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시에 관한 아포리즘)

악기 (시에 관한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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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의 뼈와 시의 허물을 연주하는 시인 조연호의 시에 관한 아포리즘 『악기』. 우리 시가 우리 시어로 얼마만큼 멀리 갈 수 있는지, 얼마만큼 넓어질 수 있는지, 얼마만큼 깊어질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랄 만한 성과 이상의 가능성으로 우리 시단의 외연과 내연 확장에 큰 공을 세운 시인의 책이다.
저자

조연호

저자조연호는1994년한국일보신춘문예를통해등단했다.시집『암흑향』『농경시』『천문』『저녁의기원』『죽음에이르는계절』,산문집『행복한난청』을출간했다.현대시작품상,현대시학작품상,시와표현작품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서문을대신하는예비메모들5

뼈와허물16
바벨의언어로22
시라는상실29
시의악惡44
“가격이상품과나란히존재하듯이”57
살륜殺倫에붙여60
이모든사멸한것들의불멸70
소잡素雜의점點,침잡沈雜의면面-시적토폴로지Topology에대한몇가지견해79
신에대한소략疏略은어떻게가능한가?91
숙살肅殺이불어오다-『코란』『설문해자』95
독서는죽은사람이차지할만큼의들판105
프로메테우스의청년107
침대113
전령신의말116
내가나자신에게적을향해던지는투기投機를위임하고120
음악의남쪽,인간의북쪽-니체의마흔넷131
악기-시136
악기-시인180
악기-작품1210
악기-작품2216
악기-문체220
물리학264
연대기1969-1985271
사우디아라비아에서온세이코SEIKO시계276
휴월虧月과만월滿月의우화들282
감정은형태의근원287
고대와현대의시적경쟁289
기생하는혀297

출판사 서평

“시에관해말한다는건누구의것이되었건부질없다는점에서자명하지만
그러나말하지않으면맴돌지도않는법이다.”

시의뼈와시의허물을연주하는시인
조연호의시에관한아포리즘
『악기惡記』

한국시단에서난해하기로으뜸가는시인을하나대보라할때이구동성으로발음할이름이바로이이가아닐까싶다.그러니까조연호라는시인.특이한시를써서가아니라특별한시를써서후배들에게는열광을,선배들에게는절망을수소폭탄처럼안겨왔던시인.우리시가우리시어로얼마만큼멀리갈수있는지,얼마만큼넓어질수있는지,얼마만큼깊어질수있는지참으로놀랄만한성과이상의가능성으로우리시단의외연과내연확장에큰공을세운시인.정작그는묵묵히제시속에던져져있느라충분히외로웠겠으나그의시를읽고자기시를만지는시인들에게나그의시를읽으며자기감정을추스르는독자들에게는때론치즈덩어리로때론양념장으로때론쌀알로때론생선대가리로그쓰임의본새를다양하게변화시켜배를부르게해온것이사실이렷다.
사설이길었다.조연호라는시인얘기를할라치면늘이렇다.그의글쓰기에대해말할자리에서꼭이렇게내가받은영향으로내안팎의호들갑을떠들어대게되니,조연호라는기원아래조연호라는계절아래한국시단의사시사철은변화무쌍하게흘러온것이분명할테다.
그리고오늘여기그의신작산문집을하나건넨다.1994년한국일보신춘문예를통해등단한이후『암흑향』『농경시』『천문』『저녁의기원』『죽음에이르는계절』등의시집을펴낸바있는조연호시인의『악기惡記』는『행복한난청』에이은그의두번째산문집으로‘시에관한아포리즘’이라는부제에서엿볼수있듯그가‘시’를떠올리는순간그의온몸을투과하여종이에내려앉은시에관한단상들을그만의특유의문체로그어떤장애나망설임없이자유자재로늘어놓은책이다.그렇다보니일관된형식도없고계산된짜임도없다.기계식에계량식이아니니때론너무뾰족하기도하고때론너무투박하기도한데그울퉁불퉁함이그크고작음이그다짜고짜스타일로던져진제각각의시이야기들이무럭무럭자연을뜯어먹고크는아이들처럼일견건강하게도느껴지는바이다.
물론쉽게읽히지는않는다.한권의책을다읽었음에도그안에내재된한줄의문장이끝끝내이해되지못하는경우도부지기수다.그럼에도조연호의글은흡수하면좋겠지만흡입해도좋을어떤산소라서마셨다는그행위만으로도마셨다는그기억만으로도피를맑게굴려주는재활의필터를가졌다.그는불명확한세상사는불명확하게,어리둥절한세상사는어리둥절하게,그때그때처한상황에따라몸과정신이솔직함을담보로쓰이고읽혀야한다고믿는사람이다.좀처럼종잡을수없는사유와말법을가진아이들중에이런아이가어딘가에꼭있곤하지않았던가.아이의말은온전히해석할수가없고또완전히해석될수가없다는가정하에그자유가통용되는데이때그순진함과천진성이조연호의그것과닮은듯도하다.
기억들하시는지모르겠지만그가신춘문예에당선됐을때의심사평은다음과같았다.“조연호의시는환상과언어를긴밀히엮어냄으로써,환상에삶으로서의깊이와무게를얹어주고있다.살아서,삶속에서유효하게가동되는환상의모습은아름답고,그아름다움은더이상환상의영역에만머무는아름다움이아닐것이다.”
이해의국면을놔버린채뜰채로그의글을건졌을때그물망위로팔딱이는그것,생선비늘일수도있고물로비누질을한돌멩이일수도있고깨진유리조각일수도있는반짝이는그것,설상그것의실체가무엇인지끝끝내밝혀지지않는다해도그아름다움은,거기그렇게일순빛이었던눈부심은분위기로남는다.말하자면그뉘앙스를좇는것,끊임없이실패를거듭함에도여러맥락속에서그말맛속에서가장엇비슷한그무언가를되새겨가며그나마닮은세상을향해보는것,그것이우리가조연호의문학을읽어야하는당위이지않을까.
시와에세이라는일반적인장르의경계가있다면조연호는필시지우는자이다.혹은낙서하는자이다.서로침투하고침입하면서이뤄낸그한덩어리의던져짐,그자체로존재하는데있어그의글쓰기는어떤새로움이고어떤능청스러움이고어떤고집이다.그가권하는,향유하는시를우리가알고모르는가는그리중요한문제가아니다.다만그의글속으로깊이침잠할때더욱또렷해지는나를볼수있다는것,우리가『악기惡記』를통해가질수있는소득을굳이찾아면말이다.

