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볼 수 없는 책 (귀중본이란 무엇인가)

아무나 볼 수 없는 책 (귀중본이란 무엇인가)

$17.00
Description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에서 ‘귀중본 이야기’로
‘흔한 책’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던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의 저자가 이번에는『아무나 볼 수 없는 책』 ‘귀중한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돌아 왔다. 귀중본 고서가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각각의 책들은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러 권의 귀중본 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보물 취급을 받는 귀중본도 원래는 평범한 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비교적 흔했던 책도 있고, 무언가 기념하기 위해 단체사진처럼 몇 부만 만들어 나누어 가진 책도 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있는가 하면, 힘들여 펴냈지만 읽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책도 있습니다. 모든 고서는 책 한 권 분량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귀중한 책의 실물은 아무나 보기 어렵다. 볼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유리 진열장에 갇힌 모습이다. 겉모습만 구경할 뿐, 책은 한 장도 읽을 수 없다.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복사본이나 사진을 보아야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약 28만 권의 고서가 있다. 그중 963종 3,475권이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책이 귀중한 책일까?

국립중앙도서관의 귀중자료 기준의 항목은 12가지이다. 우선 시기에 관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대체로 고서 전문가들은 임진왜란 이전(1592)의 책을 귀중본으로 간주하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의 기준은 조선조 제17대 효종조 이전(1659년)의 책을 귀중본으로 본다. 또 다른 기준으로는 1950년 이전 국내 발간자료나 1910년 이전 한국 관련 외국자료, 1945년 이전 독립운동가의 저작물 등 근현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밖에 하나뿐이거나 몇 없는 책 등 수량이나 소장자에 관한 조건과 자료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서화 등이 기준이다. 그러나 저자는 귀중본의 실체는 한마디로 ‘드문 책’이며 귀중본을 결정짓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책의 물리적 특징, 즉 물성이라고 말한다.
저자

장유승

성균관대학교한문학과를졸업하고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을거쳐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원연구교수로재직중이다.지은책으로《일일공부》,《쓰레기고서들의반란》,《조선잡사》(공저),《하루한시》(공저),《동아시아의문헌교류》(공저)등이있으며,옮긴책으로《서경시화:평양의시와인물들》,《동국세시기》,《한국산문선》(공역)등이있다.《쓰레기고서들의반란》으로한국출판문화상편집상,《동아시아의문헌교류》로한국출판학술상우수상을받았다.

목차

시작하며-귀중본이란무엇인가

1부조선시대인쇄술의명암
1목판인쇄의진실_팔만대장경과유교책판
2조선의스테디셀러_《포은집》
3무엇을위한금속활자인가_《북헌유고》

2부환영받지못한반환문화재
1기록을지배하는자,권력을차지한다_《난여》
2시간의저울_《주형》
3사랑의역사_《정사유략초》
4다른생각,다른말,다른행동_《남화경주해산보》
5누워서떠나는여행_《명산기》

3부인생의한순간을기억하며
1한번동기는영원한동기_《사마방목》
2황하가마르고태산이닳도록_《선무원종공신녹권》
360년의세월을돌아보며_《영조사마도》
4국왕의그림자,승정원승지들의애환_《은대창수시》
5금강산의봄_《금강록》
6인생의이력서_《남계선생연보》
7황제의유물에얽힌비밀_《황사매책시문첩》

4부명문이란무엇인가
1신라인,세계로진출하다_《협주명현십초시》
21478년판한국문학전집_《동문선》
3퇴계는과연위대한인물인가_《퇴계잡영》
4수석합격자의모범답안모음집_《동국장원책》
5문화외교의기록_《황화집》

5부쓸모있는책
1매사냥의바이블_《응골방》
2굶주림과의전쟁_《중간구황활민보유서》
3효도를실천하는법_《수친양로신서》
4편안하면위태로움을생각한다_《진법》
5호기심많은조선시대의관의연구노트_《소문사설》
6지옥을피하는방법_《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
7우리동네역사책_《훈도방주자동지》

마치며-귀중한책의역사는계속된다

출판사 서평

조선시대인쇄술과목판인쇄의실체

본격적인귀중본이야기에앞서저자는조선시대인쇄술의실체를먼저짚어본다.
저자에따르면우리나라에서활자인쇄가발달한이유는인구가적은나라에서다양한책을생산하기위한불가피한선택이었을뿐,출판기술의우월성을입증하는증거가될수없다.이것이구텐베르크보다2백년앞선다는한국금속활자의실체이다.또한팔만대장경은책을찍기위해만든것이아니라부처님의가호를상징하는것으로서목판이결과물이고책이부산물이다.팔만대장경목판은300평의공간을차지하지만인쇄물은2평이면충분히들어간다.유네스코문화유산에등재된유교책판역시‘인쇄도구’가아니라‘학문과권위의상징’일뿐이다.활자본문집은목판본문집간행을위한중간단계로서배포용이아닌보관용으로많은부수를인출(활자를조판하고잉크를묻혀종이에찍어내는일)하지않았으며,목판본문집역시광범위한유통을입증할증거를찾기어렵다.목판의수명은고작해야30년이었으며,목판본문집간행의목적은문집의유통이아니라판목의판각과보존에있기때문에학문의소통이나전승,담론형성에는한계가있었다.

