하얀저고리유감·164
인사동풍경·170
―삼육학원과관훈미술관과정진규

제3부전환기의시문학사―1980년대대표시집을중심으로

1980년대는시의시대였다·180
―시집으로읽는1980년대시문학사총론
무엇을위한파괴의시학인가·192
―황지우시집,『새들도세상을뜨는구나』
체위를바꾸고싶은시쓰기·203
―이성복시집,『뒹구는돌은언제잠깨는가』
무기로서의시세계·214
―박노해시집『노동의새벽』
즉물성의시세계·226
―최승호시집『대설주의보』

출판사 서평

개념예술의아이디어를찾아내는원동력은호기심이다.그리고호기심과관련하여판도라상자의속성을상기할필요가있을터이다.판도라상자의핵심은뚜껑이고,판도라상자의뚜껑은가벼운것들을가두는데필요한장치이다.유감스럽게도예술가들에게가장호기심의대상이되는것들은뚜껑을열어보는순간,휘발되어버리는이가벼운것들이다.그야말로‘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들.가벼운것들이예술가들을매혹한다.판도라의상자속에는그렇게매혹적이면서가벼워서우리일상속으로휘발되어버리는것들로가득하다.

제우스를비롯한그리스신들이판도라를통해서인간에게악의적으로전달한불행의선물들은,그렇게매혹적이면서가볍게처리될수있는것들이었다.판도라가‘새것’의상징이라는점도돋보인다.모든예술,그것도현대의개념예술에서는오직새것만이중요하기때문일것이다.누가최초로아이디어를발견해서작품으로선보였는가가예술적가치의전부라고해도과언이아니기때문이다.판도라의뚜껑은이렇듯예술가들의‘새것콤플렉스’를부추긴다.

이책은한국시문학사라는판도라상자의뚜껑을열고‘전환기’라는공통의주제아래서세부분으로나뉜다.제1부와제3부는각각21세기에들어선현대시와1980년대한국시문학사의전환기적성격을살펴본글들인데,특히3부는『현대시학』에「시집으로살펴보는현대시문학사」라는제목으로필자가연재했던글들을묶은것이다.그리고제2부는최근2~3년동안에교보문고에서발간하는문예지『대산문화』를비롯한몇군데잡지에연재했던필자의문단체험수기를정리한것이다.

1980년대는필자자신인생의중요한전환기였다고진술하고있다.그것은이경호평론가에게주어진운명같은것이었다.필자의삶이걸어가야할방향으로문학을선택하고문단에첫발을내디딘시기였기때문일터이다.1988년에등단한이후로필자는문학평론가로,때로는문예지편집자나기획자로수많은문인들과문단의사건들에접촉해왔었다.그것들에대한체험기록을에세이로풀어낸제2부의글들은,사소하거나사소하지않은징후들을내장한우리문학의원체험이나참고자료나문학적연대기로간주하여도무방할듯하다.필자의말을빌리면,이에세이들은우리문학에서전기문학이나문학인에대한참고자료의부피가넉넉하지못한현실을되돌아보며,작업한결과물이라는것이다.그렇지만평론집과산문집을통합하는책의구성방법을고민한결과였고,한국문단사의소중한기록이며,자산임에는틀림없는사실일것이다.

책속에서

제1부 전환기의시론


전환기의개념시학과서정의획일화현상


“재귀적관광”이란독특한용어가있더군요.문화평론가진중권이경인운하의유람선에서바라본풍경을비아냥거리면서재치있게붙여본명칭입니다.이용어에담긴뜻이우리가오늘살펴보려고하는‘현대시의획일성’문제에중요한단서를제공하는듯싶어서진중권이재귀적관광을언급한대목을읽어드릴까합니다.

