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가 다녀간 새벽 (정태중 시집)

전어가 다녀간 새벽 (정태중 시집)

$12.00
저자

정태중

전남함평출생(경기시흥거주)
2006년《대한문학세계》로작품활동시작

시집
이방인의사계그리고사랑(2016년)
굼벵이놓아주기(2021년)
그쓸쓸한저녁아래서(2022년)
전어가다녀간새벽(2026년)

목차

1부광괄이
2부국밥집에서
3부당신이라는산등선
4부섬

해설

출판사 서평

기억으로서의시그러나다시기억을넘어가는시

아인슈타인의상대성이론은에너지가질량에비례한다는사실을알려준다.무모하지만이사실을시에게로적용해보면시의매력은경험의무게에비례한다고볼수있지않을까.물론경험의무게속에는세월의연륜과깊이가포함되어있다.(여기선일단시적표현의문제는논외로하자.그렇다면그경험의무게는무엇으로측정할수있을까.경험의무게는결국기억의부피와밀도의지속시간이아닌가싶다.그런데그기억의부피와밀도(강도)는어떻게측정할것인가가다시문제가된다.기억은단순히경험을통해습득한정보의문제만은아니다.그것은인간의감정,그리움이나애착의정도를따져야한다는의문을갖게하였다.
여기에서그기억이단순한양의정도라면인간은이미그저장능력에서인공지능(AI)을따라갈수가없을것이다.개별인간의경험은상당량이망각으로유실되거나왜곡되기도한다.하지만인공지능은인류가경험한모든지적경험을축적하고보존하는측면을갖는다.뿐만아니라기억을포함한인간의지적능력면에서이미인간의능력을넘어서고말았다.기억이단순히경험을통해축적한정보의양에관한대답이라면인간은일찌감치인공지능의상대가될수없게되었다.

그러나아직서둘러절망하기엔이르다.현대의뇌과학은인간의뇌와기억과감정이긴밀히연관되어있어서인간의감정이기억을강화하고,기억이감정을유발하는방식으로상호작용을하고있다는사실을말해주고있다.인간의기억이단순한정보의저장문제가아니라감정이개입된문제라는사실은인간의불완전성을말해주는동시에인공지능과의변별점을시사하고있다.미래의어느시점에감정을지닌AI가등장할지는모르나아직감정은인공지능의영역은아닌것이다.인간의기억이지적결과물인동시에정서적결과물이란사실은시인으로선천만다행이다.이순간만큼은인간이이성적인동물인동시에불완전한감정의동물이란사실이어쩌면축복일지모른다.


시인의유년시절경험과그기억을소환하고있는정태중의시집『전어가다녀간새벽』은총4부로구성되어있으며,이시집의전체적인중심은1부에집중되어있는것으로보인다.한편의시속에시심이고도로고양된시편이있다.‘시안詩眼’이빛을발하는순간이라할수있는데,한권의시집속에서도전체의내용을압도하거나대표하는부분이있기마련이어서1부에보여진시들을중점적으로살피게하는힘을지니고있었음을밝힌다.

“열일곱해였던가여럿이모여어느집담장에한폭수채화를그렸을때누군가의그림속에선울창한숲위로새한마리날아올랐다

보성소싸움장날선씨네우사를열여제끼고나온수소같은종팔이였다.”

-「오줌발」전문

1
시집의첫장에배치한「오줌발」을읽는순간독자들을열일곱청춘들이담장에대고뿜어내는힘찬‘오줌발’속으로빨려들게하였다.사춘기를지나음모가무성해지고물건이굵어지기시작한청춘들이뿜어대는오줌의비릿한지린내와담벼락에부딪히는힘찬물소리,그리고그것들이담벼락을화폭삼아펼쳐보이는추상의그림한폭.독자들은후각과청각과시각이동원된그오줌발속으로빨려들어가지않을재주가없을것같다.
종팔이의수소같은거시기가자꾸떠오르는이시에서‘자지그라피티’속의‘울창한숲위로새한마리날아올랐다’라는문장의힘또한세차보인다.근처숲에서실제로새한마리가날아올랐을수도있고,담벼락에번진수채화가날아가는새모양을그렸을수도있으나이구절은단순히그러한사실만을말하고있지는않은것같다.자지의꿈,자지의비상이랄까.굳이해석을필요로하지않는시구가유치한수컷들의장난한장면을시로승화시키고있다.
전봇대나담벼락,웬만한도시의골목에서도수컷들이그렸던‘좆도화’내지‘자지그라피티’가현현되었음이다.이시의오줌발속에는서정주의‘화사花蛇’의세계를연상시키는원초적관능과화염이새겨져있는것처럼보인다.

