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효봉스님의상당법어는어떤책인가?
여기에수록된효봉스님의법어중가야총림에서설하신것은시자인보성스님이초록한것이며,동화사에서설하신법어는제자인법흥스님이기록해놓은것으로이법어들은훗날‘효봉문도회’에서한글로옮겼다.보성스님은생전에편집자와인터뷰중이렇게밝혔다.
“내가기록하는것이재밌어서그랬지.스님께‘이눔의자슥아,아까법문한것을잘들었다가나중에기록할것이지’하고꾸지람도많이들었지.그렇지만꾸지람들어가면서도기록을해야겠다는생각이들었지.나중에우리에게참고가되겠지하고적은거지.”
효봉스님의법어는1975년상당법어,수시설법,게문,서장등을묶어『曉峰語錄』(비매품)로발간해대중에게처음공개됐으며,이후1995년법어,서장,화보등을추가해『曉峰法語集』으로정식출간했다.효봉스님의법어가대중에게공개된것은무엇보다손상좌인현호스님의공이크다.흩어지고숨겨져있던자료를모으고선별하는데가장힘을쏟았기에효봉스님의법어가대중과만날수있었다.아쉽게도효봉스님의법어집은십여년전에절판되었다.이에어의운하출판사에서조계종원로의원현호스님,송광사방장현봉스님,송광사주지자공스님,법련사주지진경스님께효봉스님의상당법어출간을말씀드렸고,흔쾌히공감해주셨다.
이책은『曉峰法語集』중효봉스님이1948년7월15일하안거해제법문(해인사가야총림)부터1960년1월15일동안거해제법문(동화사금당선원)까지설하신상당법어를묶은것으로,일부한문표기는가독성을위해뺐다.상당법어의날짜는모두음력이다.한문본을보고싶은독자는『曉峰法語集』을참고하기바란다.독자들은법어를읽으면서70여년을거슬러효봉스님의음성을듣는경험을할수있을것이다.선지식이귀한시대에이책이선禪의울림이되길바란다.
2.효봉스님은누구인가?
효봉스님(1888~1966)은흔히‘절구통수좌’‘판사중’‘늦깎이중’등의수식어들이따라다닌다.‘절구통수좌’는효봉스님이출가이후참선정진할때,그리고금강산법기암토굴에서1년6개월동안스스로갇힌채정진할때의모습때문에붙여진것이다.한번앉으면엉덩이살이헐어서그진물이방석에달라붙을정도였는데,이때의모습을환속한제자인시인고은은이렇게말했다.
“나는스님을모시고목욕을할때그궁둥이와발가락,발바닥에그고행의자취가역력히남아있는것을보았다.”
‘판사중’은역설적이게효봉스님의수행이력을감추게하는이미지가되기도한다.스님은일본와세다대학을졸업한후귀국평양등에서판사를하다,사형판결에대한깊은회의로판사복을벗어던진후엿장수로전국을떠돌아금강산신계사로출가한다.이런출가전행적으로효봉스님은늘‘판사중’이란수식어가따라다녔다.그도그럴것이‘판사’라는당대최고의엘리트를벗어던지고전국을엿장수로방랑한후출가했으니,그삶의드라마틱함에많은이들이호기심으로바라본것이다.그러나효봉스님도출가한날을생일로받아들였듯이우리들이효봉스님을선지식으로추앙하는것은‘판사이찬형’이아닌‘선사효봉’이다.
‘늦깎이중’은출가나이가당시로는아주늦은나이인38세였기때문이다.아마도효봉스님스스로늦은나이에출가했고,세속의모든것(가족,판사직등)을버리고출가했기때문에원력이컸을것이다.1927년여름신계사미륵암선원에서는안거에들어갈때미리이렇게양해를했다고한다.
“저는반야에인연이엷은데다가늦게중이되었으니한가한정진을할수없습니다.묵언을하면서입선入禪과방선放禪,행선行禪도하지않고줄곧앉아만있도록허락해주십시오.”
효봉스님은늦게출가한상황을이런물러남없는정진력으로극복해나간것이다.사실,이런이미지보다무엇보다우리가주목해야할것은효봉스님을경허,만공,한암등의선사들과함께한국근현대불교에서대표선지식으로있게한효봉스님의선수행이다.
