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의 사생활 (양영아 소설집)

인디언들의 사생활 (양영아 소설집)

$13.00
Description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의 피폐한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욕망, 유기체적 존재로서의 자기 정체성 확인, 그런 바람이 이 창작집의 기저에 깔려 있다. 도저한 자존심과 생의 의지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의지가 전제되지 않은 모든 소망은 잿빛이다.
그런 내밀한 소망을 작가는 단아한 문장과 유려한 문체로 지면 위에 펼쳐내 보인다. 작가의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문장은 보다 심도 있고 고결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통과제의로서의 삶에 대한 고찰을 더욱 예리하게 드러내주는데 일조하고 있다.
『인디언들의 사생활』에는 은연중 아무리 현실이 암울하고 희망이 없다고 해서 절망하라는 말은 아니라는 실존적 자각이 숨어 있다. 힘든 삶의 여정 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희망의 끈이 언제나 남아 있다는 믿음이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예의이며 죽은 자에게 보내는 가장 진솔한 애도의 흔적이자 추모의 기념비다.
저자

양영아

1971년서울에서출생하여숭의여자대학교문예창작과와숭실대학교문예창작학과졸업,숭실대학교대학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
2000년〈경인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소설속의여름」이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
현재숭실대학교국제교육원강사다

목차

기억의집7
존재의첫번째거짓말35
이방인63
붉은뼈89
시칠리아노춤곡119
인디언들의사생활147
존재의두번째거짓말179
창백한기타205
소설속의여름233

해설|죽음을건너는애도의시간김양호261
작가의말276

출판사 서평

죽음을건너는애도의시간

1.죽음,그쓸쓸한허방다리

양영아의『인디언들의사생활』은전체적으로무겁고깊은소재를다루고있다.이별과고통,회한과절망,연민과후회등이작품의안팎을부침하고있으며삶을바라보는작가의시선에는근본적으로어둡고고통스러운죽음에대한천착이진액처럼끈끈하게묻어있다.얼핏보아서는죽음에함몰되어있는것처럼보이지만죽음에대한연민을뛰어넘어죽은자에대한아쉬움이후광처럼드리워져있다.그것은또다른의미에서의절절한그리움이자애도의증표이기도하다.
상재된창작집에실린작품은표제작을비롯하여모두아홉편의단편이다.이작품들을관통해서흐르고있는것은죽음이다.
「인디언들의사생활」은오빠의죽음으로부터시작된다.오빠가죽은후폭식증에빠진엄마까지교통사고로죽자직장에사표를낸화자는연고가없는지방의작은읍으로도피한다.
빌라에세든그녀는그곳에서얼마전보았던세계의풍물기행다큐멘터리를떠올린다.아프리카원주민이죽은혈족의영혼을위로하기위해자기의손가락마디를돌칼로자른다는내용이다.괴성을지르며돌칼로자신의손가락을내려치는장면을보다말고갑자기울기시작하는엄마를생각하며화자는손가락을자르지도,울지도못하는자신에대해자책한다.화자의내면에는강물에빠진오빠에대한애증과연민이양가치의형태로나타난다.
자신의삶이“지독하게어긋나버리기만하는것”도그것때문이라는것이다.오빠의죽음을가슴아파하면서도한편그가죽었으면했던생각은죄를짓는것과같으며그런자신은뇌를다파먹혀서죽어도괜찮다고생각하기에이른다.「붉은뼈」에서랭보의시를빌려자신의뇌를파먹는구더기를보여주는것도그때문이다.
「기억의집」에는죽음의그림자를안고사는세명의여자가나온다.결혼을약속했던남자가오토바이사고로죽자,말문을닫아버린언니희령과엄마,그리고동생인화자다.그중언니의모습은섬뜩한양상으로나타난다.화자는흰옷을입고죽은남자친구가쓰던헬멧을들고있는언니모습이“잘린머리를들고있는”것처럼느껴진다.아버지는비오는날차사고로죽는다.그후이사온집에서엄마는아버지의스웨터를풀어서다시짜는행동을반복한다.헬멧을들고말문을닫아버린언니나낡은스웨터를풀어다시짜는엄마나그런모습을안타깝게응시하는화자의모습모두죽은이의부재를감당해내려는몸부림이며죽음을견뎌내는또다른방법이다.
「이방인」은문학동호회에서함께습작을하던동호회회장의죽음에서시작된다.회원들과문상을가지만화자는온전한슬픔을느끼지못해서괴로워한다.자신에게손을내밀어주던따뜻한한사람의죽음앞에서화자는조문하는시늉만으로타인처럼방관하고관조할뿐이다.나아가서틈입간에애인과하는정사는처연하기까지하다.하지만그곳에도타인의죽음에대해슬퍼하지못하는자신에대한자책이숨어있으며화자를따라다니는“삶곁에항상물뱀처럼기어다니며꿈틀대는슬픔”의예감이존재한다.
「붉은뼈」에는술취해들어와서자지러지게웃다가나중에는울음을터뜨리는엄마가등장한다.조증과울증이번갈아나타나는밤이면불면으로서성이다가물컹한덩어리같은홍시를먹기도하고화자를깨워탄산음료를먹이기도한다.엄마가술에취해나를“금쪽같다”고말할때면화자는죽은아버지에대한기억을떠올린다.
이런엄마의행동은결혼한지오년만에남편이죽자할아버지의명령대로상여뒤를따르지못했던신산한삶에서기인한다.하지만화자는엄마의울음을견뎌내기어렵다.
엄마의웃음은항상울음으로마무리된다.웃음은울음을끌어내고여름은비극이일어날가을로이어진다.왜소중한것들은자기곁에오래머무르지못하고금방사라져버리는것일까?화자의내면에자리한깊은상실감은생채기로남는다.
화자는기차여행을할때도역방향자리에앉는다.남들이어지럽다고싫어하는역방향에앉는이유는그곳에서바라보는풍경이더오래남아있기때문이다.이런화자의행동에는소멸되어가는존재에대한아쉬움과그리움이자리하고있다.
“죽은자의혼도불러올수있는주술성”이있는물고기뼈를소중히간직하는화자의행동또한같은이유이며「기억의집」과마찬가지로죽음을견디고있다는점에서또다른애도의의식을치르고있다.
「창백한기타」에서는보다더완숙한유기체적존재로자라나기위한성장통을보여준다.상처없는영혼이란존재할수없으며상처받기쉬운영혼을가진죄가있다하더라도,보다품격있는성장을위해서는상처받는걸두려워해서는안된다는사실을담백하게형상화시켜보여주는데성공하고있다.
이처럼다양한삶과죽음의양상들을보여주고있는작가의첫창작집은인생에대한사유의심도가깊다는사실을입증한다.생자필멸의관점에서본다면이런천착은삶에대한외경이자존중의의미에다름아니다.거시적인측면에서생각해보면죽음그자체도삶의일부라고볼수있지않겠는가?

