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 알츠하이머 병
한국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60세 이상 환자는 약 77만 명이다(<2016 전국 치매역학조사>, 중앙치매센터). 인구 고령화에 따라 환자의 수는 빠르게 늘어 2039년에는 200만 명이 치매를 앓을 것으로 예측된다. 전체 치매 환자 가운데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비율은 74.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인지 능력과 운동 능력이 떨어진 환자는 24시간 간병이 필요하다. 간병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과 돈은 환자 가족을 넘어서 사회에 부담을 준다. 치매 환자와 관련해 발생한 직간접적 비용은 2013년 11조 7,000억 원 정도였는데, 2040년이 되면 34조 2,000억 원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2014년 국회 예산정책처). 참고로 2018년 건강보험 예산은 70조 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직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집중 분석과 과감한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퇴행성 뇌질환, 특히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신약개발에서 가장 중요했던 실패들을 살펴본다. 실패를 분석하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으면 성공이기 때문이고, 실패를 공개하는 것으로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책은 모두 1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가장 최근의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 실패 사례를 살펴본다. 과학에서 실패는 성공하기 직전을 뜻한다. 차분하게 실패를 살펴보며, 차분하게 앞으로의 길을 전망한다. 3장, 4장, 5장은 새롭게 시작하는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에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살펴본다. 1장과 2장이 지금까지의 이야기였다면, 3장, 4장, 5장은 지금부터의 이야기다. 6장, 7장, 8장, 9장은 주목받고 있는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의 쟁점을 다룬다. 새로운 치료 메커니즘, 최신 과학기술, 알츠하이머 병에 대한 프레임의 전환, 그리고 가장 빠르게 눈 앞에 나타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를 검토한다. 10장에서는 글로벌 제약기업의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 전략을 살펴보며, 11장에서는 간단한 용어와 개념을 해설한다.
아밀로이드 가설
1장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의 원동력이었던 ‘아밀로이드 가설(Amyloid Cascade Hypothesis)’과 그에 따라 진행된 신약개발의 개요를 살펴본다. 1992년 존 하디(John A. Hardy)와 제럴드 히긴스(Gerald A. Higgins)가 <<사이언스(Sceince)>>에 아밀로이드 가설을 발표한다. 알츠하이머 병 환자 뇌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많이 발견된다. 존 하디와 제럴드 히긴스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자체에 독성이 있으며,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뭉친 플라크가 알츠하이머 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인지 능력 저하 등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플라크가 신경세포 사이에 쌓이면서 신호전달을 막으면, 기억도 판단도 운동도 막힌다는 것이다.
아밀로이드 가설에 따르면 이미 만들어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거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만드는 효소를 억제하면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었다. 2018년 1월 기준 미국 임상정보사이트(clinicaltrials.gov)에는 모두 112개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관련 임상시험이 등록되어 있다. 대부분 바이오젠(Biogen), 로슈(Roche), 일라이릴리(Eli Lilly) 등 전 세계적 규모의 대형 제약기업들이 진행하는 임상시험이다. 실패했던 임상시험까지 세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뇌 속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데 성공하기도 했지만, 환자의 인지 능력 등이 유의미하게 회복된 경우는 없었다. 이로 인해 아밀로이드 가설을 포기할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저자의 분석은 조금 다르다. 여전히 알츠하이머 병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인자로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압도하는 것은 없다. 다만 알츠하이머 병의 메커니즘을 구조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단순히 없애는 데만 집중했던 것이 문제라고 분석한다. 환자의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 파악되는 시점에는 이미 환자의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동안 증상이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지점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려는 노력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신약개발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들이 아밀로이드 가설을 서둘러 포기하기보다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치료가 가능한 초기 환자 가운데 임상시험 대상자를 찾아내는 것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성공에 가장 가까워진 실패, 아두카누맙
2장에서는 아밀로이드 가설을 바탕으로 가장 주목을 받았지만, 가장 최근에, 가장 커다란 규모로 실패한 바이오젠의 신약 후보물질 ‘아두카누맙(Aducanumab)’을 살펴본다. 아두카누맙은 알츠하이머 병 환자 뇌 속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에 결합하게끔 설계하고 만든 항체다. 뇌 속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microglia)는 아두카누맙을 인지하는데, 미세아교세포는 이렇게 인지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먹어치운다(대식작용). 결과적으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앨 수 있다.