얼마전지인에게서‘경인운하’의유람선얘기를들었다.유람선을타고아무리운하를거슬러올라가도보이는건양옆의콘크리트둑.얼마나볼게없던지유람선에서고작둑위를달리는자전거만구경하다돌아왔단다.흥미로운것은그다음대목이다.볼게없기는자전거탄이들도매한가지.그들은유람선을구경하더란다.구경을하면서구경을당하는,‘상보적’유람,‘재귀적’관광.두개의손이서로상대를그리는에셔의작품을닮았다.
-「각하의삽질미학」,『시네21』857호

이대목에서나의눈길을사로잡은내용은자연을인위적으로가다듬으면볼거리가많아지는게아니라오히려볼거리가빈약해진다는사실에있지않았습니다.진중권도흥미로운것이라고지적하는문제는빈약한볼거리의‘놀라운실태’에자리잡고있기때문입니다.달라진경치를구경하러나온사람들이유일하게찾아낸볼거리가‘사람구경’이라고하는기막힌현실이바로‘전환기의서정시’가처해있는착잡한현실을시사해주는점이있다는생각이들었던것입니다.삶의현실이나자연을시의볼거리로삼던우리서정시에서언제부턴가삶의현실이나자연의자취가사라져버리고그자리를다른볼거리가차지하게되어버린상황이떠올랐다는말입니다.
전환기서정시의다른볼거리란우리가오늘이자리에서논의해야할‘내면폐쇄징후’를뜻합니다.시인이삶의현실이나자연을서정의대상으로다루기보다자신의시학이나시쓰기자체를서정의대상으로삼는시쓰기.시인의시쓰기에대한‘재귀적관광’,혹은시쓰기의자기회귀현상.우리는이런현상을‘메타시’라고이름붙일수도있을것입니다.현대시사에서일찍이‘거울’을이용한내면으로의‘재귀적관광’을시도한이상의경우가최초의사례라면‘자아’를대신하여‘주체’를내세우는‘미래파’시인들의작업은가장최근까지전개되고있는시쓰기의자기회귀현상일것입니다.
앞의인용문에서진중권은사람의손길(‘삽질’)이자연이라는대상을걷어내고사람의자취만확인하게하는현실을네덜란드화가인모리츠코르넬리스에셔의작품「그리는손」의풍경에비유하고있기도합니다.두개의손이서로를그려내고있는풍경을보여주는이작품은그림의대상이혼란스러워지고있는현대의상황을암시하고있습니다.미술을비롯한현대예술이객관적으로다룰수있는대상을상실하거나회피하고있는정황,그리고그에대한대안으로예술이나예술가자신의내면을대상으로삼아야하는정황이암시되고있는것입니다.이러한정황역시‘메타예술’의성립조건입니다.
에셔의「그리는손」은메타예술의존재조건을떠올리게만들지만,동시에메타예술의존재가치를반성하게만들수도있다고생각합니다.미술가의손이내면으로만수렴될수없는예술의특정한존재조건을일깨우고있기때문입니다.예셔가‘그리는손’을그리려고한것은예술의역사에서손으로대표되는육체가감당해온‘장인’의역할을상기하게해줍니다.
리처드세닛이라는사회학자는『장인』이라는저서에서아방그르드화가인마르셀뒤샹이남자소변기를작품의오브제로삼는순간장인의예술에서중요한전통으로유지되어온아름다움의가치는상실되었다고안타까워합니다.소위‘개념미술’이주목받으면서장인의예술작업을대표하는손보다‘머리’가중요한창작의역할을감당하게되었기때문이죠.세닛은에셔가주목했듯이“현대문명이잃어버린손”이라는화두를떠올리고있습니다.세닛은특히“손과머리사이의긴밀한관계”를강조합니다.‘개념’미술을주도하는지성의역할을감성과연계하고다시몸전체로확장하는구체적인작업을수행할수있기때문입니다.
