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우리’가사랑한소녀들을
오늘의시선으로,서로다른세대의생각과표현의방식으로다시바라보다!
‘캔디부터삐삐까지다시만난‘어린나’의그녀들’이라는부제를달고세상에나온책『우리가사랑한소녀들』은수많은‘우리’가어린시절에만난동화,애니메이션,만화,그림책속여성주인공들을소환해오늘의시선으로다시바라본인문학적성찰의결과물이다.그렇다고해서이책이냉정하고차가운비판의대상으로만그들을바라보는것은아니다.책의전반에흐르는정서는그녀들을향한따뜻한애정이며그것은곧‘어린나’로부터어른이된지금에이르기까지사랑해마지않는수많은소녀들에게기꺼이바치는헌사이기도하다.
이책의저자인50대와20대여성두명은,엄마와딸의관계이긴하나,각각독립된존재로이시대를살아가고있다.그런두사람이어느날각자의어린시절성장의동반자였던소녀들에대해다시생각해볼기회를갖기로의기투합한데서이책은출발했다.
그러나두사람이각자느끼고사유하는바를표현하는방식은매우달랐다.50대의여성은익숙한매체인글로,20대의여성은매체를하나로규정하지않고떠오르는대로,자유분방하게선택했다.이렇듯각자의방식으로이야기속소녀들을다시만난두명의저자는그들과‘어린나’가나눴던따뜻한애정을돌아보는동시에‘어린나’가미처보지못한그녀들의한계와아쉬움등을어른의시선으로들여다보았고,이로써같은대상을바라보는서로다른세대의시선과표현의방식이책한권안에서교차하는,이전에보지못한매우독특한책한권이세상에등장했다.
어른이되어다시만나는,그시절‘우리가사랑한소녀들’
많은사람들은어린시절숱한이야기속에둘러싸여성장한다.이야기속세계에서등장인물들과친구가되고,더불어새로운이야기를상상하고,거기에자신의경험을보태각자의세상을만들어나간다.
그이야기속에빠질수없는존재들이있었으니사랑스럽고어여쁜소녀들이다.누구나어린시절만난소녀들을꼽을때『오즈의마법사』의도로시,『이상한나라의앨리스』의앨리스,『빨간머리앤』의앤,『삐삐롱스타킹』의삐삐,『피터팬』의웬디,『작은아씨들』의조,『인어공주』의공주,『소나기』의소녀,『리본의기사』의사파이어,<바람계곡의나우시카>의나우시카,『키다리아저씨』의주디,『소공녀』의사라,『캔디캔디』의캔디,『피너츠』의루시와샐리,『해리포터』의헤르미온느,『하이디』의하이디등이머리에스치지않을수없을것이다.
『우리가사랑한소녀들』은앞서언급했듯수많은‘우리’의오늘을만드는데일조한숱한소녀들을다시불러내새로운만남을주선해주는책이다.
그렇다면오랜시간이흐른뒤다시만난이소녀들은여전히사랑스럽고어여쁘기만한존재일까?이들과다시만난다면오늘의우리는어떤마음으로이소녀들을대하게될까?이들과의새로운만남이란과연어떤것일까?이책은그질문으로부터시작한다.
우리들모두와더불어자란그녀들,어느덧비판의대상이되어버린그녀들,
그녀들을우리는어떻게바라보아야하는걸까?
어린시절우리를웃고울게해준수많은소녀들을향한냉정한비판의목소리가심심치않게들려온다.‘옛날이야기’를새롭게분석하거나바라보는수많은시도들은대부분객관적이고서늘한시선으로이야기를대상화하고비판한다.그분석의시선앞에서어린시절우리가만난수많은이야기속주인공들은그들을빛나게했던사랑스러움대신시대의한계속에갇힌창백한낯빛으로조명되곤한다.
자신의삶을주체적으로결정하지않고시대의한계속에갇혀수동적으로살았다거나,타고난미모만으로백마를타고온왕자에게선택받아그옆에서행복한미소를짓는다거나,진취적이고당당하게살아가다가도사랑앞에서는진부한서사로마무리를짓는다거나하는등의비판은오늘의시선으로바라볼때일리가있다.하지만그게다여야할까?