효봉스님은출가후용성,수월선사등을만나가르침을얻고이후운수행각과용맹정진을한다.결국깨달음은누구에게의지할것이아닌,스스로얻어야한다는확신으로1년6개월동안토굴에스스로를가둔채1931년금강산법기암무문관토굴에서오도한다.그후설악산봉정암,오대산상원사,덕숭산수덕사등에서만공,한암선사의회하에정진한다.마침내스님에게수행의전환점이될송광사삼일선원에서1937년부터10년동안주석하며‘제2정혜결사’를위한준비를하게된다.1938년에는보조국사16대손인고봉국사로부터몽중법어를듣고난후법명을학눌,법호를효봉이라한다.
몽중법어는효봉스님의선에중요한전환이된다.이후효봉스님이자신에게3명의스승이있다고했는데,바로그한명이보조인것은스님이선이보조지눌의선을이어받았다는것을뜻한다.
“이산승은상세上世에는육조를섬기고,중세中世에는조주를섬기며,하세下世에는보조를섬긴다.”(1949년9월1일해인사가야총림)
송광사삼일선원에주석하면서한국불교의젊은인재들이효봉스님회하에서수행정진하는데,성철(1912~1923),일타(1929~1999),탄허(1913~1983)등젊은인재들이삼일선원에모여들었다.이런움직임은스님이송광사삼일선원을떠나해인사가야총림으로옮기는1946년11월까지이어진다.이삼일선원10년동안에많은수좌들을제접하고법어를했을것으로추측되지만,그때의자료는남아있지않다.
해방후한국불교는무엇보다교단의수행결사운동이시작된다.그첫시작이해인사가야총림건립이었고,교단에서는초대방장에효봉스님을추대한다.해방후교단이왜색불교에서벗어나수행교단을위해야심차게추진해온가야총림건립과그첫방장을효봉스님으로추대했다는것은큰의미를가진다.그만큼해방이후에한국불교의선을이어줄어른이효봉스님이다.효봉스님은해인사가야총림에서한국전쟁이발발하기전까지당대수좌들의구심점이되어교단을수행교단으로이끌어간다.이후효봉스님은통영용화사,미래사등에서제자들과함께철저히수행중심으로살았다.1955년효봉의권속으로들어온시인고은은통영시절당시를이렇게회상한다.
“미래사대중들은백장청규百丈淸規를지켜하루에먹을것을짓지않으면먹지말라는원칙을거의일상으로삼아밭을일구고감자를심고이것저것채마와고소까지심었다.”
한국전쟁이끝난후교단은왜색불교를없애기위한정화운동으로소용돌이친다.이미교단의수행에중심이된효봉스님은이런정화운동에청담,동산스님의요청으로참여하게된다.당시정화운동에서비구측에서는강경론과온건론으로나눠지는입장이었다.강경론은이번차제에비구승교단을완전히확립하자는입장이었고,온건론은비구승숫자가적고사판에능하지못하니일부사찰만양도받아서점진적으로강화하자는입장이었다.효봉스님은온건론의입장이었는데,효봉스님의온건론에는비구가종권을갖는것보다도제양성을위한물적토대를제공할사찰이필요했다는입장으로정화운동에투신했다는견해가있다.(지원스님박사논문)정화운동이후효봉스님은한국불교의가장큰어른으로상징되는1962년통합종단대한불교조계종초대종정에오르게된다.
효봉스님은일제식민지시절과해방그리고한국전쟁과정화운동등근현대한국불교의격동기를통과한전통선수행자이다.개인으로는보조지눌의정혜쌍수라는전통선을이어온수행자이지만,한편으로가야총림초대방장,정화운동의참여,‘통합종단초대종정’이라는한국불교에부여된새로운활로모색에그책임을부여받지않을수없었다.종정추대이후동화사금당선원에주석하며선지를펼쳤고,1966년밀양표충사에서세수79세법납42년에입적했다.
3.효봉스님은제자들에게어떤법어를했는가?
이책에실린효봉스님의상당법어해인사가야총림에서설한법어27편,동화사금당선원에서설한12편,그리고통영,진주,서울등에서설한5편등총44편이다.효봉스님이가야총림방장에위촉된때가1946년11월이기에실질적으로법어를시작한것은1947년부터로추측된다.그러나아쉽게도상당법어는1948년7월15일하안거해제법문부터다.