저는2000년대중반부터우리시단에서주목을받기시작하여이제는중요한성과로자리매김하고있는‘미래파’(‘뉴웨이브’혹은‘다른서정’)의작품들이간직하고있는속성을비판적으로살펴보기위하여이러한세닛의주장을참고하고싶습니다.무엇보다도미래파의시들에‘개념’시학의흔적이여실하기때문입니다.
그런데이들의시를후원하는많은같은세대평론가들은그들의작품속에서중요한요소가‘감각’이라고주장합니다.나는그들의시에표현된감각이많은경우에‘개념화된감각’이라고생각합니다.그것들은때로는하위문화에서쉽게접할수있는‘정보화된감각’이거나‘자폐적인관념에덧칠된감각’일때가많습니다.더욱착잡한경우는감각의문제를프랑스철학자인랑시에르의주장과연계하여논의했을때생겨났습니다.‘시와정치’라는주제로논의된여러입장들속에서감각의새로운가능성을모색하고표현하는작업이작품의성과와연계되지못했기때문인데요.‘감성의재분할’이라는명분으로한국시의새로운정치적상상력을표현하려는시학은오히려문학의자율성을확보할수있는알리바이로활용되거나정치적현실에대한문학의관심과책임을요청하는진보진영의해묵은주장을되풀이하게만드는촉매제로활용되는경우가많았습니다.어쨌거나이러한일련의논의과정을지켜보면서동세대평론가들을중심으로한국시단은물론문단전체가프랑스철학의강력한영향권아래놓여있다는씁쓸한느낌을가질수밖에없었습니다.이러한시단의경향역시개념적시쓰기의증좌를보여주는또다른사례라고생각합니다.
이제미래파의시학이내세우는‘주체’의개념을살펴볼때가되었습니다.이들이내세우는주체의개념은지금까지한국서정시에서보편적으로인정받아오던‘서정적자아’를대체하려고하는것입니다.그들은지금까지전통적서정시를이끌어온‘시적자아’또는‘화자의정서’가시적대상과의현실적관계를모색하기보다‘자기동일성’을확인하기위하여시적대상을시적자아나화자의정서쪽으로끌어들여‘자기회귀’에치중하는문제점을노출하였다고주장합니다.이러한주장은일단경청할필요가있습니다.이들의주장은우리가오늘한국서정시의또다른획일성으로극복해야할‘서정단순징후’를질타의대상으로삼고있기때문입니다.
‘서정단순징후’는그자체로별다른평가나언급의대상이되기어렵습니다.그문제점이너무도수월하게파악될수있기때문입니다.그런데도이러한분류명칭을갖는시의속성을따져볼필요가있다면,첫째로는문학제도의현실에서서정시라는이름으로생산되고유통되는많은시편들이이러한징후를보여주기때문입니다.둘째로는이러한징후를가진시편들이수백종을초과하는문예지와시집을발간하는출판사들,그리고그것들과피드백관계에있는문학교육제도와의연관아래놓여있는현실때문입니다.우선수백종의문예지들은매호총만여편을초과하는엄청난분량의신작시를게재해야합니다.작품수와그것을집필해야하는시인들의숫자를헤아려볼때작품들이대체적으로어떠한수준을보여줄지를어림할수있습니다.그런데작품의수준보다더욱문제가되는특징은작품의성격이획일화되는경향을보이고있다는사실입니다.자연을서정의대상으로삼아가혹한삶의현실로부터일탈하고싶어하는시적화자의자아를표현한시편들이획일화된서정의주요한품목입니다.
자연에안주하는서정을소박하게재생산하는시쓰기가쇄신되지않는까닭은그런시편들로문예지의지면을채우는편집위원들의안목때문이기도하겠지만보다근본적으로는청소년시절부터다양한시각으로서정시를감상하고써보는학습기회를제공할여력을갖추지못한학교교육에서비롯되었을것입니다.입시에대비해야하는문학교육은서정시에대한교육수혜자의자유로운이해능력과풍요로운표현능력을억압하는역기능을초래했습니다.
