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화태 귀환 재일한국인회 회장 이희팔)

유언 (화태 귀환 재일한국인회 회장 이희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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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23년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난 이희팔 씨는 20세가 된 1943년 5월에 화태인조석유(주) 인부모집에 응모해 2년 계약 조건으로 화태(樺太 사할린) 섬으로 떠난다. 모집 당시 조건과는 전혀 다른 탄광 인부로 일하다 종전 직전에 사할린에서 현지 징용된다. 해방 직후 소련의 점령지가 된 남사할린에 남겨진 수만여 명의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할린에 방치되었다. 1946년, 일본 정부가 시작한 귀환사업의 대상은 일본인들 뿐이었다. 이희팔 씨는 사할린에서 재혼한 일본인 아내의 동반자로서 1958년 1월에 3차 귀환선을 타고 간신히 일본까지 귀환할 수 있었다. 그 후 함께 귀환한 동료들과 〈화태(樺太) 귀환 재일한국인회〉를 만들어 사할린에 남아 있는 동포들의 귀환 운동을 시작한다.
국교조차 없었던 한국과 소련을 잇는 수천 통의 편지를 중계했고, 사할린에 남은 동포와 한국의 가족들을 재회시키려고 막노동을 해 번 돈으로 사할린 동포들을 일본에 초청했다. 어떻게든 그들을 고향의 가족과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이희팔 씨의 집념은 공산국가 소련을 움직이게 했다. 가족과 만나기 위해 사할린에서 일본에 와 있던 한 여성을 최초로 한국까지 데려가 결국 노모와 상봉하게 했다. 당시 한국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민간인 이희팔 씨가 길을 열었고, 그 후 수천만 명의 잔류 한인들이 뒤를 이었다. 이 책은 반세기에 걸쳐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낸 이희팔 씨의 집념이 담긴 귀중한 구술과 관련 자료집이다.
저자

나가사와시게루

1951년,후쿠시마현출생.와세다대학졸업,메이지대학대학원석사수료,
릿쿄대학대학원박사후기과정중퇴.고교교원,학원강사,미술학교를경영하기도했다.
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회원.동인지〈해협(海峽)〉동인.

*주요연구서
〈석탄통제회극비문서·전시하조선인,중국인,연합군포로강제연행자료집〉〈석탄산업내부문서·전시하강제연행극비자료집,동일본편〉〈화태청경찰부문서·전전조선인관계경찰자료집〉〈전후초기재일조선인인구조사자료집〉(이상은복각판,緑陰書房)가있다.

목차

서문
소논문「사할린잔류조선인의한국영주귀국에관하여」
*구술
1.조선에서
가족/친척들/가난한마을/소학교/농업실습학교/결혼/돈벌이타향살이/
농업지도원/가라후토(사할린)에가다/

2.사할린에서
광산도착,훈련/탄광노동(갱내)/탄광노동(갱외)/해방직후의사할린사회/
오도마리(코르사코프)에서공동생활/어업콤비나트/군관련건설회사/
일본인귀환사업시작/재혼/귀환/

3.일본에서
마이즈루(舞鶴)로귀환,도쿄(東京)에정착/모임결성/초기의활동/일과생활/
한국의고향으로/KCIA본부로연행되다/사할린─일본─한국간편지중계/
잔류조선인의일본초청및가족재회운동/국회의원간담회결성/
김덕순씨의한국방문/사할린재방문/김덕순씨의한국방문이후/현재/

[관련자료]
1.구술〈南사할린나이부치탄광의기억〉박노학
2.사할린잔류조선인귀환청구소송(제1차사할린재판)관련문서
[의뢰서]사할린억류귀환한국인회
[경력서]박노학,[경력서]신창규,[경력서]최호술,[경력서]김재봉
[경력서]김병문,[경력서]심계섭,[경력조사서]김근수,[경력서]이갑수
[표지없음]이동옥,[상고서]이만세,[상고서]한청술,[경력조사서]이사술
[경력]전종근,[경력서]호리에카즈코,[경력서]신성규

3.〈화태억류귀환한국인회〉회장박노학외6명이일본변호사연합회인권옹호위원회앞으로보낸문서
-〈재사할린한국인귀환을위한조사및구제신청서〉

4.시‘애수의해협’─박노학

5.일본국회에서의질문서및회답
①중의원의원(우케다신키치)국회질문서및내각총리대신(다나카가쿠에이)회답
②중의원의원(구사카와쇼조)국회질의에대한내각총리대신(나카소네야스히로)의회답

6.연보

저자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