목줄풀린날이면임자만난듯닥치는대로동네암컷들을혀빠지게다상대하느라밤늦게지쳐돌아오는정복이네개말복이(「분발」),레깅스를입고궁둥이를실룩대며원미산을오르는가시내들(「원미산진달래길」),얼룩말뒤태같은미끈한다리가있는(「연주미용실69번채널」),일없이정류장을서성이며분홍꽃팬티를떠올리고있는어떤인물등.시골장터의각설이타령같고,소리꾼같고,전기수같고,엿장수가위소리같고,빈대떡장수의호객소리같기도한정태중의시속에는,발정난개와젊은사내들이휘젓고다니는고향시골마을이나장터의모습이비릿하고도정겹게그려져있다.

그밖에도서시의“오줌발”속으로끌려들어간이시집의처음시들에서한가지더주목해야하는사실은고유명사인사람이름이많이등장한다는점이다.종팔이,정복이,연주,노춘이,정문이,광팔이,봉자,상필이,애숙이,순임이,말순이,석이,순이,상태등고향친구일것으로추정되는친숙한이름들이끊임없이호명되어시속에등장하고있다.

애숙이그년이
애당초백일홍만아니었으면
해당화그깊은속내로피었을텐데

짠내나는강진마량포에
속비어버린굴껍데기처럼달빛이나품고
달뜨는월출산아리랑곡조에
술타령은비켜갔을것인데

누가알랴
짠내나는속내를

그애목소리저녁을흠뻑담아
달그락달그락시렁종지에물채우듯들릴것인데
순임이맑은목소리가끼어들어서
마량앞바다가파도가한결부드러워졌다

말순이커피잔에흐린얼굴기웃거리다
쓰디쓴말삼킨다
우짜든가건강해라잉

꽃은지면서도피는것잉께

-「백일홍서사」부분

고유명사인각각의이름에는그이름에얽힌일화나서사가없을수없다.한사람의이름을기억한다는것은그사람의이미지뿐만이아니라그사람과의일화나그사람자체의서사를기억하고있다는의미가될수있다.따라서각각의이름에는경험의무게와시간의무게가실려있기마련이다.
「백일홍서사」에서화자는추석무렵고향이나그언저리에서옛친구임이분명한순임이와말순이를만난화자가애숙이를떠올리고있는표정을읽는게유쾌하였다.백일홍이뭘어쨌길래해당화로나피고,‘속비어버린굴껍데기처럼달빛이나품고’끝났을술자리에서무슨일이있었던것인지잘알수없지만,이미완의서사는그렇기때문에산문이되지않고시가되었다.오래된이름들을불러와적당히목소리를내보이다가모른척뒤로빠져서시치미떼는방식은단편소설에서도통할수있는수법이기도하였는데,일정부분성공을거두고있는첫부분의시들이선택한기법으로보인다.

유년시절이나성장기를공포와불안으로기억하고있는사람도있을수있다.하지만대개의경우인간은다소힘들었을지언정자신의유년시절이나성장기를행복했던시절로기억하며그리워한다.행복했던유년의기억은한인간이평생을걸쳐힘든현실이나고통을이겨낼수있게하는원동력이되기도하였다.그러므로유년시절이나성장기를함께보낸사람들과의공간(고향)과그들과함께겪은사건은쉽게잊을수없다.따라서정태중시인의지금까지읽어내려온시에서호명하고있는이름들과거기에얽힌서사들은심각할법한이야기조차유머가넘치고마침내실소를자아내게만들기도하였다.

2
다음으로정태중의시에서시적인효능감을더해주었던장점은방언의적절한배치와구사에서엿볼수있다.별로특별하지않았던표현이방언으로대체되었던순간시적표현의효과가뜻밖에도증폭되는경우를여러곳에서발견할수있다.


언능좀와바라노춘아
쥐눈맹키로몽실한개나리가피었단마다
오두산아래사는봉자가슴맹키로봉긋허단마다

아래짝마을서는매화가다투어핀다든디
꽃이파랑아래로여럿자빠져부럿드란다

올적에막걸리댓통사와라잉
맹숭맹숭볼란게는잔폭폭허고안그냐
취기라도쪼까올라야헐것같은거시
암만해도그런단마다

천불든가심달랠러믄
꽃물에라도조까식혀야허지안컸냐

안그냐잉.

