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사기 9: 효경본기 효무본기 (세계 최초 삼가주석 완역!)

신주사기 9: 효경본기 효무본기 (세계 최초 삼가주석 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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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오랜 연구 끝에 펴낸 《사기》 완역본이다. 본문뿐 아니라 대표주석서 3권까지 함께 번역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새로운 관점의 주석까지 추가하여 우리의 시각으로 중국사를 볼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총 40여 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효경제는 인자한 군주였지만 조조(晁錯)의 삭번책으로 제후들의 영지를 삭감했다가 7국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본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효경제의 아들 효무제 본기다. 그가 바로 사마천을 궁형에 처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무제는 제후들의 권력을 약화시켜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흉노·고조선·대원국 등을 정벌해 한나라 강역을 크게 확장시킨 중흥군주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무제를 아주 박하게 기술했다. 사마천은 “무제는 즉위 초에 더욱 공경하게 귀신의 제사를 받들었다.”라고 무제를 영생불사를 꿈꾸는 방사(方士) 군주처럼 그렸다.
무제의 가장 큰 우선정책이 ‘해중(海中)의 신선’을 찾는 것인 것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한고조도 크게 곤욕을 겪었던 흉노를 정벌했으나 정작 〈효무본기〉에는 이에 대한 사항이 별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조선 정벌에 대해 “이듬해 조선을 정벌했다”라고 한마디로 묘사하고, 대원국(大宛國) 정벌에 대해서도, “이해에 서쪽 대원국을 정벌했다”라고 한 마디로 정리했으며, 나아가 “건장궁(建章宮)을 지었는데 헤아려보니 문이 1천 개이고 방이 1만 개였다”라고, 진시황 못지않게 거대한 역사(役使)를 좋아하는 군주로 묘사했다.
무제에 대한 이런 박한 기술은 그가 당한 궁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마천은 황제로 시작해 삼대와 진나라를 거쳐 한나라로 이어지는 하화족의 민족사를 서술하려는 자신에게 궁형을 가한 무제를 좋게 평가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가 아무리 중립성을 강조해도 역사 서술에 절대적 객관이나 중립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저자

사마천

자가자장子長으로서하양(지금섬서성한성시)출신이다.한무제때태사공을역임하다가이릉사건에연루되어궁형을당했다.기전체사서이자중국25사의첫머리인《사기》를집필해역사서저술의신기원을이룩했다.후세사람들이태사공또는사천이라고높여불렀다.《사기》는한족의시각으로바라본최초의중국민족사라고할수있는데여기서사마천은동이족의역사를삭제하거나한족의역사로바꾸기도했다.

목차

〈효경본기〉
제1장.의혹속에즉위한효경제
오초칠국의난
태자를바꾸다

제2장.흉노와싸우다
자주일식이있었다
효경제가사망하다

〈효무본기〉
제1장.방사에빠진황제
효경황제의가운데아들이다
태일신에게제사를지내다
수궁에신군을두다
난대欒大를오리장군五利將軍으로삼다

제2장.천하를주유하며신선을찾다
천하여덟곳의명산
신선의자취를보다
무제가중악의태실산에오르다
조선을침략하다
한나라역曆을바꾸다

출판사 서평

우리의시각으로시대의고전을다시읽는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세계최초로삼가주석번역은물론
새로운관점의주석까지추가한《신주사기》출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사마천의《사기》본기12권과이에주석을단대표주석서《집해》,《색은》,《정의》를번역한새로운사기를출간했다.《신주사기》9권이그것.
사마천의《사기》는〈세가〉나〈열전〉의일부장면들이널리알려지면서재미있는책으로인식되지만사실제대로알려고하면방대하고도난해한역사서다.예로부터《사기》를풀이한수많은주석서들이난무했던것은이때문이다.수십종의주석서중대표적인주석서가남조송나라배인(裵?)의《집해(集解)》와당나라사마정(司馬貞)의《색은(索隱)》,당나라장수절(張守節)의《정의(正義)》를꼽는데이를삼가주석(三家注釋)이라고한다.삼가주석을보지않고《사기》를제대로이해하는것은불가능하다는말이그래서나왔다.삼가주석은본문보다방대하고동양고대사상과제도,관습등에해박해야이해할수있는내용인데,때로는사마천의본문과충돌하기도한다.그래서삼가주석을이해하는것자체가또다른사기연구의길이기도하다.
그간일본명치서원(明治書院)에서1973년부터《신역한문대계(新譯漢文大系)》의하나로《사기(史記:전15권)》를간행한것이중국어권이외의나라에서수행했던가장방대한사기편찬사업이었다.그러나일본의《사기》도삼가주석전체를완역하지는못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사기연구실에서번역하고신주를단《신주사기》는중국어권이외의나라에서처음으로《사기》본문과삼가주석을모두번역하고새로운관점의〈신주(新註)〉까지달았다.롯데장학재단의연구비지원을받았는데,이번에간행된본기만9권이다.〈지〉,〈표〉,〈세가〉,〈열전〉까지모두간행되면총40권을상회하는방대한프로젝트이다.

