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여름이

$16.00
Description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것.”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된다. 나는 그들이 매일 돌보는 것들을 생각했다. 당근이나 배추 혹은 감귤 같은 것들이 보살핌 속에 잘 자라 사람들의 저녁식탁까지 오르게 되는 과정을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근이나 배추 혹은 감귤 같은 것의 구체적인 모양과 질감과 향 같은 것들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해졌다. 그들이 낮동안 열심히 일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밤의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게 하는 것. 나는 그들이 모여서 듣는 내 이야기도 그런 것이 됐으면 싶었다. 그날의 낭독회 이후,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산문보다는 소설을 더 많이 쓰게 됐다. 강연회보다는 막 지은 짧은 소설을 읽어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낭독회를 더 자주 하게 됐다.
그런 낭독회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쓴 소설들이 모여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됐다. (……) 낭독이 끝난 뒤에는 오신 분들께 이야기를 청했다. 어떤 일을 하시는지,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이 낭독회에는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러면 누군가 손을 들고, 다들 그 사람을 쳐다본다. 나도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_「작가의 말」 중에서


……그리고, 김연수의 ‘다음’ 걸음

지난해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출간한 후, 김연수는 여러 번, 그사이 “바뀌어야 한다는 내적인 욕구”가 강하게 작동하는 동시에 “외적으로도 바뀔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언급한다. 신간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그 시기를 건넌 뒤 쓰여진 짧은 소설들로, 변화에 대한 내적인 욕구와 외적인 요구가 옮겨놓은, 김연수의 ‘그다음’ 첫걸음인 셈이다. 작가는 이 소설들을 여러 서점과 도서관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독자들에게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작품들은 독자와 직접 만나면서 조금씩, 계속 바뀌었다. 2021년 10월 제주도에서 2023년 6월 창원까지, 그렇게 여러 도서관과 서점에서 이 소설들은 쓰여지고, 읽고, 듣고, 또 ‘다시’ 쓰여졌다.
모든 사물들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던 작가는 이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들여다보고 그 안의 이야기들을 직접 듣고, 다시 쓴다. 이야기를 지어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함께 나눈다. 끊임없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던 소설 속 인물들은 이제 밖으로 걸어나와, 작가와 직접 대면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그전의 소설들과는 조금은 결이 다르게 읽힌다. 그렇게 이야기와 삶이 서로를 넘나들며 스며드는 과정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그렇게 태어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왜 어떤 삶은 이야기를 접한 뒤 새롭게 시작되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사랑하면 왜 삶에 충실해지는지, 저절로 알 수 있게 된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제외하고는) 짧게는 16매부터 길어도 50매가 채 안 되는 소설들은, 삶의 어느 한 장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삶 전체를 관통해 지나가며 우리를 멈칫, 하게 만든다. 지난날을 돌이키며 반성하거나, 미래를 부러 계획하고 다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가 몸 전체로 불쑥 스며들어와 깨어나게 하는 듯하다. 그의 작품 속 소설가처럼, 무엇을 하기 위해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고,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다보면 “그후에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를 목격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저자

김연수

경북김천에서태어나성균관대영문과를졸업했다.1993년『작가세계』여름호에시를발표하고,1994년장편소설『가면을가리키며걷기』로제3회작가세계문학상을수상하며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꾿빠이,이상』으로2001년동서문학상을,소설집『내가아직아이였을때』로2003년동인문학상을,소설집『나는유령작가입니다』로2005년대산문학상을,단편소설「달로간코미디언」으로...

목차

두번째밤_8
나혼자만웃는사람일수는없어서_16
여름의마지막숨결_30
젊은연인들을위한놀이공원가이드_38
첫여름_46
보일러_60
그사이에_68
우리들의섀도잉_84
젖지않고물에들어가는법_94
저녁이면마냥걸었다_116
풍화에대하여_132
위험한재회_148
관계성의물_156
고작한뼘의삶_170
다시바람이불어오기를_190
토키도키유키_198
나와같은빛을보니?_206
강에뛰어든물고기처럼_218
거기까만부분에_224
너무나많은여름이_240
작가의말_294
너무나많은여름이_플레이리스트_300
낭독회가열린서점과도서관_301

