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반양장)

시와 산책 (반양장)

$18.00
Description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시가 산책이 될 때, 산책이 시가 될 때…
시를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그럼, 산책을 한다는 건? 그건 어쩌면 고요한 하강과, 존재의 밑바닥에 고이는 그늘을 외면하지 않는 묵묵함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그건 결국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여기에 내가 살고 있다고 말하는 초록색 신호일 수도 있다.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시와 산책』은 작가 한정원이 시를 읽고, 산책을 하고, 과연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온 시간들을 담아낸 맑고 단정한 산문집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작가의 첫 책이다. 놀라운 이유는 이 책이 너무나 좋아서.

작가가 쓴 스물일곱 개의 짧은 산문에는 그녀가 거쳐온 삶의 표정들이, ‘시’와 ‘산책’을 통해 느꼈던 생활의 빗금들이 캄캄한 침묵 속에서도 의연히 걸어가는 말줄임표처럼 놓여 있다. 한없이 느리게도 보이고, 더없이 끈질기게도 보이고, 지극히 무연하게도 보이는 문장들로 그녀는 ‘시’와 ‘산책’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완성한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우리는 그녀가 평생 시를 쓰고, 읽고, 보듬고, 도닥이면서도 결국 혼자 꽁꽁 얼려두고 숨겨만 두었던 마음속의 아주 깊은 곳으로 첨벙 뛰어들어, 그녀의 조용한 방관 아래에서 페소아와, 월러스 스티븐즈와, 로베르트 발저와, 파울 첼란과, 세사르 바예호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과, 울라브 하우게와, 에밀리 디킨슨과, 안나 마흐마토바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포루그 파로흐자드와, 실비아 플라스와, 가네코 미스즈를 만나고야 만다. 그녀와 함께, 그녀가 사랑했던 시인들과 함께, 그녀가 종종 입 밖으로 소리 내던 시어들과 함께, 천천히 너르게 산책을 떠난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겨울의 마음이 되었다가, 봄의 소리가 되었다가, 여름의 발자국이 되었다가, 가을의 고양이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시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산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쓰다듬으며 서로에게 묻기도 한다.
저자

한정원

태어나성장하고일하며대략열개의도시를거쳤다.사람과공간을여의는것이이력이됐다.대학에서시를쓰기시작했다.단편영화를세편연출했고여러편에서연기를했다.구석의무명인들에게관심이많다.수도자로살고자했으나이루지못했고,지금은나이든고양이와조용히살고있다.읽고걷는나날을모아『시와산책』을썼다.책을덮고나면,아름다운시들만이발자국처럼남기를바란다.앞으로는나를뺀이야기를계속써나가고싶다.

목차

온우주보다더큰
추운계절의시작을믿어보자
산책이시가될때
행복을믿으세요?
11월의푸가
슬퍼하고기침하는존재
과일이둥근것은
여름을닮은사랑
온마음을다해오느라고
영원속의하루
바다에서바다까지
아무것도몰라요
잘걷고잘넘어져요
국경을넘는일
모두예쁜데나만캥거루
하룻밤사이에도겨울은올수있다
꿈과같은재료로만들어졌네
저녁이왔을뿐
하나의창문이면충분하다
회색의힘
진실은차츰눈부셔야해
고양이는꽃속에
언덕서너개구름한점
오늘은나에게내일은너에게
그녀는아름답게걸어요(부치지않은편지)

출판사 서평

“당신은당신이낯설지않나요?당신이잘보이나요?”_본문중에서

우리는자신으로살기위해누구처럼살지말자고서로에게다짐도한다.그녀의문장으로웅장해진가슴이신기하고자랑스러워제법힘껏펴기도하고,왠지모르게부끄러워져감추기도하면서도,결국은그녀의문장들로점점거대하고성대해지는우리의세계를목격하는기쁨을누린다.
아주멀리서불어오는바람처럼『시와산책』의문장들은몇번을곱씹으며기다리고기다린끝에야우리에게와곁을내어준다.어느날은우리를젊어지게도하고,어느날은우리를늙어가게도하면서.그러니,바로지금이,우리가‘시’와‘산책’을할바로그순간이다.

“얼마나끔찍할까요,유명인이된다는건”

“시인이되지는못했지만,시인의불행은우리것이되기도했다.”_본문중에서

『시와산책』은조용하지만이상한책이다.읽는것만으로도귀해지는책이다.책장을덮은후에도책속의문장들은어느시절엔가우리가사랑해서꾹꾹눌러적었던시어들처럼속속머릿속에자리해떠나지않는다.우리가모두한때는시인이었다는걸기억해내게하고,시를쓰지않고흘려보낸시간들을떠올리게하고,사라진지오래인순정위에새로운덧정을새기고싶게한다.상상은도망이아니라,믿음을넓히는일이라는걸,행복은그녀나나에게있지않고그녀와나사이에,얽힌우리의손위에가만히내려와있다는걸,우리는그녀의문장을읽으며잠잠하게인정한다.

“나는무명인입니다.얼마나끔찍할까요,유명인이된다는건!”
_에밀리디킨슨,「무명인」

이책의모든문장들이모든가능성중에가장선한길을택한사람의문장이라는믿음아래단단히서서,우리는짓궂게도이무명의작가가결코유명의작가가되지않기를바라게된다.온마음을다해글을써오느라,이렇게늦게우리앞에도착했다는것이그저신기하고,그녀가시인이되지않았다는것이그저이상하고,이제라도그녀의글을볼수있다는것이그저다행이라는마음에도불구하고,오,제발,나만알게되기를!하고바라게된다.

■‘말들의흐름’
열권의책으로하는끝말잇기놀이입니다.한사람이두개의낱말을제시하면,다음사람은앞사람의두번째낱말을이어받은뒤,또다른낱말을새로제시합니다.하나의낱말을두작가가공유할때어떤화학반응이일어날까요.그것은쓰여지지않은문학으로서책과책사이에존재하며,오직이놀이에참여하는사람들의머릿속에잠재합니다.1.커피와담배/정은2.담배와영화/금정연3.영화와시/정지돈4.시와산책/한정원5.산책과연애/유진목6.연애와술/김괜저7.술과농담/이장욱,이주란,김나영,조해진,한유주8.농담과그림자/김민영9.그림자와새벽/윤경희10.새벽과음악/이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