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의 시간 (박일환 시집)

등 뒤의 시간 (박일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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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비판적 방법으로서의 속도

박일환의 『등 뒤의 시간』은 속도감 있는 시집이다. 박일환 시에 내재된 속도는 효율과 이윤을 위한 속도가 아니다. 반대로 효율과 이윤을 위한 체제를 향해 돌진하는 속도이다. 시인은 그 체제를 내파하기 위해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한다. 그 방법으로는 ‘시인의 말’에 시인이 직접 썼듯이 언어의 결합을 통해서이다. 박일환 시인은 이 방법론이 효율과 이윤을 위한 자본주의 체제를 패러디했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결합이 아니라 분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박일환 시에서 속도를 느끼자면 다음과 같은 작품이면 될 것이다.
저자

박일환

1997년『내일을여는작가』에시추천을받았다.시집『끊어진현』,『지는싸움』,『살구꽃그림자』,『덮지못한출석부』와동시집『엄마한테빗자루로맞은날』,청소년시집『학교는입이크다』,장편소설『바다로간별들』,시해설서『진달래꽃에갇힌김소월구하기』와『청소년을위한시쓰기공부』등을펴냈다.

목차

시인의말_5

제1부
핥아주는혀ㆍ12
하얀갈대ㆍ14
먹태들ㆍ16
갑질시대ㆍ18
달과껌ㆍ20
달의힘ㆍ22
너훈아가죽었다ㆍ24
산다이한판ㆍ26
식탁에수저를올리는일ㆍ28
보이지않는손ㆍ30
사랑이시작되는자리ㆍ32
패스워드시대의사랑ㆍ34
올혼섬의밤ㆍ36
후지르마을언덕에서ㆍ38
등뒤의시간ㆍ40
2월이짧은이유ㆍ42
씨방ㆍ44
덤ㆍ46

제2부
정글시대약사略史1ㆍ50
정글시대약사略史2ㆍ52
정글시대약사略史3ㆍ54
정글시대약사略史4ㆍ56
정글시대약사略史5ㆍ58
사릉역의추억ㆍ60
자두맛사탕ㆍ62
토끼풀군락지ㆍ66
악어의질문ㆍ68
실선과점선ㆍ70
위하여ㆍ72
우는토끼ㆍ74
능소화ㆍ76
신장개업ㆍ80
양파망에담긴양파ㆍ82
국가라는임대주택ㆍ84
스피드광을위하여ㆍ86
내사랑민주노조ㆍ88

제3부
풍경을접다ㆍ92
내일의예감ㆍ94
밀양의친구들ㆍ96
책상다리가어느날ㆍ98
팽목항에서ㆍ100
아빠팔이왜이렇게얇아?ㆍ104
수많은금요일이지나갔다ㆍ106
안산에서안산까지,그리고ㆍ108
봄꽃지던날ㆍ110
가여운지방방송ㆍ112
왕국을위하여ㆍ114
비포앤애프터ㆍ116
슬픈현대사ㆍ118
가을을보내며ㆍ122
유턴보다는피턴ㆍ124
살구잼만드는남자ㆍ126
고려엉겅퀴ㆍ128

제4부
시의바깥을거닐다ㆍ132
기도의힘ㆍ134
알파고가이세돌을이기던날ㆍ136
매발톱ㆍ138
부메랑ㆍ140
김밥을위한연가ㆍ142
겨울우금티ㆍ144
블랙리스트ㆍ146
외다리도요ㆍ148
군상群像ㆍ150
상강霜降무렵ㆍ152
숲길ㆍ154
언저리문학상ㆍ156
어떤수업ㆍ158
문의와안의사이ㆍ160
신혼부부를위한슬픈발라드ㆍ162

해설
혀와시|노지영ㆍ164

출판사 서평

악어가신발을물고도망간다
악어가가방을물고도망간다
도망가는악어는눈물을흘린다
악어의눈물을비웃는소리가여기저기서들린다
그래도악어는신발을물고도망간다
그래도악어는가방을물고도망간다

도망가는악어를잡으러사람들이달려간다
악어를잡아라!
저악어를잡아라!
저악어를잡으면상금을주겠다!

_「악어의질문」부분

위시는인간이자신의사용가치를위해서는다른생명체도서슴없이취하는현상을비판하고있는데,박일환시인은그에대해도덕적인방식으로접근하지않는다.도망가는악어와그악어를쫓는세태를짧은언술의조합을통해속도감있게표현하고있다.아예악어의입에“신발”과“가방”을물림으로써악어를“신발”이나“가방”자체로인간이인식하고있음을비판하고있다.이작품은방법적으로속도를차용하고있는경우이지만,“속도는반복과재생사이에서반성을모르고”질주중이라는「스피드광을위하여」같은작품은자본주의의속도에대한직접적인비판이다.