중국사의시작은언제부터인가

중국고대사를연구하는이들에게가장큰난제는중국사의시작이언제부터냐는것이다.이는중국민족의시작이언제부터냐는질문이기도하다.중국민족은유방이세운한나라를따서한족(漢族)이라고부르기도하고,우(禹)임금의하나라에서‘하(夏)’자를따고섬서성화산에서‘화(華)’자를따서하화족(夏華族)이라고부르기도한다.문제는한족,즉하화족역사의시작이언제부터냐는것인데,사마천은황제(黃帝)부터시작하는〈오제본기〉로중국사를시작했다.
그러나사마천의이런설정에의문을품은학자들이많이있었다.오제전에삼황(三皇)이있었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색은》의편찬자사마정은사마천이삼황을삭제한데불만을품고복희,신농,여와씨를수록한〈삼황본기〉를따로편찬했을정도로사마천의계보도는많은비판을받았다.게다가사마천은오제의시작을황제로설정했지만서진(西晉)의황보밀(皇甫謐:215~282)은《제왕세기》에서삼황도수록하고황제가아니라소호(少昊)를오제의첫번째로꼽았다.사마천이황제부터중국사를시작한것을인정할수없다는뜻이었다.

사마천이숨긴역사,사라진동이족군주들

그런데사마정과황보밀등은사마천이삼황과오제를삭제한이유를알지못했다.중국은최근산동성(山東省)남부임기(臨沂:린이)시에거대한동이문화박물관을열었다.여기에4명의동이족군주를전시해놨는데,태호복희씨,소호김천씨,치우,순임금이그들이다.삼황의시작이태호복희씨이기때문에삼황부터《사기》를기술하면한족의중국사가아니라동이족의중국사가되기때문에삼황을삭제한것이다.
또한《삼국사기》〈김유신열전〉은김유신의혈통에대해“헌원(황제)의후예요소호의후손이다”라면서“남가야시조김수로왕은신라와같은성이다”라고말하고있다.김해김씨,김해허씨,인천이씨등700만에달하는가락종친들이모두소호김천씨의후예라는뜻이다.
이처럼소호는동이족임이너무나명백하기에사마천은소호도지웠다.즉,삼황의시작이태호복희씨고,오제의시작이소호김천씨인데,태호나소호부터시작하면한족의중국사가아니라동이족의중국사가되기에사마천은태호와소호를지우고황제부터시작하는중국인의《사기》를작성했던것이다.
이를통해사마천은동이족의역사를지우고한족,즉하화족의중국사를서술했다.얼핏봐도중국남방사람들과북방사람들의생김새가다름에도모두한족이라는개념은사마천의《사기》이후만들어진것이다.
《신주사기》는때로는사마천의《사기》에서그근거를찾고,때로는고대의여러학자들은물론청나라고증학파와민국시대(民國時代:1912~1949)고사변학파들의주석까지집중적으로연구해중국사의계통을바로잡으면서동이족의고대사를복원해냈다.1권오제본기의‘사마천이설정한오제및하은주시조계보도(109쪽)’는전세계에서최초로작성한계보도다.이를통해①황제,②전욱,③곡,④요,⑤순의오제는물론하·은·주(夏殷周)3대의시조가모두동이족이라는사실을일목요연하게알수있다.

직독직해한《신주사기》

《신주사기》는사마천이쓴본문과삼가주석을모두번역하고그아래원문을수록했다.또한의역을최대한피하고한문장한문장직독직해를원칙으로삼아번역했다.그래서한자를조금아는독자라면원문과대조하며사기원문을읽는지적즐거움을누릴수있다.단순한중국사가아니라하화족의역사속에숨겨진동이족의역사를찾는여정이야말로현재정체성의극심한혼란을겪고있는우리가《신주사기》를읽어야하는진정한이유일것이다.