[추천사]

여기세상을잊은자의시편이있습니다.여기그것을읽어다시세상을얻는기이한일을하는자가있습니다.시편마다기억의균형에대해,물질의기울기에대해생각해보게하는사람.이무시무시한악공惡工의이름은조연호입니다.그는은밀합니다.그는친분과어울리지않습니다.그는고통을앓기때문에죽음을누리는자가시인이라는것을압니다.아름다운어떤것을늘생각하는마음으로검게야위어가는사람,이와같음으로평생을앓는사람.그의손목에는1980년대중반사우디아라비아에서온세이코SEIKO라는시계가채워져있습니다.그의손목에선초침이계속해서움직이는데시인의시간은언제나자정입니다.그래서그는늘자정에연주합니다.그가고요한탄성으로연주해나간『악기惡記』는시의뼈이자시의허물입니다.우리는착해지지말자.그러나우리는착하고.아무것도아닐때비로소기쁘자.그러나우리는어떻게든아무것도아닐수없고……연주가시작되면하나의유채색과다른유채색사이의무채색이떠오릅니다.악기는죽은사람이차지할만큼의들판입니다.
-김민정(시인)

[작가의말]

서문을대신하는예비메모들

이성이잃어버린영역을복원하는작업이시를쓴다는것이고,본성이너무많이획득한영역을다시인간에게나눠주는행위가시를읽는다는것이다.그럴때의시는장르라기보다는하나의부피이고,부피가가능할수있도록만드는질료를그원인인인간에게서직접적으로가져오기때문에극복자이자극복되는자이고,병이자치료이다.어떤영역에서건시는자연의견해에토대를두는것이아니다.인간안에는자연의한조각으로서의인간도존재하지만당위의조각들역시무수히존재한다는전제로써만그것은유기체로서의인간전체에토대를둘수있다.
오늘날시에대한인식은독자스스로가자신의피곤함을차단함으로써아주간단히복잡한시들에대한공격에성공하지만,무엇보다그러한공격들중가장전폭적이고파괴적인것은시의통증뿐아니라자기자신의근원적통증에대해서까지감행되는무차별적공격이다.그것이야말로어렵다,쉽다라는이해의차원에서아름답다,추하다라는가치의차원으로옮겨가지않는예술의진정한전쟁이라할수있다.시에주어지는자극을단순화하여외부와내부로나눠본다면이야만의상황을좀더간략히정리할수있을것이다.외부가내부와대척되는바깥이라고전제할때외부는자신이무엇을말하고있는지를내부에서참조하게된다.그러나진정한의미에서내부는외부를갖고있지않으므로내부가외부에의해참조된다는것은외부가그자체를참조하는것으로밖에가능하지않다.그런근원적단절이내외에있는데,외부와내부는,즉실재로서의경험과인식으로서의체험은,오히려서로를참조할수없기때문에하나의시늉으로써시적화해를하는것처럼보인다.실재가인식을참조하고인식이실재를참조하는등방적행위라는시늉을통해서말이다.대체로나는이런허구적인것을시적인것이라고부르기에마땅한것으로여긴다.시의형상은실재와인식이서로반조하는거울상이고,거울상이기때문에그것자체는아니지만그것으로받아들여지는하나의보정이미지라고할수있다.그러나그들이가진자체적거리감이하나의선형線型에놓인서로다른점이라고생각하지는않는다.삶은유기적이고종합적인것이기도하지만또한편으로구축적이고분할적인것이기도하다.어린날의언어가훗날의언어보다후진성을가지는것이아니라고유한시간을가지고있는것임을인정하면,주어각자는스스로에게누적된의미를넘어서는종합적판단을요구할것이다.그것들자체가틈새이며,그틈새는전과후를인과로묶는것이아니라스스로고유해질것이다.시들간에는그런교정과분할이있다.

