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열두 개의 달 시화집 2월)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열두 개의 달 시화집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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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8세에 요절한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에곤 실레
에곤 실레의 그림과 시로 만나는 내면의 세밀한 감성!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도나우 강변 툴른이라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파격적으로 섹슈얼한 그림으로 당대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그는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화가다. 뼈가 앙상할 정도로 마른, 그림 속 자화상은, 세상을 향한 반항인 듯 고통스럽게 뒤틀려 있고 표정은 일그러진 채 관객을 노려본다. 열두 개의 시화집 시리즈 2월편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는, 에곤 실레의 고독과 외로움이 담긴, 44개의 그림 도판과 2월의 감성이 담긴 시 29편이 실려 있다.
저자

가가노 지요니

윤동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일제강점기의 저항(항일)시인이자 독립운동가. 29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대한민국 문학사에 길이 남은 전설적인 문인이다.

백석
시인, 소설가, 번역문학가. 1930년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로 등단했고, 몇 편의 산문과 번역소설을 내며 작가와 번역가로서 활동했다. 백석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주변 자연을 대상으로 시를 썼다. 작품에는 평안도 방언을 비롯하여 여러 지방의 사투리와 고어를 사용했으며 소박한 생활 모습과 철학적 단면이 시에 잘 드러나 있다.

정지용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며,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이다.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소월
시인.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지만, 호인 소월(素月)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 자택에서 33세 나이에 음독자살했다. 그는 서구 문학이 범람하던 시대에 민족 고유의 정서를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고 서정적인 시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진달래꽃〉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 외 많은 명시를 남겼다.

한용운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 호는 만해(萬海)이다. 불교를 통해 혁신을 주장하며 언론 및 교육 활동을 했다. 그는 작품에서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였으며 조선의 독립 또는 자연을 부처에 빗대어 ‘님’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했다.

홍사용
시인. 1900년 경기도 용인 출신.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휘문의숙에 입학했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그해 6월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면서 수필 <청산백운>과 시 <푸른 언덕가으로>를 썼다. 그의 문단활동은 《백조》 창간과 함께 본격화되어 《개벽》《동명》《여시》《불교》《삼천리문학》 같은 월간지와 일간신문에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권환
시인, 비평가. 1930년대 초 프로문학의 볼세비키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사회주의적 성격의 활동을 많이 했다. 계급의식과 정치 투쟁의 시와 전향과 순수서정 지향성으로의 시 세계를 넘나들며 작품을 썼다.

변영로
시인, 영문학자, 대학 교수, 수필가, 번역문학가. 신문학 초창기에 등장한 신시의 선구자로서, 압축된 시구 속에 서정과 상징을 담은 기교를 보이며. 천재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부드럽고 정서적이어서 시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작품 기저에는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한 의도도 깔려 있었다.

윤곤강
시인. 초기에는 카프 소속이었으나, 곧 암흑과 불안, 절망을 노래하는 퇴폐적 시풍을 띠게 되었고 풍자적인 시를 썼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전통적 정서에 대한 애착과 탐구를 시에 표현했다.

노천명
시인, 작가, 언론인. <눈 오는 밤> <망향> 등 애틋한 향수를 노래한 시들을 발표했고, 널리 애송된 대표작 <사슴>으로 인해 ‘사슴의 시인’으로 불린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의 시에는 개인적인 고독과 슬픔의 정서가 부드럽게 담겨 있다.

장정심
시인. 1927년경부터 시작을 시작하여 많은 작품을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다. 기독교계에서 운영하는 잡지 《청년(靑年)》에 발표하면서부터 등단했다. 독실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맑고 고운 서정성의 종교 시를 씀으로써 선구자적 소임을 다한 여류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조명희
조선에서 태어난 소비에트 연방의 작가. 1923년에 희곡 〈파사〉를 발표하고, 1924년에는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출판했다. 이 시기의 희곡이나 시는 종교적 신비주의·낭만주의의 색채가 짙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37년 가을 스탈린 정부의 스탈린 숙청 시절에 ‘인민의 적’이란 죄명으로 체포되어 1938년 4월 15일에 사형언도를 받고 5월 11일 소비에트 연방 하바로브스크에서 총살되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
영국의 시인. 부친은 이탈리아 중부 지방인 아브루초에서 런던으로 정치 망명한 이탈리아 시인 가브리엘레 로세티였다. 오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빅토리아조 후기 예술가들의 문예 운동인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를 결성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이끈 화가이자 시인이었고, 또 다른 오빠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와 언니 마리아 프란체스카 로세티는 작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시를 몹시 좋아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세련된 시어, 확실한 운율법, 온아한 정감이 만들어내는 시경 등으로 신비적?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종교적 이유에 의한 두 차례의 실연으로 결혼을 단념하였으며, 그녀의 작품 중 연애시의 대부분은 좌절된 사랑의 기록이다.

료칸
에도시대의 승려이자 시인. 무욕의 화신, 거지 성자로 불리는 일본의 시승이다. 시승이란 문학에 밝아, 특히 시 창작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불교 승려를 지칭하는 말이다. 료칸은 살아가는 방도로 탁발, 곧 걸식유행(乞食遊行)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일본 곳곳에 세워진 그의 동상 역시 대개 탁발을 하는 형상이다. 료칸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써가며 내면의 행복을 유지하며 청빈을 실천했고, 그의 철학관은 시에 그대로 담겨 있다.

