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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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는 왕 중심의 조선사 뒤에 가려진 왕실 여인들의 지성스러운 불사를 소설처럼 생생하게 재현한 전에 없던 역사책이다. 한낱 투기와 가십의 소재에 불과했던 왕실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옛 사부대중의 자생적 개혁 의지와 지혜를 보여준다. 조선이 불교 국가라고 하면 혹자는 역사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억불숭유 정책을 내걸었고, 세종이 유교 정치 실현을 통해 왕권과 국가 경제력을 강화했다고 배워왔으니 말이다. 우리가 아는 조선사는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는 철저히 왕 중심으로 기록된 관찬 사료라 이것만으로는 조선의 면면을 살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는 《실록》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퍼즐을 사찬 사료와 설화,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인 사찰의 사지(寺誌)를 통해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저자

탁효정

저자탁효정은1976년생.억불의암흑기속에서면면히이어져온조선불교의생명력과그속에숨겨진공로자들을발굴해사람들에게전달하고자한다.〈조선시대왕실원당연구〉로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전임연구원으로재직중이다.
공저서로《회암사와왕실문화》《대법사지》가있고,연구논문〈조선전기정업원의성격과역대주지〉〈조선초기능침사의역사적유래와특징〉〈19세기불교계의동향과송광사의위상〉〈15~16세기정업원의운영실태〉등을발표했다.

목차

저자의말
프롤로그|원당마루틈새마다배어나는붉은그리움

제1부조선전기의원당
1왕조개창을예언한그곳태조와석왕사
2미비하지만위대한조선의서막태조와회룡사
|원당사색|‘용의귀환’에대한여러해석들

3태조의광화문연가신덕왕후와흥천사
4불교를가장싫어한왕도원당짓다태종과내원당
5자비로운절의씁쓸한역설원경왕후와대자암
|원당사색|대자암의어제와오늘

6왕노릇못해먹겠다!세종이그랬다고?세종과내불당
|원당사색|내원당과내불당의위치는어디였을까?

7일편단심세종의순애보소헌왕후와용문사
|원당사색|경기도의금강산,용문산

8둘째의설움담은이름,연주효령대군과연주암
9후궁들,비구니되다궁궐안비구니사찰
|원당사색|궁궐안비구니원의역사와위치

10청상고부의비원서린강남큰절광평대군부인과견성암
11세종도못말린며느리영응대군부인과범굴사
12죽음을불사하고가고싶은그곳금강산의왕실원당
|원당사색|금강4사의오늘

13조선판마녀사냥,왕실여인의스캔들월산대군부인과흥복사
14꿈마저잃어금몽이라했나단종과금몽암
15벌거벗은임금님의쓸쓸한말로세조와원각사
16살아남은자들의슬픔사육신과동학사
17몰락한왕실여인들의해방구정순왕후와정업원
18세종,저승에서절살리다영릉과신륵사
|원당사색|나옹스님의마지막회향처

19고승의굴욕,대장경을살리다학조스님과해인사
20며느리를사랑해야하는이유인수대비와정인사
21부어도부어도채워지지않는연산군과연화사
22명당중의명당은엄마품인종과은해사
23사랑보다권력문정왕후와봉은사

제2부조선후기의원당
24왕배출한천하명당선조와화장사
|원당사색|호국영령들에지장보살의가피를

25서출의한恨,비주류의한限광해군과봉인사
|원당사색|죽어서다시만난세모자

26사경수행으로이겨낸여인의한인목대비와칠장사
27몽상이되고만쿠데타의명분인조와봉릉사
|원당사색|두부쑤는절로전락한능침사

28조선의마초,그뻔뻔한이름인선왕후와법련사
29병속에갇힌조선의여인들민회빈과삼막사
|원당사색|한양의수호사찰삼막사

30아비잃은사자들의기구한인생유전경안군과송광사
31조선후기양대팜파탈의서로닮은운명조귀인과내원암
32충절의상징자수원비구니명의궁녀굴씨와자수원
33억불군주,요절한공주위해절짓다현종과봉국사
|원당사색|원주잃은채절만덩그러니남아

