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 마지막 유마경 (만해가 남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미완의 경전)

만해의 마지막 유마경 (만해가 남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미완의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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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만해가 남긴 《유마경》 번역
잡지 《불교》 1940년 2월호와 4월호에 실린 실우失牛(만해의 필명)의 《유마힐소설경강의》와 400자 원고지 총 148장 분량의 육필 원고를 모아 발간한 《한용운전집》 제3권(신구문화사, 1973년)에 실린 《유마힐소설경》을 저본으로 한 『만해의 마지막 유마경』. 만해는 1933년부터 《유마힐소설경》 번역을 시작했고, 1940년에 《불교》지에 첫 연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2월호, 3~4월호(합본호)에 2회를 연재하다 중단된다. 만해가 생애 첫 완역을 시도한 경전이 왜 《유마경》이었는지, 또 왜 번역이 중단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에 실린 번역본은 『불교』지에 연재된 내용(본경의 명칭, 본경의 번역, 본경의 주석, 본경의 과판, 제1 불국품 일부로 본문 38쪽까지)과 《한용운전집》에 실린 내용(제6 부사의품 일부까지)을 합한 것이다.
저자

한용운

1879년8월29일충남홍성군에서출생.6세향리의사숙에서한문을배움.9세『서상기西廂記』를독파하고,『통감』?『서경』등을통달하여총명한어린이라는말을들음.14세향리에서천안전씨全氏전정숙과결혼.21세에강원도인제군설악산백담사등지를전전.이때를전후해서세계여행을계획.1904년(26세)설악산백담사에들어가불목하니노릇을하다가출가.27세백담사에서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득도.백담사에서전영제사全泳濟師에의하여수계受戒.백담사에서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기신론』,『능엄경』,『원각경』등을수료.29세강원도건봉사에서수선안거(최초의禪수업)를성취.30세강원도유점사에서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화엄경』을수학.4월,일본의시모노세키,교토,도쿄,닛고등지를주유하며신문물을시찰.도쿄조동종대학에서불교와서양철학을청강.10월,건봉사이학암사에서『반야경』과『화엄경』을수료.31세에강원도표훈사불교강사에취임.
1910년(32세)『조선불교유신론』을백담사에서탈고.1911년(33세)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등과순천송광사,동래범어사에서승려궐기대회를개최하고한일불교동맹조약체결을분쇄.
1913년(35세)불교강연회총재에취임.『조선불교유신론』을불교서관에서발행.1914년(36세)『불교대전』을범어사에서발행.1917년(39세)『정선강의채근담』을신문관에서발행.12월3일밤10시쯤오세암에서좌선하던중바람에물건이떨어지는소리를듣고의정돈석擬情頓釋이되어진리를깨치고,오도송을남김.1919년(41세)3.1운동을주도,최남선이작성한<독립선언서>의자구수정을하고공약삼장을첨가.1923(45세)조선물산장려운동을적극지원.민립대학설립운동을지원하는강연.1925년(47세)오세암에서『님의침묵』탈고.1927년(49세)1월신간회를발기.5월신간회중앙집행위원겸경성지회장에뽑힘.1931년(53세)청년승려비밀결사만당卍黨의영수로추대.
1932년(53세)조선불교대표인물투표에서최고득점으로압도적인지지를받다(한용운422표,방한암18표,박한영13표,김태흡8표,이혼성6표,백용성4표,송종헌3표,백성욱3표,3표이하는생략.불교지93호에발표됨).
1933(54세)유숙원씨와재혼.이때를전후하여『유마힐소설경』을번역하기시작.벽산스님이집터를기증하고,몇분의성금으로성북동에심우장尋牛莊을짓다.이때총독부돌집을마주보기싫다고북향으로짓도록하였다.
1940년(62세)『불교』지2월호에『유마힐소설경』연재시작.1943년(65세)조선인학병의출정을반대.1944년(66세)6.29심우장에서영양실조로입적.유해는미아리화장장에서다비한후망우리공동묘지에안장.

#사진1.1929년6월잡지『삼천리』창간호46쪽에실린만해한용운의모습.
이사진은그동안한번도공개된바가없는만해한용운의모습이다.
#사진2.『불교』지2월호목차와‘유마힐소설경강의’첫페이지.
#사진3.만해의『유마힐소설경』육필원고사진(『한용운전집』(신구문화사,1973)제3권에이사진이실려있다).전집출간이후이육필원고는산재된것으로알려졌다.
#사진4.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기록된만해한용운(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사진5.만해가『유마힐소설경』을번역하였던공간인‘심우장尋牛莊'전경.