시인이‘시인의말’에서“앞으로계속시를쓴다면/결합이아니라분리에집중해야한다”고말한것은자신이방법론적으로속도를택했다는고백이기도하며,반대로정지를함께인식하고있다는의미도함축한다.보다자세히말하자면박일환의이번시집은속도와정지를씨줄과날줄로삼아직조했다고볼수있다.동시에현재라는시간속에서펼쳐지는여러사건과상황을두루관통하고있는데,이‘두루관통함’이시집전체에무거움과경쾌함,속도와정지라는일면대립되는듯보이는속성을부여하고있다.

일단멈춰서되돌아보기

죄있는자와서씻어라
죄없는자도와서씻어라
부르한바위아래
씻은심장을널어놓아라

바람만이세상의주인이었던
태곳적전설을떠올리며
잠시눈을감으면
바람이너를데려가리라

_「후지르마을언덕에서」부분

이렇듯어떤시들은전혀속도를갖지않기도하다.위시에서는도리어“바이칼의바람”처럼“부르한바위아래”에멈춰서“떠나온길”을되돌아보고있다.되돌아보는일은빠르게움직이면서는할수없는일이다.일단멈춰야되돌아보는행위가가능한법이다.비록그것을비판하기위해방법적으로빌려썼다지만시인에게들러붙어있는자본주의의속도를떼어놓기위해서는일단멈춰야한다.그랬을때만이,주위의작은것에새로운의미가충전되며그새로운의미가비판과창조의힘이된다.

보라마을개울가에서정리집회를하는동안
그아래무심한듯헤엄쳐다니는
작은물고기들
국가를굴복시킬수있는건어쩌면
나부끼는깃발과웅웅대는확성기가아니라
저어린물고기들일수도있겠다

_「밀양의친구들」부분

시인에게는밀양송전탑싸움에임하는‘밀양의친구’가다름아닌밀양의“개울”이고,거기에사는“물고기”이고“바람과햇볕과눈보라”인것이다.이렇게자본주의적속도에태연한또는그것과관계맺지않는(비)존재들에게새로운의미를충전시키는것은속도가아닌것이다.돌려말하면,이번시집에실린작품들중에서속도를갖는비판적서정시들은자본주의를가격하긴하지만자본주의를시적으로지워버리지못한다.하지만속도를내려놓은작품들은자본주의를직접겨냥하지는않지만다른세계를구축하면서독자의내면에서자본주의를삭제하는데성공하고있다.

존재의기쁨을퍼올려주기

박일환시인이죽임당하거나버려진존재들즉세상의“언저리”에가닿을수있는것은속도를채택하면서속도의그늘을느끼는역설을통해서이다.다시,속도를내려놓음으로써“언저리”의심연을재생하려는고투를보여주고있다.세월호참사때‘세월호특별법’을요구하며40일동안단식을한김영오씨를노래한시에서시인은이렇게말한다.“언니잃은동생은앙상한아빠에게묻는다”.“아빠팔이왜이렇게얇아?”(「아빠팔이왜이렇게얇아?」)시인은이한마디로“언저리”의심연에도달하고야만것이다.그런데눈여겨봐야할것은“언저리”의심연에도달하는방법이시를현실아래에두는것이라는점이다.사실위질문은시인의받아쓰기에지나지않지만,어떤미학적수사보다더깊이“언저리”의심연을보여준다.그렇다고“언저리”의심연이비극적인파토스로일렁인다고생각하면안된다.거기에는분명히다른기쁨이있다.어쩌면자본주의의속도를물리치고다른세계를구축하는일은,물리치는과정에서는비극적파토스가불가피하겠지만궁극적으로는존재의기쁨을지상으로퍼올리는일일것이다.예컨대다음시처럼말이다.

숲과길이만나
숲길이되는경이로움을
누구에게속삭여주어야할까?

두려움을내려놓으라며
당신이내어깨를짚어주었을때
나는이제막숲길로접어들던참이었어

이제내가누군가의어깨를짚어줄차례라는걸
숲속의새가일러주고는
작은깃털하나떨구고갔지

깃털을들어뺨에대보니
따스하구나

숲에서길을잃더라도외롭지않겠구나

_「숲길」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