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는어디에서자라서어디를향해흘러가나?
웅크리고있던혐오가기지개를켜다한번고개를들면,개인과개인은물론이고사회전체를황폐화시키고환멸의구렁텅이로몰아넣고만다.20세기전체주의의시작을알리는히틀러의반유대주의나,남아프리카공화국의아파르트헤이트와같은극단적인종주의의예만이아니라신자유주의적세계화아래자유민주주의가지배적정치이데올로기가된오늘날의현대사회역시나라와지역은달라도혐오는인간을배제하고지배하는정치적수단이며인간의삶을무력화시키거나황폐화하게만든다.한국사회도예외는아닐것이다.권위주의적군사독재의지배가종식되고개인의자유로운의사표현이가능해지면서동시에개인과집단사이에혐오가자라나고마침내는표현의자유가혐오의자유와구분되지않을지경이된현실을우리는지금목도하고있는것은아닌가.
혐오의유혹은강하고또은밀하다.상대와의긴토론의과정을견딜필요도없이상대를꼼작못하게하거나무력화시키는길이있음을아는순간사람들은자신의자유를혐오의자유로교환한다.한번시작된혐오를멈추게하는것은더욱어렵다.혐오의심각성을실감하고거기서빠져나오려하지만출구가잘보이지않는다.쉬운길은법적제재에호소하는길이다.그러나혐오에칼을대고둑을쌓으려하는순간,인간의가능성인자유를질식시키는결과를낳는아이러니가발생한다.혐오를발하는입에재갈을물리려면우리자신의자유를일정하게포기하거나유예하지않으면안되는모순,우리는거기서전체주의를예감하며흠칫뒤로물러선다.다시말해혐오를법적으로규제하려는순간,정작세련되고복잡해진모습을한혐오는건드리지도못한채자유만위축시키는결과가되는모순으로부터벗어나는길은정녕없는것일까?
이딜레마를극복하기위해우리는당장은화해가불가능해보이는것들사이에서질문하기를멈추어서는안된다.포기할수없는자유를누리기위해혐오를방치하거나,혐오를물리친다는목적으로상대의입에재갈을물리거나,그도아니면혐오에맞선다는명분으로스스로혐오의자유를택하는대신,우리의자유를더고양시켜혐오표현의해악에맞서는방안은없을까?상대를제압하거나절멸시키는것이아니라상대를변화시키는능력으로우리의자유를확대해가는방안말이다.그것이우리가그토록되찾고자했던,지키려했던,자유의올바른길이아닐까?『말대꾸―표현의자유대혐오표현』은바로이자유의다른가능성을제시하는책이다.혐오중독이대의제민주주의를,공론장의가능성을완전히압도하기전에그가능성을우리는포기해서는안된다.
표현의자유와혐오표현,둘은영영화해할수없는것일까?
한국사회를몇년째뜨겁게달구고있는주제중하나는단연혐오의문제이다.멀리는세월호유가족모욕에서부터5·18역사왜곡,여성혐오,동성애혐오를둘러싼길고거친논쟁을거치면서그래서우리는혐오표현의심각성을인식하게되었고이런저런방도를모색해왔다고할수있다.그럼에도정작뾰족한수가없었다.이유는역시표현의자유와혐오표현의해악을극복하는문제가지니고있는딜레마를풀수없기때문이었다.혐오표현을처벌하자는주장에는민주주의사회에서표현의자유를억압하는것은검열과독재와다를바가없다고비판이따르고,표현의자유를옹호하거나혐오의자연적인퇴거를주장하면사회적약자에대한차별이나폭력이더욱강화되고있는현실이반증으로제시되면서비판에직면한다.그러는사이이제는특정사안을넘어한국사회의모든사안이혐오대혐오의대치로환원되는상황이되어버린것은아닌지.
호주의정치학자캐서린겔버의『말대꾸:표현의자유대혐오표현』은바로이러한딜레마와이분법에도전하는책이다.당연한이야기이겠지만,서구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도표현의자유와혐오표현의문제는풀기어려운딜레마였다.1970년대후반까지도(어쩌면지금도)이른바‘백호주의WhiteAustraliaPolicy’라불리는백인우선주의정책이시행되었던호주의현실이이책을낳게한배경이라고짐작할수있겠지만,인종혐오와여성혐오가교차하는미국을포함하여신자유주의적시장질서로의통합이가쁘게진행되는현실에서이제이러한딜레마로부터자유로운사회는어디에도없을것이다.이것은저자인캐서린겔버가자신의경험적연구가호주와영국,미국에국한된것이아니라고힘주어강조하는까닭이기도하겠지만.
