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개자의 동사들

매개자의 동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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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예술현장에서 큐레이터, 드라마투르그, 프로듀서, 편집자, 연구자, 비평가 등의 역할로 활동하는 매개자들 김지연, 맹지영, 손옥주, 전강희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의내린 51개의 동사를 만난다. 창작환경이 장르, 기술 복합적 방향으로 변하면서 서로 다른 작업 방식이 한 자리에 뒤섞이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문화예술계라도 장르에 따라 작업방식이 다른 만큼, 이들의 만남은 생각만큼 유연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필자들은 창작자와 창작자 사이, 창작자와 테크니션 사이, 창작자와 관객 사이, 관객과 작품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사이 매개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토론하고 그 내용을 정리했다. 51개의 동사는 매개자의 활동을 통해 오늘날 예술창작현장의 현주소에 다가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

김지연,맹지영,손옥주,전강희

김지연은국문학,미술사,미술이론을전공했다.전시형식이비물질적인요소들을가시화하는전략,퍼포먼스를비롯한한시적인예술이가지고있는저장욕망등을연구한다.자의적으로개념을확장하면서의미를모호하게만드는언어사용습관에호기심을가지고있으며,동시성원리의실체를탐색하고있다.가나아트센터,학고재갤러리에서일했고,독립큐레이터로여러프로젝트에참여했다.광주비엔날레재단전시부장으로일했다.2016년부터매개자들의글쓰기에주목하는출판·전시기획사인소환사를,2018년부터전시공간d/p를운영하고있다.
〈마음〉(해인아트프로젝트2013),〈달그림자〉(창원조각비엔날레2014)의큐레이터,〈행랑〉(세계문자심포지아2016),〈투어리즘〉(제주비엔날레2017)의예술감독으로전시를기획했다.전시공간d/p를운영하면서〈노화〉(2018),〈독립〉(2019),〈실종〉(2020),〈도둑〉(2021),〈질감〉(2022),〈관객〉(2023),〈유산〉(2024)을주제로프로그램을기획했다.〈척〉(안애순안무,2021),〈몸쓰다〉(안애순안무,2022,2023),〈행플러스마이너스〉(안애순안무,2024)등의무용공연에드라마투르그로참여했다.세대가다른10쌍의작가들이서로의예술세계를인터뷰한『예술가들의대화』(아트북스,2010),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바이칼레지던시를계기로,창작현장에대해작가들이가지고있는어려움을공유한『후일담:느슨한아바이』(경향아트2013)등을출간했다.

목차

격려하다/고민하다/공감하다/극복하다/기획하다/넘나들다/망각하다/미안하다/미워하다/반복하다/반성하다/발견하다/번역하다/분열하다/사랑하다/사칭하다/상상하다/생산하다/생존하다/선택하다/설득하다/소통하다/수용하다/수행하다/실수하다/실패하다/싫어하다/연결하다/연구하다/외면하다/욕망하다/용역하다/운영하다/유보하다/의전하다/제안하다/조언하다/조율하다/존중하다/질문하다/집중하다/참조하다/창안하다/초월하다/타협하다/편집하다/포기하다/포장하다/해석하다/협력하다/협상하다

