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로 오는 바다 (백종덕 시집)

가나다로 오는 바다 (백종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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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가나다로 오는 바다』는 가장 처음의 말로 돌아가는 시집이다. 그 처음의 말은 “가, 나, 다”이며, 이름이며, 얼굴이며, 마음이다. 시인은 노년의 삶과 돌봄의 현장에서 인간이 마지막까지 붙잡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다. 기억은 흐려지고, 몸은 굳어가고, 말은 샐러드처럼 뒤섞이고, 이름은 엉뚱한 자리로 옮겨 앉는다. 그러나 그 모든 쇠락 속에서도 인간에게는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부르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한 그릇의 음식, 창밖의 나무와 나누는 대화, 자식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그리움 그리고 가장 처음 배운 말의 음성적 감각이다.
백종덕의 시는 이 남겨진 것들을 받아 적는다. 곁에서 받아 적는다는 것은 돌봄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렇듯 돌봄은 백종덕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이유이며 방식이 된다. 시인은 누군가의 곁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몸을 보고, 그의 농담을 받아 적고, 그의 울음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사라지는 것보다 남는 것에 더 오래 눈을 둔다. 이 시선이 그의 시를 따뜻한 배려의 언어로 만든다.
또한, 그의 시는 자연에서 낮은 자세를 배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연꽃잎은 지는 해의 붉음을 잠시 감당하며, 자작나무는 흰 살갗에 견딤의 문장을 새긴다. 이런 자연의 모습은 돌봄의 태도와 연결된다. 돌봄은 낮아지는 일이고, 기다리는 일이며, 침묵 속에서 자라는 것을 믿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이 모든 사유를 품는 가장 큰 이미지다. 바다는 발등을 읽고 지나가며, 상처를 봉합하고, 원망의 발자국을 지우고,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자들의 합창을 받아준다. 바다는 죽음과 귀향, 상실과 회복, 침묵과 음악이 함께 머무는 자리다. 그러므로 이 시집의 바다는 종착점이 아닌 돌아감의 장소이며 시작의 장소이다. 존재는 바다를 향해 가며, 그 바다에서 다시 “가, 나, 다”라는 처음의 말로 돌아간다.
저자

백종덕

충청남도보령에서태어났다.『시의시간들』시인기자단으로활동하며,노년기식문화를다루는월간지『존엄한식사』를발행하고있다.남양주시인협회회원이며,덕소에서요양원을운영하고있다.복봉투후원프로젝트를기획·운영하며돌봄과관계의언어를기록해왔다.돌봄의공간이세대와지역사회를잇는삶의공동체가될수있다고믿는다.

목차

1부│책상위의정거장
2부│곁의무게를견디는일
3부│낱말샐러드와검은포자
4부│수평선너머의귀향
[발문]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곁에서받아적은생의물결들
-백종덕시에서읽는돌봄의언어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1.들어가며