그래서우리는우리가던졌던질문을한국사회만이아니라오늘날의세계가직면한문제에대한보편적인차원의질문으로다시던져볼필요가있는것이다.표현의자유와혐오표현의대두,평행선을달리는팽팽한두문제를결합시켜동시에해결해가는방안은없는것일까?‘표현의자유’만을극단적으로옹호하거나,아니면과도한‘혐오표현규제’에만신경쓰면서,이둘을대립시키다가둘다해결하지못하는결과를초래해온지금까지와달리표현의자유의중요성도긍정하면서,혐오표현문제를해결할방법은정녕없는것일까?더구나대립되는관점을이론의영역안에서만해결하는것이아니라실천적으로,다시말해정책적으로조화시킴으로써현실을변화시킬수있는,혐오가뿌리내리고있는불평등한세계를연장하는것이아닌평등을지지하는그런길은없는것일까?
“안됐네요.그래도당신은살아갈것입니다”라고말해서는안된다
표현의자유의중요성을긍정하면서도,혐오표현의해악과맞서싸우는혁신적방법,‘말대꾸정책’
표현의자유를옹호하는사람들은,학문과사상의자유에있어서표현의자유가핵심이라고주장하면서표현의자유를보호하기위해서는해로운표현이라하더라도관용해야한다고타이른다.이를테면조나단라우흐JonathanRauch는사상과표현의자유에대한제약은학문의자유에적대적이라고주장하면서,모욕의피해자에게는“안됐네요.그래도당신은살아갈것입니다”라고말해주는것이최선이라고주장한다.이렇게표현의자유만을옹호하는사람들은잘못된표현의자유개념에의지하고있거나,이런관점에입각하여제정된실제규제법에서도많은혐오표현들을빠져나가도록방치하는결과를초래하는문제점들을노출시킨다.책의저자겔버는호주의뉴사우스웨일스주의인종모욕법(NSW법)에대해수행한실제10년에걸친연구를통해,원래는이법이혐오표현의해악을막고표현의자유도보장하기위한좋은의도에서입법되었지만,사실상혐오표현규제에실패했음을보여준다.그녀가분석한호주의NSW법의사례는한국에서도혐오표현금지법이실행될경우발생할수있는문제점들을반면교사로보여준다는점에서유의미할것이다.겔버에따르면이러한지배적인표현의자유옹호론들(진리논증,자기발전논증,권리논증,민주주의논증)은모두‘소극적자유’개념에의지하고있다.소극적자유NegativeLiberty란‘무엇으로부터의자유’,즉자유를방해하는제약의부재를뜻하는자유개념으로,‘무엇을행할자유,무엇이될자유’,즉자기결정과자기지배로서의자유를뜻하는적극적자유PositiveLiberty와대비된다.소극적자유개념에의지한주류표현의자유옹호론들은표현의극대화그자체만을강조함으로써,모욕적이거나해악을끼치는표현들에대해서는방관하거나대안제시에실패하여궁극적으로는사회적약자들의불평등을가중시킨다는문제점들이있는것이다.
한편저자가보기에혐오표현규제라는토끼만을쫓는것에도문제점들이존재한다.혐오표현은차별과불평등을지속시키고,피해자에게심각한해악을끼친다는점에서응당해결되어야할심각한부정의지만,그해결책이꼭처벌적이거나규제적인제제가강제되어야하는가라는문제가있다.더군다나혐오표현규제법의목적인혐오표현의해악의감소가정말로법을통해해소되는가라는의구심이존재한다.이를테면혐오발화자를구금하는방식의형사규제접근법의경우엔,최소한수감기간동안은혐오발화자가더넓은공동체에서차별을실행하는것을막을수있을지는모르지만,피해자에대한혐오표현의해악을시정해주지는못한다.또한처벌지향적인접근은피해자들이말할수있도록해주는직접적인도움을제공하지않는방식이기때문에,혐오표현피해자들이그들이겪은차별에이의를제기하도록직접적으로능력을강화하지않는다.