수십년의세월동안누적된역기능은1990년대부터폭발적으로증가한대학및사회기관의문학창작프로그램에도영향을미쳤다고생각합니다.1980년대까지몇개에불과했던문예창작과가수십개로늘어나고,대학마다개설한평생교육원의문예창작프로그램과신문사를비롯하여백화점에이르기까지각종사회기관에서개설한문예창작교실은이제는성인이된역기능의수혜자들에게새로운문학교육의기회를제공하였습니다.그러나그러한문학교육의기회가다양하고개성있는서정시의상상력과언어표현기법을습득하는기회로활용되었다고인정하기는어렵습니다.그리하여시를자유롭게이해하고풍요롭게표현할수있는능력을갖추지못한시인지망생들이수많은시잡지를발간하고시집출간을활성화하는일에중요한변수로등장하게됩니다.그들이잡지와시집을구입해주는문학소비자로서의역할에안주하지않고잡지에등단하여지면에참여하고시집까지펴내는역할을감당할수있게되었기때문입니다.
왜곡된문학교육의수혜자인그들이문학현장에참여하면서발표하고공감하는작품들이대부분전통서정을답습하는경향을보인다는것이저의좁은소견입니다.논란의여지가많으리라생각합니다만시전문지와시집출간이지나치게양산되고그것들의전반적인경향이소박한수준으로자연을기리는서정을재생산하고있다는점에서반성과쇄신이필요합니다.이러한반성과쇄신의필요성은최근몇년동안지하철을이용할때마다승강장의스크린도어에적혀있는시편들을읽으면서느낀자괴감때문에더욱절실해졌습니다.
그런데앞에서미래파를지지하는일군의시인과동세대평론가들이이러한‘서정단순징후’를‘자기회귀’현상으로비판했다는점을주목할필요가있습니다.자기회귀현상은미래파의시적경향에도포함되어있기때문입니다.우선‘메타시’라고하는것자체가앞에서도말했듯이자기회귀현상을입증해보이고있습니다.전통서정에안주하는시편들의경우에는자연을시의대상으로삼지만실제로는대상에‘투사’된‘시적자아’를노래하고있다는점에서자기회귀현상을보인다고규정할수있습니다.말하자면자연이라는대상은빛좋은개살구에불과한셈이죠.이때자연은실재하는‘타자’로서의대상적성격을갖고있지못한셈입니다.자연은마치우리가수음행위를하기위하여떠올리는‘헛것’에불과합니다.‘조작된’자연이라는점에서시의대상은부재하는셈이며결국자기회귀현상이라이름붙이기도민망합니다.
그렇다면미래파의경우는어떨까요.미래파의경우에는시적자아와마주하는대상의존재가좀더복잡하게규정됩니다.그들은우선‘시적자아’라는말대신에‘주체’라는용어를사용합니다.‘주체’라는용어를사용하는까닭은시적자아와는다른입장에서대상과의관계를도모하고있기때문입니다.미래파는우선시적자아의독립성을부정합니다.시에표현되어야할삶의진실은시적자아가아니라일상에서매순간마주치는무수한‘타자’들과의관계망속에서포착되어야한다는것입니다.프랑스언어학자인라캉과그의후예들의관점을차용한셈입니다.대상이나타자와의관계속에서비로소빚어지는존재의개념을그들은‘주체’라고부릅니다.그렇다면본래의자기를텅비어있는상태로규정하고타자의흔적을통해서만자기의존재감을확인할수있는주체는자기회귀현상을극복하는시쓰기의방향을제시하고있을까요.여기에서저는다른지면에서거론한바있는시적자아와주체의관계에대한소견을다시한번돌이켜보고싶어집니다.