백종덕의시집『가나다로오는바다』를읽으면먼저‘돌봄’이라는말이떠오른다.이말은시인이요양원을운영하며노년의삶을가까이에서지켜보았다는사실만을가리키지않는다.이말은이시집의중요한정조나사유와깊은관련을맺는다.그것은‘곁에있음’의경험에서얻게된것이기도하다.시인은누군가의쇠약해지는몸,자주되풀이되는말,사라지는기억,견디기힘든그리움같은쉽게말로정리되지않는고통과마주한다.그리고그끝자리에서인간에게남는것이무엇인지를생각한다.그생각을통해시인은“가,나,다”라는가장처음의말,“부르던이름하나,붙잡고싶은얼굴하나,마지막까지건네고싶었던마음하나”로돌아간다.이시집이보여주는것은바로그처음의말로돌아가는이느린귀향의과정이다.
시인의말에서그는“누군가는이름을잊어가고,누군가는같은문장을하루에도몇번씩반복”한다고말한다.또한“어떤분은창밖의나무와이야기를나누고,어떤분은다식은국물한숟갈에평생의그리움을담아내기도”한다고쓴다.여기서시인이주목하는것은상실의현상자체보다그상실속에서도버리지못한삶의흔적이다.이름을잊는사람에게도이름을향한그리움은남고,같은말을반복하는사람에게도반복을통해붙잡고싶은삶의장면은남는다.백종덕의시가돌봄의윤리에기반하고있다고말할수있는까닭은여기에있다.돌봄은결핍을관리하는일이기도하지만,남아있는것을알아보는일이기도하기때문이다.다시말해돌봄은사라지는것들의표면아래에서끝내사라지지않는마음의결을읽어내는일이다.
현대사회에서이런돌봄의가치는점점더중요해지고있다.사람은늙고,병들고,잊고,더디게말하고,혼자서는움직이지못하는순간을맞는다.그러나속도와효율을중심으로작동하는사회는느린몸과반복되는말을불편해한다.그래서생산성과성과로인간을평가하는사회에서노년의몸은쉽게주변부로밀려난다.기억을잃어가는사람,누군가의손을기다리는사람,하루대부분을침상위에서보내는사람은사회의중심에서멀어진다.하지만누군가는그들을돌봐야한다.그래서돌봄은현대사회에서가장기본적이고구체적인윤리적가치로생각될수밖에없다.돌봄은인간을기능으로환산하지않겠다는태도이며,느린존재의시간을함께견디겠다는약속이다.백종덕의시는바로이약속의언어를시로옮긴다.
하지만그의시에서돌봄은연민만을감상적으로강조하지않는다.돌봄은구체적이고생활감각적이다.고무줄을당기며웃고,배식차가지나가고,기저귀를갈고,섹션기속으로가래끓는소리가빨려들어가고,어르신의이름을다시부르고,그리움을담은식은국물한숟갈을본다.이시집의언어가생생한까닭은이렇듯돌봄의현장을지나치게미화하지않기때문이다.냄새와소리와욕설과농담과신음이그대로들어온다.이구체성이시를살아있게한다.돌봄은막연한선의에서확인되는것이기보다한사람의몸곁에머무는시간이며,그몸이내는소리를끝까지듣는일이기때문이다.

2.곁의마음과돌봄의실천

『가나다로오는바다』에서가장자주들리는말은‘곁’이다.곁은단순한위치를뜻하지않는다.곁은마음의방향이며,이는타인의시간안으로잠시들어가는사랑의실천이다.백종덕의시에서곁은타인을구경하고관찰하는자리가아닌함께견디는위치를말한다.좀더자세히말하면,누군가의몸이무너지는동안그무너짐을외면하지않고바라보는장소이며,누군가의말이흩어지는동안그말의남은음절을받아적는자리이다.
「마음이라는꽃」은이곁의의미를가장단순하고선명하게보여준다.