2.삶과죽음의이율배반성

양영아의창작집에서거짓말을소재로다룬두편의작품을주목할수있다.
「존재의첫번째거짓말」과「존재의두번째거짓말」이다.
「존재의첫번째거짓말」은죽고싶은욕망을드러내는작품이다.
화자인J는초·중·고·대학동창Y에게서온자살예고편지를읽는다.Y는만나던남자가자기목에검은점이있는걸보고그런여자는자살한다는얘길하고나서부터자살을생각한다.자신이죽어야한다는것이며그런편지가열번쯤계속된다.
Y의엄마는우울증을앓고병원에입원해있다.화자는Y와함께병원으로문병을가기도하면서고통스러운삶을살고있는Y에게연민의정을느낀다.하지만Y는끝내자살하지못한다.이제편지도오지않는다.
대신소설의말미에서편지를쓰기시작하는사람은J다.수신인은누구인가?자신이다.
편지를쓰고나서화자는거울을본다.목에점이선명하게보인다.그러면서중얼거린다.
“목에점이있는사람은자살한다고하더군요.”
Y와J는동일인물이다.자살예고편지는자신에게보내는,죽고싶다는욕망을다짐하는절차다.하지만이처럼자살을할것이란다짐에도불구하고자신이죽지못한다는것을스스로알고있다.죽고싶은소망보다살고싶다는소망이부지불식간에그곳에서얼굴을드러낸다.
겉으로는죽고싶다고강조하지만속으로는살고싶다고외치고있는구성을통해작가가말하고싶은것은내면심리의이율배반성이다.
이런이율배반성은죽음과함께소설의곳곳에서산견된다.「시칠리아노춤곡」에서도춤곡을틀어놓고다트판에화살을던지며춤추는언니의모습을통해이런심리를드러내기도한다.연애에실패한후울면서화살을던지고춤추는언니의모습은자기자신의모습에다름아니다.
음악은술처럼번지는독이다.독이넘치면죽기도하지만독을먹고도살아남아야한다.독을마시는것같은고통스러운환경을어떻게든헤치고살아남고야말겠다는생존본능이이곳에서드러난다.정말힘든사람은힘들다고말하지못한다.고통스럽다고말하는자고통스럽지않고,고독하다고말하는자고독하지않고,죽고싶다고말하는자죽고싶지않다.
등단작인「소설속의여름」에서도그러한작가의의도는묵시적으로드러난다.
선배언니커플과양수리로놀러간화자는진초록으로우거진여름이사랑의절정을의미하는데그런사랑도가을이오면시들어버린다는것을잘알고있다.그래서화자는“찬란한녹색의향연”인여름이싫다고생각한다.화자는양가치의감정을드러내는걸서슴지않는다.네가나를사랑해주기를바라면서도“나를사랑하지않게되기를”바란다.하지만내면은그래도나를사랑해달라,고외치는이율배반성을드러낸다.
「존재의두번째거짓말」에서작가의시선은자신의내면을벗어나타인에게로향하는데오빠와아빠의죽음이그것이다.
우울증을앓던오빠가강물에빠진익사체로발견된후고통스러워하던화자는홍콩으로여행을떠난다.한국어를가르치면서친해진중국여학생흔과만나는여행이다.죽은오빠에게서벗어나기위해간홍콩여행이지만그곳에서도〈중경삼림〉의한장면처럼뒷골목에서오빠의환상을본다.순간적으로주변사람들에게오빠가외국에나가있다고거짓말하는엄마의말대로오빠가그곳으로도피한게아닌가싶은섬망에빠지기도한다.
자살한배우장국영의집을찾아가보는등,홍콩까지죽은오빠를업고간화자는귀국하면서아빠에게줄지갑을선물로산다.하지만며칠뒤아빠는홍콩여행에서사온지갑을유품으로남기고강에투신자살한다.
이소설은“가이사의것은가이사의것으로,죽은자는죽은자로하여금묻게하라”는경구를되새기게한다.