34조선제일가는로비스트최무수리숙빈최씨와화엄사
|원당사색|각황전이탄생하기까지
|원당사색|또하나의탄생기도처,파계사

35영원한주홍글씨,무수리아들영조와보광사
|원당사색|숙빈의극락왕생발원하는보광사중창

36문신들이왕의환갑을기념하는불당기로소원당고운사
37국민성금으로세운용주사정조와용주사
|원당사색|사도세자의원당,호성전

38못믿을게남자의순정이라고?의빈성씨와승가사
|원당사색|조선왕실의약사도량,승가사

39득남,왕실여인들의복권당첨수빈박씨와내원암
|원당사색|기도처중의갑은단연내원암

40조선의헐크흥선대원군흥선대원군과보덕사
|원당사색|보덕사의전신,가야사

41누가그녀를조선의표상이라했는가명성황후와대법사
42망각된마지막왕비의불심순정효황후와백운사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억불숭유의조선,
왕실의깊은불심이빚어낸찬란한불협화음


“시대의마음을읽는것이역사를통찰하는가장쉽고재미있는길”이라고말하는저자탁효정(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전임연구원)의《원당,조선왕실의간절한기도처》(은행나무刊)는왕중심의조선사뒤에가려진왕실여인들의지성스러운불사를소설처럼생생하게재현한전에없던역사책이다.한낱투기와가십의소재에불과했던왕실여성들을전면에내세움으로써오늘날우리에게옛사부대중의자생적개혁의지와지혜를보여준다.
조선이불교국가라고하면혹자는역사의기본도모르는소리라고할것이다.태조이성계가조선을건국하며억불숭유정책을내걸었고,세종이유교정치실현을통해왕권과국가경제력을강화했다고배워왔으니말이다.우리가아는조선사는《조선왕조실록》을기반으로하고있고,이는철저히왕중심으로기록된관찬사료라이것만으로는조선의면면을살피는데어려움이있다.《원당,조선왕실의간절한기도처》는《실록》만으로는완성되지않는퍼즐을사찬사료와설화,지금도계속발굴중인사찰의사지(寺誌)를통해입체적으로구현한다.

조선의아버지태조는물론이거니와유교의통치철학으로대표되는세종,그리고조선왕조의마지막황후인순정효황후까지,조선왕실사람들은모두신실한불교도였다.공공연한비밀이었던왕실불사의흔적은왕실불교사찰,바로불교원당(願堂)으로고스란히남아있다.
원당은말그대로‘무언가를간절히비는집’이다.조선왕실사람들은절을짓고그안에위패나초상화를모셔자신만의소원을담은공간을만들었다.주로죽은부모나남편,요절한자식의극락왕생을빌기위해건축되었던원당은,조선중기에접어들면서아들회임을발원하는기도처의성격을띠게된다.불교의구도적성격에기복신앙이더해지고,세종의한글창제로불경이대중화되면서불교는명실상부한민중종교가되었다.‘원당’이라는말자체는낯설지만,‘명당’이라던가‘영험한기도처’란익숙한민중신앙으로지금껏그명맥이이어져오고있는셈이다.