출판사 서평

저자서문

하나이면서여럿/맹지영

프로젝트의성격과역할에따라예술현장에서부여되고호명되는다양한이름의매개자는모든일에관여하면서도드러나지않는다.보이지않지만가장강력한영향력과자장을만들수밖에없는이들을하나의단어로,한문장으로그존재를정의할수있을까?그들을수식하고설명할수있는다양한명칭과그에부합하는역할을해온무수한매개자들을나열해보고,그들의이야기를들어보면서‘명칭’을넘어선지금의현장상황에직면하게되었다.
2020년초부터3년여의시간을거치며현장은빠르게변화해갔지만,그과정에서매개의일은새로운명칭이추가되거나기존의의미와역할이바뀌기도했다.
매개자로서무엇을어떻게하고있는지보다직관적이고본질적인접근을위해사전의형식을취한것은어쩌면지극히자연스러운일이었다.무수한버전의매개자‘역할명칭’을나열하고부사를통한행위의수식을살펴보면서,행위자체를얘기하는동사51개가남았다.각동사가갖는사전적의미는끊임없이변화하는현장에서경험이더해져새로운맥락으로확장되기도하고,변형되기도하며,매개자가처한상황에대한의문과질문을포괄하기도한다.사전처럼그정의를서술하면서도실제현장에서달리작동함을드러내고,사전과달리정의내릴수없는질문들로만채워져있기도하다.때로는자괴감과회의,자기분열적희화화로현실을다른각도에서보려했다.
이책은사전의형식을취했지만사전의역할은수행하지못할지도모른다.그러나현재문화예술계현장에서다양한이름으로활동하고있는매개자들에게그들이처한현실과상황의지도에나름의좌표를찍을수있도록했다.시간이지나면서변화하는것은당연하지만,그변화를계속인지하고바라볼수있을때매개는지속되고확장될수있을것이다.

매개,바라보기/손옥주

매개의지형은언제나사이에위치한다.그러나매개의지형은바로그사이라는위치에서빠져나와광각을넓힐때비로소가시적인그무엇이된다.그런의미에서지난2020년에결성된이래로지금까지CM(CreativeMediators)의구성원들이나눠온대화는다양한경로를경유해온자기경험의가시화에가까웠다.주로시각예술계와공연예술계에서활동해온우리는장소와방식과시간에대한구애를최소화하기위해노력하며대화를지속해나갔다.그과정에서말하기전에들을수있었고,듣기전에말할수있었으며,들음과동시에자기경험의외연을확장해나갈수있었다.구체적인과거와현재의사례를통해,혹은비교가능하거나비교불가능한동료의경험을통해촉발된자기경험의외연확장은결국공동의집필을가능하게해주었다.우리가진행한공동의집필은불가능한것을가능하다고자위하는행위,공동의이름을사유화하는행위와는무관한것이었다.그보다는오히려각자가지내온현장의경험을공유하고,그로부터유효한의미의동사를길어내고,각동사에대해다시한번장시간대화를나누고,이를정리한동료의글에자유롭게첨언하거나다른동사에대한글을링크하며우리가공통적으로경험해온문턱으로서의매개란무엇이었는지실천적으로재고하는행위에가까웠다.문턱이라는공간은문의여닫음이라는행위,혹은문의안과밖이라는구획을논할때비가시적인조건처럼여겨진다.그러나중요한것은그것이시선에쉽게포착되지않을지라도특정행위나공간구획자체를가능케하는분명한‘조건’을이룬다는점이다.예술현장곳곳에서지금까지작동해온수많은매개의양상들은필연적이었다.이책은관객의눈에쉽게보이지않고들리지않는,그러나결코부재할수없는예술의매개혹은매개의예술을매개자들스스로가바라보려했던어느시간들의흔적이다.


나의일에대해서생각하며/전강희

팬데믹으로시간이멈춘것처럼보였던2020년부터2022년까지,일을잠시멈추거나아주느리게진행해야했던3년이라는시간동안,나는나의일에대해서도천천히생각해보게되었다.공연을만드는나의일은연출가,작가와초기기획회의를하고,작품을집필하고,관련자료를찾고,배우들을만나초고를낭독하고,구체적인연습일정들을밟아나가는과정을밟는다.이후공연을무대에올리고,관객을만나고,리뷰들을살펴보는일까지가내가하는일이다.나의3년은마치공연한편을만드는과정을길게늘여놓은것같은시간이었다.내가하는일을공연을만드는모든단계에서구체적으로돌아보는시간이었다.51개의동사는이과정안에존재하는행동이며,감정이고,상태이다.
나의일을섬세하게들여다보는데,시각예술의큐레이터들과타공연장르의드라마투르그의언어가많은도움이되었다.나의일을더구체적인언어로명료하게만들어주기도,경계가너무또렷한일은흐릿하게하여무한한잠재력을품은영역으로만들어주었다.솔직하게말하자면,나는나의일이예술사개론서에서말하는것처럼정말로전문적인영역인가에대해서고민했던적도있었다.예술현장에서나의일은누구나할수있는일이면서할수없는일이기도했다.작가의언어,연출가의선택,배우의몸이만드는정서들을전문가의언어로해석하고,분석하고,더좋은결과로이어지도록도움을주는일은누구나할수있는것은아니었다.하지만이과정에서발생하는무수한감정들은보람차기도했고,기쁘기도했지만전문가의일이아니라는생각에스스로가소진되기도했다.CM의구성원들과의섬세한대화는나의일에대해서,좀더구체적으로말하자면,이일을하는나의태도에대해서객관화하여볼수있는힘을길러주었다.
작품과함께남기보다는작품과함께사라지는역할이나의일이라는것,건강한사라짐,없어지는것이아니라영역을넓혀흐릿해졌을뿐인사라짐,미래로힘차게확장되는사라짐.51개의동사는나의일이이런사라짐과관계가있음을,이과정이아주전문적이면서섬세한일이라는점을,감정을다루는일이야말로고도의집중력과타인을향한무한한사랑을품어야가능하다는것을알게해주었다.