3.에로스와타나토스,그리고통과제의

삶과죽음에대한인간의본능은리비도를통해분출된다.에로스는살고자하는욕망이며타나토스는죽고자하는욕망이다.에로스와타나토스는일견정반대처럼보이지만실은쌍두사처럼한몸에달린머리두개라고할수있다.그둘은동전의양면처럼야누스의특성을지닌다.앞에서보면에로스지만뒤에서보면타나토스다.죽고싶다는욕망을뒤집어보면살고싶다는욕망이다.
타나토스는다시세얼굴을지닌노르트늘의양상으로나뉜다.죽고싶은욕망과죽이고싶은욕망,그리고죽임을당하고싶은욕망이다.「존재의첫번째거짓말」에서죽고싶다고끊임없이자신에게편지를쓰고있는화자의야누스적욕망은타인에게시선을돌리는순간세방향으로뻗어나간다.
당사자들의고통과괴로움을보는것보다차라리내가죽어버리자하는욕망,고통스러워하는당사자들을내가죽여버릴까하는욕망,아니면이것저것보지못하도록나를죽여주었으면좋겠다는욕망이그것이다.이세가지는방향이다르지만실은동일한욕망,즉타나토스로귀결되며거슬러오르면에로스를포함한리비도로귀속된다.
화자는두개의거짓말을통해에로스와타나토스로빈출되는리비도를예민한촉수로감지하며슬퍼한다.에로스와타나토스는희화적으로표현하자면‘살자’와‘자살’처럼동일한의미를단어배열만바꾼것에지나지않는다는사실을작가자신도알고있다.「존재의첫번째거짓말」에서“자살을꿈꾸는Y또한삶을너무사랑하고있는지도모른다”는화자의독백처럼이러한삶과죽음의이율배반성은작품에자주등장한다.거짓말이정말을아이러니하게드러내보이는장치로읽히는것도그런이유다.

일견해서작가의화두는죽음에대한천착,나아가서는삶에대한회피로서죽음에대한동경처럼보이기도한다.한발더들어가생각해보면죽음에대한화자의생각은결코죽음에대한찬미가아니다.죽고싶다는기표속에숨겨진기의는그래도살아야만한다는것이다.
작품의의미는기의를읽어내는데에초점이맞춰져야한다.전경을통해후경을분석했을때만비로소작품의실체가드러난다.독자의기대지평을충족시키기위한작품의다양한죽음의양상을제시하면서화자가감수해야하는몫이진솔하게제시되고있다고보인다.나아가서이러한감정들은자아방어기제의일환으로해석해볼여지를남긴다.
부언하자면“죽음은승복하는자는업고가고부정하는자는머리채잡아끌고가는존재라서그런죽음을두려워하는건죽음에지나친명예를주는것이”라고말하는작가의마음속에는인간의생명은죽음이잠시빌려준것이며,삶은죽음과죽음사이에놓인길고도괴로운터널이라는의미가숨어있다.그렇다고그런괴로운삶을회피하거나부정하지않고어디까지나헤쳐나가려는의지가엿보인다.그것은휘몰아치는북풍을마주하면서도눈길을피하지않고정면으로걸어나가는용기이자새로운삶을개척해나가려는의지라고볼수있다.

-김양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