그녀는지금까지이런저런학자들에의해다양하게제시된혐오표현규제책들역시비판한다.그것이혐오표현을‘낮은차원’과‘높은차원’으로구분하는것이든,민사상의손해배상소송이든규제를기본으로한문제는마찬가지로남는다.이들과는대조적으로혐오발언의수신자가혐오발화자의언어를‘재수행restaging’하고‘재의미부여resignifying’함으로써혐오표현의해로운효과들에대항하자고권고하는버틀러역시비판받는다.버틀러의제안은혐오표현에대해규제나처벌을옹호하지않는다는점에서다른제안들에비해뛰어나기는하지만,가해자의언어가전유되고재구성될수있다는인식을지니고있는것과,실제로그렇게할수있는것과반드시동일한것은아니라는측면에서제한적인의미를갖는다는것이다.
그렇다면어떻게해야하는것일까?혐오표현이사회적약자들을침묵시킴으로써,이들이표현의자유에참여하고이를행사할수있는역량을저해한다면,혐오표현의피해자들이되받아쳐말할수있도록해주는교육적,물질적,제도적지원하는‘말대꾸speakingback정책’이바로저자가제안하는대안적대응전략이다.그녀는책의2장‘표현의자유확장하기’에서자유를방해의배제로바라보는소극적자유입장과달리,적극적표현의자유를옹호한다.이는자유를단순히‘기회’가아닌‘행사’로간주하여,자유가행사될수있는조건들을고려하는것이다.이러한적극적표현의자유는법이나정책이실제표현에대한참여를보장해줄수있는조건들의제공을고려해야한다는것을나타낸다.단순히국가를자유의적으로바라보거나표현을금지하거나검열하지않는수동적인역할로보는것이아니라,표현의자유를능동적으로조성해주는적극적인역할수행자로보는것이다.
표현의자유와혐오표현규제를조화시킬수있다고보는주장에놓인핵심키워드는‘역량’이다.이는마사누스바움의역량이론에토대한것으로,사람들이실제로원하는무언가를행할수있고원하는누군가가될수있는실제기회를뜻하는이러한인간역량들이보장되기위해서는표현의자유가핵심적이라고주장한다.표현은인간역량들의실현에핵심적인것으로,즉다양한방식으로훌륭한인간적인삶에기여하거나손상시킬수있으며,사상,지식,의견을의사소통할수있는도구로서표현에참여하는것은,인간발전에핵심적인활동이다.말대꾸정책은이러한표현의자유를극대화함과동시에혐오표현이가져오는해악에규제가아닌대응발언으로맞서게한다.이러한대항표현의메커니즘을파악하기위해서그녀는위르겐하버마스JurgenHabermas의‘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타당성주장’을분석하는방법론을가져온다.그것은혐오표현행위의의미,힘,효과에(말하기에참여함으로써)이의를제기하고,(새로운타당성주장들을제기함을통해)논박하는것을추구한다.‘말대꾸’정책이란한마디로“제도화된논변”이며이과정에서혐오표현의피해자들은대항타당성주장들을제기함으로써,혐오발화자가제기한타당성주장에직접이의를제기할수있을것이다.
‘혐오스러운사회’와‘혐오를금지하는사회’를넘어서
저자가제시하는역량논증과말대꾸정책은,표현의자유를규제했을경우발생할부작용들을최소화하면서도혐오표현의문제와확산을제지한다는점에서,표현의자유라는토끼도잡고,혐오표현의예방및대응이라는다른토끼도잡는혁신적인해법이다.정치학자코리브렛슈나이더CoreyBrettschneide역시비슷한분석과제안을한바있는데,그는국가가시민의표현들을감시하고통제하는극단적인사회를‘혐오를금지하는사회HatebanningSociety’라일컫는한편혐오표현이창궐하고번성하여사회적약자들에게막대한해악을끼치는사회를‘혐오스러운사회HatefulSociety’라고지칭한다.이런두극단의사회는모두바람직하지않다.
반면국가가혐오표현에방관하지않고해악을막기위해개입하기는하지만,시민들의자유를억압하지않는사회를브렛슈나이더는‘혐오를허용하는사회Hate-allowingSociety’라고설명한다.‘혐오를허용하는사회’는‘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