고바야시 잇사
일본 에도 시대 활약했던 하이카이시(俳諧師, 일본 고유의 시 형식인 하이카이, 즉 유머러스한 내용의 시를 짓던 사람)이다. 15세 때 고향 시나노를 떠나 에도를 향해 유랑 길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소바야시 지쿠아로부터 하이쿠(俳句) 등의 하이카이를 배웠다. 잇사는 39세에 아버지를 여읜 뒤, 계모와 유산을 놓고 다투는 등 어려서부터 역경을 겪은 탓에 속어와 방언을 섞어 생활감정을 표현한 구절을 많이 남겼다.

가가노 지요니
여성 시인. 원래 이름은 ‘지요조(千代女)’이나 불교에 귀의했기 때문에 ‘지요니’라고 불리는 그녀는 일본인들에게 다음 페이지의 나팔꽃 하이쿠로 친숙하다. 바쇼의 제자 시코가 어린 지요니의 재능을 발견하고 문단에 소개함으로써 이름이 알려졌다. 시코가 죽었을 때 지요니는 다음의 하이쿠를 썼다

목차

1일. 길 _윤동주
2일.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_윤동주
3일. 숨ㅅ기 내기 _정지용
4일. 노래 - 내가 죽거든 _크리스티나 로세티
5일. 이월 햇발 _변영로
6일. 못 잊어 _김소월
7일. 잠 놓친 밤 _변영로
8일. 사랑하는 까닭 _한용운
9일. 슬픈 족속(族屬) _윤동주
10일. 하이쿠 _료칸
11일. 모란봉에서 _윤동주
12일. 여우난골족 _백석
13일. 비로봉 _윤동주
14일. 하이쿠 _고바야시 잇사
15일. 두보나 이백같이 _백석
16일. 십자가 _윤동주
17일. 산협(山峽)의 오후 _윤동주
18일. 목구(木具) _백석
19일. 하이쿠 _가가노 지요니
20일.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_홍사용
21일. 시계 _권환
22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_백석
23일. 기다리는 봄 _윤곤강
24일. 새벽이 올 때까지 _윤동주
25일. 팔복(八福) _윤동주
26일. 달 좇아 _조명희
27일. 이별 _윤동주
28일. 묻지 마오 _장정심
29일. 고독 _노천명

출판사 서평

"혜안을 가진 열 명을 포함한 천 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 명의 천재, 한 명의 발명가, 한 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 천 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 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에곤 실레 <페슈카에게 보낸 편지,1910>

독자들로부터 은근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이, 에곤 실레의 그림이 실린 에곤 실레 편을 끝으로 완간되었다. 2월편이자 시리즈의 완성본인 2월편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에는 겨울 끝자락의 감성이 묻어나는 에곤 실레의 그림 44점과 윤동주, 백석, 노천명 등의 시 29편이 실렸다.

28세에 요절한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에곤 실레
에곤 실레의 그림과 시로 만나는 내면의 세밀한 감성!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에곤 실레

에곤 실레는 1890년에 태어나 1918년에,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이다. 도나우 강이 흐르는 작은 시골마을 툴른에서 태어났으며, 철도역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유복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실레가 15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병과 죽음으로 집안은 일순간에 무너져내렸고, 매독에 걸린 아버지가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며 죽어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인지 ‘성(性)’은 그의 인생에 각인되었고, 실레의 그림에는 자신의 뜨거운 성적 욕망, 삶과 죽음에 대한 열망과 공포가 드러나 있다.
실레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미술학교를 다니다 고리타분하다는 이유로 자퇴했다. 열여섯 살, 역대 최연소 학생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영예롭게 입학했는데 말이다. 그 학교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다녔던 학교이기도 했는데, 이후 실레는 클림트를 직접 차이후 실레는 로운 입학이었으며, 겨우 열여섯 살이었는데 말이다. 학교를 그만둔 실레는 1907년 클림트를 만나게 되었고, 클림트는 젊은 화가에게 친절한 멘토가 되어 주었다.
. 오스트리아 최고의 미술학교였고 역대 최연소라는 영예로운 입학이었으며, 겨우 열여섯 살이었는데 말이다. 학교를 그만둔 실레가 당대 예술가 중 유일하게 존경한 인물은 클림트(Gustav?Klimt, 1862~1918년)였다. 그는 전통미술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며 ‘빈 분리파’를 창립한 수장으로 당시 빈 미술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반골 성향으로 똘똘 뭉친 둘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으리라. 클림트는 선뜻 실레의 스승을 자처한다.
실레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서, 그림을 사주고, 자신의 그림과 교환하기도 하고, 모델을 주선해주기도 하였으며, 후원을 해줄만한 사람에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또 실레를 분리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비엔나 워크샵에도 소개하였다. 실레는 클림트를 스승 삼아 실력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곧 스무 살에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했지만 어린 소녀들을 그린 누드화가 문제가 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내 그림과 드로잉이 에로틱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로틱한 그림도 언제나 예술이었다. 이제껏 에로틱한 그림을 그린 화가가 나 한 명인가?”?
죽어서까지 끊임없이 논란을 몰고다닌 그의 작품 세계를 '비틀림의 미학'이라 부르기도 한다.?에로틱한 누드화를 주로 그리기는 했으나, 그는 풍경화에도 재능이 뛰어났고,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15살에 그렸다는 그의 풍경화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의 2월 편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는 에곤 실레의 그림과 시를 엄선하여 조화롭게 엮은 시화집이다. 노천명의 <고독>, 윤동주의 <길>, 변영로의 <이월 햇발> 등 겨울 끝자락을 노래하는 시와, 고독과 외로움을 표현한 실레의 그림이 감상의 격을 높인다. 매일 한 편의 시와 한 점의 그림을 느끼는 여유를 선사하는 시화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