출판사 서평

……그리고,김연수의‘다음’걸음

지난해소설집『이토록평범한미래』를출간한후,김연수는여러번,그사이“바뀌어야한다는내적인욕구”가강하게작동하는동시에“외적으로도바뀔수밖에없는일들이벌어”졌다고언급한다.신간『너무나많은여름이』는그시기를건넌뒤쓰여진짧은소설들로,변화에대한내적인욕구와외적인요구가옮겨놓은,김연수의‘그다음’첫걸음인셈이다.작가는이소설들을여러서점과도서관에서“얼굴과얼굴을마주”하고독자들에게들려주었고,“이야기를주고받”았다.작품들은독자와직접만나면서조금씩,계속바뀌었다.2021년10월제주도에서2023년6월창원까지,그렇게여러도서관과서점에서이소설들은쓰여지고,읽고,듣고,또‘다시’쓰여졌다.
모든사물들속에숨어있는이야기를찾아내던작가는이제사람들의얼굴을마주하고,들여다보고그안의이야기들을직접듣고,다시쓴다.이야기를지어보여주는것에그치지않고,그이야기를직접들려주고함께나눈다.끊임없이서로에게이야기를들려주고,자신만의이야기를만들어나가던소설속인물들은이제밖으로걸어나와,작가와직접대면한다.
그래서인지이책에실린소설들은그전의소설들과는조금은결이다르게읽힌다.그렇게이야기와삶이서로를넘나들며스며드는과정을함께경험함으로써,그렇게태어난이야기들을읽으면서,우리는왜어떤삶은이야기를접한뒤새롭게시작되는지,그리고이야기를사랑하면왜삶에충실해지는지,저절로알수있게된다.(「너무나많은여름이」를제외하고는)짧게는16매부터길어도50매가채안되는소설들은,삶의어느한장면을보여주는동시에삶전체를관통해지나가며우리를멈칫,하게만든다.지난날을돌이키며반성하거나,미래를부러계획하고다짐하게하는것이아니라,마치무언가가몸전체로불쑥스며들어와깨어나게하는듯하다.그의작품속소설가처럼,무엇을하기위해애쓰거나노력하지않고,그저어떤일이일어나는지지켜보다보면“그후에새롭게펼쳐지는세계를목격할수있”게되는것일까.

“오직이유없는다정함만으로”

글쓰기는인식이며,인식은창조의본질인셈입니다.그리고창조는오직이유없는다정함에서만나옵니다.타인에게이유없이다정할때존재하지않았던것들이새로만들어지면서지금까지의삶의플롯이바뀝니다.비록저는그사실을모르고살았지만,제뒤에오는사람들은지금쓰러져울고있는땅아래에자신이모르는가능성의세계가존재하고있다는사실을알았으면합니다.원한다면얼마든지그세계를실현시킬수있다는사실을알았으면합니다.오직이유없는다정함만으로말입니다.
_「젖지않고물에들어가는법」중에서

“이전까지소설가로서정체성이있긴있었겠지만,이제좀달라졌다.쓰는게좋아서,좀잘쓰고싶어서썼지만,지금은이야기의역할을이해하게되면서더좋은이야기를제공해야겠다는생각이확실해졌다.모슬포의작은서점에서열린낭독회에갔는데,작업복을입고피곤하고졸리는표정의독자들이참석했더라.그들에게이야기를읽어주면서마치빵이나밥같은것을주는듯한느낌을받았다.제소설이허기진누군가한테제공되는정신적빵이었으면좋겠다고생각하게됐다.”
_김용출기자,세계일보,2022년11월22일자인터뷰에서

사실작가에게는언제나이야기가중요했고,거대한역사속한사람한사람개인의역사/이야기가더욱중요했다.작가혹은인물의입을통해직접발화하지는않았으나,그의소설을읽으며독자들은늘전혀다른방식으로,저도모르게위로받곤해왔다.그의소설은여전히우리에게다른누가되라고하지않는다.멋있는사람이되라고,훌륭한사람이되라고하지않는다.오히려우리자신이되라고,더욱더내가되라고한다.다만‘어떻게’이야기할것인가,작가는더욱고민한다.

“사람들이어떤이야기를가지고사는가,어떤이야기를만드는가에관심이많다.(……)어떻게이야기하느냐에따라서현재의상태가완전히달라지는것이라고생각한다,그렇다면조금더좋은방식으로이야기를할수는없을까,그게어렵다면미래도만들어내서,상상을해서,더좋은방식으로지금이상황을설명할수있지않을까.”_김용출기자,세계일보,2022년11월22일자인터뷰에서

소설속인물이직접말하고있는것처럼그의소설은좀더다정해지고친절해졌다.그리고그의소설은마치당부하듯,그렇게우리를위로한다.

우리는저절로아름답다.뭔가쓰려고펜을들었다가그대로멈추고,어떤생각이떠오르든그냥흘러가는대로내버려둔채,다만우리앞에펼쳐지는세계를바라볼때,지금이순간은완벽하다.이게우리에게단하나뿐인세계라는게믿어지는가?이것은완벽한,단하나의세계다.이런세계속에서는우리역시저절로아름다워진다.생각의쓸모는점점줄어들고,심장의박동은낱낱이느껴지고,오직모를뿐인데도아무것도잘못된것이없다는사실이분명해진다.
_「너무나많은여름이」중에서

작가가“오직이유없는다정함만으로”쓴이이야기들이독자들에게마음까지어루만지는따뜻한빵한조각이될수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