불교사찰원당을통해본
조선사회의파노라마


이름없는무장에불과했던이성계가역사상가장견고한왕조라평가받는조선을건국할수있었던계기는무얼까?‘상갓집개’라는하찮은별명으로불렸던왕실의먼친척흥선대원군이권력최상위를차지할수있었던비결은?불가능을가능하게했던신화와같은역사의이면에는‘천하명당’이있다.명당에부모의묘를이장하거나절을세우고성심으로기도한끝에뜻을이루는것이다.조선왕조사를따라명당을읊다보면선조부터순종까지왕을열넷이나배출한길지동작동화장사(현국립현충원)가등장한다.중종의후궁창빈안씨를이곳에모셔손자하성군이선조가되었고,박정희전대통령이묻혀그의딸박근혜전대통령이국가원수가되었으니왕을배출하는곳은확실한듯하다.하지만저자는이‘명당’에얽힌아이러니들도놓치지않고언급한다.
원당을이해한다는것은명당을파악하는것과같다.이는곧명당을애타게찾았던그시대의간절한기도,그욕망과아픔을이해하는것과같다.‘폭군’연산군과광해군,‘팜파탈’조귀인과장옥정,‘국모’명성황후등흔히우리가친숙한별명을붙여부르는왕실사람들과그원당에얽힌사연들을보면그호칭이후대의역사관,즉현재의욕망과아픔에서비롯된것임을알수있다.《원당,조선왕실의간절한기도처》는역사서들의일편지견에서벗어나세종의독재군주적측면,‘무능한왕’이란오명을벗기시작한광해군의콤플렉스,공포정치를펼쳤던세조의선업(善業)등새로운시각으로역사를바라본다.
그런가하면조선시대여성을다룰때마다겪게되는고충도털어놓는다.“여자가사람이아니었던시대,그들의삶속에서역사적의미와인간의존엄성을찾”는일이마치목이좁은유리병에서자란새를꺼내는일같다고한다.그럼에도불구하고조선500년역사를가능케했던것은어둠속에서촛불을밝히고치성을올린왕실여성들의불심이었고,또한역으로500년간이어져온왕실불교는왕실의여성들이막막한삶너머내세를상상하며내면의힘을기를수있게해주었다.이러한영겁회귀의삶과욕망,죽음과참회가원당에오롯이깃들어있다.저자는“한사찰의역사에는수많은인연과수없는마음들이실타래처럼엉켜하나의인드라망을이루고있다”고말한다.이처럼사찰원당에깃든왕실사람들의기도에서삶과죽음이둘이아닌이치를깨닫는다.

각자도생의시대,
500년역사의조선원당을읽는다는것


현재까지온전하게남아있는원당은그리많지않다.불교에반감을지닌조선유학자들의방화와잦은외침,일제강점기의문화정책,한국전쟁에의해수많은불교유산들이전소및훼손되었다.원당의원형이가장잘남아있는곳은의성고운사의연수전이다.영조의기로소입소를기념하기위해세워진이건물은특이하게도사찰전각이아닌유교식사당형태로건축되었다.
기로소(耆老所)는정이품이상의관직을역임한70세이상문신들의친목기구로,왕과함께연회를열며회원간화친하는곳이다.유교적효치주의에기반을둔기로소가자진해사찰에원당을설치했다니,왕비나대비의내탕금을털어예산을마련했던조선초중기의원당과는다른양상이다.이는조선후기의불교가더이상배척이아닌공존의의미를지니고있음을보여준다.임진왜란당시전투에서승군들의활약과전쟁복구사업에적극적으로참여한공로를높이평가하고,불교의사회경제적기여를인정한것이다.게다가주자학이데올로기가더욱공고해지면서불교를견제해야할이유가사라졌다.조선후기의지식인들은승려들과지적?문화적교류를확대해갔고,불교계또한유교와의융합과공존을위한접점들을모색했다.

원당을이해한다는것은조선의역사를다르게보는하나의창을내는것과같다.그리고조선의역사를이해한다는것은오늘우리에게벌어지고있는일들을직면하는것과같다.혼란정국을돌파하고자했던선조들의간절한바람,그리고마침내이뤄냈던불교와유교의융화는그리낯선얘기가아니다.촛불을밝히고간절히기도하는마음,그리고그기도가불러온변화의바람은그누구보다지금우리들이잘알고있는것이다.
기댈곳없고의지처가절실한이들에게“가장영험한곳,바로내마음속에원당을짓고지성으로가꾸”는법을알려주는《원당,조선왕실의간절한기도처》,역사학자의엄중함을거쳤음에도불구하고야사처럼흥미진진하다.한차례읽어내고난뒤잔존하는조선사지식은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