목차

본경의명칭ㆍ8
본경의번역ㆍ14
본경의주석ㆍ18
본경의과판ㆍ22
제1불국품佛國品ㆍ27
제2방편품方便品ㆍ97
제3제자품弟子品ㆍ121
제4보살품菩薩品ㆍ177
제5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ㆍ211
제6부사의품不思議品ㆍ269
원문原文_제6부사의품부터제14촉루품囑累品까지ㆍ278
해제_유마로살았던만해의유마경역주|서재영ㆍ322

출판사 서평

『만해의마지막유마경』은어떤책인가?

이책은잡지『불교』1940년2월호와4월호에실린실우失牛(만해의필명)의「유마힐소설경강의」와400자원고지총148장분량의육필원고를모아발간한『한용운전집』제3권(신구문화사,1973년)에실린『유마힐소설경』을저본으로했다.
만해는1933년부터『유마힐소설경』번역을시작했고,1940년에『불교』지에첫연재를시작하였다.하지만2월호,3~4월호(합본호)에2회를연재하다중단된다.만해가생애첫완역을시도한경전이왜『유마경』이었는지,또왜번역이중단됐는지는알려져있지않다.이책에실린번역본은『불교』지에연재된내용(본경의명칭,본경의번역,본경의주석,본경의과판,제1불국품일부로본문38쪽까지)과『한용운전집』에실린내용(제6부사의품일부까지)을합한것이다.
불교』에연재된내용중해설부분은육필원고지에기록된내용과분량등에서큰차이를보인다.예컨대육필원고에는‘본경의명칭’,‘본경의번역’,‘본경의주석’,‘본경의과판’등이없는데,『불교』제1불국품해설부분의원고분량은육필원고에비해거의열배가넘는다.그만큼육필원고중해설부분은초고에가깝다고유추해볼수있다.
만해가1933년『한글』(제2권1호,1933년4월)지에쓴‘한글맞춤법통일안의보급방법’글에서“우리불교기관에서는이번에나온새철자법을실행하고있습니다”라고밝힌것처럼,이『유마힐소설경』은1914년발간된『불교대전』과달리국한문혼용임에도한글의어법이두드러지게많다.때문에『불교대전』은현대어의번역을거쳐야읽을수있지만,『유마힐소설경』은번역을거치지않고꼼꼼히정독하면읽을수있다.물론불교한문읽기는피할수없을것이지만,그수고로움이독자들을더깊은『유마경』의세계로안내할것이다.
『불교』와『한용운전집』에실린오자와맞춤법은원문의결이훼손되지않는정도로바로잡았고(예를들면‘부리수’는‘보리수’로,‘일찌기’를‘일찍이’로,‘더부러’를‘더불어’로),지나치게긴문장은독자들이읽기편하도록두세개의문장으로나누었다.또한국한문혼용등지금은잘쓰이지않는생경한단어와문투등이적지않게나오지만,자료의가치를고려해그대로두거나,별도의각주로해석을달았다.때문에이번역문은쉽게읽히지않지만,꼼꼼히몇번정독하면,만해가그리고자했던유마거사의이치에다다를수있을것이다.이강의는만해가밝힌것처럼구마라집鳩摩羅什번역본을따랐다.