윤리학이끝나는곳에서정치학이시작된고대그리스의예가그렇듯,시역시언제나시전반에대한사유가끝나는지점을자신의출발점으로삼는다.그렇기때문에‘시가무엇을말하고있는가?’라는질문은‘말하여진것은또한시에대해무엇을할수있는가?’라는질문과조금도다르지않아야한다.왜냐하면시는무한히자율적이거나단독적으로취급되어질수있는것도아니고,본성상의파토스도자신의역사성으로부터무한히멀리있는것또한아니기때문이다.다시말해시에서의상황은자신의역사,즉시적상황이고려되는한그불확실성조차도전혀막연한것이아니다.

일반적으로현실에서무늬를찾는일이운문에서일어나고나면그후엔무늬에서형식을찾기마련이고,그렇게찾아낸무늬의규칙들은운문으로다시돌아와자신의권리를주장한다.이미지와형식의문제가대략그러한모습일텐데,그런일은충분히경이롭다.그런일이경이로운이유는집나간탕자의귀환이그자체로기다리는식구들에게는큰선물이되기때문이다.가장중요한선물이기위해선물에대한기대감을최대한좌절시키는일이문학에서는놀라울만큼빈번히벌어지고있다.만약어떤작품이특정형식을만들었거나차용했거나참조했다면,그리고그것이규칙성을부여받은것이라면그자체로이미작품은현실적이다.작가자신에게현실적이지않은것이작품내에서사려된것으로나타나는예는있을수없기때문이다.그것은우리가‘상상’이나‘환상’이라부르는문학의속성에대해서도마찬가지이다.장르나구분자체가이미그구조안에서현실이라불리는것이지않으면안된다.그런의미에서모든시는현실적인것이다.마찬가지로상상이나환상같은시의비현실성도현실적인것이다.더광범하게는구분되는것자체가현실이다.산문과운문은구분되어져있으며그렇기때문에그들간에는현실적인어떤차이점도없다.그런맥락에서산문형식이운문형식보다더현실로의소급을주장하고있다고는믿기어려운것이고그역도마찬가지다.

시에는우리가거부할수없는정도의선이언급되어야만가능한형식이내재하며그것이우리의도덕적의향을무화시키는정서로기능하도록자기자신의특징,즉순수한의미에서지칭물의태도로우리에게희생을강요하는그미美로,사람들에게결백을묻고종국적으로선이정당화되는그미의확립에대해개인각자가소멸하는육체성을경험하는,약소하지만그것없이는다른층위로상승할수없는그런추측으로만가능한구조가포함되어있다.시라는형식적시도가감정이라는물리적수단으로부터스스로를해방하고그것의중재된형태를얻는것은결코상이함,대립에서가아니다.신의진노아래놓인인간의숙명처럼자신의죗값을외부의형벌로치러야했던그러한형식의상징이우리에게유일하며우연하고환원불가능한문법으로이해되는것은,사물을간직하고있는모든형식안에시가실패해야할심도深度의모든것이놓여있기때문이다.이것은곧시의악에관한이야기다.

시의형태를말함에있어한문이라는독특한언어체계를제시하는것이꽤적절한비유라는견해를덧붙이고싶다.한자의기본은부수다.부수로부터글자가만들어진다.다시말해하나의한자는부수자체이기도하고부수들의집합이기도하다.그런데글자들이의미를가지는것처럼부수들역시의미를가진다.그럼에도불구하고부분이모여전체가되었을때,부분의의미는전체의의미에영향을주기도하면서동시에전혀영향을주지않기도한다.의미의분절과회절과단절이한글자의탄생에동등하게기여하는것이다.그절折들에대해관찰자가도출할수있는규칙은거의아무것도없다.예외의경우가너무많기때문이다.한자는전체가이질적인부분으로가득찬경우조차부분과전체의결합이다.시의형태를한자의비유와대조하면이렇다.시에서의형태란쌓아올린규칙에다름아니다.그런데형태자체의모순은그것이내부적으로든외부적으로든전체로든부분으로든유기적이어야한다는인식에기인한다.형태라는표현을,나아가시형詩形이라는표현을일반적으로연결고리들이붕괴된것을지칭하여부르지않기때문이다.그렇기때문에시를형태로접근할때는그것이이미완결된것으로서존재해야하고더불어그것이하나의의미망으로얽혀있어야한다는사고가존재한다.그럴경우시의행,연과같은형태에대한연결고리인식은오히려속박에가까운것이된다.나는시의형상을한자의예처럼부수?글자,부분?전체의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