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9.80
저자

가가노지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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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일.길_윤동주
2일.아우의인상화(印象畵)_윤동주
3일.숨ㅅ기내기_정지용
4일.노래-내가죽거든_크리스티나로세티
5일.이월햇발_변영로
6일.못잊어_김소월
7일.잠놓친밤_변영로
8일.사랑하는까닭_한용운
9일.슬픈족속(族屬)_윤동주
10일.하이쿠_료칸
11일.모란봉에서_윤동주
12일.여우난골족_백석
13일.비로봉_윤동주
14일.하이쿠_고바야시잇사
15일.두보나이백같이_백석
16일.십자가_윤동주
17일.산협(山峽)의오후_윤동주
18일.목구(木具)_백석
19일.하이쿠_가가노지요니
20일.나는왕(王)이로소이다_홍사용
21일.시계_권환
22일.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_백석
23일.기다리는봄_윤곤강
24일.새벽이올때까지_윤동주
25일.팔복(八福)_윤동주
26일.달좇아_조명희
27일.이별_윤동주
28일.묻지마오_장정심
29일.고독_노천명

출판사 서평

"혜안을가진열명을포함한천명의학자가있습니다.그들중에는한명의천재,한명의발명가,한명의창조자가있습니다.그리고지식을가진사람은몇천명이나됩니다.이세상에는셀수없이많은훌륭한사람과앞으로훌륭하게될사람들이있겠지요.그렇지만나는나의훌륭함이마음에듭니다."
-에곤실레<페슈카에게보낸편지,1910>


독자들로부터은근한관심과사랑을받고있는열두개의달시화집이,에곤실레의그림이실린에곤실레편을끝으로완간되었다.2월편이자시리즈의완성본인2월편『나는내슬픔과어리석음에눌리어』에는겨울끝자락의감성이묻어나는에곤실레의그림44점과윤동주,백석,노천명등의시29편이실렸다.

28세에요절한오스트리아의천재화가,에곤실레
에곤실레의그림과시로만나는내면의세밀한감성!

"내게예술이없었다면지금나는무엇을할것인가?...나는생을사랑한다.나는모든살아있는존재의심층으로가라앉기를원한다."-에곤실레


에곤실레는1890년에태어나1918년에,28세의나이로요절한오스트리아를대표하는표현주의화가이다.도나우강이흐르는작은시골마을툴른에서태어났으며,철도역장이었던아버지덕에유복한생활을했다.하지만실레가15살이되었을때,아버지의병과죽음으로집안은일순간에무너져내렸고,매독에걸린아버지가정신착란증세를보이며죽어가는모습을고통스럽게지켜봐야했다.그래서인지‘성(性)’은그의인생에각인되었고,실레의그림에는자신의뜨거운성적욕망,삶과죽음에대한열망과공포가드러나있다.
실레는오스트리아최고의미술학교를다니다고리타분하다는이유로자퇴했다.열여섯살,역대최연소학생이라는칭송을받으며영예롭게입학했는데말이다.그학교는구스타프클림트가다녔던학교이기도했는데,이후실레는클림트를직접차이후실레는로운입학이었으며,겨우열여섯살이었는데말이다.학교를그만둔실레는1907년클림트를만나게되었고,클림트는젊은화가에게친절한멘토가되어주었다.
.오스트리아최고의미술학교였고역대최연소라는영예로운입학이었으며,겨우열여섯살이었는데말이다.학교를그만둔실레가당대예술가중유일하게존경한인물은클림트(Gustav?Klimt,1862~1918년)였다.그는전통미술로부터의분리를주장하며‘빈분리파’를창립한수장으로당시빈미술계에서논란의중심에있었던인물이었다.반골성향으로똘똘뭉친둘은첫눈에서로를알아봤으리라.클림트는선뜻실레의스승을자처한다.
실레에게특별히관심을가져서,그림을사주고,자신의그림과교환하기도하고,모델을주선해주기도하였으며,후원을해줄만한사람에게소개하기도하였다.또실레를분리주의와연결되어있는비엔나워크샵에도소개하였다.실레는클림트를스승삼아실력을쌓아나갔다.하지만곧스무살에자기만의그림스타일을구축했지만어린소녀들을그린누드화가문제가되어투옥되기도했다.
“내그림과드로잉이에로틱하다는것을부정하지는않는다.하지만에로틱한그림도언제나예술이었다.이제껏에로틱한그림을그린화가가나한명인가?”?
죽어서까지끊임없이논란을몰고다닌그의작품세계를'비틀림의미학'이라부르기도한다.?에로틱한누드화를주로그리기는했으나,그는풍경화에도재능이뛰어났고,아무런교육을받지않은상태에서15살에그렸다는그의풍경화는놀라움을자아낸다.
열두개의달시화집의2월편《나는내슬픔과어리석음에눌리어》는에곤실레의그림과시를엄선하여조화롭게엮은시화집이다.노천명의<고독>,윤동주의<길>,변영로의<이월햇발>등겨울끝자락을노래하는시와,고독과외로움을표현한실레의그림이감상의격을높인다.매일한편의시와한점의그림을느끼는여유를선사하는시화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