아두카누맙은 임상시험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인지 능력을 되돌리지 못했고, 임상시험 과정에서 환자의 뇌가 붓는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2019년 3월 아두카누맙의 공식적인 실패 발표가 있었다. 아두카누맙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는, 임싱시험 실패 발표 후 시장에서의 반응으로 증명되었다. 아두카누맙 실패 발표 다음날, 연구를 주도한 바이오젠과 파트너였던 에자이의 시가총액 265억 달러가 사라졌다.
아두카누맙은 거의 13년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아밀로이드 가설에 따른 치료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효과적인 후보물질을 찾아냈으며, 꾸준하게 임상시험을 진행해, 결국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데까지 성공했다. 저자는 이런 노력에 먼저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치료제 개발의 메커니즘이 좀더 정확하고 정교해진다면, 신약개발 연구자들이 결국 치료제를 개발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결국 아밀로이드 가설에 가장 충실한 치료제 후보물질인 아두카누맙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빨리 찾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빨리 찾아야 고칠 수 있다
3장 조기진단(Early Diagnosis)은 퇴행성 뇌질환, 특히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신약개발의 프레임을 바꾸는 첫 번째 주제에 대한 이야기다. 환자가 인지 기능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으면 신경과 전문의는 환자와 보호자를 면담하고 문진해 알츠하이머 병 여부를 판단한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이 책 부록에 실려 있는 간이정신상태검사(mini-mental state examination, MMSE)와 치매임상평가척도 박스 총점(clinical dementia rating scale sum of boxes scores, CDR-SB)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쳐 알츠하이머 병으로 최종 진단을 받은 환자의 30% 정도는 알츠하이머 병이 아니다. 이는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에서 중요한 문제다. 알츠하이머 병 임상시험에 알츠하이머 병 환자 아닌 사람이 최대 30%나 참여할 수 있으며, 정확한 임상시험 데이터가 나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은 인지 기능에 이상을 느낄 때다. 그런데 환자가 인지 기능에 이상을 느낄 때는 이미 환자 뇌 속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가득 쌓여 있어,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상태다.
알츠하이머 병은 진단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저자는 조기진단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근거는 국제적인 공신력을 지니는 규제 기관의 입장 변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미국 FDA와 유럽 EMA는 2018년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인지 기능 저하라는 증상 중심 기준이 아닌,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대상자에게 일어나는 분자 수준의 병리적 변화를 임상시험 기준으로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3장은 이런 규제 기관의 입장 변화에 관한 맥락을 살피면서 뇌척수액, 혈액, 아밀로이드 전구 펩타이드, 혈뇌장벽 손상 정도, 타우 단백질, 신경미세섬유 경쇄 등을 이용한 조기진단 기술의 발전 현황과 발전 가능성을 살펴본다.
바이오마커
4장은 바이오마커(Biomarker)다. 바이오마커는 생리·화학적 현상과 질환 상태를 정량화·수치화할 수 있는 모든 생체 내 지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심혈관 질환에서 대표적인 바이오마커는 혈압과 콜레스테롤이다. 미국 FDA는 1992년 신약개발 임상시험에 바이오마커 개념을 처음으로 인용했지만, 알츠하이머 병 분야에서는 아직 바이오마커가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4장에서 키트루다?나 비트락비? 같은 항암 신약개발에서 바이오마커가 어떤 식으로 활용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이를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신약개발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다. 예를 들어 ‘속도’는 기존의 알츠하이머 병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는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다고 소개한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뇌 속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병리 인자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인지 기능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떨어지지 않는 일반적인 노화 과정에서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검토하던 연구자들은 ‘속도’를 살펴보았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얼마나 빨리 쌓이느냐에 따라 알츠하이머 병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면, 이것은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바이오마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환자의 조기진단, 신약개발 과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