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 평전

박재혁 평전

$18.00
Description
● 3·1혁명 100주년,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쳐 싸우다 간
고결한 정신을 기리다

저자는 이제까지 인물평전 30여 권을 집필했다. 대부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주름잡은 인물이거나 독립운동가 또는 민주화운동가와 비판적 정론의 지식인(언론인)이었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이번에 집필한 박재혁 의사의 평전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평전을 작업할 때는 해당 인물에 대한 자료와 증언이 넘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짧은 생애를 살고 떠난 박재혁 의사의 경우 자료가 많지 않았고 생애사도 단순했다.
<부산공립상업고등학교 → 비밀항일운동 → 상업종사 → 의열단 가입 → 하시모토 부산경찰서장 처단 → 사형선고 및 27세의 순국> 으로 진행된 스토리는 논문 한 편 쓰기에도 자료가 턱없이 모자랐다. 증언이나 문헌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일어난 거사인 관계로, 그동안의 독립운동사 연구에서는 단 몇 행(行)으로 박 의사의 의거를 기록하거나 아예 제외시켜 버린 경우도 많았다.
저자는 박 의사의 행적이 단순하다고 해서 그의 업적이 단순하거나, 의거 자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 힘주어 강조한다. 박 의사는 의병부대나 독립군도 수행하기 어려운 일을 단신으로 수행한 인물이다. 이 거사 덕분에 국내외에서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이 다시 활발하게 전개되고 항일전에도 다시 불이 붙을 수 있었다.
순절하게 살다가 곱디고운 스물일곱 살 청춘을 조국해방전선에서 바친 박재혁 의사. “조국이 제자리를 찾은” 지도 70여 년이 지나고 순국한 세월도 1세기가 되어가는 지금, 저자는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맑은 이슬로 먹을 갈아 비문을 새로 쓰고, 이를 바탕으로 추모가를 짓고, 각종 기념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민족이 가장 어려웠을 때 생명을 바쳐 싸우다 순국한 의열지사의 정신은 아무리 기려도 모자라지 않기에, 저자는 이 책을 경건한 마음으로 세상 밖에 내놓는다.
저자

김삼웅

독립운동사및친일반민족사연구가로,현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서울신문>)주필을거쳐성균관대학교에서정치문화론을가르쳤으며,4년여동안독립기념관장을지냈다.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위원,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위원,백범학술원운영위원등을역임하고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자문위원등을맡아바른역사찾기에부단히노력하고있다.
역사·언론바로잡기와민주화·통일운동에큰관심을두고,독립운동가와민주화운동에헌신한인물의평전등이분야의많은저서를집필했다.
주요저서로는『한국필화사』,『백범김구평전』,『을사늑약1905,그끝나지않은백년』,『단재신채호평전』,『만해한용운평전』,『안중근평전』,『이회영평전』,『노무현평전』,『김대중평전』,『안창호평전』,『빨치산대장홍범도평전』,『김근태평전』,『이승만평전』,『안두희,그죄를어찌할까』,『10대와통하는독립운동가이야기』,『몽양여운형평전』,『우사김규식평전』,『위당정인보평전』,『김영삼평전』,『보재이상설평전』,『의암손병희평전』,『조소앙평전』,『백암박은식평전』,『나는박열이다』,『박정희평전』,『신영복평전』,『현민유진오평전』,『리영희평전』,『송건호평전』,『외솔최현배평전』등이있다.

목차

국난기의‘처변삼사’
국치시기에태어나
떡잎부터남다른모습
애국혼이깃든민족학교
졸업후취업,김원봉만나
일제의만행지켜보면서
상하이와싱가포르·홍콩을오가며
영남지역의항일운동단체
국제정세에안목을키우다
국내에서3·1혁명맞아
의열단에가입하고
의열단참여조국광복에투신
부산경찰서장하시모토에투탄
죽음이두렵지않은의사의신념
순국과그이후
유족과추모사업
박재혁의사공적내용
덧붙이는몇마디