“책보다판목을중시하는관념은조선시대에도바뀌지않았습니다.이것이바로우리선조들이조선말기까지목판인쇄를고집한이유였습니다.판목을아무리소중히보관한들,그자체로는사회에아무런영향도미치지못합니다.판목은그것이책으로바뀌어널리보급될때비로소가치를발휘하는법입니다.그속에아무리수준높은지식이들어있어도책으로만들어지지않으면소용이없습니다.팔만대장경과유교책판은지식의보급에기여하지못했습니다.지식이소수의전유물이었던시대였으니당연합니다.이것이우리가세계에자랑하는팔만대장경과유교책판의실체입니다.”

‘조선의스테디셀러’부터‘우리동네역사책’까지
26종의귀중본이야기

책에는조선시대최다간행문집이자스테디셀러였던정몽주의《포은집》부터조선후기에귀중한사료로이용되었던‘우리동네역사책’《훈도방주자동지》까지26종의귀중본이소개된다.각각의책에담긴사연과역사적맥락,책의저자와책속에등장하는인물들,그리고책의내용에대한인용이어우러져흥미를자아낸다.특히저자의꼼꼼한자료조사와고서에대한남다른전문지식에힘입어생동감있게다가온다.책에소개된귀중본몇편을들여다보자.

기록을지배하는자,권력을차지한다_《난여》

조선시대에도‘조보’라고하는관보가있었다.국왕의명령,신하의보고,조정의주요결정사항,신하들의논쟁이실린다.조보는낱장의문서형태라이렇게만든책의제목에찢어진조각을뜻하는‘난(爛)’자가붙는데《난여》도그중하나이다.1965년한일협정으로환수된852책가운데하나로서귀중본으로분류되지만《난여》를비롯해당시환수된책들은당시에도지금도관심을받지못한다.
《난여》는영조때영의정을지낸김재로가만든책으로노론으로서평생을당쟁의와중에서보낸김재로의파란만장한정치적역정의산물이다.경종의재위기간은짧았지만그기간동안노론은극심한박해를받았다.노론의입장에서는‘잃어버린4년’이었다.새로정권을잡은세력은으레‘적폐청산’을시도한다.노론은경종재위기간동안소론이저지른만행을속속들이기억해두었다가요긴하게사용하고자《난여》를만들었다.특히노론과소론이연잉군(영조)왕세제책봉문제로충돌한신임사화와관련된기록이라면실록보다자세할정도로가리지않고모았다.
김재로는《난여》를통해신임사화의책임은소론에있으며노론은억울한희생자라는이른바‘신임의리’를확고히정립한다.기록을지배하는자가권력을차지하는법.김재로가문이4대에걸쳐여섯명의정승을배출하며영조와정조조에권력을잡았던배경에는《난여》와같은기록의힘이작용했다.

한번동기는영원한동기_《사마방목》

조선시대생원과진사를뽑는시험을사마시,생원시와진사시합격자명단을‘사마방목’이라고한다.사마시합격은가문의영광이며함께합격한사람들은평생을함께할동기이므로합격자에게는사마방목이꼭필요했다.책에소개된1573년사마시합격자의명단인《사마방목》은일종의동기수첩이었다.임진왜란이전의문헌이고금속활자을해자로간행되어귀중본으로지정되었다.책의표지를넘기면시험관들의관직과성명이,그다음에합격자명단이성적순으로실려있으며합격자의신분과성명,자(字),생년,본관,거주지,부친의관직과성명이빠짐없이기록되어있다.
이책에서저자는생원시1등급다섯명과합격한동기187명의인생행로를추적해본다.출세한동기도있고몰락한동기도있으며,임진왜란을거치며의병장으로활약하거나목숨을잃은이도있다.전란이끝난1602년,생원84등으로합격했던홍이상이안동부사로부임하여우연히동기를만나안동에서동기모임을열기로한다.14명이모였다.이날모임의광경을묘사한그림이바로〈계유사마동방계회도〉이다.이들은1614년에도모임을가져40년가까이합격자모임을이어왔다.
흥미로운것은사마시에합격하고도문과에합격하지못한사람이많음에도불구하고사마시장원이동기회장을계속한다는것.관직으로가는첫관문인사마시를가장중요시했던것이다.출신학교를능력보다눈여겨보는요즘의세태와도겹친다.

퇴계는과연위대한인물인가_《퇴계잡영》

우리나라화폐천원권에들어가있는퇴계이황은과연위대한인물인가?퇴계의생애와저술은오늘날우리에게무슨의미가있는가?《퇴계잡영》은퇴계가은퇴를결심한1546년부터세상을떠나기5년전인1565년까지지은시를엮은책으로1576년간행되었고퇴계의친필을그대로모각했기때문에귀중본으로분류된다.
1610년퇴계는선조임금의묘정에배향되었다.문묘배향은유학자로서최고의영광이지만그렇다고이것이퇴계의위대함을증명하지는않는다.당시그의제자들이정권을잡고있었다는사실을전제해야한다.저자에따르면퇴계가다른유학자들보다학문적으로우수했다고말하기도어렵다.퇴계가활동하던시기가주희의성리학이조선사회에정착하기전이기때문이다.퇴계가남긴저술역시주자학의이해를돕기위한것이지,독창적인사상을담은책은아니다.퇴계가위대한점은조선을성리학의나라로만든선구자였기때문이다.성리학은고려말기에수입되었지만퇴계이전까지는이해가부족했다.퇴계가은퇴를결심한1543년,주희의저술을종합한《주자대전》이조선에서처음간행되었다.퇴계는이책에심취해은퇴를결심했다는견해도있다.그결과,퇴계의주자학이해는당시조선에서독보적인수준에올랐다.퇴계는주자학의‘얼리어답터’였던것이다.그럼으로써퇴계이후조선유학자들의성리학이해는비약적으로향상되었고전국각지에서원이세워지고향약이보급되기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