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우기 (이주노동자, 프레카리아트, 청년의 자리 바꿈과 문학적 상상력)

경계선 지우기 (이주노동자, 프레카리아트, 청년의 자리 바꿈과 문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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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경계선 지우기』는 오늘날 문학이 어디까지 현실을 사유할 수 있는가를 가장 첨예한 사회적 경계 위에서 다시 묻는 남승원의 평론집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경계선’은 추상적인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분할선이다. 시민과 비시민, 안정과 불안정,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이 경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문학 역시 그 바깥에 있지 않다.

남승원은 기존의 진보 담론이 전제해온 주체 개념이 더 이상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노동자 계급, 민중, 시민이라는 이름은 파편화된 노동과 불안정한 삶의 조건 속에서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신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 그리고 불안정한 청년 세대와 같은 ‘경계 위의 존재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기존 질서가 당연하게 여겨온 보편적 주체 개념을 근본에서 흔드는 존재들이다.

이 평론집은 영화 〈로니를 찾아서〉, 유미리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문화 텍스트를 분석하며, 이주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특히 노동과 공간, 도시와 국가, 시민권과 배제의 문제를 문학적 서사와 결합해 읽어내는 방식은, 문학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사회적 감각을 재구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승원은 문학이 현실을 직접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회의에서 출발하지만, 그 회의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문학이 제도를 대체하거나 정치적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질서에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문학은 안전한 거리에서 현실을 관찰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계선 위로 스스로를 이동시키는 실천의 장이다.

『경계선 지우기』는 문학 비평서이자 동시대 사회에 대한 치열한 사유의 기록이다. 이 책은 문학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보다, 문학이 어디까지 질문할 수 있는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불안정과 배제의 시대에 문학의 역할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이 평론집은 깊고 단단한 사유의 좌표를 제공한다.
저자

남승원

문학평론가
2010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등단
평론집『질문들의곁에서』
제23회젊은평론가상수상
서울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과초빙교수

목차

intro떠도는,횡단하는,스며드는ㆍ13
-자본바깥에서진보를상상하기

제1부
헬로우,유비쿼터스ㆍ40
식인종,DJ그리고매시업아티스트ㆍ64
-이규석,또는닉페어웰의『GO』를읽는법
그라운드제로에선소설들ㆍ91
이야기3.0ㆍ109
므네모시네의욕망과이야기의힘ㆍ121
-김용희의소설세계

제2부
수용소에서의시쓰기ㆍ142
-이산하의시세계
오지않을미래를준비하면서ㆍ160
혁명을질문한다는것ㆍ177
겹쳐쓴고백ㆍ191
-정은기시집『우리는적이되기전까지만사랑을한다』
고통의바다밑에서ㆍ212
시작된절망ㆍ223
-채상우의시세계

outro지역의안과밖ㆍ234

출판사 서평

-문학은어디까지현실에개입할수있는가


남승원의평론집『경계선지우기』는문학과사회의관계를다시설정하려는문제의식에서출발한다.이책에서‘경계선’이란문학적상상력을자극하는추상적개념이아니다.그것은오늘날사회를구성하는실제의분할선이며,동시에문학이가장첨예하게개입할수있는지점이다.이주노동자와프레카리아트,그리고불안정한청년세대는이경계선위에서살아가는존재들이다.저자는이들의삶을문학과영화,이론을통해읽어내며,기존의비평적관성으로는포착되지않는현실의균열을드러낸다.

이책의서문은개인적체험과사회적사건,그리고문학적사유가교차하는자리에서시작된다.일본작가요모타이누히코의소설『계엄』을읽은직후,한국사회에서실제계엄사태가발생한경험은저자로하여금문학과현실의관계를근본적으로다시묻게만든다.문학은현실을예견하는가,아니면아무런영향력도행사하지못한채자기세계에갇히는가.남승원은이질문앞에서문학의무력함을솔직하게인정한다.그러나그는문학이현실을직접적으로바꾸지못한다고해서무의미해지는것은아니라고말한다.오히려문학은우리가외면해온현실의균열을드러내고,당연하게여겨졌던질서에질문을던지는방식으로작동한다.

『경계선지우기』의핵심문제의식은기존의진보담론이전제해온‘주체’개념의한계에대한성찰이다.노동자계급이나시민이라는범주는한때사회변화를견인하는강력한이름이었다.그러나자본의전지구화와노동의파편화,플랫폼경제의확산속에서이러한범주는점차현실과어긋나기시작했다.남승원은이지점에서이주노동자와프레카리아트라는존재를호출한다.이들은사회를유지하는데필수적인역할을수행하면서도,시민적권리와사회적보호의영역에서는지속적으로배제되는존재들이다.

영화〈로니를찾아서〉에대한분석은이러한문제의식을구체적으로드러낸다.안산원곡동이라는공간은산업화와이주노동의역사가중첩된장소다.태권도라는‘국기’가상징하는문화적정체성과자율방범대라는공동체장치는,이주노동자를보호의대상이아니라통제의대상으로전환한다.남승원은이영화가이주노동자를선량하거나피해자로만그리지않는다는점에주목한다.대신영화는시선의문제를전면에내세운다.누가누구를바라보고있는가,그리고그시선은어떻게권력으로작동하는가.이러한분석은문학과영화가사회적감각을재구성하는방식에대한중요한통찰을제공한다.

프레카리아트에대한논의는이책에서또하나의중요한축을이룬다.유미리의『도쿄우에노스테이션』을중심으로한분석은,불안정노동이단순한경제적문제를넘어존재론적불안을낳는과정을집요하게추적한다.평생노동했음에도사회적관계망에서삭제되어가는노숙인의삶은,국가발전서사와정면으로충돌한다.올림픽이라는국가적축제의시간과개인의몰락이겹쳐질때,우리는‘누가시민인가’라는질문을피할수없게된다.

남승원은이소설의서사구조와목소리의배치를통해,프레카리아트가어떻게말할수없는존재로만들어지는지를분석한다.주인공은끊임없이자신의삶을독백하지만,그목소리는사회적소음속에서차단된다.이는프레카리아트가처한현실을상징적으로보여준다.이들은분명존재하지만,사회적서사속에서는언제든삭제될수있는위치에놓여있다.

이책에서문학은결코안전한거리에서현실을관조하지않는다.남승원은자크랑시에르의사유를경유하며,진보의주체를특정집단이아니라‘자리바꿈의가능성’으로이해한다.이는누군가를대신해말하는태도가아니라,자신의위치가언제든흔들릴수있음을인정하는태도다.이주노동자와프레카리아트의삶을상상하는일은곧,나자신의시민적안정성을의심하는일과맞닿아있다.

『경계선지우기』는문학비평이여전히유효한사유의장르임을설득력있게증명한다.이책에실린글들은특정이론을입증하기위한사례분석에머무르지않는다.대신작품하나하나와정면으로마주하며,그안에서드러나는긴장과균열을따라간다.남승원의문장은차분하지만집요하고,이론적이지만현실감각을잃지않는다.

이평론집은문학연구자뿐아니라,오늘의사회를이해하고자하는독자에게도깊은사유의계기를제공한다.『경계선지우기』는문학이무엇을할수있는가라는질문에대해단정적인답을내리지않는다.대신문학이어디까지질문할수있는지를끝까지밀어붙인다.불안정과배제의시대에문학이여전히의미있는언어일수있는이유가,이책안에조용하지만단단하게제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