옆을바라본다는건
경계의마음

뒤를바라본다는건
의심의마음

위를바라본다는건
겸손의마음

너를바라본다는건
사랑의마음

하늘을바라본다는건
기도의마음

곁을바라본다는건
배려의마음

마음이란
내가머무는곳이아니라
내시선이닿는곳에피는꽃이었다.
-「마음이라는꽃」전문

이시의핵심은마음을내면의고정된실체로파악하지않는다는데있다.마음은시선이닿는곳에서피어난다.백종덕의돌봄시학은이발견에서출발한다.누군가를돌본다는것은나의마음을베푸는행위로만설명되지않는다.그것은시선을옮겨야비로소가능한일이다.내중심에서타인의곁으로,나의편의에서타인의불편으로,나의속도에서타인의더딘시간으로시선을옮기는일이다.“곁을바라본다는건/배려의마음”이라는구절이이모든것을다함축해보여준다.이구절이중요한이유는돌봄의시작이시선의전환에있음을말해주기때문이다.바로이것이가능할때나의마음은꽃이되어누군가를기쁘게하거나위로할수있다.배려와돌봄은이렇게시선에서나온다.
「문고리」역시곁의사유를사물의이미지로구체화한다.문고리는안과밖을잇는장치다.그것은닫힘과열림사이에놓여있다.시인은“손이닿으면안과밖이잠깐흔들린다”고말한다.문을열기위해문고리를잡는다는것은타인의세계로들어가기위해자신의위치를잠시흔드는일이다.그래서누군가의곁으로가는일의출발이기도하다.시의마지막에서“나는잠깐나를밖에두고너의안으로걸어들어간다”는진술은돌봄의가장중요한태도를담고있다.돌봄은나를앞세우는일이기보다는잠시나를밖에두고누군가의곁으로가그사람의마음안으로가는일이다.내판단,내속도,내편리함을잠시내려놓고타인의안으로걸어들어가는일이라는말이다.
「연꽃잎의자세」는곁에있음의또다른의미를알려준다.저녁은“빛도기운도빠진채/천천히무너지고”있다.그때연꽃잎하나가“하늘을향해”서있다.그것은“두껍지도/단단하지도않은”잎이지만“지는해를붙잡고서/잠시라도/붉음을감당”한다고시인은묘사한다.이시에서연꽃잎은무너짐을막아낼만큼단단하지않지만,잠시라도아름다운시간을지키는일을감당하는역할을하고있다.돌봄의본질역시여기에가깝다할수있다.돌봄은죽음과쇠락을완전히막을수없다.그러나누군가의무너짐곁에서잠시라도그시간을함께감당할수는있다.
이런돌봄의마음은「할매는살겠다고하신다」에서더욱구체적인장면으로나타난다.

구순의할매는
죽겠다죽겠다말하며
젖은하루를말린다
-「할매는살겠다고하신다」부분

죽겠다는말은이구절에서삶의포기선언으로읽히지않는다.그것은하루를견디며내뱉는몸이살기위해하는말이다.할매는증손주의발냄새를맡고,“가을콩대가터지듯/콩알하나”를튀어나오게한다.더듬거리는무릎은어린무릎에게닿는다.그모습을보고시인은말한다.

살아있는것이
살아있는것을그저만지는일
그래서더낮게엎드려
콩알을찾듯
바닥을더듬거리는일
-위시부분

이구절은백종덕의돌봄시학을압축해말하고있다.살아있는것이살아있는것을만지는일,그것이돌봄이다.여기에는과도한수사도,거창한구원의서사도없다.죽겠다면서도오늘은죽지않기로하는삶의작은방향전환이있을뿐이다.그방향전환을가능하게하는것은증손주의체온과냄새,어린무릎의감촉이다.생명은생명을만질때다시살아야겠다는쪽으로기운다.백종덕의시에서돌봄은이접촉의감각과함께한다.
이시집의3부에실린「낱말샐러드」,「우리딸이름과똑같네」,「엄마의최선」은돌봄의현장에서언어가어떻게무너지고,또어떻게다른방식으로살아남는지를보여준다.이를테면「낱말샐러드」에서얘기되는말들은문법적으로온전하지않다.이런잘못된말들이“무언증의흰복도”를지나고,“입술밑에고인비(非)단어”가되고그리하여“명사와동사가접시위에서낱말샐러드”가된다.그러나시인은이흐트러진언어를무의미한소음으로치부하지않는다.“체위변경을하는언어의육체”라는표현은언어를몸과연결한다.돌봄의현장에서말은단순한의사전달수단이라기보다는삼키지못하는목,마비된혀,누워있는몸,기저귀를갈아야하는생활과함께움직인다.그래서“섹션기속으로빨려들어가는가래끓는소리”까지도“오늘의가장정직한운율”이된다.이시가강한울림을주는까닭은언어의붕괴속에서도시가발생하는순간을포착하기때문이다.표준어표기법에어긋나는“--해쓰”라는표현이몸으로말해지는이정직한표현을대변한다.틀린말과바르지못한표현이삶의가장절실한진실을담고있다.그말들은곁에서바라보는사람만이알수있는말이다.그리고바로그런말들이시가된다고해도과언은아닐것이다.
그런점에서백종덕의시에서곁은가장적극적으로돌봄의윤리를실천하는자리이다.곁에있는사람은보고,듣고,기다리고,이름을다시불러주고,몸의신호를읽고,농담을받아주고,울음을들어준다.시인은그곁에서받아적는다.시가돌봄이되는까닭은받아적는행위자체가사라지는것들을붙드는일이기때문이다.그의시는말이무너지는곳에서다시말을만들고,이름이흐려지는곳에서다시이름을부르며,생이약해지는곳에서생의마지막불씨를지킨다.