-「봄꽃피는아침6」전문

빨리좀와바라노춘아
쥐눈만큼몽실한개나리가피었단다
오두산아래사는봉자가슴만큼봉긋하단다

아래쪽마을서는매화가다투어핀다던데
꽃잎파리아래로여럿자빠져버렸단다

올적에막걸리댓통사와라응
맨송맨송보려니좀폭폭하고안그러냐
취기라도좀올라야할것같은것이
암만해도그렇단다

천불든가슴달래려면
꽃물이라도좀식혀야하지않겠냐

안그러냐응.

-「봄꽃피는아침」전문

필자가서투르게나마표준어로바꿔놓은아래쪽의시는시인이사투리로쓴원래시와느낌부터다르다.비슷한의미의말이라도특정지역의방언속에는그지역에서오랫동안축적되어온유별난정서가살아있다.그래서그경험과서사를담고있는방언이야말로감정기억의핵심요소로자리한다.특정지역의방언은표준어와는다른낯섦자체가시적표현효과를증대시키기도하지만,방언속에는오랫동안그언어를사용해온지역공동체의기억으로도녹아있기마련이다.따라서표준어라고규정해놓은인위적규범언어와는다른경험의색깔을지닌다.

3
그가유년과고향정서와의또다른지점에서체득한것으로보이는일련의시를더살펴보는것으로이시집의미래를안내하여보려고한다.

물비늘굳은은빛이누워있다전하지못한안부의말부고문자는싸늘한새벽공기에황망한전어처럼헤엄쳐와서몇해전넓고도넓은서울의푸른바다귀퉁이에서자정넘도록수다를피운노천포차에고향의비린내와껄껄대었던모습스쳐서는구절초활짝피는계절이
은빛수정의물결을일렁여놓고가면
사라지는것들의밤은화려해야했으므로조등은우리들의얼굴로더밝아야했다웃음은아픔을감추기에좋은계획이라며수북이쌓인국화송이뒤에서환하게웃는은빛물결위로새벽이온다삼가,새벽은오고그의은빛도한줌재가되고보면천국까지전할수없는서로의안부의말들이물비늘을반짝이며멀어져갔다.
-「전어가다녀간새벽」전문

표제시이기도한“전어가다녀간새벽”의서사역시결론부터말하자면“고향의비린내”와연결되어있음을알수있다.하지만이시의진술방식은앞에서살핀시들과상당한거리를두고전개된다.시에서나타난“전어”는단순한물고기의이름이아니다.“새벽에헤엄쳐온누군가의부고”에서정태중은자신만의전어를소환한다.“물비늘굳은은빛이누워있다”는돌연한바라봄이시적은유와함께표현의확장을꾀하는듯보인다.다소일률적인서정적자아를통한시들에서도빠져나와정태중이지양해보는시적방법론의하나임을내보이고있다.

그는아래와같은목소리를통해시속으로몰고온“전어”의바라봄을마무리한다.
“삼가,/새벽은오고그의은빛도한줌재가되고보면/천국까지전할수없는서로의안부의말들이/물비늘을반짝이며멀어져갔다.‘그렇게그의시속에서의전어한마리는이처럼통회의심정을거쳐서그를다녀간셈이다.

칼끝스쳐간한계절

곧봄이다.
-「피습」전문

이시집에서가장말이아껴진시한편이다.말을아껴서인용한게아니라,단3행의시로완결된촌철살인의이시역시정태중의또다른가능성의자리에존재하는지모른다.그것은가장적은말로가장깊거나너른언어의지평에도달해야한다는시의운명을떠올려볼수있기때문이었다.

3
정태중의“여행시”로불러도되는,어딘가를나다니면서마주친시들이시집의말미에상당히많이눈에뜨인다.하지만여행이나그경험을통해작품을쓰는일은의외로쉽지만은않을것이다.그것은시인이나작가로서의개별적인능력의차이도있겠지만,우선여기에선체험의강도나양과질의문제를제기해볼수있겠다.평소별다른관심이나사전조사등의인식없이막연한애정이나그리움에기대보는감상만으론독자의감동을끌어내기에역부족이되지않겠는가.역사적공간이든일상적사건이건그에대한깊은이해나성찰이없이는,그것들은단지시의소재로만소용될위험성이크다.많은시인들의대표작들이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