움직이는동사들/김지연

분야를넘나들며일하는매개자가많아지면서,한업계의고유한단어를다른업계에서사용하는경우도많아졌다.이단어들은유사하지만미묘하게다른의미로,다른맥락으로사용되곤했다.단어의의미는시대의주체들이어떻게사용하느냐에따라변화하기마련이지만,사용자들이현장에서편의대로변주하여활용하는단어들은오히려선명한의미전달을방해하는‘오해’의씨앗이되곤했다.동일한단어를입에올린A와B가가지고있는그단어에대한정의가살짝다르다보니,처음에는서로같은말을하고있는줄알았던A와B가,어느순간서로이해하고있는역할,업무의범주가달랐다는사실을깨닫는식이다.같은단어를약간다른의미로사용하는것은그단어의용례를넓혀나가는일이되기도하지만,그것이보편적정의로자리잡기위해서는다수가동의하거나납득하면서사용하는시간이필요하다.그리고,감각적으로,관습적으로,유행따라단어를사용하기에앞서단어의본래의미를선명하게파악하는일도필요하다.그러나과연우리는얼마나예민하게우리가함께일하기위해사용하고있는말을돌아보았을까.관용적용례에기대어일부러‘오해’의틈을허락하고,애매모호하게발언하고행동하지는않았을까.
다양한‘사이’에서일하고있는만큼소통의중요성을절감하는매개자들은서로일하는사람들의언어에힘을얻기도상처를받기도한다.말과행동이다른이들을보면서,그들의말은나와다른정의로이루어져있다는것을알아차리기도한다.하나의단어가가지고있는다양한의미망을만날때면,이것이의미의확장인지오염인지혼란스럽기도하다.
이혼돈의늪에서벗어나기위해,매개자의단어들을정리해보기로했다.그시작으로먼저동사를선택했다.일상적으로누구나사용하는동사들이지만,매개의영역에서는조금더다른의미를품기도하는동사들을모아보았다.이동사들은매개자들의일,감정,관계등등을아우른다.
문제는우리의,나의단어가계속흔들렸다는것이다.내가새로운경험을하고,다른상황을만날때마다,동사의함의는자꾸만확장되었고,동사를다루는나의태도도바뀌어갔다.단호하게정의내렸던단어의의미는자꾸만흔들렸다.그무엇도그자리에가만히있어주지않는다.대체왜,이동사의의미들은이다지도유동적인가.
지금이순간에도51개의동사에대한정의와사례는계속바뀌고있다.이렇게불안한‘정의’와함께관계를매개한다는것이과연가능할까.내가말하는단어는단한순간도상대가받아들이는것과같은의미일리없다는추측만자꾸확인한다.그럼에도불구하고,이일을붙잡고갈수있는힘.그것의실체를알고싶다.단어의흔들림은일단,원고의교정을마무리하는2023년11월잠시멈추었다.그후로도계속,매개자가당면하는동사에대한정의는변하는중이고,용례는확장되는중이다.한없이불안정하고,유동적인이야기지만,그래도언제어딘선가이단어들을마주칠누구에겐가는의미가될수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