3.자연에서배우는낮은자세

백종덕의시에서자연은아름다운풍경으로만존재하지않고,인간이배워야할자세를가르치는존재로등장한다.특히물,산,꽃,나무,돌,햇빛은모두낮아지는법과견디는법을알려준다.자연은시인에게교사다.그런데자연이가르쳐주는것이돌봄의자세와맞닿아있다.돌봄역시낮은자세에서시작되기때문이다.누군가를돌보려면위에서내려다보는시선을버려야한다.상대의눈높이,상대의몸의속도,상대의어눌한언어에맞추어자신을낮추어야한다.
백종덕의시에자주등장하는물의이미지는몸낮춤의태도를선명하게보여준다.다음시「팔당에서물을보았다」가대표적이다.

팔당댐에서물을만났다
물의신체를깊게만난다

검룡소에서시작해

두물에서몸을섞은물

달과별과매미와잠자리를
한꺼번에피워올렸다

본다는일이깨달음이되는순간이있다

물은가장본질에서태어나
마침내거슬러올라보려고도하지만
자신보다낮은곳으로임한다

사람이물을본다는일은
한가계의역사처럼
태어나고자라고성장하고소멸하는

섞이고만나고고이고다시흘러가는
계절을지나가는마음과같았다.
-「팔당에서물을보았다」전문

시인은물의신체를만난다.물은검룡소에서시작해두물에서몸을섞고,달과별과매미와잠자리를한꺼번에피워올린다.시인은“본다는일이깨달음이되는순간이있다”고말한다.그깨달음의핵심은물이“자신보다낮은곳으로임한다”는데있다.물은높은곳에서낮은곳으로흐른다.그런데이낮은자세가많은만남을가능하게하고,섞이게하고,변화와발전을이루고결국은역사를구성한다.한사람의성장도이와다르지않다.낮은자세로타인을받아들이고돌봄의자세로자신을낮출때비로소타인의몸가까이가게되고그와섞이고나를변화시키고성장시킬수있다는것이다.이런낮은물의자세는돌봄의자세와닮았다.돌봄은자신을낮추어타인의몸가까이가는일이기때문이다.
「계절의속셈」에서도자연은사람에게배움을준다.봄은큰성공을바라지않고,여름의푸름은낙엽을좋아하지않으며,가을은낮은곳을알려준다.“가을스승은/당신에게낮은곳을가르쳐줍니다/겸손한마음을갖게하기위해서입니다”라는구절은이시집의자연관을잘말해준다.계절은인간의욕망을부추기지않는다.계절은지나감과기다림과낮아짐을가르친다.특히가을은결실의계절이면서동시에내려놓음의계절이다.낙엽이지고,열매가익으며,생은자신의무게를땅쪽으로돌려놓는다.백종덕의시가자연에서배우는낮은자세는바로이내려놓음의지혜가아닐까한다.
자연의일부인나무역시중요한스승이다.「오늘도나무를본다」에서시의화자는자식들을그리워하는노년의마음을나무를바라보는행위로옮겨적는다.“네가보고싶을때/나는가만히나무를본다/그리고나지막이이야기를건넨다/바람타는나무가/네목소리로대답할때까지”라는대목에서처럼나무는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