출판사 서평

●부산경찰서하시모토서장에게폭탄을던지고순국한
의열지사박재혁,스물일곱생애의발자취를좇다

3.1혁명이일어난직후인1920년9월14일오후2시30분경,부산경찰서장하시모토를처단하라는명을받은한청년이부산경찰서서장실로의연하게들어간다.
“나는상하이에서온의열단원이다.네가우리동지들을잡아우리계획을깨뜨린까닭에우리는너를죽이려한다.”청년은유창한일본말로매섭게꾸짖으며준비한폭탄을던졌다.
청년의이름은박재혁(朴載赫),부산출신으로홀어머니밑에서어렵게성장한그는일찍이독립정신이강해부산공립상업학교(현개성고)에다닐때부터친구들과우리나라역사책을손수제작해비밀리에배포하는가하면지하서클구세단(救世?)을조직하여독립운동을전개하기도했던소년투사였다.
의열단원박재혁의장쾌한투탄은일제의간담을서늘케했고한민족의의기를천하에떨쳤다.박의사는현장에서검거돼사형이선고되었다.일제강점기수많은의열투쟁이전개되었지만적의소굴로직접걸어들어가적장을처단한사례는이거사가유일하다.일제에게는그만큼큰충격을주었다.

●3·1혁명좌절후침체된독립운동,
의거를통해희망과용기의불씨를지피다

1919년에일어난3·1혁명은비폭력독립시위였다.그럼에도우리민족은일제의잔혹한탄압으로막대한희생을치러야했다.일제는이후‘문화통치’를내세웠지만실제로는더욱가혹한무단통치를자행했다.3·1혁명의좌절로한국사회는패배의식에뒤덮였고어디에서도희망의싹을찾기어려웠다.그런시점에감행된청년박재혁의부산경찰서장처단의거는전국동포들에게다시금희망과용기를불러일으켰고,청년들에게는항일독립정신을고취시켰다.꺼져가는독립운동에다시심지를돋우고불을붙인사건인셈이었다.
박재혁의사는부산경찰서에서체포돼대구형무소로옮긴이후긴단식끝에장렬한죽음을맞았다.우리의열투쟁역사에샛별과도같이찬연히빛나는분이다.그럼에도여전히많은국민들이박재혁의사에대해잘알지못한다.교과서는물론웬만한독립운동사에서도그의이름을찾기어렵다.박재혁의사는혈육한점남기지않고조국해방을위해산화했기에남은흔적도거의없다시피하다.
그래서해방이후70년이훨씬넘었지만우리에게는아직도잊힌존재였던박재혁의사의거룩한삶과독립에대한의지,애국정신에대해전독립기념관장이자우리나라근현대인물에대한권위자인김삼웅선생이직접평전을집필했다.

“우리독립운동사에는생명을바쳐일제와싸운의열지사들이수없이많았다.그런데도대표적인몇분외에는대부분이낯설다.프랑스철학자랑시에르가표현한대로‘셈해지지않는자들’이너무많았다.박재혁의사는우리독립운동사에서‘셈해지지’않아서는결코안될분이다.출신지인부산에서만겨우인식되는선열이아니다.고등학생시절부터일관된자주독립정신,27세라는젊은나이,적의소굴에서적장을처단한용기,3·1혁명좌절후침체된독립운동에불쏘시개역할,단식으로생을마감한결기,무후선열이라는가족사등박의사를기려야할조건은충분하고도넘친다.”-머리말中

●헌정사

“박재혁선배님은학창시절부터평생동지최천택,오택등학우들과비밀결사‘구세단’을조직하는등조국의자주독립을위하여순국하시는날까지한국인의기개를잃지않았습니다.불과26세의청춘에직접적의소굴로걸어가적장을처단한사건은3.1혁명후침체된독립운동에다시불을붙인거사였습니다.이후왜놈손에사형당하기싫어단식으로27세의젊은생을마감한일은오늘우리에게큰교훈이되며가슴속에영원히살아숨쉬고있습니다.
아직할일이많습니다.박재혁의사동상이전,생가복원,훈격승격등앞으로많은숙제들이남아있습니다.뜻을같이하는많은분들과함께선배님을기리고정신을이어받는데소홀함이없도록해야할것입니다.다시는우리나라가부끄러운역사의전철을밟지않도록노력할것입니다.삼가박재혁선배님의영전에존경과추모의마음을담아이책을바칩니다.”

-이경재개성고총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