상당법어는법당중앙의법좌에올라거행하는설법으로주로초하루,보름,입제,해제등특별한날에이루어진다.이책에실린효봉스님의법어는대부분참선하는비구와비구니에게교학을설명하기보다선지식으로서선지를드러내고제접하는목적이란것을이해하며읽을필요가있다.그형식은선지를펼치고,게송으로마무리하는방식을취하는데,이는전통적선지식의법어인것을알수있다.
효봉스님의법어를보면크게약여섯가지로분류할수있다.가장많은법어는안거의결제와해제법어다.그리고성도절,열반절법어를통해효봉스님의부처님에대한견해를엿볼수있다.또한법어의내용에서는조사어록과경전을많이인용하는것을알수있다.예컨대황벽의전심법요,완릉록,선문염송설화,금강경,화엄경,대승기신론등의내용이법어에많이들어있다.(이점은지원스님의박사학위논문‘효봉원명의선사상연구’에서분석했다.)
1)하안거동안거결제법어
효봉스님은대중과안거를하며,당신스스로함께하겠다는의지를드러낸다.예컨대1948년10월15일해인사가야총림의동안거결제법어중이런말씀을한다.
“이번겨울안거동안에이산승은여러대중과함께한배를타고물결일지않는바다를건너바로피안으로건너가리니,대중은맹세코다시는진흙을묻혀물에들어가지말고나와같이가자.”
더불어제자들에게출가의초심을강조하며,제자들에게출가의길을스스로엄중하게묻게한다.
“출가한대중은무엇을구하려하는가?의식衣食을구하려하는가,명리名利를구하려하는가,재색財色을구하려하는가?그모두가아니라면그럼무엇을구하려하는가?오직한가지일(一件事)이있으니이제내가그대들을위해말하리라.자기한몸만을위해머리를깎고물들인옷을입으며계율을지키고아란야(阿蘭若:寂靜處)에살면서해탈을얻으려한다면그것은참출가出家라할수없다.”(1949년4월15일하안거결제법어중)
또한효봉스님은깨달음에는출재가가없으며,깨달음과합하는것이중요함을강조한다.
“만약이일을말한다면남녀男女와노소老少도없고출가出家와재가在家도없으며구참舊參과신참新參도없고,다만그당자(當人)의결정적인신심이확고부동한데에있을뿐이다.대개출가한사람(出家人)이라도깨달음을등지고티끌과합하면마군魔軍이불당佛堂에있는것이요,재가의사람(在家人)이라도깨달음과합하고티끌을등지면부처가속가俗家에있는것이다.”(1953년4월15일하안거결제법어중)
2)하안거동안거해제법어
효봉스님은해제법어에서는해제후수좌에게필요한당부와경책을한다.효봉스님이제자들을아끼는마음이드러난다.때론강하게때론부드럽게지도하는스승의모습이보여진다.또한출가자와재가자를같은석가여래이제자로보고있다는점도알수있다.
“결제結制당시에이르기를금불金佛은용광로에견뎌내지못하고,목불木佛은불에견뎌내지못하며,토불土佛은물에견뎌내지못한다했다.용광로에들어가도녹지않고불어들어가도타지않으며물에들어가도풀리지않는불상佛像을이번여름안거구십일동안에각자조성造成했으리라믿는다.”(1949년7월15일)
“만일흑산黑山밑의귀굴鬼窟속에앉아화두話頭를들어깨달았다고자칭한다면,그런선객禪客들은효봉曉峰의제자(門下人)가아니요바로송장을지키는귀자鬼子일뿐이니라.”(1950년1월15일)
“지옥地獄의고통은고통이아니다.가사를입고도큰일(大事)을밝히지못한채사람의몸을잃어버리는그것이고통중의고통이다.내가본래이곳에온것은무엇을위해서인가.그것은명예를위해서도아니며의식을위해서도아니다.다만이가운데사람을얻기위해서이니금년안에하나나반이라도얻는다면여기모인대중과이곳에서목숨을마치겠지만,만일그렇지못하면여러분을버리고푸른구름과함께떠나가리라.”(1950년1월15일)
“출가대중出家大衆과재가대중在家大衆이다같은석가여래釋迦如來의제자로서,작년10월15일에여기서삼보三寶의증명으로겨울안거를결제結制한것은무엇을위해서였던가.그것은다만생사대사生死大事를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