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배수아 소설 | 개정판)

철수 (배수아 소설 |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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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렇게,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나는 시간을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때 조용하게 비를 맞으며 무너져가는 빈집의 창가를 무생물의 풍경처럼 지나가고 있는 또 다른 나. 너는 어디에서 한평생 살고 있었나. 너는 어디에서 노래를 부르고 마루에서 고양이를 잠재우며 흡혈식물 같은 입술을 닫고 지나가는 아침노을과 여름 오후의 비를 맞으면서 시간의 여울을 떠다니고 있었나. _p.41
저자

배수아

소설가이자번역가.1993년『소설과사상』에「천구백팔십팔년의어두운방」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지은책으로『푸른사과가있는국도』『밀레나,밀레나,황홀한』『올빼미의없음』『뱀과물』『멀리있다우루는늦을것이다』『작별들순간들』『속삭임우묵한정원』등이있고,옮긴책으로페르난두페소아『불안의서』,프란츠카프카『꿈』,W.G.제발트『현기증.감정들』『자연을따라.기초시』,클라리시리스펙토르『달걀과닭』『G.H.에따른수난』,아글라야페터라니『아이는왜폴렌타속에서끓는가』등이있다.2024년김유정문학상,2018년오늘의작가상,2004년동서문학상,2003년한국일보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철수 _7

작가의말 _113

출판사 서평

“배수아는하나뿐이다.”

1998년‘철수’가처음등장했을때,우리는이낯설고새로운철수에게충분히매혹당했다.1988년의‘나’를이야기하는,여전히불안하고불온한당시의젊은화자는배수아의독특한문체로인해더욱새로운인물이되었다.
“배수아의소설에는상투적인인물,상황,대사,통찰이‘전혀’나오지않는다.배수아의소설에나오는인물,상황,대사,통찰은오직배수아의소설에만나온다.그래서배수아는하나뿐이다”(『슬픔을공부하는슬픔』,마음산책,2018)라고했던문학평론가신형철의말은책이출간된지삼십년이가까운지금에도여전히유효하며,더욱더새롭다.


1998년의‘철수’,그리고2025년의‘철수’와‘나’

이것이1988년에일어난일의전부다.1988년은나에게시작이며끝이었다.내인생을통틀어특별히불행하지도않았고특별히더행복하지않았던한해였다.그것은1978년과특별히다르지않았으며1998년과비교해볼때더인상적이지도덜인상적이지도않았다.1988년에일어났던일들은1978년에도일어났으며1998년에도일어났을것이다.1988년에만났던사람들은1978년에지하철에서내어깨를밀치며지나갔었고1998년밤의주유소거리에서무감동한눈길로마주친그들과다르지않았다.그들은가족이었고낯선중산층이었으며영양실조에걸린군인들이었다.서로가서로에게변소였고타인이었고벼랑이고까마귀이고감옥이었다.그들은영원히그들에지나지않았다.제3의불특정한인칭들._97~98p

1988년,엄마와오빠,여동생과함께살아가는화자‘나’는냉정하고무감동하게가난과부적응의상태를견뎌나가는청년이다.‘나’의남자친구철수역시단조로운삶을즐기는사람이었지만,군대에간이후자기욕망에충실한사람이되어‘나’의앞에나타난다.떠밀리다시피군대에있는철수를면회가는길은마치블랙홀처럼불확실한시간과공간으로변하고,그에반해여전한(타인들의)일상과변해버린철수의모습은극명하게대비된다.
다시읽는『철수』는스토리뿐아니라,이를이야기하는방식과스타일,한문장한문장그자체로흔들리는젊음의이야기로읽힌다.1980년대와1990년대라는특정한시공간을염두에두지않더라도,새로운밀레니엄을맞이하고다시2025년에이른지금까지,그모든시절우리는또다른‘철수’였고‘나’였으며,2025년오늘이도시의한켠에는역시수많은‘철수’와‘나’들이저마다흔들리는시간을살아내고있다.
어쩌면그것은심지어1980년대전으로돌아간다해도마찬가지가아닐까.어떤시대/세대가맞닥뜨린역사의큰소용돌이아래깊은수면속에서는큰물살에휩쓸리면서도또한한없이고요하게혼자제물길을찾아가는개인/젊음들이물살을,시간을견뎌내며살아내고있을테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