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제 ‘깨달음’이란 단어가 낯선 까닭
오늘의 불교계에서 ‘깨달음’이란 단어는 거의 금칙어에 가깝다. 지난 80~90년대 성철 스님으로부터 일어난 ‘돈점 논쟁’ 이후 20여 년 동안 ‘깨달음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선원과 강원에서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는 자조의 표현들이 난무했다. 수십 년을 ‘투자’했지만 깨달았다는 수행자는 도무지 소식이 없다. 경전과 선어록을 뒤적거리며 마치 ‘보물찾기’ 하듯이 깨달음 퍼즐을 끼워 맞추는 학자들의 논문들은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또는 못했다).
이런 현실 속에 2015년 9월 4일 당시 조계종 교육원장이었던 현응 스님(현 해인사 주지)은 그의 책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을 맞아 “깨달음은 연기관의 이해를 확립함이며, 삶의 괴로움의 문제를 이러한 통찰과 이해로써 해결하는 것”이라고 하며, 깨달음을 ‘이해하는 깨달음’과 ‘이루는 깨달음’으로 구분하며 깨달음 문제를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게 했다. 현응 스님의 이러한 깨달음 인식은 “알음알이에 불과하다” “깨달음은 이해가 아닌 체득의 문제다” 등의 비판과 함께 교계 안팎으로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불교에 깨달음 논의는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여전히 선방과 강원에서 ‘깨달음’이란 단어는 조용히 뒷방에서 소곤거리는 단어가 된 것이다. 오히려 세속의 자본주의 사고방식이 더 깊이 승단으로 들어와 이제 ‘깨달음’이란 단어가 아주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다. 논쟁을 일으킨 분도 그러하고, 논쟁에 뛰어든 모든 승속들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무도 답을 하지 않지만, 당시 발표한 현응 스님의 글 마지막 단락에서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설사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현실 역사에서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그의 깨달음은 훼손 받지 않는다. ‘이루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실제 현실에서 곧바로 스스로의 괴로움을 없애버리고,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보지는 못했고, 그런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현응 스님이 마지막에 언급한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간접적인 언급일 것이다. 이는 ‘이루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보지도 못했고’, 그런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현 속에서 상대적으로 유추될 수 있다. 깨달음 논쟁이 한 단계 더 이어지지 않은 것은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이루는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경험을 탁마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논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현실 속에 2015년 9월 4일 당시 조계종 교육원장이었던 현응 스님(현 해인사 주지)은 그의 책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을 맞아 “깨달음은 연기관의 이해를 확립함이며, 삶의 괴로움의 문제를 이러한 통찰과 이해로써 해결하는 것”이라고 하며, 깨달음을 ‘이해하는 깨달음’과 ‘이루는 깨달음’으로 구분하며 깨달음 문제를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게 했다. 현응 스님의 이러한 깨달음 인식은 “알음알이에 불과하다” “깨달음은 이해가 아닌 체득의 문제다” 등의 비판과 함께 교계 안팎으로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불교에 깨달음 논의는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여전히 선방과 강원에서 ‘깨달음’이란 단어는 조용히 뒷방에서 소곤거리는 단어가 된 것이다. 오히려 세속의 자본주의 사고방식이 더 깊이 승단으로 들어와 이제 ‘깨달음’이란 단어가 아주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다. 논쟁을 일으킨 분도 그러하고, 논쟁에 뛰어든 모든 승속들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무도 답을 하지 않지만, 당시 발표한 현응 스님의 글 마지막 단락에서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설사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현실 역사에서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그의 깨달음은 훼손 받지 않는다. ‘이루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실제 현실에서 곧바로 스스로의 괴로움을 없애버리고,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보지는 못했고, 그런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현응 스님이 마지막에 언급한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간접적인 언급일 것이다. 이는 ‘이루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보지도 못했고’, 그런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현 속에서 상대적으로 유추될 수 있다. 깨달음 논쟁이 한 단계 더 이어지지 않은 것은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이루는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경험을 탁마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논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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