『우리가사랑한소녀들』이이야기속소녀들을바라보는시선의온도는조금다르다.이책은우선이야기속소녀들이한때우리가지극히사랑하고,함께울고웃던성장의동반자였음을잊지않고있다.어린시절어떤고난앞에서도좌절하지않고끝까지웃으려애쓰던캔디를보며현실에서마주하는어려움을이겨냈고,이루어지지못한사랑앞에서물거품이되어버린인어공주의운명을보며슬픔이라는감정을먼저배우기도했다.귀족의아내가되어안락한삶을사는대신가난한남편을선택하고자신의삶을주체적으로살아가는『작은아씨들』의조를보며익숙한다른소녀들과다른삶을선택할수있다는것도알았다.말괄량이삐삐를통해누렸던상상속통쾌함은두말할것도없다.
그렇다면『우리가사랑한소녀들』은어린시절사랑한소녀들을돌아보며더불어함께한지난시절의애틋한추억을떠올리는매개자의역할에만충실한책일까?이책이빛을발하는지점은바로여기에있다.분석과비판이라는태도로이야기속소녀들을바라보는대신애정과추억을바탕으로그녀들을다시바라보되오늘의시선으로그들을다시되짚어본다는점이그것이다.이책은여전히사랑스러운점은사랑스럽다고속삭이며그들로부터힘을얻었던어린시절의‘나’를다시돌아보는동시에그때는미처몰랐던그녀들의한계를바라보며때로안타까움을토로하고이의를제기하기도한다.
힘든상황에서도귀족적인품위를잃지않았던것으로기억하는『소공녀』사라에게서계급주의를극복하지못한일면을발견하고,훗날다시부자가된뒤친구라고칭한하녀베키에게과자를실컷먹게해주는대신학교에보내교육을시켰더라면더좋았을거라고하거나,남성들의전유물이었던영웅의자리에여성이등장함으로써주목받았던나우시카의이면에깃든외로움과쓸쓸함에주목하기도한다.편지글이라는신선한형식으로아껴가며마지막장을향해내달리게했던『키다리아저씨』의고아소녀주디를학교에보내준‘키다리아저씨’가그녀의미래를결정하고마음을좌지우지하려하는부당함에대해이의를제기하기도한다.
한권의책,두명의저자,50대의여성과20대의여성,
각자의어린시절을함께지낸소녀들을이제와다시보는시선의같고다름
이책의저자는두사람이다.주로글을맡은저자최현미는약20여년동안직장생활을해온50대의여성(일간지문화부장)이고,다양한시각적인시도로책을구성한또한명의저자노신회는20대초반의여성(한예종재학중인대학생)이다.세대는다르지만이들은어린시절같은친구와더불어성장했다.
그러나같은소녀를다시바라보는시선은같지않다.50대의저자가오즈의나라에서아무것도얻지못한도로시를연민하는동시에권위적이지않은리더십에주목했다면,20대의저자는어려운순간에도반려견을보살피거나사람들의말에귀를기울여주는도로시의품성을부각시키면서그수단으로상장을채택한다.50대의저자가피터팬과함께네버랜드로떠난웬디가그곳에서엄마역할을마다하지않는모습을보며어린소녀에게요구되던현모양처의품성에문제를제기하고있다면,20대의저자는언제나어린아이로머무는피터팬에비해성장하면서스스로주체적인삶을살아가는웬디의이후삶을상상하며그것을종이인형으로표현한다.인어공주가목소리를버리고인간의두다리로왕자에게다가갔으나끝내사랑에실패하는모습을보며50대의저자는있는그대로의모습으로왕자에게고백했어야하고,거절을당하더라도새로운만남을기대하며왕자와의인연에종지부를찍었어야한다고힘주어강조하지만,20대의여성은RPG게임의형식을빌어경쾌하고발랄하게인어공주앞에다양한선택지를제시한다.