매순간마주치는‘타자’와의관계속에서구성되는것이‘주체’라면그것은그저텅비고허망한존재의속성을일깨우는개념일까?또한‘타자’들을통해서구성되는‘주체’의개념은본래의‘자아’가없다는개념으로받아들여져야만하는것일까?우리는여기에서근대의이성적‘자아’를“현존재의세계는공동세계이다.안에-있음은타인과더불어있음이다”라고주장하거나“현존재는더불어있음으로써본질적으로타인들때문에존재한다”고주장한하이데거의주장을환기할필요가있다.그의주장에서‘고립된자아’가아니라‘열려있는자아’,또는‘관계맺는자아’의개념을떠올릴수있기때문이다.이러한‘자아’의개념이라면구태여‘주체’와대립하는것으로내세울필요는없을것이다.
-「서정적자아와다른서정의주체」,『시평』2012년봄호

그것을‘시적자아’라고부르건‘주체’라고부르건간에중요한사실은그것이텅비어있는존재의허망함을확인하는작업이아니라매순간새로태어나는존재의가능성을확인하는작업을수행해야한다는점입니다.그런점에서적지않은미래파시인들의시적주체가수행하는작업을착잡하게바라볼수밖에없는까닭은시적대상인‘타자’들과의관계를분주하게도모하는시적화자의언술행위가새로운존재의가능성을찾아내려는열망보다오히려불안과상실감을드러내는일이많아보이기때문입니다.이러한반응은혹시시적주체나자아라고하는것을‘열려있는자아’의가능성이아니라텅비고허망한존재의속성으로인정하고싶은무의식에서비롯되지않았을까요.그런점에서미래파시인들이자주노출하는편집증과도착증,분열증을내포한언술행위도이러한자아의상실감과연루된듯합니다.이렇게자아상실감에집착하는태도야말로자기회귀현상을입증하는또다른사례가될것입니다.
주체의속성과관련하여또하나주목해야할점은존재의‘깊이’에대한태도입니다.가령“이제삼차원은지겨워.그러니까깊이가있다는거말야.나를잘펴서어딘가책갈피에꽂아줘.조용한평면,훗날너는나를기준으로오래된책의페이지를펴고.또아무런깊이가없는해변을거니는거야.”(이장욱,「중독」,『정오의희망곡』)와같은시의내용에서나는주체의열려있는가능성을모색하는활동이존재의깊이를회피하고있는사실을발견하게됩니다.존재의깊이를부정하는주체의활동은타자와의관계맺기를훨씬효과적으로수행할수가있겠죠.그러나앞에서도언급했듯이자아의텅빈상실감은바로이렇게존재의깊이를부정하는태도와도연루된것으로보입니다.그리고이러한상실감으로말미암아타자들에대한성실한관계맺기의욕망보다자기부정과파괴의욕망을나열하는일에분주해지는것이아닌가생각됩니다.
그런점에서대상이나타자와의열린관계를도모하는시적자아나주체의활동은좀더심화될필요가있다고생각합니다.그러한활동이오로지새로운대상과관계맺는지평을확장하는일에만분주하고관계를심화하는일에소홀할때자아나주체는삶에대한상실감과피로감을느낄수있고,그러한상실감과피로감으로인해예술의가능성에대한열정이약화하거나병적인우울증이강화될수도있기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미하일바흐찐이규정한언어의‘원심력’과‘구심력’의관계와베르나르의“거인의어깨위에올라앉아있는난쟁이”에대하여언급하는것으로저의발표를마치려고합니다.바흐찐은다양한언어가공존하고대화하는조건을만들기위하여언어의원심력이갖는역할이중요하다고지적했습니다.깊이를회피하고주체의개방적인활동에주력하는미래파의시쓰기도이와유사한역할을내세우고싶어하는것으로보입니다.그러나원심력은반드시구심력과의상호관계에서벗어날수없다는사실도간과해서는안됩니다.언어의구심력은존재의깊이를지향하는속성을간직하고있다고저는생각합니다.비록언어의구심력이단일한언어의패권을지향하는문제점을보여주긴했으나집중하려는의지속에스스로의뿌리를돌아보려는무의식이존재하고있기때문입니다.
언어의원심력과구심력의관계에비견될만한서양의고대격언으로“거인의어깨위에앉아있어거인보다더멀리볼수있는난쟁이”에관한이야기가있습니다.12세기베르나르의격언인데요.17세기후반에몽테뉴는거인을고대인으로,난쟁이를근대인으로규정하고이두존재를비교하면서“근대인들이고대인들보다더발전되었을지모르지만,이때문에그들이존경받아서는안된다”라고언급한바있습니다.저에게는언어의원심력이근대의난쟁이에,언어의구심력이고대의거인에비슷해보입니다.물론난쟁이가바라볼수있는언어의지평은더욱확장되었습니다.그러나난쟁이가잊지말아야할것은자신이거인의어깨에의지하고있다는사실입니다.거인이라는대지를향한구심력을기반으로하여난쟁이는보다발전된언어활동에종사할수있게되었기때문입니다.
과연시적주체라는난쟁이와시적자아라는거인의조화로운관계를우리시단에서는어떻게마련할수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