격동의근대불교와만해

한국근대불교는만해한용운을빼놓고이야기할수없다.만해는스스로근대불교의시공을개척해왔고,근대불교의사상적내용을확립하고,불교가지향해야할길을제시해온인물이다.시절은엄혹하고나라의운명은풍전등화와같아서역사는위기를헤쳐나갈인재를간절히염원하고있었다.외적으로는일제의침략에맞서나라를구할민족지사를기다렸고,교단내적으로는억압을혁파하고불교중흥을이끌걸출한스승을요구했다.나아가민초들의정신을일깨우고역사를움직일수있는위대한사상가와문인을기다리고있었다.
그러나그런역사의기다림과달리당시는그런인재가나기힘든시절이었다.누가되었든세상에먼저눈뜬이가그모든요구를감내해야하는상황이었다.만해는이런시대적요구에부응하여백절불굴百折不屈의민족지사로,조선불교의개혁을선도하는걸출한승려로,감미로운시어로대중들의마음을일깨우는위대한문인으로활동했다.
1879년충남홍성에서태어난만해는일찍이동학에가담하며의인걸사의길에발을들였다.무엇보다만해는1919년3.1만세운동을기획하고조직하는데핵심적역할을담당했다.「공약삼장」을추가하는등독립선언서작성에도관여했고,당일독립선언식을주도했다.그일로3년간의옥고를치렀지만오히려비타협적투사의삶은더욱확고해졌다.많은민족지사들이독립의꿈을잃고변절했지만만해는항일투사로일관된삶을살았다.그의나이50세전후에는성북동심우장에기거하면서신간회경성지부장을맡는등그의삶은여전히항일운동의궤적을밟아갔다.그러나한평생몸바쳐치열하게싸웠지만아쉽게도해방을1년앞둔1944년중풍으로세상을떠나고말았다.
이처럼만해는불세출의민족지사로평생을살았지만그의삶을관통하는또다른근간은승려로서의이력이다.승려로서만해의삶을돌아보면출세간出世間의공간에안주하지않고불교계내에서도동분서주하며전방위인적인삶을살았다.1905년설악산백담사에서출가한만해는한국불교의법맥을확립하는데앞장선선지식이었다.1910년원종의대종정이회광은일본의조동종과한국불교를통합하기위해비밀리에‘조동종맹약’을체결했다.만해는이에맞서1911년박한영,진진응등과함께임제종운동을통해한국불교의법맥은임제종풍임을천명하고한국불교를병합하려는음모를좌절시켰다.
1913년에는백담사에서탈고한『조선불교유신론』을출판했다.만해는이책을통해낙후한조선불교의개혁을주창하며근대불교의방향을제시했다.그의개혁론은탈고한지100년이넘었지만여전히눈여겨볼내용을담고있다.승려로서만해의삶은이와같은실천적영역에만국한된것이아니다.만해는방대한대장경을열람하여불교의정수를뽑아내『불교대전』을편찬했고,『유심』지와『불교』지를발간하여불교청년운동과대중화운동에전념하며민족세력을규합하고,궁극적으로불교사회주의를지향하는일관된삶을살았다.

유마의삶을산만해와『유마경』

만해의행적에서볼수있는가장큰특징은선방에만앉아있지않고불교개혁,나라의독립,사회정의를위해일평생실천현장에있었다는점이다.조용한숲속에앉아있는가섭을향해호통친유마거사처럼만해역시선외선禪外禪,즉‘선밖의선’을추구하며활선活禪의길을지향했고,“중생이아프면보살이아프다”는유마거사의가르침대로고통받는중생들과삶을함께했다.따라서만해는승려였지만출세간에안주하지않았으며,수행자였지만선방에안주하지않는생활선의길을지향했다.
출세간의영역에안주하지않았던만해에게승려와출세간이라는형식과승가僧伽라는종교적카테고리는몸에맞지않는옷과같은것이었다.그런만해에게『유마경』은그의삶을대변하고,실천적삶에대한당위를뒷받침하는교학이자성전이아닐수없었다.실제로그는유마의정신으로살았으며,출가자라는형식에구애받지않고중생의삶속에서유마로살았다.
『유마경』은『승만경』과더불어대표적인대승경전으로평가받는다.대부분의대승경전이석가모니불이나비로자나불등부처님이설법의주체로등장한다.하지만『승만경』과『유마경』은승만부인과유마거사라는재가자가설법의주체로등장한다.단지설법의주체가재가자라는점에그치지않고부처님의대제자들은유마거사에게한결같이호통을듣고대승정신에대한설법을듣고배우는내용으로구성되어있다.
『유마경』「제자품」에따르면유마거사는일부러병석에눕는다.부처님은제자들에게차례대로유마거사에게문병을다녀오라고하지만어느누구도감히나서지못했다.결국문병을가게된이는출가제자가아니라대승의지혜를상징하는문수보살이다.출가중심주의에도취되어은둔을수행으로삼는사람은감히유마와대적할수없음을드러내는대목이다.유마는그들을훈계하고가르치는인물로묘사되어있다.
만해역시결혼도하고거사의삶을살았지만그는오히려출가자들을향해호통을치는당당한삶을살았다.만해는정신적으로유마의가르침을받드는차원을넘어역사적현실속으로뛰어들어중생과함께아파하는삶을살았다.
『유마경』에서눈여겨볼대목중에하나가유마거사가병석에누운이유다.「문수사리문질품」에보면유마거사는“일체중생이병들고이런까닭으로내가병들었거니와만약일체중생이병들지아니하면곧나의병도없어질것”이라고말한다.중생이아프기때문에보살이아프다는것이다.백성이수탈당하는고통속에있으니승가가아프고,나라가고통에신음하니불교가아프다.그래서만해는스스로세간으로뛰어드는고달픈삶을마다하지않았다.
이상과같은만해의삶을돌아보면그가『유마경』에관심을가진것은너무도당연한귀결이고,『유마경』의역주譯註를남겼다는것은지극히자연스러운일이다.『유마경』을해석하는것은그의삶자체를설명하는것이며,『유마경』을이해하는것은그의철학을이해하는것이기때문이다.