같은소녀를향해때로는같은감정을공유하고,때로는전혀다른생각을독특하고기발하게펼쳐보이는이종의콘텐츠를통해독자들은각자의생각과비교하는것은물론이요서로다른세대의발상과문제를제기하는태도를만나는즐거움을맛볼수있게되었다.
이야기바깥에서바라본이야기속소녀들,
이들과함께자란모든이들에게이전과다른메시지를건네다
이책을통해소환하는주인공들은모두여성이며,이책을쓴저자역시둘다여성이다.저자들의서술은여성이라는측면을세심히살피는동시에모든것을여성성으로만바라보는한계를넘어선다.이러한서술은당연히개인의경험과추억,이야기속소녀들을향한새로운인식에서한발더나아간다.
50대의저자는왕이되기위해남장을해야했던『리본의기사』속사파이어공주를통해서는더이상여성이기때문에못하는일이없어야한다고강조하면서나아가성별만이아닌세상의모든차별과부당함을없애기위해서로손을잡아야한다고힘주어말하고,주인공을돋보이기위해존재하는『피너츠』의루시와샐리를통해서는모두가다세상의중심에꼭서야할필요는없지않느냐고되묻기도한다.또한어린시절그저이상한나라의모험을더불어즐긴앨리스가엄격한빅토리아시대에탄생했다는사실에주목함으로써앨리스라는소녀의등장이갖는의미를살피고,첫사랑의대명사인『소나기』속소녀를바라보는남성중심적인시선에대해물음표를던지는것역시눈여겨볼만하다.
이에비해20대의저자는애초에복장으로남녀의차이를구분하는것이무슨의미가있느냐는도발적인물음을과감한콜라주작업을통해제시하기도하고,루시와샐리의속마음을들여다봄으로써캐릭터를바라보는그세대들의특징을드러내기도한다.앨리스가경험하는이상한나라를사진을통해자신의일상에대입하거나『소나기』의소녀가일찍죽는설정이수없이반복되는사례를통해많은콘텐츠에서소녀의이미지가소비되는방식에이의를제기하는것에도역시유의미한메시지가담겨있다.
또한이책은소녀들을바라보는오늘의시선에대해서도되돌아보게한다.흔히수동적으로백마탄왕자를기다리는역할로비판받는무수한공주들은사실상결혼이라는기존질서바깥으로나와‘사랑’을선택함으로써‘개인의탄생’을가능케했다는점,오늘의시선으로보면답답하고동의할수없는선택일지언정그시대,그녀들의세계에서볼때는용감하고도전적이며전복적이기도했음을강조함으로써이야기세계의그녀들을있는그대로바라볼필요를일깨워주기도한다.
세사람의추천사,사적친밀감을넘어공적결과물을만들어내는여성연대의유의미한사례의징표
책뒤에는시인이자그림책작가인이상희,출판칼럼니스트한미화,아동문학평론가김지은등모두세명의추천사가실렸다.이들은이책의저자인최현미와오래전부터‘그림책’을매개로연대해온이들이다.
그동안두권의책을공저로세상에내보낸이들의연대는여러모로유의미하다.여러명의저자가한권의책을묶어내는이른바‘공저’는많은경우출판사의기획에의해개별저자들의글을묶거나,단기프로젝트등의연구성과나결과물등을책으로산출하는방식으로이루어진다.
그러나이들네사람은각자자신의현업에서활발하게활동하면서우연히만나공통의관심사를확인한뒤자발적이고유쾌하게관계를이어오며두권의책을공저로상재했다.그렇게만들어낸책은네사람의애틋한공동작업을넘어우리나라그림책독자들에게현실적이고유익한길라잡이역할을훌륭하게수행하고있다.
다시말해마음맞는여성들끼리형성한사적친밀감을바탕으로,좋아하는공통의대상을통해공적결실을만들어내는이들의관계는그자체로여성연대의유의미한사례이자나아가출판계의소중한자산이아닐수없다.
매우느슨하지만지속적으로연대를이어오고있는이들은서로의성취에따뜻하고지속적인응원과지지를주고받고있으며,이책의추천사역시그징표의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