만해가번역한『유마경』의특징

만해의『유마경』번역은1933년에번역한육필원고가전하고있다.중생이아프면보살이아프다는유마의정신은만해에게경전구절그이상의의미를갖는다.만해에게『유마경』은그의삶을떠받치고,그의실천을변론하는정신적지주였기때문이다.심우장에서시작한『유마경』역주작업은전체12품중에절반에해당하는제6「부사의품」까지진행되었다.그뒷부분은한문원문만기재되어있다.안팎으로분주한삶을살았기에집필을계속할여력이없었을것으로짐작된다.
중단된원고가다시빛을본것은1940년봄『불교』지를통해서였다.『불교』지에서만해는‘실우失牛’라는필명으로연재를시작했다.만해가살았던심우장尋牛莊은소를찾는집이라는뜻이다.심우도尋牛圖에서소는인간의자성自性을의미하지만만해에게그소는다름아닌조국이었다.그런데그조국이강탈된상태였으므로그는소를찾는집에머물러야했고,‘잃어버린소’를뜻하는실우라는필명으로글을썼다.이렇게보면그의집필행위자체가항일운동의일환이었음을알수있다.
아쉽게도『불교』지의연재는2회뿐이고더이상이어지지않는다.당시만해는매우궁핍한생활로어려운삶을보내고있었다.연재를시작하고4년뒤중풍으로타계한것을미루어볼때건강상의문제도연재를멈춘이유의하나일것으로짐작된다.중생과함께아파하면서그아픔은그의삶을파고들었고,뼛속깊이스며들어그의삶을무너뜨렸다.중생과보살이둘이아니기에중생이무너져내리면보살의삶도무너져내리는법이다.중생에대한아픔을스스로의아픔으로내재화하고,그아픔이너무도깊고깊어그의삶이송두리째무너져내린것이다.
만해의『유마경』은그런희생과아픔속에서탄생한진주같은결과물이다.그의번역은오래된번역임에도전혀어색하지않고세련되었다.만해는1933년『한글』지에기고한글에서한글맞춤법통일안이발표된만큼경전번역도이에입각해야한다는입장을피력한바있다.그의『유마경』역시그런정신에입각해번역되었음을엿볼수있다.만해가남긴『유마경』번역이갖는특징과의미를살펴보면다음과같이정리할수있다.

첫째,근대의대표적문장가의번역이다.

무엇보다만해는「님의침묵」으로대변되는위대한시인이자문인이다.주요환의「불놀이」를신체시의효시라고하지만혹자는「님의침묵」이야말로신체시의효시라고보기도한다.그의문체는군더더기없이간결하지만문학적여운이있고,행간에는사색의길로통하는문이열려있다.『유마경』은대승불교의대표적경전으로결코쉬운내용이아니지만만해의번역은유려한문체로인해술술읽혀지는맛이있다.

둘째,한학에조예가깊은대가의번역이다.

만해는유교적전통이살아있는집안에서태어나어릴적부터한학을익혀이분야의대가로평가받는다.뿐만아니라당대의고승들로부터인정받는대강백이기도했다.만해의이런이력은그의번역에대한신뢰를더해준다.창작이라면스토리와문장만좋으면그만이다.하지만번역이라면좋은문장못지않게원전이담고있는의미를정확하게꿰뚫고이를온전히전달하는것이중요하다.만해는원전이담고있는의미를정확하게파악하고이해하기쉬운한글로담아내고있음을볼수있다.

셋째,유마의삶을살아간실증적인물의번역이다.

그의번역은단지문리文理에서나온것이아니라치열한삶을통해서나온것이다.그의해석은추상적인식의산물이아니라구체적현장에서체득된지혜이다.부처님의제자들을호통치던유마거사의당찬모습은일제에빌붙어살던주지들을향해호통치던만해의삶에고스란히투영되어있다.

넷째,대강백의안목으로주석을달고내용을풀이했다.

만해는방대한대장경을열람하여『불교대전』을편집할만큼불교사상과내전內典에깊은안목을갖춘인물이었다.나아가중앙불전을졸업하고일본등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